♡ 심장의 기독교가 실상이다(2)!! ♡
사람들은 자신이 주님을 잘 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수도 있어요.
만약 주님이 그들을 모른다고 대답하시면 그것은 정말 비참한 일이 되겠죠.
그렇다면 내가 착각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신이 맺고 있는 열매를 보면 돼요.
내게서 주님의 열매가 나타나면 나는 주님을 조금 알고 있는 것이고,
나에게서 자신의 열매만 나타난다면 나는 주님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죠.
그들은 항의해요.
주님.. 길거리에서 저희를 가르치지 않으셨냐고.. 왜 모른 척 하시느냐고 따지죠.
길거리는 공개적인 공간이에요. 이것은 사적인 공간이 아니죠.
길가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해요.
길가에 뿌린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죠.
길가에서, 시장에서 바리새인들이 긴 옷을 입고 기도했지만 그 기도에는 열매가 없어요.
길가는 공개된 공간이고 사람들이 오고 가는 복잡한 공간이에요.
길가에서 기도할 때는 사람을 의식하게 되죠.
‘아.. 내 기도가 경건하게 보일까?
오늘 이 기도가 은혜를 끼쳤을까?’하는 식으로 생각이 복잡해져요.
그런 외적인 기도들은 하나님께 이르지 못해요.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죠.
길가는 지나가는 곳이지 안식하는 곳이 아니에요.
길가는 교제하는 곳이 아니에요.
길가는 쉴 수 있는 곳도 아니죠.
길에서 잠을 잘 수도 없잖아요? 길에서 자면 그건 집이 없는 노숙자겠죠.
그처럼 길가는 개방된 곳이므로 사람들의 눈이 많아요.
사람의 눈이 많은 곳에서는 자신의 속 모습을 드러내기 어렵고 외식하기 쉬운 상태가 되죠.
그러니 길가는 기도하는 장소로는 적절한 곳이 아니에요.
길가에서 기도하는 것은 외적인 기독교를 보여주는 것이죠.
공적인 공간에는 열매가 없어요.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의 장소는 골방이에요.
거기는 주님과 자기 밖에 아무도 없죠.
남이 내 기도를 들을까 신경 쓰지 않고 회개기도든지, 뭐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골방기도와 같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이고 은밀한 기도에 주님이 가까이 오세요.
그렇게 주님이 오시면 응답이 있고 열매가 생기죠.
문제에, 삶에, 인격에.. 모든 것에 응답과 변화와 열매가 생겨요.
머리는 공적인 영역이에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영역이죠.
가슴은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사적인 공간이에요.
그러므로 머리에 말씀이 가득하고 가슴에는 말씀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면
그것은 주님께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의 선언을 받는 상태와 같아요.
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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