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Q&A
1. 엔돌의 무당과 사무엘
Q: 심령술사와 혼령 관계/ 영화 소설 등에서 심령술사 또는 무당이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낸다고 하는데
이게 가능할까요? 성경 또한 사울이 죽기 전 무당을 통해 엘리야를 불러내는데 이것이 과거 낙원이라
가능한지, 현재도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A: 성경에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기적들이 많이 있다. 주로 모세부터 시작됨, 뱀, 나병, 홍해, 요르단,
해와 달이 멈추어 섬(수10:12-13) 등 아모리 족속 멸절, 해가 하룻 동안 지지 않음
여호수아 이후 재판관들, 엘리, 사무엘, 초대 왕 사울,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산다가 패망을 당함
사무엘이 죽은 이후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사울이 핀치에 몰림(삼상28).
5-6절, 그런데 이미 사울은 영매들을 제거함(28:3). 아무 대답이 없자 두 사람과 함께 부리는 영을
지닌 엔돌의 여인에게 감(7-8). 여기의 부리는 영(familiar spirit), 라틴어 ‘familiaris’(파밀리
아리스)에서 나오며 뜻은 ‘집안의 종’, 한 가족처럼 익숙하게 부리는 영, 위키백과 무당이나 박수를
지도하는 영
판타지 소설
사울의 요청: 사무엘을 위로 데려오라(11).
드디어 사무엘이 나타남(12)
여인이 본 것: 14절 한 노인이 겉옷을 입고 올라옴.
사울이 사무엘을 알아보고 절함(14)
사울의 하소연(15), 사무엘의 책망(16), 예언(19)
1. 여기의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인가? Yes!
2. 그러면 이 여인이 사무엘을 불러왔는가? No!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과 교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죽으면 다시는 이 세상과 교통이
없다. 보편적인 법칙, 그런데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루어진다.
민22:22-35, 발람, 모압 왕 발락, 나귀가 말을 해서 그를 꾸짖음, 이런 일은 단 한 번 가능
죽은 자를 지하 지옥에서 땅 위로 보내 말씀을 전하는 것도 단 한 번, 하나님의 일
이런 것을 보편화하려 하면 안 된다.
40일 금식, 세 이레 새벽기도, 다마스쿠스 도상 체험 등
3. 그 결과 예언대로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은 삼하31장에서 죽임을 당함.
4. 지금의 영매는 무엇인가? 영매들이 사용하는 영은 사탄 마귀의 졸개
예수님 당시에도 마귀들의 활동이 많았고 예수님이 오자 가장 먼저 알아봄(마8:29).
빌립보에서 바울의 사역(행16:16), 점치는 영이 부리는 영, 진실을 말한다(17), 바울이 내쫒는다
(18).
5. 국내에 귀신 쫓는 교회, 김기동 목사 등, 삼촌 귀신, 할아버지 귀신 등
귀신은 죽은 자의 넋, 혼령, 성경에는 귀신이 없다. 다 샤머니즘의 산물
사람은 죽으면 지옥에 가든지 천국에 가든지 둘 중 하나, 구천의 혼령 없다.
그러면 귀신 들린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삼촌은 누구인가? 마귀가 사람을 홀리는 것이다.
6. 날이 갈수록 마귀의 역사가 심해진다. 심령술, 영매, 뉴에이지 심령 기법(최면, 명상, 요가, 기)
7.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일, 가나안 족속들이 행하는 악한 일(신18:10)
9. 유튜브에서 ‘신유와 축사’ 쳐서 동영상 참조 바람
성경 Q&A
2. 입다의 딸은 살았는가, 죽었는가?
Q: 개역성경에는 입다가 자기 딸을 죽여서 번제 헌물로 드렸다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인신
제사를 받으십니까? A: 아닙니다. 입다의 딸은 죽지 않고 평생 처녀로 지냈습니다.
사사기 11장의 재판관 입다, 1-10절 배경, 요르단 동쪽 길르앗 출신의 재판관, 서자 출신, 아버지의
친자들이 그를 내쫓음.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침략,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옴
11-28절, 입다가 암몬(지금의 요르단) 자손과 설전을 벌임, 이스라엘이 300년 전에 정복해서 얻은
요르단 부근의 땅을 돌려달라고 하자 No! 드디어 29절부터 전쟁이 벌어짐
입다의 서원: 30-31, 싸우고 돌아왔는데 자기의 외동딸이 그를 맞으러 나옴(34-35)
35: 내가 돌이킬 수 없다. 36: 서원대로 하십시오. 37: 두 달 동안 산에 가서 울다 오겠습니다. 그
이유 나의 처녀 생활로 인하여(virginity), 이것을 개역은 처녀 죽음이라고 표기함, 개역개정은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 성도들은 그녀가 죽은 것으로 이해함. 인신 제사 가능
39: 두 달 뒤 서원대로 행함. 그 결과 그녀는 남자를 알지 아니하였다. 개역개정은 죽어서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로 또 오역. 킹제임스 성경은 콜론(:)이 있다. 영어에서 콜론은 앞 문장의 결과를 부연
설명하는 데 쓰인다. 즉 그가 서원을 행한 결과 그녀가 처녀로 평생을 지내게 된 것이다.
40: 여인들이 시집가지 못한 입다의 딸을 위해 일 년에 나흘씩 애곡함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해석은 No!
하나님의 가나안 족속 퇴치 명령(레18:21, 20:2-5, 6-7): 거룩한 자(7)
암몬 자손의 행습(왕상11:7), 렘32:32-35, 인신 제사가 유다 패망의 원인, 므낫세(왕하21:6)
이런 하나님이 인신 제사를 요구한다면 말이 될까? No!
입다의 서원은 그냥 한 것이 아니다. 29절에 보면 그는 주의 영이 충만한 가운데 그런 서원을 한 것이다.
창22장의 아브라함,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연단하시기(try) 위해 선한 의도로 시험한 것이다(히
11:17). 더욱이 그는 자기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히11:18-19).
그러므로 창22로 입다를 매도하는 것은 온당한 해석이 아니다.
만일 입다의 서원이 실수라면 하나님이 인간의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무자비한 존재, 그런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 죽게 하시고 등은 허공의 메아리
그러면 입다는 서원을 잘못했을까? 하나님의 영이 임했는데 인신제사 서원을 했을까?
31절의 의미를 잘 보면 그렇지 않게 보인다. 여기에는 무엇이든지, 그것.. 그러면 입다는 짐승이 나올
것을 기대했을까? 개나 고양이 혹은 양, No! 그는 사람 특히 그의 종이 나올 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려 했을까? for a burnt offering, as가 아니라 for이다. for는 ‘대신한다’는 뜻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태우는 헌물 대신 그것을 드리겠다. 그러면 태우는 헌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의 번제 헌물은 완전히 전체를 드리는 것이다(신33:10; 막12:33). 즉 입다는 자기를 맞이하는
사람을 평생토록 주님께 바치겠다고 한 것이다. 그 결과 딸이 평생토록 처녀로 살며 주님께 헌신함
그러면 레위기 27장의 전적으로 봉헌된 자를 죽이라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29)
이것을 입다의 딸에게 적용하면 안 된다. ‘전적으로’를 왜 첨가했나? 레27:21, 28, 29, 민18:14의
6회, 여기의 히브리말은 전적으로 멸하기 위해 주님께 바쳐져서 무르거나 팔 수 없음을 뜻함. 28-29의
No, None 등이 ‘전적으로’를 내포함. 주께로 전적으로 구별되어 거룩함(21).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남녀를 죽이라고 말씀하신 사례(수6:18, 21)
민21:2-3의 가나안 족속 멸절, 삼상15:21의 아말렉 족속 멸절 등
이런 사례의 대상들은 하나님의 존엄하신 법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영원토록 그분의 저주 아래 있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 이런 구절은 결코 인신 제사 용, 입다의 딸 등에 적용될 수 없다.
결론: 입다의 딸은 죽지 않고 처녀로 일생을 보냈다. 인신 제사 No, 입다는 믿음의 사람(히11:32).
성경 Q&A
3. 오대양 육대주는 언제 만들어졌나요?
Q: 창10:25, 벨렉의 시절에 땅이 하나였다가 오늘날에 모습처럼 갈라졌는데 사람의 시간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나요? 그때도 지금처럼 24시간의 하루인가?
A: 노아의 홍수(BC 2348년), 그 이후 100년쯤 지나서 BC 2247년 벨렉 출생
The earth was divided.
독일 학자 베게너(A. L. Wegener)의 ‘대륙이동설’, 원래 ‘판게아’라고 하는 하나의 대륙(원래 지구)에서
분열이 일어나 오대양 육대주로 발전이 됐다는 것
창1:9
지구의 중심: 중동, 이스라엘, 모든 시대 역사의 중심
호주의 캥거루, 에스키모, 북미 인디언도 No problem! 다음 주 인종 문제
그런데 이 일이 얼마나 급속히 일어났는가? 답은 모른다. 그 당시 하루는 지금의 하루
성경 Q&A
4. 욥의 부활 사실인가?
Q: 욥19:26을 보면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성경이 각각 ‘육체 안에서’와 ‘육체 밖에서’로 달리 표기되었는데
그 차이를 알려주십시오.
A: 개역[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흠정역: [25]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는 것을 내가 아노니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26] 내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은 노아의 홍수 이후 사람, 아브라함과 비슷한 시대, BC 2000년경,
욥1:1,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함께 구약시대에 이방인으로 구원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실제 인물(겔14:14; 20; 약5:11)
까닭 없는 고난, 고난 이후의 행복, 그런데 욥기에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확실한 부활 메시지가 있다.
19장은 욥의 하소연, 23-24
욥의 부활 확신: 25-26
25절: 구속자 즉 욥의 구원자가 세상 맨 끝에 이 땅에 서신다. 메시아, 7년 환난기 이후 지상 강림,
이때에 구약성도, 환난기 성도 부활(단12:13), 천년왕국 시작, 예수님이 이 땅에서 철장 통치
26절: 지금 죽어도 부활한다. 그리고 ‘육체 안에서’ 즉 부활한 몸을 입고 하나님을 본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
그런데 다른 것이 아니라 그의 눈이 그분을 ‘육체 안에서’ 즉 ‘육체를 입고’ 본다. 개역처럼 눈이 육체
밖에 있으면 유령이다. 몸의 부활이 아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내 주는 살아계시고’, 1741년
성경이 올발라야 한다.
성경 Q&A
5. 압살롬의 40년 진실
사무엘기하 15장 7절과 열왕기상 2장 11절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사무엘기하 15장 7절: 사십 년 뒤에 압살롬이 왕께 이르되, 내가 주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내가 가서
헤브론에서 내 서원을 갚게 하소서(킹제임스 성경).
열왕기상 2장 11절: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날들이 사십 년이더라. 그가 헤브론에서 칠 년을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통치하였더라(킹제임스 성경).
여기의 문제를 살펴보고 이해하기 위해 먼저 문맥을 살펴봅시다. 삼하 15장은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7절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4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어 청원이나 사정이 있는 사람이 다 내게로 올
때에 그에게 정의를 베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5 어떤 사람이라도 그에게 가까이 와서 경의를 표하려 하면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라.
6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온 이스라엘에게 압살롬이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니라.
7 사십 년 뒤에 압살롬이 왕께 이르되, 내가 주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내가 가서 헤브론에서 내 서원을
갚게 하소서.
7절의 40년이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데 걸린 시간이라면 압살롬의 나이는
40세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있을 때에 태어났습니다(삼하3:2-3).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반을 통치했고(삼하2:11)
그의 통치 기간은 전부 40년입니다(삼하5:4). 이것은 다윗의 통치 기간에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으므
로 그의 나이가 40세 이하여야만 함을 보여 줍니다.
이런 문제가 있으므로 한글개역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은 7절의 40년이 서기관들의 잘못으로 인한
오기(誤記)라고 말하며 따라서 4년이 맞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은 분명히 40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히브리 성경과 예수님이 틀렸다는 것이지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그대로 믿는 ‘비블리시스트’(Biblicist)로서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문맥을 바로
이해하면 곧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기의 40년은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데 걸린 시간도 아니고 그 당시 다윗의
나이도 아닙니다. 다윗은 30세에 통치하기 시작했고(삼하5:4) 그 후에 압살롬이 태어났으므로 다윗이
40세에 압살롬은 기껏해야 아홉 살 뿐이 안 되었습니다. 열 살짜리 아이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또한 압살롭에게는 이미 아이들이 있었습니다(삼하
14:27). 어떤 이들은 여기의 40년이 다윗의 통치 기간 40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압살롬의
반역은 그의 통치 이후에 발생하는데 이러면 삼하16장 이후의 사건들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의 신실한 친구인 플로이드 존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6절에 언급된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한 일’에 있습니다. 즉 압살롬은
다윗에게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그들이 다윗을 버리고 자기를 따르게 했습니다.
그러면 언제 다윗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이 자기를 따르게 했습니까? 그 일은
그때로부터 40년 전 즉 다윗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죽이고 계속해서 전쟁에서 승리했던 때에 일어났습
니다(삼상18:5, 16, 30). 그러므로 여기의 40년은 서기관의 실수가 아닙니다. 이 40년을 이렇게
이해해야 다윗의 생애 연대기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비블리시스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나오면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발휘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골리앗을 죽여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 40년이 지나서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그에게서 도둑질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비블리시스트들은 예수님
과 함께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히브리 본문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믿음으로 그 안에 보존된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다 해결하지 못한 것은 죽어서 하나님이 깨끗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패시키는 자들처럼 그 귀한 단어들에 가감을 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늘의 위로가 있을 줄 확신합니다.
성경 Q&A
6. 생명책에서 지워지면 구원은 어떻게 되나요?
Q: 계시록 3장, 22장의 생명책, 목사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책에 기록되고,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죽을 때 생명책에서 지워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동안 행위 책과 생명책이
있으며 사람의 이름이 일단 행위 책에 기록되었다가 구원받으면 생명책으로 옮겨진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나면 마귀의 자녀였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고 배웠는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내용과 달라서 질문합니다.
A: 6년 전에 계시록 강해, 사데 교회를 다루며 계3:5의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용이 조금 부족했다.
이기는 자 곧 그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와 이기지 못하는 자, 여기의 지워버리는 일이 구원 상실인가?
그 뒤 킵바이블에 ‘생명책’ 글을 썼지만 역시 전체 성경과 조화를 이루는 데 조금 부족한 점이 있었다.
이분의 질문의 핵심은 언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느냐는 것입니다. 또 구원받은 이후에 죄를 지으면
혹은 이기지 못하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여기저기 찾아보며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팀 라헤이(Tim LaHaye) 목사님 등이 설명해 놓은
것이 가장 유익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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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명책(book of life)을 살펴보자.
구약에는 생명책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더러 있다.
다윗의 시편, 그들(사악한 자들)을 산 자들의 책(book of the living)에서 지우사 의로운 자들과
함께 기록하지 마소서(시69:28).
이 책은 하나님의 책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 32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
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33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
되,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출32:32-33). 구원상실?
이 책은 창조자 하나님이 창조하여 생명을 부여하신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책이며 여기에는 우리의
몸이 모태에서 형성되는 것도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시편, 주의 눈이 아직 불완전한 나의 실체를 보셨으며 계속해서 형성된 나의 모든 지체들이
주의 책에 기록되되 그것들 중에 아직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 기록되었나이다(시139:16).
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죄를 짓고 용서받지 못한 자(출32:33), 즉 하나님 앞에서 칭의를 얻지 못한 자
구원 받으면 하나님 앞에서 신분 면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들이 완전히 제거된다.
2. 이기지 못한 자(계3:5), 여기서 ‘이기는 자’는 행위를 많이 한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 즉 모든 성도를 말한다.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3. 성경 말씀을 고의로 변개한 자(계22:19), 누가 감히 성경을 고치는가? 불신자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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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을 때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적으로 그것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면 누구든지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그리고 그가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 있는 한 신자든 불신자든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죄 용서를
받지 못한 자 즉 불신자와 성경 변개자 같은 죄인들의 이름은 거기서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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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책이 있는데 이 책에 이름이 오른 사람은 그 이름이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 책의 이름은 ‘어린양의 생명책’이다.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 곧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여기의 어린양은 물론 세상 죄를 제거하는 예수님을 말한다(요1:29).
‘어린양의 생명책’에는 그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일단 이름이 오르면, 즉 구원받으면 어린양께서 끝까지 그를 구원하실 수 있으므로
이름이 지워지는 일이 없다.
1.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은 불신자, 그들의 이름은 결코 이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히7:25).
그러므로 ‘생명책’과 ‘어린양의 생명책’은 두 개의 다른 책으로 생각된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며 또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을 이루게
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
라(계21:27).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경우 그의 이름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결코 기록되지 않는다.
--------- 결론 ---------
비록 구약 시대 이야기지만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를 보시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 사건, 하나님은 부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히 이 땅에서 이름이 있었지만
죽은 뒤에는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모른다. 반면에 구원받은 아브라함과 나사로는 이름이 있다.
갈라디아서 4장 9절도 비슷한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안 뒤에 혹은 [하나님]께 알려진 뒤에 어찌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 속박 당하려 하느냐?
여기의 ‘너희’는 구원받은 성도, 이처럼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받을 때 하나님에게 알려진다. 물론 하나님은
구원받기 전에도 그를 아시지만(생명책으로), 구원받아야 비로소 그를 어린양의 생명책의 이름으로
아신다. 갈4:9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은 모르신다고 말한다. 즉 ‘어린양의 생명책’의 이름으로
는 모르신다는 것이다.
---------- 행위 책 ----------
계20:12, 불신자들의 행위를 기록한 책들(단7:10, 천년왕국 이후의 심판 때의 책들)
분명히 행위들을 기록한 책들이 있다. 행위는 보상에 관한 것이다. 불신자, 신자(계22:12)
그러나 행위 책에 기록되었다가 생명책으로 옮겨지는 일은 없다. 자칫 잘못하면 행위 구원
--------- 결론 ----
1. 구원받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책에는 이 땅에 태어나 생명을 가진 모든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다.
2.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죽으면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진다.
3.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으면 영원토록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이름이 삭제되지 않는다.
4. 행위 책이 있지만 사람의 이름이 구원받을 때 행위 책에서 생명책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성경 Q&A
7. 결혼에 대한 성경의 규정
7. 성경에는 결혼에 관한 규정들이 있나요? 어떤 신자들은 연상연하 결혼은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성경으로 설명이 가능한지요? 성경에는 이런 규정 없다.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을 잘할 수 있으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성경이 금하는 것: 간음(레20:10), 근친상간(레20:11-12), 근친결혼은
구약시대에는 OK, 지금은 유전자 변이 때문에 열성이 모여 불구 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동성결혼(레
20:13), 수간(레20:15), 국제결혼 Yes(보아스와 룻)
다만 결혼은 신중히 해야 한다.
유튜브에서 ‘결혼 시리즈’
성경 Q&A
8.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맞나요?
/구원에 관한 기도/사람은 자유의지대로 본인이 생각하고 마음을 정해야 하는데 자꾸 하나님께 구원해달고
기도하면 될지 의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할 바를 잘 모르기도 하고 완벽하게 기도하기는 어렵겠죠.
사람 마음을 바꿔달라는 기도 자체가 의미가 없어 보이네요. 그냥 마음 자체는 하나님이 아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못된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개입하시는 걸까요?
구원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인정, 회개, 신뢰, 영접 등
그러므로 구원받게 해 달라고 하며 아무 일도 안 하면 자동 구원 불가능
다만 “대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일거나 들을 기회를 허락해 주세요.”, “들을 때에 이해하고 돌이킬 수
있게 해 주세요” 등등 의 의미
롬10:14-17, 하나님의 말씀, 들음, 믿음, 이를 위해 말씀을 들고 가는 일이 필요하다.
카톡(유튜브), 전도지, CD, 직접 설명
“선생님 구원받으셨습니까?” 죽기 전까지 40여년을 호주 시드니의 조지 스트리트에서 3줄 설교를 했다.
“선생님, 구원받으셨습니까? 오늘 밤 죽는다면 영원을 어디서 보내실 것입니까? 천국인가요, 지옥인가
요?”
구원받은 이후 서약: 하루에 10명에게 전하겠다고. 죽기까지 전했으나 “당신 때문에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라는 말을 듣지 못함. 40년이 지난 이후 죽기 2주 전에 영국의 목사 방문, 146,000명, 천국에서
유명한 사람, Frank Jenner, Jenner Question, 위키 백과에도 오름
우리 교회와 각 성도가 이 일을 해야 한다. 전도지, CD, 설교, 소책자, 카톡, 무엇이든
시126:5-6, 사55:10-11
성경 Q&A
9. 나쁜 짐승 및 창조물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만드셨나요?
그분께서 ‘이, 벼룩’ 같은 것도 만드셨을까요, 아니면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실 때 처음 만드신 걸까요?
창1:1, 2:1, 출20:11, 그러나 왜 이, 벼룩, 쥐, 바퀴벌레 같은 악한 것들도 창조하셨는지 모름
유한한 사람이 무한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롬11:33-34).
다만 목적이 있어서 그리하였다.
예를 들어 사람은 타락하면 창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크게 여기고 경배한다(롬1:21-25).
하나님의 이집트 심판(출12:12), 그들의 신들: 나일 강, 개구리, 이, 파리, 메뚜기 등
사람이 타락하면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을 보여 주려면 무언가가 있어야 함
시49:12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 입증하려면 이런 것들도 존재해야 한다. ‘모든 것이 좋았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이것들도 타락하여 지금과 같은 상태로 되었다.
그래서 창조 세상도 구속을 기다린다(롬8:19-22)
하나님의 천년왕국에서도 해하거나 상하는 일이 없다(사11:6-9; 합2:14)
성경 Q&A
10. 인종 이야기
“사람은 보통 흑인, 백인, 황인 등으로 분류됩니다. 소위 인종이라는 것은 언제부터 생겼나요?”
사람이 왜 다양하게 생겼는가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동물이나 식물의 품종 개량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대로부터 쓰인 품종 개량 방법은 사람이 원하는 형질을 지닌 생물 간의 자손을 얻어 이들 가운데
일부만을 선택하고 다시 이들 사이에 자손을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먼저 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개는 종류 혹은 품종이 매우 다양합니다. 그레이트데인, 세인트버나드,
마스티프 등은 무게가 90Kg이나 나가는 큰 개입니다. 반면에 치와와 같이 무게가 1kg 정도 되는
작은 개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긴 털, 짧은 털, 긴 코, 뭉뚝한 코, 긴 다리, 짧은 다리를 가진
개가 수없이 많습니다. 이렇게 생김새와 크기 등은 달라도 이것들은 모두 같은 염색체를 가진 개입니다
(혹은 개과에 속한 짐승입니다). 78개의 염색체, 사람 46개, 원숭이 48개
사람들은 품종 개량을 통해 자기들이 원하는 형태의 개를 만들어 왔습니다. 서로 다른 개들을 연구한
결과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 정착함에 따라 개들도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 지역별 품종도 서로 다르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의 품종은 지역별로 크게 북방 타입, 남방 타입, 유라시아 타입으로 구분됩니다. 북방견은 북유럽의
스피츠 품종을 말하며 대표적 품종은 에스키모 개입니다. 이런 종류의 개들은 추운 기후 때문에 중간
길이의 직모를 하고 있습니다. 진돗개, 풍산개, 시베리안 허스키, 저먼 스피츠, 재페니즈 스피츠
등이 여기 속합니다.
남방 타입 개는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한 개들을 말합니다. 남방견은 북방견에 비해 골격이
가늘고 길며 섬세하기 때문에 날렵하게 생겼고 귀는 똑바로 서 있습니다. 남방견에는 그레이하운드,
그레이트데인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라시아 타입은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품종을 말합니다.
이 타입의 대표적인 개는 가슴이 두툼하고 폭이 넓으며 사각의 큰머리에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는
마스티프입니다. 이 품종에는 불도그, 로트와일러, 세인트 버나드, 도베르만 핀셔 등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주요 품종에서 지금 존재하는 모든 개가 나왔습니다(개라는 한 종, 수천 가지 종류).
사람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보통 유라시아, 아프리카, 아시아에 사는 사람을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
이라 부릅니다.
오늘날 ‘인종’(race)이란 말은 피부색, 눈 모양, 머리카락 등의 육체적 특성이 구별되는 사람들의 그룹을
의미하는데 사실 이러한 의미는 1800년대 후반에 사람들이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생긴 것입니다.
‘인종’이라는 말은 잘못 생각하면 서로 다른 세 종의 사람이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개의
예에서 보듯이, 개라는 한 종에 세 개의 주요 품종이 있는 것처럼 사실 사람도 한 종 즉 ‘사람 인
종’(human race)이 있고 백인, 흑인, 황인이라는 세 개의 주요 품종이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또 그분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모든 민족들을 한 피에서 만드사 온 지면에 거하게 하시고 미리 정하신
때와 그들을 위한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으니(행17:26)
사람들은 어리석을 때가 참 많습니다. 유전의 법칙을 이용하여 여러 대에 걸쳐 우성 형질을 개발하면
자기가 원하는 품종의 개를 만들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사람도 동일하게 그리될 수 있다는
것은 대부분 잊고 삽니다.
우리는 행17:26에 따라 아담과 이브에게서 모든 사람이 생긴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불신자들은
이에 대해 궁금해 하곤 합니다.
1987년 <Nature>지에는 여성들에게만 계속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연구한 결과 모든 여성들
이 한 여성으로부터 나왔음을 보여 주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또한 1995년 <Nature>지에는 남성에만 존재하는 Y염색체를 연구해서 모든 남성들도 한 남성으로부터
나왔음을 증명하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담과 이브라는 한 쌍의 부부로부터 나왔음을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한 쌍의 부부로부터 다양한 크기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부모의 유전자가 서로 교환되기 때문에 다양해질 뿐 아니라, 정자와 난자 등 생식세포가
형성될 때 유전정보 자체가 교환이 일어나 그 자체가 엄청나게 다양해지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과
이브 안에 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의 유전 정보가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4,300년 전에 노아의 대홍수가 있었고 그 뒤 바벨탑 사건이 생기면서 이때에 언어의 혼잡으로
인해 바벨탑 근처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온 세상으로 흩어져 나갔습니다(단기 4348년). 바로 이때에
비로소 이방인들의 민족들과 나라들이 형성되면서 세계 4대 문명이 생겼습니다. 이러면서 유전 정보의
교환이 폭넓게 일어나지 않게 됨에 따라 지역에 따라 어떤 특성들이 두드러지게 되는 현상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피부색은 햇빛에 예민하기 때문에 햇빛의 조사량에 따라 사람들이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고, 집단 내에서 소외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문화적 선호 역시 품종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서 한 사람의 문화가
종족 계통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나가면서 자연적으로 말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각각의 그룹 안에서 우성 인자는 더욱더 강하게 되고 열성 인자는 점점 약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특정한 요소들이 극대화되는 효과가 자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원리는 현시대에
짐승의 품종을 개량하는 데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미국 흑인, 아프리카 흑인, 한국사람, 미국 내 한국사람
2015년 4월 10일, 조선일보, 네덜란드 평균 키 세계 1위, 184cm, 171cm, 200년 전 작은 키,
‘네덜란드에서는 키가 큰 사람이 아이를 더 많이 낳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평균
키가 더 커진 것’ ‘비슷한 영양 섭취 수준을 가진 서구 국가 중 네덜란드에선 '키 큰 유전자'의 대물림이
상대적으로 활발했다’, 우유
고립된 인구 집단- 전체 인구 집단(혹은 짐승 집단)은 다양한 유전적 특성을 집단 내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단에서 소수가 고립된 지역으로 이동하였다면 이 새로운 그룹은 전체 집단에 비해 매우
적은 유전적 특징(또는 유전형질의 적은 범위)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은 세대가 흐른
뒤 그 지역에는 원래의 집단과는 유전적 특징이 많이 다른 종족이 살게 될 것입니다.
자연선택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품종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적도 근처에 살면서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피부암과 같은 심각한 위험에 더 민감하며 따라서 그들은 생식 가능한 시기까지 살아서
그들의 후손들에게 밝은 색의 피부색 유전자를 전달할 기회를 적게 갖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태양 빛의 흡수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햇빛에 노출되었을 때 피부에서 형성되는
비타민 D3의 결핍 가능성이 크고 극지방에서 이것은 구루병(rickets)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세대가 지난 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자연히 적도 지방 근처에, 흰 피부의 사람들은
고위도 지방 근처에 많아졌을 것입니다.
문화적 선호, 고립된 인구집단, 자연선택 등이 조합되면서 여러 세대를 지나면 자연히 지금과 같이 여러
지역에 다양한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생물학을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출판된 <Nature>지 논문에서, 과학자들은 유럽, 아프리카, 중국, 일본 등 네 지역에 사는 270여
명의 DNA 지도를 작성하면서 잃어버렸거나 중복되어 있는 DNA의 부분들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논문에서 숨겨져 있는 사실(일반 언로에서 보도하지 않음)은 그 표본들이 네 개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채취되었지만 그것들은 세 개의 분명한 그룹 즉 중국인과 일본인의 한 그룹, 유럽인 그룹,
그리고 아프리카인 그룹으로 깔끔하게 나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셋을 세 개의 조상 집단이라고
불렀는데 이 세 그룹은 매우 분명하게 확연히 구분되었습니다.
여기서 세 그룹은 각각 나이지리아(Nigeria, YRI), 유럽(Europe, CEU), 일본(Japan, JPT)과
중국(China, CHB)입니다.
이 연구 결과는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이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유래했다는 창세기 9-11장에 기록된
성경 말씀과 놀라우리만치 일치합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노아의 세 아들 중 맏이인 야벳의 후손은
유럽으로, 함의 후손들은 남쪽 아프리카로, 셈의 후손들은 일부는 중동에 머물었고 일부는 북동쪽의
아시아로 흩어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이같이 형성된 사람의 세 그룹과 개의 세 그룹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북방,
남방, 유럽 그룹). 사람보다 개가 더 많은 변이를 보이는 것은 개의 경우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인위적
품종 개량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람에게는 인위적 품종 개량 시도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바벨탑 사건 이후에 노아의 세 아들들에게서 나온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지금처럼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과 짐승이 출현하였음을 과학적으로도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성경 Q&A
11. 왕국인가요, 천국인가요?
13. 성도가 죽으면 가는 데는 어디인가요? 천국인가요? 킹제임스 딤후4:18 ‘하늘 왕국’(heavenly
kingdom)인가요? 목사님 설교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했는데 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까요? 개역성경 마태복음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의 천국이 바로
그 천국인가요?
한 국가의 통치 제도는 누가 그 권력을 행사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된다. 다시 말해 백성들 개개인이 통치
권력을 행사하면 민주국이 되고 왕이 홀로 통치하면 왕국이 된다. 그러면 성경 속의 하나님의 통치 체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들처럼 여러 사람의 뜻을 물어 민주적으로 통치하실까? 아니면 홀로 주권을 행사하시며 자신의
뜻대로 통치 하실까?
신구약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왕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이다(엡1:6,
12, 14).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개념으로 가득하다. ‘왕국은 통치로 이해하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도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이 “유대인들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으며(마2:2) 그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셨다(마4:17). 그래서 그분께서 돌아가실 때에 십자가 위의 명패에도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 예수라는 글이 붙었다(마27:37).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왕으로 즉 그들의 메시아로 오셔서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메시아 왕국을 그들에게 제시하셨으나 배척을 당하시고 결국 유대인들의 왕으로 돌아가시면서 새로운
언약 즉 신약을 여셨다. 그러므로 왕국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마가복음 같은 경우 그 시작이
이렇게 되어 있다.
흠정역: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이제 요한이 감옥에 갇힌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여(막1:1, 14)
유대인들에게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런 것을 무시하며 진실을
가리고 있다.
개역: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막1:14)
이렇게 왕국이 중요하므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구절을 개역성경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번역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인데 과연 그 당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제 너희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가 되었다고 선포하신 것일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흠정역: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하늘에서 땅에 임하는 왕국
개역: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사실 개역성경으로는 이 구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개역성경이 ‘나라’로 번역한 그리스어 ‘바실레이아’는
왕국이며 여기서 예수님이 의도하신 왕국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문자 그대로 실제로 땅에 임하게 하사 자신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왕국 즉 ‘하늘의 왕국’이다(마4:17). 이 하늘의 왕국은 대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이미
오래전에 예언된 왕국으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세우시는 왕국이다.
흠정역: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실 터인데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하며 이 모든 왕국들을 산산조각 내어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단2:44).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왕국을 유대인들에게 제시하셨으며 결코 우리 성도들이 죽어서 가는 천국을 제시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왕국을 의도적으로 거부했고(마23:37-39) 이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전해지게 되었다(롬11:30-31).
한편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선포될 복음도 천국 복음이 아니고 바로 왕국의 이 복음이다(마24:14).
흠정역: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3-14).
위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목숨을 내걸고 주님께 헌신하는 자가 아니고 세상의 끝까지 견디는 자를 말한다.
즉 1차적으로는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으로 7년 환난기를 통과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들은 로마서 11장 26절
말씀 즉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른 뒤에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성취될 때에 구원받는 자들이다.
그래서 7년 환난기에는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는 왕국의 이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지고 그 이후에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땅에 강림하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신다. 그러므로 선교단체나 교회 등이 마태복음
24장을 문맥에 상관없이 취해 선교사들을 많이 보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 이것은 후천년주의에서 나온 발상이며 성경은 이런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선교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문맥에 맞지 않는 구절을 취해 내 목적에 맞도록 바꾸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처음부터 이 왕국의 도래가 가장 큰 관심사였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도 그분께 가장 먼저 왕국의 회복에 대해 물었다.
흠정역: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하매(행1:6)
개역: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 구절을 또 다시 오역하여 그 의미를 완전히 가려 버렸다. 이런 번역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의도를 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스라엘 대체 신학’이 주류를 이룬다.
한국 성도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늘의 왕국의 설립과 특히 천년왕국의 도래 등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학자들로부터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어려서부터 잘못 번역된 성경을 읽고 그것으로 말씀을 공부하므
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참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성경을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성도들이 대부분의 구절을 ‘영적으로 비유로’ 해석한다. 성경을 -
특히 구약성경을 - 읽으면서 그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하나님의 치리가 이루어지는 사실로 대하지 않고 다
나하고 상관이 있는 ‘영적 QT 재료’로만 사용하기에 우리 한국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심오한
관이 형성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왕국을 세우시고자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무엇보다 이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원대한 계획안에 사람의 구속(救贖)이 들어
있고 마귀의 파멸이 들어 있다. 결코 사람의 구원이 하나님의 계획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존 한글 성경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성경에서 왕국으로 번역된 ‘kingdom’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모두 342회
나오며 이것은 원래 ‘왕권’(kingship)을 의미했으나 후에는 주로 왕이 다스리는 통치 체제 즉 왕국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런 중요한 단어를 ‘나라’나 ‘천국’ 등으로 일관성 없게 번역했으므로 개역성경으로는 성경의 핵심 주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핵심 주제를 보여 주는 이 단어는 단지 여호와의 증인들의 전용
용어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한편 왕국의 이해가 부족하므로 인본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악용하여 천국이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주장하며 인본주의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개역: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그런데 여기의 너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한 바리새인들이 아닌가?
그러면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까지 하신 바리새인들 안에 - 혹은 그들의 마음 속에 - 하나님의
나라가 있단 말인가? 여기 나오는 나라 역시 왕국이다. 이것을 왕국으로 번역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 결과 자연적으로 문맥에 전혀 맞지 않는 영적 해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왕국이 성립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왕이 있어야 한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질문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왕으로 너희 가운데 와서 거하므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그들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결론적으로
‘왕국’(kingdom)을 ‘천국’(heaven) 혹은 ‘나라’(country)로 바꾸는 것은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를 완전히
가려 성도들의 성경 이해를 가로막는 심각한 폐해를 낳는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죽어서 가는 곳은 보통 천국이라고 한다. 이 천국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하늘의 왕국’이
아니다. 이곳은 우리말로 ‘하늘나라’라고 하는 곳이며 영어로는 단순히 ‘heaven’이다. 더 정확히는 세 하늘
중에 사도 바울이 올라갔던 셋째 하늘이다(하나님이 계시는 곳). 그래서 정확하게는 죽어서 ‘하늘에 간다’고
해야 하지만 이미 이 하늘은 우리말에서 지옥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천국으로 고정되었다(천국/지옥, 하늘/지옥).
그 셋째 하늘에는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므로 딤후4:18처럼 그곳은 ‘하늘에 있는 왕국’이며 줄여서 ‘하늘
왕국’이고 한자로는 ‘천국’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 상 맞는
말이다. 단 한국말을 영어로 번역할 때는 죽어서 ‘heaven’ 혹은 ‘heavenly kingdom’에 간다고 해야 한다.
또한 개역/개정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은 오역이다. 그것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
땅에 임하는 왕국 즉 메시아가 직접 다스리는 왕국이다. 이 왕국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거부되었고(마23:37-39)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1000년 동안 이 땅에서 그 왕국을 이루신다(계20의 6번 1,000년). 그때에는 구약
성경의 모든 왕국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다(사11:6-9; 35:1-2; 5-7; 사40:1-4; 66:17-25).
성경 Q&A
12. 성경의 모든 말씀에는 짝이 있나요?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프로테스탄트 성경 해석 원칙
천국(heaven), 지옥(hell), 어디, 어떤 곳, 누가 등을 알 수 있다.
그러려면 중요 단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번역되어야 한다.
개역성경은 불가능, 영어 킹제임스, 우리말 흠정역 yes, 왕국은 다 왕국
창4:1-7, 가인의 헌물과 아벨의 헌물, 히11:4, 짝이 있다.
그러면 모든 성경 구절은 짝이 있는가? 사34:16-17 아니다!
이사야서 34장 16절은 어느 한 두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려고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분들과 성경의 무오성을 증명하려는 분들이 숱하게 오해하고 왜곡해서 전하는
말씀이다.
이사야서 34장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담고 있다. 4절 참조(마24:29-31)
이때에 이스라엘 주변의 에돔(이두매아) 민족(지금의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북북)이 저주를 받음(5-6
절), 8절 참조, 그 결과 그 땅은 영원히 폐허가 되고(9-10) 7, 11-15절에 있는 것처럼 들짐승들이
그 땅을 차지함.
“너희는 주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중의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자기 짝이 없는 것이 없으
리니 이는 내 입이 그것을 명령하였고 그의 영이 그것들을 모았기 때문이라.”(16)
여기서 이것들은 심판을 받은 땅에 다음과 같은 들짐승들과 날짐승들이 무성할 것에 대한 말씀입니
다.
이것들 즉 거기 모이는 짐승과 날짐승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자기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라는뜻입
니다. 그렇게 불어나야 그 땅을 채우며 황폐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34:7 “유니콘들이 그들과 함께 내려오고 수소들도 황소들과 함께 내려오매 그들의 땅이
피로 흠뻑 젖으며 그들의 흙이 기름진 것으로 기름지게 되리라.”
(34:11) “다만 가마우지와 해오라기가 그것(그 땅)을 차지하며 또 올빼미와 까마귀가 그것 안에 거하
리니 그분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돌들을 팽팽히 드리우실 터인즉”
(사 34:12) “그들이 그것의 귀족들을 왕국으로 부르되 거기에 아무도 없겠고 그녀의 모든 통치자들도
없으리라.” 사람은 거주하지 않음
(사 34:13) “그녀의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자라며 그것의 요새에는 쐐기풀과 들장미가 자라서 그것(에
돔 땅)은 용들의 처소가 되고 올빼미의 뜰이 되리라.”
(사 34:14) “사막의 들짐승들도 섬의 들짐승들과 만나며 사티로스가 자기 동료를 부르고 날카롭게 외
치는 올빼미도 거기서 안식하며 자기를 위하여 안식처를 찾고”
(사 34:15) “큰 올빼미가 거기에 자기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까서 자기 그늘 아래로 모으며 대머리
수리들도 각각 자기 짝과 함께 모이리라.”
그리고 나서 16절이 나옴, 여기의 짝은 짐승과 날짐승의 짝
성경을 성경으로 푸는 것은 좋지만 짝이 없는 것을 짝으로 삼으면 문제가 됨
또 요5:39; 눅24:44를 잘못 인용하여 구약의 모든 말씀은 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말하면 안 된
다.
과유불급
좋은 것도 과하면 안 된다. 구약성경이 예수님의 예표, 많은 것 기록 맞지만 과하면 안 된다.
성경 Q&A
13. 목사는 제사장인가요?
제사장(Priest)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공적으로 주관하며 특히 속죄를 위해 희생 예물을 바치는 일을
하는 사람.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취하여 사람들을 위해 임명을 받아 죄들로 인하여 예물과 희생물을
드렸다(히5:1).
구약성경을 보면 율법의 수여 이전에는 제사장 직이 어느 한 가족에게만 귀속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모든 가족과 통치자와 왕의 장자가 제사장이 되어 그들의 도시와 가족 가운데서 제사장 임무를 수행하였
다. 가인, 아벨, 노아, 아브라함, 욥, 아비멜렉, 라반, 이삭과 야곱 등이 스스로 희생 예물을 드렸다.
그런데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언약을 맺을 때에 모세가 중재자가 되었고 젊은 사람들이
선택되어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였다(출24:5). 그러나 주님께서 레위 지파를 선택하여 자신의 성막에
서 섬기게 하시자 제사장 직분은 아론의 집에게 고정되었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과 희생물은 오직
그의 후손에 의해서만 합당하게 드려질 수 있었다(민16:40). 이 같은 규정을 어기고 하나님께 향을
드리려던 유다의 웃시야 왕은 곧바로 주님의 심판을 받고 나병에 걸리게 되었다(대하26:19).
우리 주님께서는 이집트 탈출 때에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보존해 주셨고 그래서 장자는 다 주님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레위 사람들과 일 대 일로 바꾸시고 그들이 성막에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였다(민3:41). 그래서 레위 지파는 모두 거룩한 사역만을 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일은 여러 가지였다. 레위의 세 아들인 게르솜과 고핫과 므라리 가족 중에서 하나님은 고핫의 가족을
택하시고 거기서 아론의 가족을 택해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한편 고핫의 가족들 중에서
다른 가족들은 심지어 모세의 가족들도 단순히 레위 사람들이 되었다.
대제사장은 모든 종교 행사의 우두머리였고 그와 관련된 어려운 문제들을 풀었으며 심지어 유대 민족의
일반적인 정의와 공의 문제도 다루었고 또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로 일하였다(신17:8-12;
19:17; 21:5; 33:8, 10; 겔44:24). 그는 1년에 한 차례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거기서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속죄를 이루었다(레16:2 등). 그는 아론의 후손 중에서
처녀와 결혼한 사람의 아들이어야 했으며 신체적인 결점이 없어야 했다(레21:13). 흠이 있는 제사장은
희생물을 드리거나 보여 주는 빵을 바치기 위해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고 단지 성막에서 드려지는
희생물로 생활해야 했다(레21:17-22). 한편 대제사장은 레위 사람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았다(민
18:28). 수제사장 참조.
한편 하나님은 대제사장에게 진리의 말씀(신탁)을 주셨고 그래서 그가 위엄을 드러내는 옷을 입고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은밀한 일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 참조. 그는 자기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심지어 부모의 경우에도 애곡할 수 없었고
부정함을 면하기 위해 죽은 사람이 있던 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레21:10-12).
제사장들은 제단에서 섬겼으며 짐승을 죽이기도 하고 레위 사람들을 시켜 그 일을 수행하게 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헌물을 드리는 경우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제외하고는 헌물을 바치는 사람이 직접 죽였다.
제사장들은 번제 헌물을 바치는 제단에 영원토록 불을 지폈고 성소의 금 등잔대에 불을 붙였다. 또한
그들은 보여 주는 빵을 반죽해서 굽고 성소의 금 제단에 드렸으며 안식일마다 그것들을 바꾸었다(출
28:29; 레8:1-36 비교). 제사장들은 매 주의 시작에 제비를 뽑아서 날마다 낮과 밤에 성소에서
향로를 가져다가 금 제단 혹은 향 제단에서 향을 드렸다(눅1:9). 제사장들은 맨 발로 임무를 수행하였고
그들이 입은 옷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28장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주님은 약속의 땅에서 레위 사람들에게는 상속 유산을 주지 않고 백성들이 십일조와 첫 열매와 다른
헌물로 그들을 지원할 것을 명하셨다. 헌물 중 제사장이 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레7:6-34; 신18:3-4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48개의 레위 사람들의 도시를 지정하시고 그중 여섯 개는 도피
도시로 또 열세 개는 제사장들의 도시로 그리고 나머지는 레위 사람들의 도시로 지정하셨다(수21:10).
제사장들은 헌물과 예물과 희생물을 드리는 주요 업무 외에도 백성을 가르치고 논쟁거리를 해결하며
나병을 진단하는 일과 이혼, 질투의 물, 서약, 부정함 등의 여러 문제를 다루었다. 또한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공적으로 백성을 축복하고 전쟁 때에는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서 주님께 여쭙고 거룩한 나팔을
불며 군대를 응원하였다(민10:8-9; 신20:2). 후에 다윗은 성전에서의 섬김을 위해 제사장들을
24계열로 나누었다(대상24).
유대인들의 제사장들은 그림자와 예표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께서 실체요 진리가 되신다.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시지만 아론의 계통을 따른 제사장들은 영원히 거할 수
없다(히7:1-28). 주님께서는 친히 히브리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만들겠다고 하셨고(출19:6) 베드로는 이런 약속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복해서 말했
다(벧전2:5, 9; 계1:6 참조).
중대한 영적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기 스스로를 살아 있는 영적 희생물로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장이
며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아뢸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오직
유일하게 그리스도만이 제사장이며 사람 제사장이 있을 수 없다(히9:11-26). 그러므로 지금도 미사
라는 제사를 드리며 제사장을 두고 있는 천주교는 하나님의 바른 교회가 될 수 없다. 한편 천주교의
사제는 신부(神父)라 불리는데 이는 ‘하나님 아버지’를 뜻하는 말로서 우리 주님이 금하고 책망하신
것이다(마23:9). 아버지, 니골라당, 미사 참조.
모두가 제사장인데 왜 공예배에서는 목사가 인도하고 설교하는가?
영적인 차원에서 하하님게 직통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의 제사장, 개인 예배, 가족 예배
공예배는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 목사, 집사, 기도, 말씀 낭독, 대언(엡4:11-14;
골3:16)
성경 Q&A
14.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무엇인가요?
사망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부가된 형벌(창2:17; 3:19). 죄를 범한 순간 영적 교제가 끊어짐(직접
대화하던 시절이 끝남), 그분의 임재에서 추방됨(창3:24), 결국 육체적 죽음(창5:5)
죽음(Death): 성경에서 죽음 혹은 사망은 일차적으로 분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먼저 육체의 죽음은
몸과 혼이 분리되는 것이며(창35:18)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어 그분의 진노를 받는 것도 죽음으로
표현되어 있다(요일3:14). 특별히 영원한 저주를 받아 하나님 앞을 떠나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지옥 불 호수에 들어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한다(계20:14-15; 유12).
둘째 사망: 천년 왕국 이후에 불신자가 부활해서 큰 흰 왕좌 심판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토록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불 호수에 들어가는 것. 사탄과 그의 마귀들은 흰 왕좌 심판 바로 전에 둘째
사망인 불 호수에 들어가고 사망과 지옥은 불신자들과 함께 불 호수에 던져진다(유12; 계2:11;
20:6, 14; 21:8).
사망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부가된 형벌이며(창2:17; 3:19) 그의 모든 후손은 범죄자이고(롬5:12-19)
따라서 그에게 부과된 저주를 공유한다(창5:1, 3 설명).
하나님은 살 길을 주신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오라, 양심 창조 등의 게시, 아들 게시
imputation의 중요성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므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그분의 생명을 공유한다.
부활 때에 마지막으로 정복되어 발밑에 깔릴 원수는 사망이다(롬5:12-21; 고전15:1-58).
육체의 죽음은 아담 때문에, 둘째 사망은 각 사람의 죄 때문에
육체적으로 죽는 것은 ‘숨을 내어 주다’(우리말 성경은 ‘숨을 거두다’로 되어 있음)로 표현되거나(시104:29)
‘땅으로 돌아가는 것’(창3:19; 전12:7), ‘혼이 몸을 떠나는 것 혹은 입는 것’(고후5:3-4) 또는 ‘몸이
거하던 장막을 떠나는 것’(고후5:1; 벧후1:13-14) 등으로 표현되었다. 신자들의 죽음은 ‘떠나서
집으로 가는 것’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것’(빌1:23; 마26:24; 요11:11; 살전4:13) 등으로
표현되었다.
구원받은 사람: 두 번 태어남, 한 번 죽음, 구원받지 못한 사람: 한 번 태어남, 두 번 죽음
두 부류 모두 부활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가짐
성경 Q&A
15. 창15:13-21 설명
성경 Q&A
16. 마가복음 9장1절의 하나님의 왕국은 정말로 임하였나요?
막9: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여기 있는 자들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더러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하나님의 왕국은 재림 때 성치되는 걸로 압니다. 그러면 위 말씀의
하나님의 왕국은 무엇이며 그 당시에 제자들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이 왕국이 임한 것을 본 자들이
있습니까?
요21:20-23
성경 Q&A
17. 귀신이 정말로 있나요?
개역 성경에 보면 귀신이 있는데 정말로 귀신이 있나요? 이스라엘 사람들, 미국 사람들도 귀신을 믿나요?
한여름 귀신 시즌이 오고 있다.
개역성경의 귀신은 어떤 존재인가? 소위 원한을 품고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할아버지 귀신, 할머니 귀신,
처녀 귀신인가? 정말로 귀신이 있고 예수님, 바울 등은 귀신을 내쫓았는가?
귀신: ‘우리말 큰 사전’은 귀신을 가리켜 ‘사람이 죽은 뒤의 넋’, 넋: 사람의 몸에 있으면서 몸을 거느리고
정신을 다스리는 비물질적인 것. 몸이 죽어도 영원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초자연적인 것이다. 혼백(魂魄).
귀신 사상은 그리스, 중국 등에 편만한 이교도 샤머니즘 사상으로서 성경은 결코 이런 개념을 수용하지 않는다.
개역: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고전10:20)
귀신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보면 무릎을 치지 않겠는가? 믿지 않은 사람들이 기일이 되면 상을
차려 놓고 조상귀신들을 불러오는 것이 참으로 이 구절과 잘 맞지 않는가! 과연 성경이 조상귀신을 가르친단
말인가?
흠정역: 그러나 내가 말하건대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희생물로 드리는 것들을 하나님께 희생물로 드리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드리나니
개역성경이 ‘제사하는 것’이라 번역한 단어는 ‘sacrifice’인데 이 단어는 우리 조상들이 조상귀신을 부르는
제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용어로 ‘희생물을 드림’을 뜻한다. 그래서 구약의 소제, 화목제 등도 제사가 아니라
‘음식 헌물’, ‘화평 헌물’을 드린다고 해야 맞으며 모든 영어 성경이 ‘번제 헌물’(burnt offering) 혹은 ‘번제
희생물’(burnt sacrifice)이라 번역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조상들이 무지할 때에 조상신을 섬기려고 드린
제사는 성경에서의 희생 헌물을 드린다는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은 죽은 자가 가는 곳이 천국 아니면 지옥이고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구천이니 음부니 하는 허구의 장소는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누가복음 9, 16장 참조).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넋인 귀신은 성경에 없다.
웹스터 영어사전은 ‘마귀’와 ‘귀신’이라는 두 단어를 예리하게 구별하고 있다.
마귀(devil): 1. 기독교 신학에서 악한 영 혹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쫓겨난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키며 또 이런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를 가리킴
귀신(demon): 고대 이교도들의 신과 사람 사이의 중간 존재. 고대 사람들은 악한 귀신과 착한 귀신이 있어서 이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고 그래서 귀신들을 숭배했으며 또한 사람이 죽으면 그 영이 귀신이 된다고 믿음
사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준 어떤 영적 존재인 ‘귀신’(demon)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그리스 사람들은 ‘귀신’이 ‘반신반인’이라고 생각했다. 성경적인 기독교와 유대교를 제외한 전 세계의
모든 종교는 성경이 ‘악한 영들’(evil spirits)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존경과 위로를 받기에 합당한 ‘반신반인’
혹은 ‘귀신’이라고 믿는다.
개역성경은 귀신 외에도 어려운 말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도대체 다음과 같은 표현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개역: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시106:37)
여기의 ‘사신’은 무엇을 뜻하는가? 너무 쉬운 말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으므로 개역성경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킹제임스 성경은 얼마나 단순하고 정확한가?
흠정역: 참으로 그들이 자기 아들딸들을 마귀들에게 희생물로 바쳤으며
한편 개역성경은 시편 106편 37절에서 ‘사신’으로 번역된 동일한 히브리어(스트롱 번호 7700)를 신명기에서는
‘마귀’라고 멋있게 번역하였다.
개역: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신32:17)
다만 아쉬운 것은 여기 나오는 마귀, 신 등이 모두 복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흠정역: 그들이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드렸으니 곧 자기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너희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신들, 새로이 일어난 새로운 신들에게 드렸도다.
많은 신(gods)이 있고 유일한 하나님(God)이 있으며 많은 아들(sons)이 있고 유일한 아들(the Son)이
있으며 많은 마귀(devils)가 있고 유일한 마귀(the devil)가 있다는 것이 바른 성경의 가르침이다.
귀신은 없다. 귀신을 쫓느라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마귀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사람들이다.
유튜브, ‘신유와 축사’, ‘엔돌의 무당과 사무엘’
성경 Q&A
18. 자살하는 신자도 구원이 유지되나요?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 구원과 구원 유지는 내 힘으로 안 된다. 나에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롬11:6; 히7:25, 그 생명은 영원하다. 영존하다(요3:15-16)
그러므로 구원받은 뒤 내가 하는 일로는 구원 취소 불가능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데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 받은 이후에 살인죄를 지었다. 예를 들어 다윗(음행, 살인 교사 등)
구원을 잃는가? 시51:2 구원의 기쁨을 잃는다.
자살은 무엇인가? 살인의 한 종류
전제 조건: 구원받은 성도가 자실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나 혹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구원이 취소될 수는 없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자실하면 구원을 잃는다는 주장이 팽배하다.
분명히 해 둘 말: 자살해도 구원이 유지되니 자살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자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혹시 가정해서 성도가 자살한다 해도 그의 구원은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롬8:38-39).
가룟 유다는 마귀(요6:70) 혹은 마귀의 아들, 그는 회개하였으나 하나님께로 회개하지 않았다(마
27:3-4).
베드로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일꾼이 됨
성경 Q&A
19. 성도는 술 먹고 담배 피우면 안 되나요? 술 먹고 담배 피우면 구원받지 못하나요?
술 담배는 죄인가? 죄라면 강도질과 음행 살인과 비교하면 경중이 어떤가?
a. 술에 대한 성경의 입장: 성경은 술을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 노아의 실수(창9:20-21).
잠20:1; 31:4
용도(잠31:6)
예수님은 포도주를 마시거나 만들어주지 않았다. 포도주는 누룩이 들어가 부패한 것
그런 술을 예수님이 마시거나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신성모독
신학적으로 불가능
wine은 1차로 포도즙, 2차 포도주, wine press, 포도즙 틀(포도주 틀 No!)
주의 만찬에서도 누룩이 들지 않은 포도즙
그러므로 술을 마시는 것은 성경이 엄격히 죄라고 이야기하므로 끊는 것이 좋다.
b. 담배: 커피나 차와 같은 기호 식품, 이것을 피운다고 큰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술이나 담배는 무지무지 큰 죄악인가? 이것들은 어느 면에서 음식
마15장: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음(2), 11이 핵심, 16에서 설명, 17-20이 중요함
그러므로 그런 죄들에 비하면 약한 죄
c. 몸에 대해 생각하자
고전 6장의 음행 문제: 고린도에는 신전 창녀들이 많이 있었다. 남자들이 늘 달려감
12-14절: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또 우리를 부활시킬 것이다(14절). 우리 몸이 이처럼 중요하므로
악한 데 쓰면 안 된다.
고린도 사람들의 주장: (1) 모든 것이 내게 적법하다(12).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를 지으라고 준
것이 아니다. 죄에게 지면 죄의 종이 된다(롬6:1-2). (2) 음식은 배를 위해 존재하듯 몸은 섹스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음행은 문제가 안 된다. 답: 음행은 쾌락을 줄 수 있으나 은행을 터는
것과 같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다. 언젠가 물어주어야 한다. 음행도 마찬가지다.
어떤 권능 아래에도 놓이면 안 된다(12): 술, 담배, 마약, 섹스
15-18절: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member)이다(고전12:12).
바울은 창2:24를 인용한다.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결합하면 모든 면에서 하나가 된다. 그래서
그 결과가 심각하다. 음행 죄는 자기 몸을 향해 짓는 심각한 죄이다.
19-20절: 아버지는 몸을 만들고 아들은 몸을 구속하고 성령님은 몸 안에 거하신다. 성도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너희)가 성령님의 전이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교회나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해야
한다. 거룩한 자가 되고 거룩함을 완전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후7:1). 자라야 한다(벧후
3:18).
고후7:1, 이런 차원에서 술 담배를 안 하는 것이 좋다.
술 담배 하면 교회에 오면 안 되나? 아니다. 얼마든지 와도 된다.
그런 사람 보면 손가락질해야 하나? 아니다 우리의 마음에 더 큰 죄가 있을 수 있다.
주초 하는 분: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안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
안 하는 분: 그것으로 믿음/성숙도 등을 판단하지 말라.
성경 Q&A
20. 세대주의란 무엇인가요?
성경에는 바르게 나누어서 보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있다.
1. 유대인, 이방인, 교회
2. 하나님의 경륜(dispensations, 구약, 신약) 희생 예물, 예수님
3.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4.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5. 여러 가지 심판
6. 율법과 은혜, 7. 구원과 보상(성화) 등
이런 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몽땅 묶어서 20세기의 전쟁이라고 하면 문제가 된다.
성경 해석에서 가장 큰 문제: 성경의 수신자와 시대를 바르게 구분하지 않고 성경을 보면 성경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다.
성경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생긴다(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몰몬, 신천지, 안증회 등)
1.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는가? 마10:5-6; 15:24; 28:18-20
2. 어떤 복음을 전하는가? 하늘의 왕국의 복음(마3:2; 5:17; 24;14), 은혜의 복음(행20:24;
롬1:16)
3.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언제부터가 신약인가?
New testament(히9:15-17), 갈4:4-5, 롬10:4
4. 신약과 구약의 차이: 예배드리러 오면서 양을 가져오는가? 제사장이 있는가? 성전이 있는가?
맥추절이 있는가?
5. 돼지고기, 갈치를 먹는가?(레11:7; 10)
6. 안식일을 지키는가?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안상홍 등, 안식일은 누구에게 주어진 날인가?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
성경 해석 방법: 문자적 해석, 비유 해석 혹은 영적 해석
정상적인 성경 해석 방법: 문자적 해석
비정상 해석: 경상도. 34살, 죽은 채로, 사막에서, 두 달 만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남동생과 함께
그런데 성경을 읽고는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문자적 해석 테스트
1. 6일 창조(창1; 창2:1; 출20:11 등)
2. 사람의 수명
a. 므두셀라 969세(창5:27; 12, 15, 21), 홍수 이전에는 대개 900세 이상을 살았다.
b. 천년왕국이 되면 또 이런 일이 반복된다(사65:17, 20, 22, 25).
c. 연대기(창조 연대, 창조 6일, 아담부터 아브라함(라멕, 셈), 바벨탑 단기(2014년은 4347년),
수명 감소)
3. 계20의 천년왕국(2, 3, 4, 5, 6, 7절)
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는가?
a. 세상(요3:16; 6:33,51), b. 온 세상(요일2:2)
c. 모든 사람(딤전2:6), d. 우리 모두(사53:6)
e. 모든 사람(롬5:18), f. 모든 사람(히2:9)
g.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벧후2:1)
비유 해석(사람마다 다 해석이 다른 이유)
1. 삼상17:40, 5개의 돌: 믿음, 소망, 사랑, 기쁨, 평안 혹은 용기, 힘, 인내, 권능, 견인
2.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a.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한번 봅시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이고 여리고는 세상입니다. 교회에서 세상 밖으
로 나가면 강도를 만납니다. 우리는 여리고로 내려가지 말고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합니다. 또
만약 강도를 만나서 피투성이가 되었다면 - 죄악에 물들었다면 - 포도즙과 기름으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피요, 기름은 성령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성령으로 치료를
받아서 우리 영혼의 상처를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더 잘 치료 받으려면 데나리온 둘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신약과 구약입니다.” (또 더욱 더 심하게 해석하는 경우에는 강도 만난
자를 태우고 가는 짐승의 네 다리는 사복음서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복음서라는 짐승을 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적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3. 신천지의 비유 해석
a. 마태복음 13장 34-35절
개역: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
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킹제임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All these things spake Jesus unto the multitude in parables;
and without a parable spake he not unto them:
b. 계시록 7장의 144,00명: 4절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5-8절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
4. 꿰어 맞추기 해석 No!
a. 창38장의 유다와 다말: 엘과 오난, 엘의 아내 다말, 엘이 사악하여 하나님이 죽임, 오난도
죽임, 막내아들 셀라, 셀라가 장성해도 다말을 그에게 주지 않음. 창녀 변장하여 유다와 음행을
벌임, 아기를 잉태함, 베레스와 세라, 다말이 메시아 계보를 잇기 위해 간음하였다. No!
성경을 문자 그대로 정상적으로 해석하는 신학 체계를 영미권에서는 ‘Dispensationalism’이라고 부르
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세대주의’라고 부른다.
Dispensation은 ‘경영 체제’를 뜻한다. Old Testament dispensation, NT dispensation
특정 경영 체제가 지속되는 기간도 ‘dispensation’이다. ‘Mosaic dispensation’
미국의 침례교회 등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교파나 성도들의 성경 해석 방법, 존 맥아더, 빌리 그래함
등 침례교 목사, 가장 큰 신학교들: 달라스. 밥존스, 무디, 바이올라, 펜사콜라 등
영화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 휴거 이후에 남겨진 자들)
주의: 구원의 방도가 바뀌지 않는다. 구원은 모든 시대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
D.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 별로 경영 방식은 다르다.
1. 구약 시대 짐승 희생, 지금 No!
2. 구약 시대 안식일 준수(사형 출35:2; 민15:32-36), 지금 No!
3. 구약 시대 성전, 지금 No!
4. 구약 시대 제사장(priest), 지금은 목사(pastor), 모든 신자가 제사장(벧전2:9; 계1:6)
5. 구약 시대 남자아이 할례, 지금 No!, 6. 아담의 경우 선악과 No!, 지금은 그런 규정이 없다.
7. 구약 시대에는 침례, 주의 만찬 No!
8. 이스라엘에게만 복음을 선포하는 시대(마10:5-7), 모든 민족(마28:19-20)
E. 경영 방식이 항상 같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생긴다.
1. 구약에도 교회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2. 유대인, 이방인, 교회가 있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고전10:32)
3. 지금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
이와 다른 체계: 언약주의(천주교, 장로교 등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특징: 어거스틴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하였다.’는 신학:
이스라엘은 끝났다. 천년왕국 없다. 구약에도 교회 있다. 예수님의 속죄는 제한적이다. 선택받은
자만 구원받는다.
청교도들, 존 오웬, 매튜 헨리, 조나단 에드워즈, 마틴 로이드 존스, 존 맥아더, 존 파이퍼, 폴
워셔, R. C. 스프로울, 마크 데버 등
1948년에 이스라엘 설립으로 언약주의는 폐기되어야 할 이론
편지를 읽듯이 문자 그대로 읽어야 성경이 풀린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2:15).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
주의: 구원의 방도가 바뀌지 않는다. 구원은 모든 시대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
유튜브 “성경 바로 보기”
성경 Q&A
21. 구약 성도들은 어떻게 구원받았나요? 그들의 믿음과 신약 성도들의 믿음은 같은가요?
구약시대 사람들은 다가오는 예수님을(혹은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나요?
하나님은 오직 믿음만 바라신다(faith). 히11:1, 3, 6,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요셉, 모세, 32절, 모두 구약시대 믿음의 영웅들
신약시대 칭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롬4:3, 22-24).
구약 시대 아브라함(율법 이전 사람):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롬4:5)
구약 시대 다윗(율법 시대 사람):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롬4:6-8)
그러므로 이 땅에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다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롬1:16-17).
구원받은 이후에도 믿음으로 산다(고후5:7).
그런데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즉 믿음에 대한 대상이 무엇 혹은 누구인가?
아브라함이 다가올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았는가?(요8:56), 천주교, 개신교는 Yes, 성경은 No!
“나의 날 보기를 기뻐하다가 그 날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이것이 십자가, 죽음, 매장, 부활 사건의
비디오인가? 심지어 베드로와 제자들도 그것을 몰랐다(마21-23; 눅24:25-27).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 후에도 몰라서 물고기 잡으러 돌아감(요21).
이 사건은 창22장, 이삭 사건, 이삭의 부활을 믿음(창22:5). 또한 하나님께서 숫양을 예비한 것을 보고
기뻐함(22:8). 그것이 다다.
그러면 다윗이 다가올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았는가? No!
이들의 공통점: 이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즉 의를 입었다(롬3:21-22).
아브라함의 칭의(창15:6): 하나님 혹은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
구약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 하나님 혹은 그분의 말씀을 믿으라.
아벨: 피를 가져와라. 가인 No,
노아: 배를 져라, 아멘
모세: 피를 뿌려라, 아멘
유월절에 주신 하나님의 명령: 피를 보면 넘어간다. 그 피를 예수님의 피로 생각한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이다.
율법을 주심: 하라. ‘믿음+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로 행위가 나온 것이다.
희생 예물: 두 종류의 사람, 믿음으로 가져온 사람만 구원받음(피에 대한 믿음)
시간이 지나서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심지어 그분의 제자들도 그분을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성도들이 예수님을(혹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믿음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
신약시대에도 동일하다: 하나님 혹은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
계시가 더해지면서 이제는 확실해졌다: 하나님을 믿으면 아들을 믿어야 한다.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제는 희생예물 등 No! 오직 아들을 믿어야만 한다(요일5:12; 20).
오직 믿음: 하나님 혹은 그분의 말씀, 신약도 마찬가지, 다만 이제는 구체적으로 아들을 믿어야 한다.
칭의: 전 시대에 걸쳐 오직 믿음으로만 된다. 아브라함, 다윗은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날 수도 있었다.
구약시대성도들은 다가오는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지 않았다.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았다.
성경 Q&A
22. 천년 왕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왕국인가요? 영적 왕국인가요?
I. 왕국: 성경의 두 가지 중요 주제는 왕국과 구원이다.
A. 우리말 성경에서는 왕국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왕국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B. 신구약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왕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이다(계4:11; 엡1:6, 12, 14).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왕국(통치)에 대한 개념으로 가득하
다. 유튜브 성경 Q&A 11 왕국인가요, 천국인가요?, 성경 Q&A 20 세대주의란 무엇인가요?
II. 왕국의 필요성:
A.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이래로 땅 위에 가시적인 왕국을 건설하려 하셨으며 사람에게
통치권을 주셨다(창1:26-28).
B.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통치권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실되었고 사탄이 이 세상의
왕이 되었다(눅4:5-6; 요14:30의 이 세상의 통치자).
C. 노아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BC 2,000년경에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써 땅에서 하나의 가시적인
왕국 건설을 향한 첫째 단계를 실행하셨다. 그것은 외적으로 볼 때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유다
국가 공영권’ 안에서 존재하는 형태를 띠었지만 주전 606년경의 바빌론 포로시기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존재를 상실해 버림으로써 무산되었다. 이방인들의 때가 시작됨
D. 그러나 ‘이방인들의 때’ 가운데서 600년이 지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다른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바로 천사 가브리엘로 하여금 마리아에게 왕의 출생을 알리게 한 것이다(중
요함 눅1:26-33). 그로부터 삼십 년 뒤 왕의 길을 예비하는 자인 침례자 요한이 나타나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였고(마3:1-2) 왕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셨을 때도 그와 동일한 것을 선포하셨다(마4:17).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다”
E. 그 이후에 그분께서는 열 둘 제자를 보내시고(마10:7) 다시 칠십 명을 보내셔서(눅10:1-9)
동일한 것 즉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왕은 자신의 백성에 의해 배척당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이로써 왕국의 건설은 연기되었다. 그리고 그분께서 주시려 했던 왕국은
‘하늘의 왕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채 신비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F.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왕국
1. 첫째, 구약성경은 사람의 아들이 통치할 가시적인 지상의 왕국이 있을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단2:34-35; 44-45; 7:13-14; 렘23:5; 슥14:9).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에 이스라
엘 안에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기대가 넘쳐났고 시므온과 안나가 ‘이스라엘의 위로’를 성전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눅2:25-38; 눅24:21). 또한 지혜자들이 동방으로부
터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라고 질문을 한 것과 예수님을
발견했을 때 왕 되신 그분께 경배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마2:1-11).
2. 예수님께서 왕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늘의 왕국’을 선포한 침례자
요한의 임무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며 그분의 행로들을 곧게 하는 것이었다(마3:3; 사40:3).
그런데 그 주님의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왕국의 길’이었다.
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온갖 종류의 질환과 온갖 종류의 질병을 고치셨다(마4:23). 이 병 고침의 기적들은
메시아 왕국의 표적들이었으며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에 대한 증거들이었다.
4.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마10:5-8).
5. 또한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했던 왕국이 ‘하늘의 왕국’이라 불린 것은 그것이 하늘에 있는 왕국
혹은 영적인 왕국이기 때문이 아니다. 실은 그분께서 사람들로부터 그 왕국을 받지 않고 하늘로부터,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그 왕국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은 하늘의 왕국이라 불렸다(단2:44).
6. 공생애 3년 반, 왕국의 연기(마23:37-39)
7. ‘왕국의 복음’은 교회의 휴거가 일어난 이후 7년 환난기 때 왕국의 건설을 위한 때가 왔다는 것을
모든 민족에게 증언하기 위해 또다시 땅 끝까지 선포될 것이다(마24:14). 계7의 144,000명의
유대인들
III. 왕국의 도래 시간표
A. 고통의 환난기가 끝난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마
24:29-30, 마25).
B. 첫 아담이 실패한 것을 회복시키는 때(계20:1-7에는 1,000년에 6번), 천년 왕국
IV: 천주교, 개신교의 대부분은 어거스틴(칼빈)의 신학을 따라 교회가 이스라엘 대체, 교회가 왕국이다.
그래서 무천년설을 믿는다. 성경을 영해하는 문제, 중동의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음
성경이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롬9-11장 바울의 예언). 이스라엘의 회복
V. 왕국 경륜(1,000년 동안)
A. 천년 왕국 기간에 있을 중요한 일들
1. 그리스도께서 온 땅의 왕이 되신다: 또 주께서 온 땅(earth)을 다스리는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한 주만 계시며 그분의 이름도 하나만 있으리라(슥14:9).
2.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공평과 의로 다스리신다(사11:4-5).
3. 땅에 평화가 있다(시46:9). 그분은 평화의 통치자(사9:6)
4.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된다(사2:3). 온 세상이 주님에 대해 알게
된다(사11:9).
5. 사탄이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없다: 계시록 20장을 보면 1,000년 동안 마귀는 ‘밑바닥
없는 구덩이’ 즉 무저갱에 갇혀 있다(계20:1-3).
6. 질병과 아픔이 사라진다(사33:24). 그 날에는 귀머거리가 듣고 눈먼 자가 보게 될 것이다(사
29:18; 35:5-6).
7. 사람의 수명이 늘어난다(약 1,000살까지 살게 됨)(사65:20-22), 많은 이들이 천년왕국 내내
살아 있을 것이며 그들의 수명은 므두셀라처럼 많게 될 것이다(창5:27).
8. 자연 생태계의 변화가 생긴다: 이사야서 11장 6-9절과 65장 25절
B. 왕국에는 구원받은 사람들만 들어간다(마25장의 양과 염소 민족 심판)
1.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왕국에 들어가도록 허락 받는 사람은 오직 구원받은 사람이다(마25:34):
구원받은 유대인, 구원받은 이방인, 아기를 낳는 사람들
2. 그러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마25:41)
C. 사람의 책임
1. 천년왕국 시대에도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 것이다.
2. 첫째 세대(부모)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 둘째 세대(자녀들)가 자동적으로 구원받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수 없다. 부모에게서는 오직
죄성만 물려받는다. 왕국 경륜에 태어난 아이들도 이처럼 사악하고 죄악으로 찬 마음을 타고 난다.
3. 왕국 경륜에 태어날 아이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의무가 있다. 즉, 왕을 신뢰하고
왕이 자기 마음을 다스리도록 허락할 의무가 있다. 왕국 시대에도 하나님의 적들이 이 땅에 존재하지
만 이들은 원치 않게 왕께 복종하고 있다.
D. 사람의 실패(계20:7-10)
1. 가장 큰 실패는 천 년이 지난 다음에야 나타난다. 천 년이 다 차면 하나님은 사탄을 다시 풀어
준다(계20:7). 그러면 놀랍게도 사람들은 사탄을 따른다(계20:8). 이 마지막 대반역에 동참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다.
2. 이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으나 그들은 믿지 않는다.
E. 하나님의 심판
1. 마귀를 따르는 자들은 곧장 처벌을 받는다(계20:9). 사람들을 속인 마귀는 불 호수로 던져진다(계
20:10). 마귀는 자신의 영원한 처소로 들어간다(마25:41).
G. 천년 왕국의 주요 교훈
1. 사람은 자기 잘못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완벽한 환경, 그래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2. 사람의 궁극적인 문제는 죄다(렘17:9)
3. 예수 그리스도만 구원자이시다!
4. 인생은 짧고 죽음은 확실하다!
5. 원인은 죄에 있고 해결책은 그리스도께 있다!
VI. 천년왕국 때 다윗 왕이 다시 부활해서 통치하나요? 그럼 천년왕국 때 예수님은 무얼 하시나요?
다윗의 천년왕국 통치(렘30:7-9, 호3:5; 겔34:23-24, 37:24-25)
문자 그대로 다윗이 부활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린다.
12지파는 12제자가 다스린다(마19:26).
예수님은 온 지구의 왕(슥14:9), 그러나 각 나라의 왕들을 임명하시지 않을까?
유다의 왕은 부활한 다윗
구약 성도의 부활: 다니엘(12:13), 욥19:25-27
부활한 성도들이 무언가를 한다. 구체적으로는 계시되지 않았다.
성경 Q&A
23. 목사는 반드시 신학교를 다녀야만 합니까?
교회의 위기, 목사의 위기
신약 성경에는 감독, 장로, 목사가 같은 직분을 뜻한다(행20, 딤3, 딛1 참조).
유튜브 “목사의 직무” 참조
이미 목사와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목사, 집사 등에서 설명함(딤전3; 딛1).
거기의 감독(bishop)은 감리교의 감독, 천주교의 주교, 장로교의 노회장처럼 목사들 위에서 목사들을
감독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의 감독은 한 지역의 지역 교회를 다스리며 목양하는 목자이다.
계급 조직은 천주교 산물, 성경은 독립 교회
꼭 신학교를 다녀야만 하는가? 아니다. 안 다녀도 된다(베드로, 바울 등 never).
패스터(pastor)는 양들의 목자이다.
스펄전, 무디, 로이드 존스 No!
오히려 잘못된 신학교를 가면 더 문제: 신신학에 물들면 성경 부인, 창조 부인, 영해
그러면 신학은 나쁜가? 아니다. 원래의 신학은 하나님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대단히 유익하다(Yale,
Harvard, Brown, Princeton 등).
그런데 마귀의 사주로 인본주의 교육 체계가 신학교 장악, 성경 무시(부인), 성경에 대한 확신을
깸
이런 상태에서 신학교를 졸업하면 대단히 힘들다.
교파마다 특정 신학을 가르친다. 칼빈주의, 알미니안 주의, 그것대로 안 하면 박해, 추방, 노후
은퇴한 모 목사님, 미국에서는 성경대로 세대주의 신학, 한국에 오니 배도, 성전
많은 분들이 미국 유학, 많은 경우 침례교, 밥존스 등(침례, 세대주의 등), 절대 바꾸지 않는다.
나는 미국 펜사콜라 신학 대학원: 가장 큰 침례교 대학, 독립침례교 대학(5-6000명), 킹제임스
성경 변호, 베카 북(Beka Books, abeka.com)
이런 데로 공부하러 갔다가도 칼빈주의, 세례, 킹제임스 성경 부인, 현대 신학교 전학
그러므로 신학교를 다녀서 목사 혹은 좋은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소명(부르심)
소명의 오해(딤3:1)
소명이 있음을 어떻게 하는가?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말의 능력, 설교, 설득, 권면).
그의 말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자의 특징: “Preaching the Word” Commentary 편집자 휴즈(R. Kent
Hughes) 목사님의 글
예배 시 설교에서 설교자와 회중이 성령님에 의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설교자에게 있어야 한다.
1. 로고스(Logos):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우리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회중 앞에 섰을 때 설교자들은 일단 우리의 숙제를 한 것이다. 우리는 본문 구절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보며 문맥 안에서 그 안의 단어들의 뜻을 찾아내고 그 단어들이 회중에게 바르게 전달되도록
올바른 해석 방법에 의해 본문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설교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설교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로고스 그 자체를 선포한다. 이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의 핵심이다.
2. 에토스(Ethos): 둘째는 에토스인데 이것은 곧 설교자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설교를 할 때
아주 치명적인 병이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것들을 다룬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손과 마음을 마비시켜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는 이것을 열차 안내원
비유를 통해 잘 보여 준다. 안내원은 다음 역에 도착하기 전에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리고는 자기가 큰 소리로 몇 차례 그 역을 알려주었기에 지금 자기와 승객들이 그 역에
도착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브룩스는 설교는 반드시 인격체를 통해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우리가 전하는 진리를 우리가 다 구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 그것에
복종하려 하고 그것을 갈구하며 그것이 우리의 에토스(정신세계)의 일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청교도인 에임스(William Ames)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설교가 효력을 발휘하려
할 때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꾸밈없이 설교자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에토스이다.” 설교자의
에토스가 그가 전하는 로고스를 뒷받침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설교를 이룰 수 있다.
3. 파토스(Pathos): 마지막으로는 개인의 열정과 확신이다. 한번은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불신자인
흄(David Hume)이 조지 윗필드(George Whitefield)의 설교를 들으러 가는데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은 복음을 믿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아는데요.” 그러자 흄이 대답하였다.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설교자가 자기가 설교하는 것을 믿을
때에는 열정이 생기게 되어 있다. 확고한 믿음과 더불어 필수적인 열정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 설교를
기뻐하신다.
4. 그러므로 설교 시 하나님의 기쁨은 로고스(말씀)와 에토스(설교자)와 파토스(설교자의 열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신도 이 셋을 갖추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설교를 할 수 있고 그때에 회중 가운데
임하는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대부분 교회 목사들의 문제: 로고스의 부재
킹제임스 성경 진영
저도 지금까지 짧은 세월이지만 설교를 해 왔고 다른 이들의 설교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 짧은 기간을 통해 제가 몸으로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교자가 아무리 지식이 많고 논리적으로 진리를 제시해도 회중에게 감화를 주는 설교는 하지 못할
수 있다.
설교자가 행동도 반듯하고 가정생활도 바르게 하며 모든 면에서 원리와 원칙을 잘 지키는데도 성도들은
그의 설교에 의해 큰 감화를 받지 못할 수 있다.
그가 설교단에 나오면 성도들은 의례히 “오늘도 바르게 살라고 이야기하겠지.”하고는 타성에 젖어
설교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설교자가 로고스 중심으로 설교한다고 하면서 에토스와 파토스가 없는 설교를 하기 때문이다.
로고스만으로는 하나님과 회중의 기쁨을 이룰 수 없다.
이 경우 설교는 대개 성경 공부 스타일의 훈계/설명 설교가 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는 성도들의 감화를 이끌어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에토스와 파토스는 설교자가 자기와 회중이 같은 세상에 산다는 것을 공유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설교자들은 스스로 고고한 세상에 살면서 이 어둡고 부조리한 세상에 사는 성도들의
삶이 어떤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 경우 설교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허공을 치게 된다.
“이 설교는 일차적으로 내게 하는 것이며 바로 내 자신이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라는 에토스가 들어가야
설교가 살아나고 그러면 자연히 몸에서 퍼져 나오는 열정을 성도들이 느낄 수 있다.
이때에 하나님의 기쁨이 생기면서 회중은 말씀에 비추어 나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킹제임스 성경의 진리를 외치는 좋은 설교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와 그의 아내, 자녀들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그를 목사로 임명할 수 있다.
그의 교회에서 목사 임명 가능, 다른 교회에서 목사 임명 가능
로이드존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의 소명을 잘 판단해 주어야 한다.
김남준 목사님의 글: 안 되는 부류: 성도착자, 정신질환자, 편집증 환자(심지어 킹제임스 성경에 미친
사람, 특히 영어에. 그래서 영어로 원어를 고칠 수 있다고 주장), 대화가 안 되는 사람(안하무인),
글과 말은 한 사람의 인품, 인품이 바른 사람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소망이 있다.
인격적인 목사가 있는 교회가 발전한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산다.
로이드 존스의 <설교와 설교자>, 유튜브 <설교와 설교자>
성경 Q&A
24. 언제부터 신약시대인가요?
성경: 구약과 신약, 마태복음 1:1, 예수님의 계보, 예수님 출생, 그 이후 이야기가 다 유대인
침례자 요한의 메시아, 하늘의 왕국, 마10:5-6
대부분 한국 성도들의 이해: 신약은 예수님 출생부터
사도 바울의 서신: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 요한복음 AD 90년경 종합
마5-9장: 산상 수훈, 마5:39-42, 43-48 행위, 6장 구제, 주기도문: 마6:12
마23:23, 십일조
이러는 가운데 마25장: 양 민족과 염소 민족 심판(25:31-46), 34-40, 환난기
현 시대 성도들의 가장 고통: 신약시대인데 구약식 교회, 구약식 믿음 행위를 한다(천주교).
더 무서운 것은 ‘구약+신약’,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목사: 제사장, 교회는 성전, 맥추 감사 헌금 등 구약의 규례 강조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신약시대는 예수님이 죽으신 뒤부터이다.
예수님은 구약(Old testament) 시대에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셔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신약(New
testament) 시대를 여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10:4; 마5:17).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갈4:4), 롬15:8-9
예수님이 태어난 순간부터 신약시대가 아니고 십자가의 죽음 이후부터.
신약이란 ‘새로운 언약’을 이야기하며 이때의 언약이란 영어로 ‘covenant’가 아니라 ‘testament’
그런데 이 ‘testament’를 우리에게 전해 준 성경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다.
‘Testament’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신 마태복음 26장 28절
에 처음 나오며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 14장 24절, 누가복음 22장 20절 등에도 나온다.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마26:28).
여기서 ‘새 상속 언약’은 ‘New testament’이며 이는 곧 주님께서 ‘옛 상속 언약’ 즉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으면서 세운 구약(Old testament)을 폐하고 신약을 여심을 뜻한다.
‘Testament’를 그냥 ‘언약’으로 번역하면 안 된다. ‘Testament’와 ‘Covenant’에 해당하는 원어는
‘디아테케’(diatheke, 스트롱 번호 1242)인데 ‘Covenant’는 주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는 특별 약속을 뜻하며 구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총 295회 나온다.
반면에 ‘Testament’는 ‘증언’(testimony)이나 ‘증언하다’(testify)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로 일차적
의미는 ‘증거로 주는 언약’이란 뜻이며 신약성경에만 총 14차례 기록된 신약성경의 독특한 단어이다.
성경은 이런 단어의 뜻을 알려 주기 위하여 내장(內藏) 사전을 제공한다. 히브리서 9장에 ‘Testament’의
뜻이 정의되어 있다.
흠정역: 15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상속 언약(New testament)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첫 상속
언약(구약) 아래 있던 범죄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영원한 상속 유업의
약속(Promise of eternal inheritance)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6 상속 언약(Testament)이
있는 곳에는 또한 반드시 상속 언약하는 자(Testator)의 죽음이 필히 있어야 하나니 17 상속 언약은
사람이 죽은 뒤에라야 효력이 있고 상속 언약하는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 힘이 없느니라.
먼저 15절에서 히브리서의 저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구약시대 성도들의 죄가 구속되고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영원한 상속 유업의 약속을 받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곧 십자가
사건 이전까지는 구약 성도들의 죄가 잠시 덮여졌으며 완전히 해결되지 아니하였음을 보여 준다.
흠정역: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하되 그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출34:7).
완전한 희생 헌물이신 예수님의 완전하신 단번 속죄로 말미암아 신구약 성도들의 죄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었
다. 그러면서 그분께서는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상속 유업의 언약을 주시므로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가 되신다.
여기서 ‘Testament’를 ‘상속 언약’으로 번역해야 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으며 16-17절이 이것을 확증해
준다. 16-17절에서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상속 언약하는 자’의 죽음이 있어야 ‘상속 언약’이 유효함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 즉 새 상속 언약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기
전까지는 새 상속 언약이 유효하지 않다. ‘상속 언약’(Testament)과 ‘상속 언약 하는 자’(Testator)
는 바로 이런 점을 설명해 주는 단어이다.
개역성경도 이 부분만큼은 그냥 언약으로 할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유언’이라 번역했다.
개역: 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이렇게 번역을 하면 15절의 새 언약과 16, 17절의 ‘유언’이 도저히 같은 말임을 알 길이 없다. 왜 갑자기
여기서 유언이 나오는지 알 사람이 있겠는가? 개역성경 번역자들이 궁여지책으로 ‘유언’이라 번역했지
만 이런 식으로는 말씀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은 15절의 ‘inheritance’
즉 ‘상속 유업’을 ‘기업’이라 번역하여 이런 의미를 더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개역성경이 킹제임스 성경이나 영국개역성경 혹은 미국표준역을 따라 어쩔 수없이 ‘Testament’를 ‘언약’
이 아닌 ‘유언’으로 번역하려 한 시도는 좋았지만 ‘Testament’는 엄밀한 의미에서 ‘유언’이 아니다.
우리말 큰 사전으로 가서 ‘유언’을 찾아보면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로 되어 있다. 그러면 과연
예수님이 “이제 내가 죽으면서 이 말을 남긴다.”고 하셨단 말인가? ‘유언’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만 적용되는 말이다. 또한 언약하고도 상관이 없는 말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시면서
주신 말씀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흠정역: 저녁 식사 뒤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그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라(눅22:20).
우리 주님은 죽음을 통해 ‘새 상속 언약시대’ 즉 신약시대를 여셨으나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다. 그래서
아직 피를 흘리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피가 이미 흘려졌다고 말씀하신다.
‘너희를 위하여 흘린 피 곧 그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the new testament in my blood, which
is shed for you)…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 당한 어린양 예수님께서는(계13:8) 자신의 피로 말미암은 - 직역하면 자신의
피 속에 담겨 있는 - 새 상속 언약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 결코 내가 죽을 때가 되어 몇 마디
유언의 말을 하고 죽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표준 국어 대사전은 유언의 1차적 의미가 ‘죽음을 맞이하여
남기는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말 유언에는 1차적으로 ‘상속 언약’이란 뜻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유언’이란 말을 적용하는 것은 사실 신성모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로도 ‘유언’은 ‘Will’이지 ‘Testament’가 아니다. 물론 ‘Testament’에도 ‘Will’의 뜻이 있으나
그것은 3차, 4차 의미이며 성경적인 용례로는 결코 ‘Will’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역성경은 이렇게 ‘Testament’의 심오한 뜻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히브리서에서는
이것을 ‘유언’으로 번역하여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 유언은 창조물인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그리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주님께서 만찬을 제정하시는 말씀들 속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을
따라 가장 중요한 단어인 ‘새’ 즉 ‘New’를 삭제했다. 다시 말해 우리 주님이 새 상속 언약을 주지
아니하시고 그냥 언약을 주신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개역: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의 단번 속죄를 멸시하는 번역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개역성경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에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는 아직도 제사장 체제 하에서 구약이 준수되고 있다. 즉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제사장이라는 매개체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런 체계가 유지되려면 성경을 변개하여 ‘새 상속 언약’ 시대가 열렸음을
알지 못하게 하는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주를 받은 부패한 서기관들이 이런
부분을 삭제하였다. 킹제임스 성경의 대본이 된 다수 사본에서는 이런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
로 에라스무스, 루터, 칼빈 등이 한결같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본을 배제한 것이다. 다만 믿음이
없이 학식을 자랑하려는 현대 학자들만이 이런 구절에 ‘새’(New)라는 단어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눅16:16은 율법과 대언자들은 요한까지요, 그때 이후로 하나님의 왕국이 선포되어 사람마다 거기로
밀고 들어간다. 요한이 구약의 끝이 아닌가? No!
침례자 요한은 구약시대 대언자들의 끝
상속하는 자의 죽음이 있어야 새 상속 언약이 효력 발휘
요19:30,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성전의 휘장이 위애서부터 아래로 둘로 갈라짐(마27:51;
막38; 눅23:45), 막힌 담이 찢어지고 직통 시대가 열림
구약과 신약의 차이
1. 구약에 없던 교회가 생겼다(엡2:11-14, 17-18; 3:1-6).
2. 구약의 신정 정치가 폐지되었음: 핵심은 제사장과 성전, 의식법과 시민법
(1) 믿는 성도 모두가 하나님의 제사장: 목사가 제사장 노릇을 하면 신약 교회 아니다(천주교, 루터교,
그리스 정교)
(2) 성전이 폐기됨(AD 70년): 교회당 건물이 성전이 되면 신약 교회 아님(성당)
(3) 구약의 의식법 폐지: 짐승 제사, 유월절, 할례 등
(4) 구약의 시민법 폐지: 안식일 준수, 돼지고기 등 음식, 맥추 감사, 강제적 십일조 등
(5) 행15:7-11(베드로 10절), 야고보(19-20), 성령님(28-29)
사도행전: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
초기 10년간은 다분히 유대교적인 양상이 있었음: 1-7장까지는 100% 유대인, 8-9장 사마리아, 에티오
피아, 10장에 가서 이방인 고넬료, 베드로의 말(행10:34-36; 11:18)
이후로 안디옥 사역, 이방인 중심, 행15의 예루살렘 회의
이후부터 베드로, 바나바 등은 나오지 않고 오직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의 행적: 어디서나 유대인 회당, 그 뒤 이방인, 유대인 불수용(행28:25-28)
이로써 유대인들은 교회 시대에 거의 사라짐
바울이 복음 전하고 교회를 세운 곳에서는 한 번도 구약과 신약이 짬뽕된 적이 없다.
AD 90년경: 니골라당의 출현(계2:6), 성직자 계급 체계
AD 300년 이후로 천주교회 형성, 제사장(priest), 영원한 단 번 속죄 부인, 미사를 통해 계속해서
제사를 드림, 제사장 체계, 프로테스탄트 교회들도 답습
교황 제도: 대제사장 체제, 총회, 노회, 연회 감독 등, 독립자유교회가 되어야 한다.
신약시대에 구약식 교회를 하면 주님이 미워하신다. 성도들이 고통을 당한다.
영혼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성경을 읽고 해석, 헌금 자발적으로, 교회 운영 상식적으로
성경 Q&A
25. 성령훼방 죄는 무엇인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막 3:28~29, 개역성경)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막 3:28~29, 개역개정)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든 죄는 사람들의 아들들이 용서받고 또 그들이 신성 모독할 때 쓰는
신성 모독도 다 용서받되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 모독하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정죄의
위험에 처해 있느니라, 하시니라. (흠정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갖 종류의 죄와 신성모독은 사람들이 용서받되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 모독하는 것은 사람들이 용서받지 못하고 또 누구든지 말로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면 그는 용서받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님을 대적하면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그는 용서받지 못하리라(마
12:31-32).
김재욱 형제님의 글: 철없던 청년 때, 지인들과 윷놀이를 하는데 한 팀에서 결정적 순간에 모나 윷이
나오기를 바란다며 "주여~~"를 외쳤습니다. 물론 장난이지요. 그러자 순복음교회에 다니던 한 집사님
이 나무랐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랬다고, 그런 것도 성령을 훼방하는 거라고
말이지요. 다른 죄는 용서받아도 성령 훼방 죄는 용서못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겁이 좀 났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잘못을 했을 수도 있는데 내가 아무리
잘 살고 잘 믿어도 다 틀린 일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론 무분별한 주여 삼창을 비롯해 아무 때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령 훼방 죄일까요? 성령 훼방 죄란 무엇인지
몰라서 고민했던 시간들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성령 훼방 죄를 지어도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제가 속으로 안 좋은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제 생각은
아닌데... 정신병인 것인지... 그게 하나님과도 연결돼서 안 좋은 말이 떠오릅니다. 절대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데, 혹시 제가 성령 하나님을 맘으로라도 욕되게 해서 성령 훼방 죄를 지었을까
두렵습니다.”
이에 대한 간략한 답변입니다.
“무분별한 은사운동을 퍼뜨리는 인터넷 동영상들을 보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지요. 반드시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과 마태복음을 오해하는 데서 이런 일들이 발생합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 성경이
완성되기 전 과도기에 행해진 일들은 성도의 표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이 이런 일을 바로잡고 비판하려 하다가도 찍 소리 못하고 오금이 저리는 죄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순절주의자들이 말하는 성령 훼방 죄라는 것입니다. 오래전 사용되던 개역성경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이런 구절들에 나오는 신성 모독, 훼방은 영어로 blasphemy, ‘돌에 맞아 죽는 죄’
방언, 주여 3창, 뒤로 쓰러지는 것(헤블린터치, 입신) 등 불필요, 예언, 다 마귀의 일
이 말씀을 들어 은사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사역을 비난하면 성령을 훼방(모독)하여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두려워 성도들은 감히 반대를 못한다.
또한 교회를 비방하거나 기도를 할 때 방해하는 등의 일을 한 사람들도 영영 용서받지 못한다는 식의
말을 한다.
근거 없이 교회나 목사 비방, 나쁜 일, 그렇다고 이런 일들을 행한 사람은 아무리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영접해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언제나 앞뒤 문맥을 잘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왜, 누구에게 하셨습니까? 바로 이렇게
말한 이들에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이르되, 그가 바알세붑에 사로잡혀 마귀들의 통치자를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는다, 하거늘” (22절)
[성령님]을 대적하여 신성 모독하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정죄의 위험에 처해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부정한 영에 사로잡혔다, 하였기 때문이더라(30절).
이것은 예수님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행하는 일을 마귀들의 통치자의 일이라고 한 자들에게 하신 말씀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죄는 우리가 그 시대로 돌아가 예수님의 사역을 모독하지 않는 한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죄이다.
신약이든 구약이든 사람이 회개할 때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다.
특히 십자가 사건 뒤로는 우리가 회개하여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는 진정한 은혜시대이다.
좋지 않은 생각은 기도로 물리치고 회개하면 된다.
잘못된 은사주의자들이 심은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성령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구원이 취소될 수도 있다, 행위에 의해 구원 받는다, 성령세례(방언)등 특정한 은사를 확실히 받아야
구원의 증표가 된다... 등등의 교리”
이런 것이 틀렸다고 가르쳐 주는 것은 성령 훼방 죄가 아니다.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결론: 성령 훼방 죄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마귀의 통치자 사탄의 영에 사로잡혔다고 비방한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와 비슷한 일들을 무분별하게 흉내 내는 목사들을 저주하거나 그들의 일을 방해했다고
받는 벌이 아니다. 또한 모르고 하나님을 비방하거나 모독했다면 회개를 통해 용서받으면 될 것이다.
반드시 영을 분별하고 성령님의 사역인지 마귀의 사역인지 분별해야 한다. 잘 분별할 때 복음은 더욱
확실해진다.
성령 훼방 죄를 오해하며 마음에 졌던 짐을 벗어 버리기 바란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복음을 값싼 사람의 생각에 묶어두지 말라.
성경 Q&A
26. ‘메시아닉 쥬’란 무엇입니까?
유튜브 동영상의 범람, 교리의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분들(엡4:14), 자기의 가려운 귀를 긁어 주기
원하는 사람들(딤후4:3-4)
분별해서 들어야 한다. “브래드 TV”: 이스라엘 선교 전문 방송 No!
본래 메시아닉 쥬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유대인을 일컫는 말, “예후딤 메시히임”
“예수님을 유대인과 모든 인류의 메시아(그리스도)로 믿으면서 유대교의 절기나 의식 그리고 관습 등을
유대인들처럼 따른다.”
요즘의 메시아닉 쥬는 실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교파 같은 개념으로 다가오므로
주의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800개 이상의 공동체, 주로 미국
특별히 한국 메시아닉 쥬는 기독교가 유대주의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그리스 철학의 오류 위에 세워진
대체신학이라고 언급하며 토라(모세 5경)와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이 성경에 예언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 현재 이스라엘 국가가 2,000년 만에 다시 세워지고 또한 이스라엘에서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는 제3성전을 짓기 위한 움직임 등이 그 증거이다.
김종철 감독의 ‘회복’, ‘제3성전’ 등의 영화가 불을 지피고 있다.
일단 인정해야 하는 것: 현 시대 대부분의 기독교는 천주교의 대체 신학을 따른다.
대체 신학: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임으로 그들의 미래는 AD 70sus 성전 파괴로 끝났고 그 이후로는
구약의 이스라엘의 모든 복을 교회가 차지한다. 즉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체한다.
구약의 천년왕국=교회의 지상 통치, 교황, 칼빈, 루터 등의 무천년주의
반유대인 정책: 무수히 죽임, 2차세계대전의 히틀러 역시 로마의 사주로 유대인 학살 감행
유대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No!
롬11:1-2, 11-12, 25-26
예수님의 말씀(마23:37-39; 행1:11), 그러므로 유대인 회복, 성전 건설(살후2:3-4; 계11:1-2)
등 필요
그러므로 이런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천주교인, 장로교인 등)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메시야닉 쥬는 옳은가? 아니다.
1. 그리스도인보다 유대인임을 강조하려 한다. 속죄일을 지킴, 유대교 의복, 유대교 형태의 예배 형식,
심지어 예수님도 ‘예수아’라고 불러야 한다.
3. 엡2:14-15, 무너진 벽을 다시 세우고 유대교 전통을 위로 두려 하면 안 된다(갈3:27-28). 사도
바울처럼 되어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빌3:8), 유대인 전통 예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골2;14-16,
휘장이 찢어짐
3.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전5:7-8):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15:1, 5, 9010, 19-20,
28-29).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 명백하다.
4. 특히 안식일 준수 강조: 그러면서도 차타고 밥 하고 불 켜고 TV 보고 등
5. 토라(모세5경) 기본 성경(모든 민족 모든 시대), 신약은 구약성경의 영감을 바탕으로 하는 주석서
6. 한국의 메쥬들은 삼위일체 부인: 예수 유일주의(마28:19; 3:16-17)
7. 오순절 은사주의
8. 종교통합주의
성경 Q&A
27. 환난기와 천년왕국에서는 성전과 제사장 그리고 짐승 희생 제사가 있나요?
마24장 15절, 예수님의 예언, 단9:27, 살후2:3-4
환난기 성전(계11)
천년왕국 성전(겔40-48)
성전이 있다. 성전이 있으면 반드시 짐승의 희생을 드린다. 겔(43:18-27)
제사장들이 있다(겔44:10-31). 레위 사람들이 있다(겔45:5; 사66:21; 말3:3-4)
유월절 등의 절기를 지킨다(45:18-25). 장막절을 지킨다(슥14:16-19).
결론: 이스라엘은 지금도 여전히 성전을 지으려 하고 환난기, 천년왕국에 성전, 제사장, 절기, 안식일,
짐승 희생 등을 드린다.
질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하지 않았는가?(요19:30)
단번 속죄를 이루지 않았는가? 맞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인가?
유대인들의 환난기 성전 준비, 그들은 아직 구약 시대에 산다. 그들은 아직 메시아가 온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메시아가 성전에 임하므로 성전을 준비하고 있다(말3;1), 행2.
천년왕국에는 100% 믿은 유대인과 이방인만 들어간다. 그런데 왜 거기서 짐승 희생이 필요한가?
에스겔서 40-48장은 영적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는가?
구약의 희생예물은 결코 죄를 제거하지 못했다(히10:1-4).
시청각 교육, 죄, 죄 인정, 죄의 결과 사망, 지옥
마찬가지로 천년왕국의 희생예물도 죄를 제거하기 위함이 아니다.
1. 예수님의 단번 속죄를 기념하는 것이다. 지금의 주의 만찬과 마찬가지
2. 그때 태어난 자들에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 죄, 죄의 결과 사망(히10:3)
3. 천년왕국의 필요: 아담, 유대인들이 모든 민족들 중의 으뜸(사2:2-4)
그대로 믿어야 한다.
영해 No!!!!
성경 Q&A
28. 거룩함은 무엇을 뜻합니까?
15년 전, PCC, Dr. Kendall: Dallas 신학교 박사, 영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대가
좋은 성품: 킹제임스 맨, 그런데 설 곳이 없다. 목회지, 신학교가 없다. 신장병을 앓고 있다.
지금도 성경 문제로 교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걱정하지 말라.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 미국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룩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하나님, 성경, 성도, 백성, 교회, 헌금, 섬김, 행위, 찬송).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거룩”이 명사인 줄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거룩”은 “거룩하다”의 어근, ‘하나님의 거룩’ No! 말부터 제대로 써야 한다.
지난 주 출애굽기 맥잡기, 성막 건설, 제사장 소개
구약은 율법, 율법 시대 예배의 핵심: 제사장과 성전
특히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 여러 색깔의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씀
7월 10일, 속죄일,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섬기러 갈 때 여러 가지 의복을 차려입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관의 앞에는 금으로 된 패를 붙였다.
그 패에는 “주께 거룩한 것”(HOLINESS TO THE LORD)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너는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긴 것 같이 그 위에 {주께 거룩한 것}이라 새기고(출28:36)
그들이 순금으로 거룩한 관의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긴 것 같이 그 위에 {주께 거룩한 것}이라는
글을 쓰고(출39:30)
구약에는 많은 시청각 자료가 나온다. 제단, 죄인, 제사장, 불, 짐승 등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시청각 교육을 하시려고 자신 앞에 나오는 대제사장의 머리에 “주께 거룩한
것”(Holiness to the LORD)이라는 글을 적게 하셨다.
의미: “나는 하나님께로 온전히 구분된 거룩한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게시는 지성소에 나가지 못함
제사장 직무 수행을 위한 위임식(레8):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 제사장 위임
그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는 거룩히 구분하는 숫양의 피를 발라야 했습니다.
피가 없이는 거룩함을 이룰 수 없다.
22 또 그가 다른 숫양 곧 거룩히 구별하는 숫양을 가져오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23 그가 그것을 잡으니라. 모세가 그것의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그 피를 바르고(레8:22-23)
대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들으며(귓불) 그것대로 행하며(손), 그분이 지정한 곳에만 가야 한다
(발). 이것이 제사장의 임무(겔44:23)
이렇게 전적으로 거룩히 구분된 자가 바로 대제사장이다.
“주께 거룩한 것”이라는 표현은 렘2:3에도 나온다. 백성의 극도의 타락
이스라엘은 {주}에게 거룩한 자요(Holiness unto the LORD), 그의 소출의 첫 열매였으니
그를 삼키는 모든 자는 실족하고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주}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백성은 온전히 주님께로만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다.
이집트 탈출, 출19:5-6
그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음(롬3:1-2).
메시아가 그들에게서 남(요4:22), 세상 모든 민족들의 등불
하나님의 명령(레11:44-45)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을 배반하다가 바빌론 포로 생활, 예수님 배척, 디아스포라
천년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질 때에는 심지어 말들의 방울에도 “주께 거룩한 것”이 기록되고 심지어 이스라엘
의 모든 그릇도 “주께 거룩한 것”이 됩니다.
20 그 날에는 말방울에도 {주께 거룩한 것}이라(HOLINESS UNTO THE LORD) 기록될 것이
요, {주}의 집에 있는 솥들은 제단 앞의 대접들과 같으리라. 21 참으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주}께 거룩한 것이 되리니(holiness unto the LORD) 희생물을 드리는
모든 자들이 와서 그 솥들 중에서 취하여 그 안에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주}의
집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슥14:20-21).
말방울 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쳐다보면 거기에 “주께 거룩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음식을 삶는
그릇에도 주께 거룩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함이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때가
천년왕국이다. 에덴동산의 회복
이제 이런 예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한 분인지 우리가 알아야 한다. 거룩함이 없으면 그분을 볼
수 없다(히12:14). 천년왕국에서 주의 집에는 가나안 사람이 없다. 가나안 사람은 거룩함이 없기
때문이다.
거룩함(Holy, Holiness)은 현 시대 사람들에게 크게 결여되어 있는 성품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릅니다.
거룩함이 가장 먼저 나오는 곳(출3:5):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룩하다).
원래 하나님만 거룩하다. 창조물과 분리되어 있다. <광대하고 위대하다>는 뜻이다(차원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있습니까?
베드로: 우리는 다 제사장(벧전2:5, 9), 1:14-16, 3:15
바울: 우리는 성도이다. saint입니다. ‘거룩히 구분된 자’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고전3:16-17).
고후6:14-18, 고후7:1
거룩함이 없으면 하나님이 아나니야와 삽비라 같이 구원받은 성도라도 심지어 죽이십니다(행5:1-11).
음행한 자(고전5:4-5)
주의 만찬을 멸시한 자(고전11:29-30)
요일5:16-17, 약5:19-20
히12: 6-8
이 거룩함이 없을 때 모세와 아론은 구원은 받았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복은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서 나를 거룩히
구별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20:12).
사도 바울의 권고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8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속한 두려움을 가지고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시
키는 불이시니라(히12:28-29).
성도는 거룩히 구분된 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거룩히 살려고 애를 써야 한다.
한번 구원받으면 구원은 유지되지만 보상을 일을 수 있고 심각한 경우에는 죽임을 당할 수 있다.
그러면 거룩함은 무엇인가?
거룩함은 종종 밖으로 나타난 깨끗함을 표현하고 어떤 때는 내적인 순수함과 성결함을 나타낸다. 참된
거룩함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마음의 생각과 의도에 특징을 부여한다. 거룩함은 내적인 원리이므로
단순히 정직함이나 자비 등과 같은 도덕적으로 뛰어난 것을 뜻하지 않고 모든 선한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무한대로 완전한 방법으로 거룩한
존재이시다(사1:4; 6:3). 메시아 역시 거룩한 분이었고(시16:10; 눅4:34; 행3:14) 물론 성령님
역시 거룩한 영이시다. 하나님은 거룩함과 무죄함과 성결함의 근원이시다.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의 타락 때에 이 모든 거룩함을 상실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거룩함에 점진적으로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며 궁극적으로 그들은 천국에서 영원토록 성결한 존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벧후1:4), 이 일을 보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라고 생각하신다.
성경은 거룩하다는 말을 2차적인 의미로 하나님께 속한 것을 지칭하는 데 사용한다. 그래서 천국과 그분의
성전과 그 안의 기구들과 그 안에서 행하는 일과 그분의 날과 그분의 사역자들과 제사장들과 대언자들과
사도들이 거룩하다. 성경은 또한 유대인들을 가리켜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께 거룩히 구분된 사람들이
며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한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거룩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곧 그 사람이 내적인 순수함과
긍휼과 깨끗함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현대 교회는 거룩함을 잃고 있고 그것을 사랑과 혼동하고 있다. ‘거룩하다’는 말은 성경에 611회 나오며
사랑은 488회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사랑보다 거룩함에 대해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본다.
하나님의 근본 속성은 거룩함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사랑이 아니라 거룩함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께 거룩하게 경배하여야 한다(출15:11; 대하20:21; 사6:2-3; 계4:8).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며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시29:2).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 사이에는 중요한 관계가 있다. 실로 사람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켰으며 그 결과 그분의 거룩함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분의 사랑이 사람에게 나타나게
되었다. 참으로 거룩함은 하나님의 다른 모든 성품을 조절하는 근본 속성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속죄는 사랑에서 왔으나 그 사랑을 요구한 것은 그분의 손상된 거룩함이었다.
모든 사랑은 기준이 있어야 바른 사랑이 될 수 있는데 그 기준이 바로 거룩함이다. 사랑이라는 엔진이
아무데나 굴러가면 무절제의 도구가 되는데 그분의 거룩함이 사랑의 엔진을 조절하여 바른 곳으로
인도하므로 그것은 사랑보다 높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어야 하는 근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희생 예물이 되어야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이 만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가진 사람도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분과 같이 거룩해야 하며 성경은 분명하게
그것을 요구한다(레20:26; 벧전1:15-16).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하나님, 거룩한
아드님, 거룩한 영, 거룩한 성경을 믿으며 성도 즉 거룩한 무리라 불린다.
현대자유주의자들은 거룩함보다 사랑을 더 중요시 하며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거룩함을 찾기 어렵고
각 사람이 자기 보기에 선한 대로 하나님께 나오려 한다. 그러나 사랑은 반드시 거룩함이라는 궤도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교회 안에 각종 어려움이 발생한다. 사랑으로 해야 한다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교회가 수용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훼손되며 그런 식의 거룩하지 못한 경배는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신다(잠28:9).
그러므로 기준과 표준을 요구하지 않는 기독교는 바른 기독교가 아니다.
방언, 입신, 경배와 찬양, “주여 3창” 등은 더러운 것이다(고전14:23).
엘리야와 바알의 대언자 450명(왕상18:26-28)
하나님의 교회는 정결해야 한다(말, 음악, 설교, 찬양, 음식, 화장실, 분위기).
심지어 성경도 정결해야 한다(귀신, 삭제 첨가 등 No!!!!).
하나님의 사람 역시 정결해야 한다: 말과 행실(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먹는 것, 읽는 것)
킹제임스 성경을 손에 들었으면 더더욱 정결해야 한다.
이같이 거룩한 생활은 거룩한 영이 우리 안에 계시면 자동으로 생기게 되어 있다.
그 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요셉(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39:9),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
아간: 수7: 20-21, 바빌로니아 산 옷, 은 200세겔, 금덩이 오십 세겔, 아골 골짜기
매사에 판단해야 한다: 거룩한가, 아닌가? 하나님의 두려움 Yes!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다다라야 한다(그것은 거룩함이다).
세상과 분리되어야 하나님의 거룩함을 만족시킬 수 있으므로 세상의 것을 버리고 야곱과 같이 벧엘로
올라가야 거기에 부흥이 있다(창35:1-5).
따라서 교회 안에서 사랑과 거룩함이 갈등을 일으킬 때 반드시 거룩함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교회가 살 수 있는 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곧 하나님의 의이다.
Q&A
29. 창세기의 6일 창조란 무엇인가요?
창세기 1, 2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여기의 하루는 어떤 기간인가요?
진화론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A. 창세기를 공부하는 이유
창세기는 크리스천 믿음의 기초이다. ★★★적용
창세기를 믿지 못하면 성경을 믿을 수 없고 성경의 그리스도를 믿기가 대단히 어렵다. ★★★적용
부활은 믿는데 창조는 믿을 수 없다. 아이러니, 여기서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매우 많다.
인본주의자들의 노력: 창세기 1-3장 제거
B. 창세기 개요
1. 기록자: 모세, 기록 시기: 주전 1450년경, 성격: 역사, 기간: 약 2,315년(어셔의 연대기)
2. 내용:
A. 창세기는 창조주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의 기원을 보여 주는 책으로 온 우주 만물의 창조,
사람의 창조, 가정의 형성, 죄의 기원, 사람의 타락, 희생 예물을 통해 하나님과 잠정적으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과 여자의 씨인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종적으로 회복될 것에 대한 예언,
노아의 대홍수, 민족들의 발전, 이스라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시작, 족장 시대 믿음의
사람들에 관한 기사, 요셉을 통한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진출 등을 담고 있다.
B. 창세기는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특별히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과 그 뒤 죄가 은밀히
들어와 온 세상에 파멸과 죽음을 가져온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비극적 결과를 보여 준다. 창세기는
사람이 죽는 이유와 만물이 쇠퇴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므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초가 된다.
C. 그래서 창세기는 곧장 신약으로 연결되어 창세기의 말씀들이 신약성경의 17권의 책 속에서 60여
차례 인용되고 있다. 창세기는 생명으로 시작해서(1:20-28) 사망으로 끝난다(50:26).
3. 목적
A. 우주와 생명과 인간의 기원과 목적을 보여 주는 것
B. 인격적이고 자신을 계시하시며 언약을 맺는 하나님을 보여 주는 것
C. 히브리 백성의 초기 역사를 기록하는 것
D.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시작하는 것
4. 특징
A. 생명의 기원, 죄와 악의 문제, 이 문제의 해결 방법 제시
B. 하나님이 인류에게 허락하신 4개의 기관 혹은 제도(institutions) 중 3개를 보여 줌: 가정(2장),
인간 정부(9:1-17), 이스라엘 민족(12장). 교회(마16:18).
C. 동성애 문제 등 현대 모든 문제의 해결책
D. 창세기는 다양한 인물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아담과 이브, 가인과 아벨, 셋, 에녹, 므두셀라,
노아, 아브라함, 사라, 롯, 이삭, 리브가, 에서와 야곱, 열두 아들, 요셉, 유다 등
E. 창세기는 성경에 나오는 세 가지의 큰 언약 즉 무조건적인 언약 중 하나인 아브라함 언약
(Abrahamic covenant, 12:1-3, 땅과 민족과 복)을 기록한다. 나머지 2개는 다윗 언약(Davidic
covenant, 삼하7:9-16)과 새 언약(New Covenant, 렘31:31)이다.
C. 창세기 1잘 1절의 중요성
1. 창1:1: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A.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의 다른 부분을 믿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 한 구절은
사람이 만든 여러 가지 그릇된 이론을 산산조각 낸다.
a. 하나님이 계시므로 무신론은 존재할 수 없다.
b.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물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으므로 범신론도 존재할 수 없다.
c. 유일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므로 다신론도 무효하다.
d.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으므로 물건이나 천체를 숭배하는 유물론도 무효하다.
e.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진화론도 성립되지 않는다.
B. 진화론(빅뱅 이론): 200억 년 전에 대폭발에 의해, 에너지 및 물질 보존의 법칙에 정면 대립
a. 빅뱅: 100-200억 년 전
b. 지구: 50억 년 전
c. 사람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 5천만 년 전
d. 사람: 100만 년 전
e. 무생명에서 생명으로, 종류대로 1장에만 10회, 창세기에 18회
f. 저등 생명에서 고등 생명으로
g. 종의 변화
C. 우리는 히11:3, 6에 의거하여 믿음으로 창조가 이루어졌음을 믿는다.
a. 진화론자도, 무신론자, 불가지론자도 다 자기 주장이 맞는다고 믿는다. 과학이 아니다. 그
러므로 이 세상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b. 결국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마귀를 믿는 믿음의 대립
D. 창세기, 1, 2장의 특별 창조:
1. 창세기 1, 2장의 하루는 지금의 하루와 동일하다.
1. 히브리말 ‘욤’(yom)은 거의 대부분 ‘24시간의 날’을 가리킨다. 무한정 긴 시간을 가리키는 ‘올
람’(olam)이 사용되지 않았다. one, two, three day, days, first, second, third day 등은 항상 24시간의
하루, 벧후3:8은 하나님의 관점
2. 창세기 5, 11장의 계보, 969세, 하루가 1000년이거나 10억년이면 969년은 얼마나 될까?
days of 아담에서 days는 생애로 번역함
3. 동일 기록자 모세의 증언(출20:8-9, 11; 31:16-17): 하루가 10억년이면 60억년 일하고 10억년
쉰다는 것
4. 다윗의 증언(시33:6-7, 9),
5. 느헤미야의 증언(느9:5-6, 이스라엘 역사 7-38)
6. 누가의 증언: 누가복음 3장, 예수님의 계보,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눅3:38), 셋이 아담에게서
직접 나왔듯이 아담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나왔다.
7. 예수님의 증언(막10:6-7)
8. 바울의 증언(행17:24; 고전11:8-9, 12; 딤전2:13-14; 롬5:12-21과 고전15:22, 45-47은 첫 아담과
둘째 아담을 비교한다).
E. 유신론적 진화론: 여기의 하루를 10억년, 50억년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 비성경적이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
F. 성경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수백억 년 된 것이 아니다.
G. 성숙한 지구, 성숙한 창조
아담을 만드셨을 때 아담은 만들어진 지 이제 1초 되었으나 30세쯤의 성숙한 남자
이브도 마찬가지
땅도, 바다도 성숙하게 만들어짐
나무들도 울창하게 몇 백 년 된 것처럼 나이테, 열매도 맺고
자갈들도 매끄럽게, 해변에 이끼도 끼고 : 모든 것이 보기에 좋음(창1:31)
해와 달과 별들도 완전한 기능을 가진 채
우주의 빛도 마찬가지, 광년, 그래서 수백 억년 걸린다. No!
창1:3에서 빛이 있으라 하실 때 이미 빛으로 우주를 채우셨다. 초자연적으로
시간 자체가 상대적이다. 창조의 그 주간에 빛이 순식간에 채움, 그 이후에는 지금의 속도로
변해도 No problem,
예수님의 가나 혼인 잔치 물을 포도즙으로(요2:1-11)
창1:1절과 2절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이의 갭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G. 간극(갭) 이론의 등장
1. 1850년대 이후: 진화론, 공산주의, 성경 오류 주장 등이 등장함.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 an English naturalist, 약학, 신학 공부, 5년 간 비글호를
타고 탐험하면서 지질학자 노릇을 함. 리엘(Charles Lyell)의 균일론(uniformitarian ideas)을 지지하
고 자연 선택의 진화론을 발표함(1838). 1859,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2. 교회의 대응: 간극이론, 촐머스(Thomas Chalmers, 스코틀랜드)
펨버(George Hawkins Pember, 1837- 1910), known as G. H. Pember, an English
theologian
「초기 지구의 연대와 현대 심령술과의 관계 」(Earth Earliest's Ages, and Their Connection
with Modern Spiritualism and Theosophy, 1876) – reckoned by some as his
masterpiece.
내용: 창1:1절은 원래 창조이며(수억 년, 수백억 년 전에 이루어짐) 사탄의 반역(사14; 겔28)
으로 인해 지구가 2절처럼 되었고(was가 아니라 became) 3절부터는 재창조임. 마귀들은 그
전에 살던 존재들임. 몸을 잃어버린 마귀들이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들어가려고 함.
3. 「스코필드 성경」: Cyrus I. Scofield, Published by Oxford University Press, King James Version
text, it first appeared in 1909 and was revised by the author in 1917. 1917 edition also attempted
to date events of the Bible. 갭 이론과 세대주의의 확산, 근본주의자들의 성경
4. 성경 단어 왜곡: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여기의 was를 became으로 왜곡,
28절의 replenish를 ‘다시 채우라’로 왜곡, replenish의 ‘re’는 다시의 뜻이 아니다. 영어에서는 ‘re’가
강조의 용례로 훨씬 더 많이 쓰인다.
5. 추종자들: 1980년대 이전의 대부분의 세대주의, 근본주의자들(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라킨
(Dispensational Truth), 반하우스, 럭크맨 등. 말씀 보존학회 및 그 출신들
6. 이 식으로 성경을 왜곡하면 연달아 다른 교리들도 영향을 받는다.
H. 그래서 창세기 1장과 2장을 편견 없이 그대로 읽어야 한다.
1. 첫째 날: 하늘(the heaven)과 땅(earth)을 만듦, 지구와 우주 공간을 뜻함(2:1 참조)
2. 창세기 1장은 6일 창조를 보여 주며 2장 1절은 그것을 요약한다.
3.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잘 이해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창세기를 읽어야 한다.
a. 1절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1) 시간이 처음 도입되는 시점에 하나님은 우주와 지구를 무에서 유로 만드셨다. 여기의
‘heaven’이 하나님의 처소인 셋째 하늘일 리는 없으므로 이것은 대기권의 첫째 하늘과 천체들
이 있는 둘째 하늘을 가리킨다. 사실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우주 전체를 표현
하는 단어이다. 즉 시간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우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땅 곧 지구를
만드셨다. 이 구절은 창조 전체를 하나의 사실로 선포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평범하게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를 만드신 것으로 보아도 된다.
b. 2절 그러자(And) 땅은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
(1) 그 결과 혹은 그러고 나자(And), 지구는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다(상태를 나타내는
‘was’가 사용됨). 1절의 행위 뒤에 지구가 형태가 없게 되고 비게 된 것이 아니다(즉 ‘became’
이 아님). 1절의 행위가 있자 지구의 상태는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결코
원래의 지구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타격을 입어 그렇게 되었다는 강박적 상상력을 넣을
필요가 없다. 다른 것들이 채워질 것을 설명하기 위해 땅이 비어 있는 상태라는 것으로 단순
히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습니다.
(2) 깊음의 표면: 1. 욥기 등에 있는 대로 이 깊음을 셋째 하늘 초입의 수정 같은 유리 바다
의 깊음, 2. 지구의 바다 속의 깊음, 중요한 것은 어둠이 바다 속부터 셋째 하늘에 이르기까
지 온 우주 공간을 덮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어둠은 심판의 어둠이 아니다. 5절에 있는
것처럼 첫째 날의 시작이 저녁이므로 당연히 이것은 밤의 어둠을 가리킨다. 또한 하나님의
영께서는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는데 이 물들은 바로 뒤의 9절에 나오는 물들 즉 땅
덩어리를(land)을 덮고 있는 바다의 물들로 이해하면 된다.
c. 3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1) 어둠이 온 우주를 덮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은 아침이 되매 빛을 창조하셨다.
d. 4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셨다.
(1) 이처럼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그 빛을 좋아하셨다.
(2) 여기에서 어둠을 부정적인 암시 즉 이전 세상의 반역을 뜻하기 때문에 빛만을 좋아하셨다
고 이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여기의 문맥은 그것이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단순
히 첫째 날 밤의 어둠을 말한다. 이 어둠은 빛이 있으려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어둠이
므로 여기 나오는 어둠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어둠 다음에 아침에 빛이 생겼다.
e. 5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었다.
(1) 하나님은 어둠을 쫓아내려고 빛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단순히 빛과 어둠을 낮과 밤이라
부르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어둠은 무슨 심판의 결과가 아니다. 아직 해와 달이 없으
므로 하나님은 전 우주적인 빛과 어둠을 사용해서 저녁과 아침으로 구성된 첫째 날을 만드셨
을 뿐이다. 1절부터 5절까지의 모든 일이 첫째 날에 이렇게 이루어졌니다.
e. 첫째 날에 하나님이 순서대로 하신 일은 다음과 같다.
(1). 우주 공간과 지구를 창조하셨다.
(2) 지구는 아직 있을 것들이 없으므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
(3) 아직 저녁(밤)이므로 어둠이 지구를 포함한 온 우주 공간을 채웠다.
(4)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되므로 1, 2절은 첫째 날의 밤 12시간이었다.
(5) 아침이 있어야 하루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아침에 빛을 창조하셨다.
(6) 어둠 속에 빛이 생기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7) 그래서 첫째 날의 밤과 낮이 생겼다.
(8) 그런데 아직 우주 공간과 지구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31
절을 통해 있어야 할 것들을 만드시고 지구와 우주를 채워서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형태를
갖추게 하셨다.
f. 6-8절 드디어 둘째 날에 하나님은 천체들을 심을 공간인 궁창(firmament) 즉 엄청나게 단단한
공간을 만드셨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의 우주과학자들이 ‘흑암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플랑크
스페이스(Planck space or plenum)라고도 불리며 밀도가 10의 93승(10을 93번 곱한 천문학적 숫자)
정도 되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 안에서 지구나 태양은 전자 하나만도 못한 크기와 무게를 갖는다.
(1) 하나님께서 이런 궁창은 지으셨지만 궁창에 들어갈 천체들은 아직 창조하지 않으셨으므로
이날은 ‘좋았다’는 말씀이 없다. 이 말씀이 없다고 해서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좋았
다’고 말할 시점이 아직 아니기에 ‘좋았다’는 말이 없을 뿐이다.
g. 9-10절 우주 공간에 궁창을 만드셨으니 이제는 지구를 조성하셔야 한다. 첫날 지구를 창조하실
때 땅덩어리(land)는 물들 속에 잠겨 있었기에 셋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이 물들을 한 군데로 모으시고
육지를 드러내셨다. 잘 알다시피 땅 덩어리는 노아의 홍수 이후 벨렉의 때에 나뉘면서 오대양 육대주를
형성하였다(창10:25).
h. 11-13절을 보면 셋째 날에 땅이 풀과 자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자기 종류대로 열매 맺는
나무 곧 열매 속에 씨가 있는 나무를 냈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들이 좋았다. 그 저녁과 아침이
셋째 날이었다.
i. 지구의 형태를 갖추신 뒤 넷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만드시기 위해 14-19절처럼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궁창 속에 박아 놓으셨다. 드디어 궁창에 있을 것들이 있으니 [하나님]께
서 보시기에 좋았다. 그 날은 넷째 날이었다. 이로써 우주 공간을 채워 형태를 갖추는 일은 다
끝났고 지구만 더 채우면 창조의 일이 다 끝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순서를 보면 하늘
땅 하늘 땅의 순으로 되어 있다.
j. 그리고 20-31절에서 다섯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대기권에 날짐승들을 만들고 바다의
창조물을 만들고 여섯째 날에 짐승과 가축과 기는 것 등을 만들고, 드디어 사람을 만드셨다. 물론
매일 매일 모든 창조 작업이 자신의 뜻대로 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다.
k. 이렇게 해서 31절에 있는 대로 여섯째 날이 끝났다. 이 여섯 날을 통해 하나님은 우주와 지구에
있을 것들을 하나하나 만드시고 채우셔서 그것들이 형태를 갖추게 하셨다.
l.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려고만 하시면 단숨에 우주와 지구를 완벽하게 창조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인류를 위한 다른 계획이 있어서 6일 동안 하나하나 만들어 채우셨다.
m. 2장, 지금은 1장과 2장의 구분이 있지만 원래는 없었다.
n. 1절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었다. host: 군대, LORD of hosts
(1) 하나님은 우주 공간의 두 하늘 속의 천체들과 지구의 모든 것들(모든 군대)을 이처럼 6일
에 걸쳐 하나하나 만드시고 채우셨으며 그 결과 모든 일이 완성되었다(끝났다).
o. 2절 그리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1) 모든 것을 끝내셨으므로 이제 하나님은 일을 떠나 쉬셨다.
p. 3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다. 그 이유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1) 이로써 하나님은 안식일을 만드시고 그 날을 복주셨다.
(2) 하나님이 6일에 걸쳐 이 모든 것을 완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이라는 숫자로 움
직이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안식일, 안식년, 희년, 칠칠절, 일곱 명절 등)을 보여 주시며, 동
시에 사람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어야 함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막2:27-28).
(3) 이런 계획이 없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면 7로 움직이는 구약 성경의 많은 예
표들과 지금의 주(week) 시스템 등을 설명할 길이 없다.
4. 하나님은 첫째 날 우주와 지구를 빈 채로 만드시고 바로 그날부터 6일에 걸쳐 우주와 지구에
있을 것들을 하나하나 창조해서 채워 넣으셨다. 그래서 2장 4절은 이때를 가리켜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곧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든 때’라고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만들다’와
‘창조하다’는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다.
5. 결론적으로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만드시고, 우주와 지구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한 사실을 묘사한다. 여기에서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6. 이렇게 창세기 1, 2장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정상적이며 바른 방법이다.
7.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막10:6)
(1) 재창조 등은 없는 개념이다.
성경 Q&A
30. 바울은 독신을 선호하였습니까?
● 결혼(Marriage)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평생 결합으로 인류의 존속과 행복을 위해 창조자께서 예비하신
규례(창1:27-28; 2:18-24). 결혼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의 기초가 되며 부모의 사랑과
책임감을 조장함으로써 자녀들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미덕과 부지런함과 명예와
바른 습관과 행복한 가정을 꾸미기 위한 모든 것을 갖도록 만든다.
하나님은 처음에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드셔서 일부일처 제도를 확립하셨다(말2:15). 성경에서
가인의 후손인 라멕은 처음으로 일부다처제를 실행한 인물이었다(창4:19-24).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들 즉 천사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여자를 취해 아내를 삼았다(창6:2). 한편 노아와
그의 아들들은 한 아내만을 두었다. 욥도 한 아내만을 두었으며 나홀, 롯, 그리고 심지어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한 아내만을 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다처 제도는 히브리 사람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 되었고 성경은 이런
악습의 결과로 인한 폐해를 잘 보여 준다.
창16:7-16의 아브라함과 하갈, 이스마엘
삿8:30 기드온의 많은 아내 70명 아들, 그의 첩의 아들 아비멜렉이 69명을 한 돌 위에서 쳐 죽임
삼하3:3-5 다윗의 많은 아내, 아들들, 여러 아내의 아들들로 인한 문제
왕상11:1-8 솔로몬, 왕비 700명, 첩 300명, 하나님을 떠나 이방 잡십들을 섬김
대하11:18-21; 13:21, 르호보암, 아비야 등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일부다처제가 있었다는 언급이 없다.
현시대 동성애 합법화, 미국 대법원의 결정
그 이후 가장 큰 이슈: 일부다처제, 왜 동성애만 합법이냐? 일부다처제도 OK
이스라엘 자손은 결혼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을 가지고 있었다(각종 음행과 간음 처벌 규정 레18,
20; 신27:20-23). 특별히 가나안 족속들과 우상숭배자들과의 결혼은 엄격히 금지되었으며(출34:16)
후에는 그들 주변에 있던 이교도들 특히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과의 결혼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다(느
13:23-29). 또한 남자가 자식 없이 죽는 경우 그의 형제나 가까운 친척이 그의 아내와 결혼하여 그녀가
처음 낳은 아들이 전 남편의 아들이 되게 하는 법규가 있었다(창38:1-30; 신25:5-10; 마22:23-26).
형사취수 제도
우리 주님 역시 결혼이 가장 성스럽고 영원한 제도임을 확실히 보여 주었고 음행의 연고 외에는
이혼을 금하시고(마5:32; 19:3-9) 결혼 서약을 파괴시키는 일 - 심지어 생각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마 5:28) - 을 책망하셨다(히13:4; 계21:8).
한편 천주교회는 모든 것 중에 가장 존귀한 것 즉 결혼에 불명예를 가져왔다. 그래서 일반 성도들에게
도 독신을 장려하고 신부와 수사와 수녀에게 종신 독신을 부과하여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그르치고 있다. 실로 이렇게 결혼을 금하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기뻐하는 말세의 일 중 하나이다(딤전
4:3). 결혼하지 않는 방향으로 세상이 변함
바울의 결혼관(고린도전서 강해 10과)
고린도전서 7장은 주로 결혼 문제, 바울은 결혼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준다.
그런데 7-8절은 독신 선호 사상으로 비쳐진다.
여기서 조심할 것: 바울의 대답은 그 당시 교린도 교회의 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
서 네로가 황제가 되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려 함(26절, 29-31절). 재림의 임박성, 그 결과
독신을 선호하는 듯한 발언을 함(7-8절).
그러나 바울은 결코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다(딤전4:1-4; 5:14; 히13:4).
일단 성경 전체 조명: 사람은 특별 사유가 없는 한 결혼해야 한다(창1:26-28; 2:18).
1. 사도 바울은 지금 독신이다. 그러면 그는 결혼한 적이 있을까?
결혼한 적이 없다면 결혼에 대한 대답이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버논 맥기 박사의 주장: 하나님은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을 써서 중요한 문제를 답하게 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7절에 근거해서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8절을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르다. 여기에는 ‘결혼하지 않은 자들’(unmarried)과 과부들이
있다.
‘결혼하지 않은 자들’(unmarried)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자들인가?
그리스어 아가모스(agamos): 7:11에도 나온다, 결혼 사람이 배우자를 떠난 뒤에도 결혼하지 않는
상태로 지내는 것을 ‘아가모스’로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어 아가모스(agamos)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되고 결혼 이후 배우자와의
헤어짐 이후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된다.
결혼하지 않은 자와 과부(8), 문맥상, 홀아비를 말하는 것으로 보임, 고전7:8을 보면 남자 복수
행26장의 산헤드린 회의(12절), 바울은 여기의 멤버였을 가능성이 높다. 멤버가 되려면 결혼해야만
한다.
유대인 청년들은 18세까지 결혼할 것을 종용받았다. “장가가지 않은 자는 어른이 아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빌3:5), 전통에 열심(갈1;14; 행22:3)
고전9:5, 엡5:25, 31-32의 표현
여러 주석가들이 결혼과 사랑에 대한 그의 글들을 볼 때 그가 결혼했으나 아내가 일찍 죽었고 그는
다시 장가가지 않은 것으로 봄.
7절: 바울은 지금 독신 상태, 자기와 같기를 원하였다. 그럼에도 사람마다 고유한 선물이 있다.
독신은 명령이 아니라 허용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마19:12). 초기 기독교에는 결혼을 영적 방해물로 여기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독신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주님을 위해 독신으로 사는 것은 좋다. “그러나 독신으로
사는 것이 더 영적이다. No!” 중세에는 독신, 빈곤 등을 강조하는 수도사들이 있었다. No good.
8-9절: 다시 한 번 독신 언급. 1절의 원리 반복, 그럼에도 참을 수 없으면 결혼해라.
2. 왜 독신으로 지냈을까?
그는 전 삶을 주님을 위해 쓰기를 원하였다(딤후2:3-4; 고전9:6-19)).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만 적용된 특별 상황이다.
3. 결혼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고전7:2, 9절이 적용된다.
다만 고유한 선물이 있어서 어떤 사람은 독신으로 지내도 된다.
성경 Q&A
31. 드보라와 여자 목사
● 드보라: 사사기의 상황 삿2:7, 사사기 4장(야빈, 시스라 등) 라비돗의 아내 여대언자. 그녀는
라마와 벧엘 사이의 종려나무 밑에 거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재판했으며(삿4:4-5) 바락을 불러
시스라를 치게 하고 그에게 승리를 약속했다. 그러나 바락은 그녀가 함께 가지 않으면 혼자 가지
않겠다고 했으며 이에 그녀가 갔으나 이번 여정의 승리가 여인의 승리로 기록되고 그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 드보라는 삿5:1-31에 기록된 승리의 노래를 지었다.
대언을 하는 대언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세우신다. 선지자가 아니다.
고린도전서 11장 5절: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초기에는 여대언자가 가끔씩 있었다. 미리암(출15:20),
드보라(삿4:4), 훌다(왕하22:14), 안나(눅2:36) 등
그런데 드보라만 대언자 겸 재판관(이스라엘의 치리자)
드보라의 경우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최악일 때 남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주셨다.
사3:4, 12, 즉 남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코흘리개(삿5:7)
a. 신약시대 초기에 바울은 공예배에서 여인들이 기도하거나 대언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4-5).
여기의 대언은 직통 계시를 뜻한다. 성경의 완성 이전이므로 이런 일이 가능하였다(빌립의 두
딸 행21:8-9).
b. 그럼에도 공적 직무 사역을 하는 여자들은 없었다: 여자 목사(장로, 감독)는 허용되지 않았다(딤전
3:2, 12). 아마도 공적 예배에서 특정한 여자들이 기도하는 것은 허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딤전2:11-15). 또는 다른 대언자들의 메시지를
판단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고전14:27-35, his peace, any man). 남자만 가능
c. 현 시대에도 이런 여인들이 있는가? 초대 교회 후반부로 가면서 이런 여인들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d. 여자 목사, 여자 집사는 불가능하다(딤전3:2; 12).
e. 현시대에 여왕이나 여성 대통령, 여성 총리는 비성경적인가? 아니다. 가능하다. 구약성경은 신정
정치, 신약 성경은 교회에 대한 말씀, 교회에서는 창조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딤전2:12-15를
지켜야 한다.
Q&A
32. 영혼육 1시간에 떼기
사람의 영혼육 — 성도들이 가장 혼란을 많이 겪는 주제, 특히 혼에 대한 혼란
가장 큰 이유: (1) 개역성경은 영혼과 육의 2중 존재, 히브리어, 그리스어 성경, 킹제임스 성경 등 대부분의
성경은 영혼육의 3중 존재, (2) 개역성경의 번역 오류: 창2:7 오역, 생령이 되었다.
A. 사람은 영혼육의 3중 존재인가? 몸과 혼(혹은 영 혹은 영혼)의 2중 존재인가?
1. 2중 존재
a. 하나님의 계획에 상관없이 우주는 물질과 비물질로 되어 있다: 몸과 혼의 2중 존재
b. 영은 비물질이므로 혼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영혼이 맞다(플라톤의 이원론, 샤머니즘).
(1) 장로교 개혁주의 입장: “영과 혼은 같은 실체를 가리키는 두 용어일 뿐이다.”
(2) 개역성경, 마리아의 찬양(눅1:46-47) : 시제에 유의, …내 혼이 주를 크게 높이고(doth
magnify),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hath rejoiced) ※ 개역은 ‘soul’을
‘영혼’으로, ‘spirit’을 마음으로 오역함.
c. 신약성경에서 영과 혼이 교차적으로 사용된 용례가 있다.
(1) 고후7:1과 벧전2:11,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육)의 정욕들을 삼가라.”
(2) 고전5:5와 약5:20,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한다”, 영의 구원, 혼의 구원
2. 3중 존재
a. 성경에 영혼(spirit-soul)이라는 말은 없으며, 성경은 항상 영과 혼을 나누어 표기한다.
b. 교차적으로 사용된 경우가 있다 해도 영과 혼은 다르다: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
(1) 살전5:23, 평강의 바로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해 주시기를 구하노라.
(2)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c. 사람은 세 종류의 의식 기관을 가진다: 몸은 세상 의식, 혼은 자기 의식, 영은 하나님 의식
d. 혼은 잃을 수 있으나 영은 잃을 수 없다.
e. 성경은 사람의 3중 구조를 지지한다.
f. 하나님의 삼위일체와는 조금 다르다.
B. 혼은 무엇인가? 삼위일체 교리처럼 혼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1. 성경에서 혼은 사람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사람을 구성하는 몸과 혼과 영의 세 요소 중 한
부분을 가리키기도 하므로 문맥상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2. 성경에서 혼은 대부분의 경우 사람 자체를 가리킨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루아흐)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네페쉬)이 되니라”(창2:7;
고전15:45 비교). ‘네페쉬’는 생명, 생명체, 인격체를 뜻함
a.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루아흐)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원래 ‘living soul’, 네페쉬)이 된지라(창2:7), 영은 루아흐, 혼은 네페쉬. 개역에서 ‘생령’에
사용된 말은 네페쉬임. 그러므로 ‘생령은 완전 오역’
b. 개역: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soul, 프쉬케)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spirit, 프뉴마)이 되었나니(고전15:45), 그리스어로 영은 ‘프뉴마’, 혼은 ‘프쉬케’, 개역은
고전15에서 프쉬케도 영, 프뉴마도 영으로 번역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함.
c. 베뢰아의 무령인간(無靈人間) 교리: 이중 아담론, 창1:27의 사람은 영이 없는 무령인간(無靈人間)
이고, 창2:7은 유령인간(有靈人間)이라는 주장
d. 성경에는 혼이라는 단어가 535회 나오는데 기존의 우리말 성경은 히4:12같이 꼭 혼이 나와야
되는 구절에서만 혼으로 번역했고 대부분의 경우 ‘영혼’ 혹은 ‘자’(者) 등으로 바꾸어서 혼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e. “누룩 있는 빵을 먹는 혼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출12:15). 사람이 혼이다.
f. 그래서 사람을 주님께로 데려오기 위해 전도하는 것은 ‘혼을 구원하다’의 뜻을 가진 ‘soul winning’
이라 한다.
g.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에도 하나님은 많은 혼을 구원하셨다.
(1)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행2:41).
h. 또 하나님은 사람의 혼을 구하는 자를 지혜롭다고 하신다.
(1)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나무니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우니라”(잠11:30).
3. 그러므로 성경은 “내가 혼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나는 혼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몸도 있고
영도 있지만 나는 혼이다.”(창2:7).
4. 혼의 구원(히10;39; 벧전1:9-10),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혼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고통을 기꺼이
감당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분이 귀히 여기는 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a. 그렇다고 해서 혼만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b. 사람의 구원은 영과 육과 혼의 전 인격의 구원
5. 하나님의 형상의 한 속성: 불멸
a. 혼(사람)의 불멸은 계시 종교의 근본 교리.
b. 예수님은 아브라함 등이 죽은 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고(마22:32) 또 생명과 혼의 불멸 그리고 혼의 소중함 등을 몸소 보여 주셨다(마16:26;
고전15:45-57; 딤후1:10).
6. 고대 히브리 사람들은 생명을 부여하는 부분 즉 혼이 숨 속에 있으며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숨과
함께 혼이 떠난다고 믿었다(창35:18).
a. 그래서 히브리, 그리스 성경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혼’이라는 말은 짐승에게 적용되는 경우 종종
생명으로 번역되었다(창2:7; 7:15; 민16:22; 욥12:10; 34:14-15; 시104:29; 전12:7;
행17:25).
b. 그러나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공통으로 있으며 짐승의 경우 몸과 함께 사라지는 생명 외에 사람
속에는 사람의 생각과 사랑과 사고를 지배하는 불멸의 혼이 있다.
c. 바로 이 혼 때문에 사람은 짐승과 확연히 구별되며 바로 이 점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과 닮았다(창
1:26). 짐승도 영이 있다. 몸이 있다. 혼도 있지만 불멸의 혼이 아니다.
C. 사람을 구성하는 영혼육의 세 부분으로서의 영과 혼과 몸
1. 혼: 혼은 자기를 의식하는 생명, 식물은 혼이 없음
a. 짐승: 혼이 있지만 불멸의 혼이 아니다(욥12:10; 계16:3)
b. 성경은 도시도 혼이 있다고 말함(계18:14, 이 경우 생명으로 본다).
2. 혼의 기본 속성: 지성(intellect), 분별력(sensibility), 양심(conscience), 의지(will) 인격
체: 생각, 기억, 양심, 판단, 의지
혼은 인격체인 사람을 대표함.
a. 지성: 어떤 일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것, 도둑질은 나쁘다.
b. 분별력: 그 일에 대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그런데 어떻게 하려는가?
d. 의지: 그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자 하는가?(구원에 직접 영향을 미침)
e. 감성: 희로애락
f. 사람의 혼에 접근하는 방법
(1) 마귀가 혼에 접근하는 방법, 눈(창3:6; 수7:21; 삿14:2; 삼하11:2; 요일2:16 등)
(2) 하나님께서 혼에 접근하는 방법, 귀(롬10:17)
2. 영: 하나님을 의식하는 부분(잠20:27; 요4:24; 롬8:16; 고전14:14-15), 하나님과의 소통
기관: 믿음, 소망, 경외함, 기도
a.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난다.
(1) 영이 죽거나 소멸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b.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 영적으로 살아난다.
c. 모든 사람의 영은 죽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누가 알리요?”((전3:21), 개역은 둘 다 혼으로, 각주 표시
(1) 하나님이 소유자, (2) 짐승의 영은 사라진다. 짐승도 영이 있다
3. 몸: 세상을 의식하는 기관
a. 몸은 혼의 파트너이다. 몸은 하나님의 전이므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전6:19).
다만 몸이 주인이 되게 하면 안 된다. 또한 몸을 원수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몸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롬12:1). 이로써 우리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는다(빌1:20). 궁극적으로 성도
들은 몸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로 인해 보상을 받는다(고후5:10).
4. 사람이 죽으면 영과 혼이 떠남(창35:18), 영은 하나님께로 감(전3:21), 몸은 무덤으로 감.
5. 사람은 어디서나 –이 땅, 천국 혹은 지옥 -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 있다.
눅16장 등은 최종적인 몸을 입기 전에 중간 단계의 몸이 있음을 보여 준다.
D. 영혼육에 대한 결론: 성경은 “내가 혼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나는 혼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몸도 있고 영도 있지만 나는 혼이다.”(창2:7).
1. 사람은 핸드폰과 비슷하다
a. 통신사에 가입하지 않아도 통화 빼고는 모든 기능이 됨(사진, 음악, 책 등).
b. 몸: 핸드폰 기계, 혼: 소프트웨어, 사실은 혼이 핸드폰이다.
c. 그러나 통신사에 가입해야 전파가 와서 원래의 기능 가능, 그게 영이 살아나는 일
d. 통신사 가입이 바로 구원, 다시 태어나는 일
2. 타락하기 전의 에덴동산에서의 아담: 아담은 새 차를 타고 기분 좋게 고속도를 달리는 운전자,
라디오로 아버지 하나님의 방송국에서 나오는 크리스천 음악과 성경 메시지를 들으면서.
a. 여기서 운전자는 사람의 혼, 차는 몸, 라디오는 영으로 생각할 수 있다.
b. 차(몸) 안에 운전자와 라디오가 들어 있다.
3. 그런데 갑자기 운전을 잘못해서 길을 벗어나 나무에 충돌하면서 즉시로 세 가지 일이 발생함
a. 자동차(몸): 가긴 가지만 크게 상해서 결국 기계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지게 됨.
b. 라디오(영): 완전히 망가져서 전혀 소리가 나지 않음.
c. 운전자: 살아 있기는 하지만 실수로 인해 의로운 판사의 정죄를 받아야 함.
(1) 그는 이제 라디오 없이 – 즉 영인 죽은 채 - 그 망가져가는 차로 끝까지 인생길을 가야 함.
(2) 차가 멈추면 – 죽으면 – 차(몸)를 두고 떠나서 불 호수로 가야 함.
4. 불신자가 믿을 때 성령님이 하시는 세 가지 일
a. 몸에 대하여: 비록 망가져가는 차를 고쳐주지는 않지만 그 차 전체를 결국 완전히 새것으로 바꾸어
주신다(고전15:51-54). 부활, 영화로운 몸
b. 라디오(영)에 대하여: 곧바로 부서진 라디오를 고쳐주신다. 그래서 차 안에는 좋은 음악과 설교가
넘친다(고전2:12-14).
c. 운전자(혼)에 대하여: 정죄의 위험에 있었으나 이제 하나님과의 화평을 얻는다(롬5:1; 8:1).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국을 소유로 받는다(요14:1-3).
d. 그래서 사람의 구원은 영과 혼과 몸의 구원
Q&A
33. 정상적으로 창세기 1-2장 읽기
창세기는 크리스천 믿음의 기초이다. ★★★적용
창세기를 믿지 못하면 성경을 믿을 수 없고 성경의 그리스도를 믿기가 대단히 어렵다. ★★★적용
부활은 믿는데 창조는 믿을 수 없다. 아이러니
많은 성도들이 창세기 1, 2장 해석의 어려움을 겪는다. <정상적으로 창세기 1-2장 읽기>
창세기: 기원, 얼마나 오래 되었나? 진화론자들은 수백 억년, 성경대로 믿으면 지구와 우주의 생성은
약 6,000년 전, Young earth, 창세기 1-2장의 날은 지금과 동일한 24시간의 날
1. 창세기 1장의 하나님: 엘로힘, 창조의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창1:1-2:3까지 35회)
a. 주권자, 통치자(창1:1; 히11:3, 무에서 유 창조), 하늘과 땅의 창조주, 소유자(행17:24)
b. 여호와 하나님은 창2:4에 처음 등장
2. 창세기 1장은 6일 창조를 보여 주며 2장 1절은 그것을 요약한다. 원래 1, 2자의 구별이 없다.
3.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잘 이해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창세기를 읽어야 한다. And 포함
a. 1절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1) 시간이 처음 도입되는 시점에 하나님은 하늘(우주)과 땅(지구)을 무에서 유로 만드셨다(창
조). 여기의 ‘heaven’이 하나님의 처소인 셋째 하늘일 리는 없으므로 이것은 대기권의 첫째
하늘과 천체들이 있는 둘째 하늘을 가리킨다(창2;1). 사실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전통적으
로 우주 전체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즉 시간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우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땅 곧 지구를 만드셨다. 이 구절은 창조 전체를 하나의 사실로 선포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평범하게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를 만드신 것으로 보아도 된다.
b. 2절 그러자(And) 땅은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
(1) 그 결과 혹은 그러고 나자(And), 지구는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다(상태를 나타내는
‘was’가 사용됨). 1절의 행위 뒤에 지구가 형태가 없게 되고 비게 된 것이 아니다(즉 ‘became’
이 아님).
이렇게 하는 일은 성경 변개, 1절의 행위가 있자 지구의 상태는 형태가 없었고 비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결코 원래의 지구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타격을 입어 그렇게 되었다는
강박적 상상력을 넣을 필요가 없다. 앞으로 6일 동안 다른 것들이 채워질 것을 설명하기 위
해 땅이 비어 있는 상태라는 것으로 단순히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습니다.
(2) 깊음의 표면: 1. 욥기 등에 있는 대로 이 깊음을 셋째 하늘 초입의 수정 같은 유리 바다
의 깊음, 2. 지구의 바다 속의 깊음, 중요한 것은 어둠이 바다 속부터 셋째 하늘에 이르기까
지 온 우주 공간을 덮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어둠은 심판의 어둠이 아니다. 5절에 있는
것처럼 히브리 사람들의 날은 저녁 6시에서 다음날 저녁 6시까지이다(레23:32). 첫째 날의 시
작이 저녁이므로 당연히 밤의 어둠을 가리킨다. 또한 하나님의 영께서는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는데 이 물들은 뒤의 9절에 나오는 물들 즉 땅 덩어리(land)를 덮고 있는 바다의 물
들로 이해하면 된다.
c. 3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1) 어둠이 온 우주를 덮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은 아침 6시가 되매 빛을 창조하셨다.
d. 4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셨다.
(1) 이처럼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그 빛을 좋아하셨다.
(2) 여기에서 어둠을 부정적인 암시 즉 이전 세상의 반역을 뜻하기 때문에 빛만을 좋아하셨다
고 이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여기의 문맥은 그것이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단순
히 첫째 날 밤의 어둠을 말한다. 이 어둠은 빛이 있으려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어둠이
므로 여기 나오는 어둠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어둠 다음에 아침에 빛이 생겼다.
e. 5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며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그 저녁과 아침이 첫째
날이었다.
(1) 하나님은 어둠이 나쁜 것이므로 그것을 쫓아내려고 빛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단순히 빛
과 어둠을 낮과 밤이라 부르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어둠은 무슨 심판의 결과가 아니
다. 아직 해와 달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전 우주적인 빛과 어둠을 사용해서 저녁과 아침으로
구성된 첫째 날을 만드셨을 뿐이다. 1절부터 5절까지의 모든 일이 첫째 날에 이렇게 이루어
졌다.
e. 첫째 날에 하나님이 순서대로 하신 일은 다음과 같다.
(1) 우주 공간(하늘)과 지구(땅)를 창조하셨다.
(2) 지구는 아직 있을 것들이 없으므로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
(3) 아직 저녁(밤)이므로 어둠이 지구를 포함한 온 우주 공간을 채웠다.
(4)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되므로 1, 2절은 첫째 날의 밤 12시간이었다.
(5) 아침이 있어야 하루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아침에 빛을 창조하셨다.
(6) 어둠 속에 빛이 생기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7) 그래서 첫째 날의 밤과 낮이 생겼다.
(8) 그런데 아직 우주 공간과 지구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31
절을 통해 있어야 할 것들을 만드시고 지구와 우주를 채워서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형태를
갖추게 하셨다.
f. 6-8절 드디어 둘째 날에 하나님은 천체들을 심을 공간인 궁창(firmament) 즉 엄청나게 단단한
공간을 만드셨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의 우주과학자들이 ‘흑암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플랑크
스페이스(Planck space or plenum)라고도 불리며 밀도가 10의 93승(10을 93번 곱한 천문학적 숫자)
정도 되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 안에서 지구나 태양은 전자 하나만도 못한 크기와 무게를 갖는다.
(1) 하나님께서 이런 궁창은 지으셨지만 궁창에 들어갈 천체들은 아직 창조하지 않으셨으므로
이날은 ‘좋았다’는 말씀이 없다. 이 말씀이 없다고 해서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좋았
다’고 말할 시점이 아직 아니기에 ‘좋았다’는 말이 없을 뿐이다.
g. 9-10절 우주 공간에 궁창을 만드셨으니 이제는 지구의 형태를 갖추셔야 한다. 첫날 지구를 창조하실
때 땅덩어리(land)는 물들 속에 잠겨 있었기에 셋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이 물들을 한 군데로 모으시고
육지를 드러내셨다. 잘 알다시피 하나의 땅덩어리는 노아의 홍수 이후 벨렉의 때에 나뉘면서 오대양
육대주를 형성하였다(창10:25).
h. 11-13절을 보면 셋째 날에 땅이 풀과 자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자기 종류대로 열매 맺는
나무 곧 열매 속에 씨가 있는 나무를 냈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들이 좋았다. 그 저녁과 아침이
셋째 날이었다. 종류대로(1장에만 10번; 창7:14; 8:19), 종의 변화는 없다(고전15:38-40).
i. 지구의 형태를 갖추신 뒤 넷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체우시기 위해 14-19절처럼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궁창 속에 박아 놓으셨다. 드디어 궁창에 있을 것들이 있으니 [하나님]께
서 보시기에 좋았다. 그 날은 넷째 날이었다. 이로써 우주 공간을 채워 형태를 갖추는 일은 다
끝났고 지구만 더 채우면 창조의 일이 다 끝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순서를 보면 하늘
땅 하늘 땅의 순으로 되어 있다.
j. 그리고 20-31절에서 다섯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대기권에 날짐승들을 만들고 바다의
창조물을 만들고 여섯째 날에 짐승과 가축과 기는 것 등을 만들고, 드디어 사람을 만드셨다. 물론
매일 매일 모든 창조 작업이 자신의 뜻대로 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다.
k. 이렇게 해서 31절에 있는 대로 여섯째 날이 끝났다. 이 여섯 날을 통해 하나님은 우주와 지구를
만드신 뒤 그것들 안에 있을 것들을 하나하나 만드시고 채우셔서 그것들이 형태를 갖추게 하셨다.
l.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려고만 하시면 단숨에 우주와 지구를 완벽하게 창조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인류를 위한 다른 계획이 있어서 6일 동안 하나하나 만들어 채우셨다.
m. 2장, 지금은 1장과 2장의 구분이 있지만 원래는 없었다.
n. 1절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었다. host: 군대, LORD of hosts
(1) 하나님은 우주 공간의 두 하늘 속의 천체들과 지구의 모든 것들(모든 군대)을 이처럼 6일
에 걸쳐 하나하나 만드시고 채우셨으며 그 결과 모든 일이 완성되었다(끝났다).
o. 2절 그리고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1) 모든 것을 끝내셨으므로 이제 하나님은 일을 떠나 쉬셨다.
p. 3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다. 그 이유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1) 이로써 하나님은 안식일을 만드시고 그 날을 복주셨다.
(2) 하나님이 6일에 걸쳐 이 모든 것을 완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이라는 숫자로 움
직이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안식일, 안식년, 희년, 칠칠절, 일곱 명절 등)을 보여 주시며, 동
시에 사람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어야 함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막2:27-28).
(3) 이런 계획이 없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면 7로 움직이는 구약 성경의 많은 예
표들과 지금의 주(week) 시스템 등을 설명할 길이 없다.
4. 하나님은 첫째 날 우주와 지구를 빈 채로 만드시고 바로 그날부터 6일에 걸쳐 우주와 지구에
있을 것들을 하나하나 창조해서 채워 넣으셨다. 그래서 2장 4절은 이때를 가리켜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곧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든 때’라고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만들다’와
‘창조하다’는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다.
5. 결론적으로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만드시고, 우주와 지구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창조한 사실을 묘사한다. 여기에서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6. 이렇게 창세기 1, 2장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정상적이며 바른 방법이다.
7.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으니(막10:6)
(1) 재창조 등은 없는 개념이다. 아담 이전에 다른 종족이 살았다. 사탄 마귀와 이들의 반역
으로 땅이 형태가 없고 비게 된 것이 아니다. 죄와 사망은 아담 때문에 이루어진다(롬5:12).
두 번의 퇴적물 No!, 성경의 마귀들은 타락한 천사들(마26:41), 아담 이전의 존재들이 몸을
잃고 마귀들이 되었다는 것은 허구, 1절과 2절 사이에 수백 억년을 집어넣으려고 하면 안 된
다.
8. 성경은 약 6,000년 전의 6일 창조,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
9. 창2:7-25는 1:26-27을 상세히 설명한 것이다.
성경 Q&A
34. 하나님이 존재함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심을 아는 것이 믿음의 기초이다.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려고 노력해 왔다.
A. 우주적인 관점(cosmological argument)
신자든 불신자든 우주의 시작이 있음에 동의한다.
빅뱅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우주가 저절로 생길 리 없으므로 우주보다 큰 누군가가 만들어야 한다.
즉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다. 우주라는 결과를 가져온 첫째 동인 즉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하나님이다.
이것의 문제: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서 오는가?
해결책: 기원 혹은 시작이 있는 것에만 동인이 있다.
하나님은 I AM THAT I AM(출3:14). 그러므로 하나님은 동인이 없다.
하나님은 우주가 존재하게 만든 분이고 우주를 유지하는 분이다.
열역학 제1 법칙: 물질 보존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현재 우주의 에너지와 질량은 어디서 왔는가?
또한 우주에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다.
1. 뜨거운 컵, 그대로 두면 차가워진다.
2. 물체는 밑으로 떨어진다.
3. 지동설을 믿으면 지구는 24시간 자전하고 365일 공전한다.
4. 노벨상 수상자 Richard Feynman: 자연계가 수학적으로 이처럼 정교한 것은 미스터리이다.
규칙과 법규가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롬11:33-36
5. 지구 차제를 보라.
a) 지구의 크기와 중력은 대기(질소 78%와 산소 21%, 나머지 1%)를 유지하는 데 딱 맞게 되어
있다.
b) 대기권은 1000km, 조성이 균일한 균질권은 표면에서부터 약 80km, 이것이 있어야 숨 쉬고
살 수 있다. 지구가 지금보다 작으면 수성(Mercury)같이 되어 대기권이 없다. 지금보다 크면
목성(Jupiter)같이 되어 자유 수소가 존재
c) 태양과의 거리
d) 물: 물을 가진 별은 없다. 사람의 3분의 2는 물, 4도씨의 물이 가장 무겁다.
e) 대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오존전량(total ozone)을 지상기압으로 압축시켜 깊이로 환산하면
약 0.3cm(3mm)에 불과하지만 이 양의 약 90%는 성층권에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성층권
내에서도 25~30km 부근에 오존이 밀집되어 있는데 이 층을 오존층(ozone layer)이라 한다.
오존층은 유해 자외선 흡수, 피부암, 백내장, 농작물 수확 감소, 사람이 살 수 없다.
대류권: 0-10km, 성층권: 50km정도까지
이런 것이 자연히 생길 수 없다.
시19:1-4
B. 설계적인 관점(Teleological argument)
복잡한 것이든 단순한 것이든 그 뒤에는 반드시 설계자가 있다.
시계, 자동차, 핸드폰 모두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것들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 사람, 사람의 눈을 보라. 지적 설계 없이 불가능하다.
진화론자들의 주장: 질서는 자연히 생길 수 있다. 무질서에서 질서, 아메바에서 사람
진화론자들의 주장: 저등 생명체에서 고등 생명체, impossible
열역학 제2 법칙: 쇠퇴의 법칙, 질서 쪽에 무질서 가능, 반대 불가는
1. DNA 코드
우리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육을 수행한다. 지침
사람 몸의 모든 세포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지침 혹은 교육 코드가 들어 있다.
핸드폰, 노트북, 컴퓨터 프로그램: 0과 1을 조합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수행하게 한다. 110010101
이 코드에 따라 컴퓨터는 프로그래머가 원하는 일을 수행한다.
우리의 몸 세포 속의 DNA 코드도 이와 비슷하다.
여기에는 A, T, G, C라는 네 개의 화학물질이 있다. 이러 화학물질이 세포 하나에 30억 개가
들어 있다. DNA는, 좀 더 정확하게 30억 개의 코드는 우리 몸의 세포에게 명령을 내린다.
성인의 세포 수: 70-100조 개
그 결과 생명체가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DNA 코드가 세포에 생겨났을까?
이것들은 단순한 화학물질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화학물질이다.
a) 소는 풀을 먹으면 우유를 낸다.
b) 귤나무는 오렌지
c) 우리 몸의 머리카락, 손톱 발톱, 이빨
우연히 될 수가 없다.
C. 창세기 1장 1절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1:1)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의 다른 부분을 믿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 한 구절은
사람이 만든 여러 가지 그릇된 이론을 산산조각 낸다.
1. 하나님이 계시므로 무신론은 존재할 수 없다.
2.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물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으므로 범신론도 존재할 수 없다.
3. 유일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므로 다신론도 무효하다.
4.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으므로 물건이나 천체를 숭배하는 유물론도 무효하다.
5.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진화론도 성립되지 않는다.
시14:1
롬1:18-23
D.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님을 향한 갈망이 있다. 혹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뒤를 쫓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 지문이 남듯이 하나님의 성품이 남아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의 계시 중에 가장 위대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 바로 그분의 정확한 형상이시다(히1:3).
세상의 종교 지도자들: 석가, 소크라테스, 모하메드, 공자, 모세, 다 위대한 스승, 대언자
어느 누구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감히 할 수도 없다.
오직 예수님만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10:30)
도마의 고백: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사도 요한(요일5:20)
요14장의 5-6 도마, 8-11 빌립
1. 죄를 용서하심
2. 기적들을 베푸심(소경의 눈을 열어 줌, 죽은 자를 살림, 바다 위를 걸으심, 오병이어, 가나의
포도즙)
3. 마귀들을 내쫓으심
3. 부활하심
4. 승천하심
5. I am the light, truth, life, resurrection, door.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 사랑, 친절, 심판, 전능, 전지, 무소부재를 증명하심
이런 분은 한 명도 없었다.
하나님이 계시는가를 알고 싶으면 예수님을 공부하라.
http://www.everystudent.com/features/isthere.html
조지 왈드(George Wald):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1967년도에 생리학 의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생물학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라는 잡지는 미국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잡지 중에 가장 인본주의적
인 잡지로서 하나님과 기독교를 공격하는 데 맨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1967년에 왈드 박사는 그
잡지에서 ‘나는 불가능한 것을 믿는다.’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이렇게 썼습니다.
생명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오직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한 가지 가능성은 자발적인
발생 곧 진화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이다. 셋째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자발적인
발생론 즉 진화론은 이미 120년 전에 파스퇴르와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거짓으로 탄로가 났고 그래서
불신임을 받았다. 이로써 우리에겐 한 가지 논리적인 귀결 즉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로 생명이
발생했다는 결론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철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결론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아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기로 작정을 했다.
히10:6
살전 강해 09: 재림의 소망
Q&A 35 죽음 이후의 삶을 어떻게 아는가?
살전4:13, 사도 바울 당시의 이교도들(그리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는 죽음 이후의 행복을 증명하려 했지만 아무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
죽으면 끝 혹은 윤회, 현대인들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어 아무 소망이 없다(엡2:1).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의문
1.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들의 미래
2. 주님이 오실 때에 어떻게 되는가?
3. 이미 죽은 자들과 살아서 남아 있는 자들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모두가 죽는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은 사람의 불멸에 대해 의논해 왔고 강신술사들과 영매들 은 죽은 자들과 교통을
해 왔다. 현대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경험을 분석하고 있다. 모두
내세가 있다고 증언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을 아는가? 본 적이 있는가?
살전4:15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안다. 사람의 추론으로 추측해 볼 필요가 없다.
무덤이 끝이 아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죽음: 성경에서 죽음 혹은 사망은 일차적으로 분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먼저 육체의 죽음은 몸과
혼이 분리되는 것이며(창35:18)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어 그분의 진노를 받는 것도 죽음으로
표현되어 있다(요일3:14). 특별히 영원한 저주를 받아 하나님 앞을 떠나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한다(계20:14-15; 유12). 사망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부가된 형벌이며(창
2:17; 3:19) 그의 모든 후손은 범죄자이고 따라서 그에게 부과된 저주를 공유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므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그분의 생명을 공유한다. 부활
때에 마지막으로 정복되어 발밑에 깔릴 원수는 사망이다(롬5:12-21; 고전15:1-58).
육체적으로 죽는 것은 ‘숨을 내어 주다’(우리말 성경은 ‘숨을 거두다’로 되어 있음)로 표현되거나(시
104:29) ‘땅으로 돌아가는 것’(창3:19; 전12:7), ‘혼이 몸을 떠나는 것 혹은 입는 것’(고후
5:3-4) 또는 ‘몸이 거하던 장막을 떠나는 것’(고후5:1; 벧후1:13-14) 등으로 표현되었다.
신자들의 죽음은 ‘떠나서 집으로 가는 것’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것’(빌1:23; 마26:24;
요11:11; 살전4:13) 등으로 표현되었다.
부활의 확실성(요11:25-26)
생명의 약속(딤후1:10)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우리는 신약성경의 말씀을 통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눅16장: 부자와 나사로의 실화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에 대한 말씀(요5:24-29)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산 이유(히2:14-15)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셔서 본을 보여 주셨으므로 믿는 이들은 죽음이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고전
15:12).
사도 바울의 증언(행24:14-15; 26:5-8, 23; 고전15:51-54))
히11장의 믿음의 용사들의 행적: 더 좋은 부활
바울의 요약(고전15:12-19)
우리의 확신은 성경에 있다. ★★★
그리스도의 재림(공중 강림)
데살로니가전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한다. 재림은 다음과 관련이 있다
1. 구원(살전1:9-10)
2. 섬김의 보상(살전2:19-20)
3. 거룩한 생활(살전3:11-13).
살전4:14-15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관계
잠자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적용함(요11:11-13)
무엇이 자는가? 몸이 잔다.
사람이 죽으면 영과 혼이 몸에서 분리된다(약2:26).
안식교의 soul sleep No!
1. 구원받은 자나 구원받지 못한 자나 다 최종 부활을 기다리며 무덤에서 자고 있다(요11:11, 14;
행7:59-60; 고전15:20; 살전4:14).
2. 반박: 위의 구절들은 몸의 수면을 말하지 혼의 수면을 말하지 않는다(마27:52).
3. 반박 예: 마17:3의 모세와 엘리야, 마22:32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눅16의 부자와 나사로,
고후5:8; 빌1:23; 계6:9-11
4. 여기서 더 나가면 영혼 멸절설로 이어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과 혼이 몸을 떠나 즉시로 주님과 함께 있다(고후5:8; 빌1:23).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즉시로 지옥 불 속에 들어간다. 둘 다 살아 있다.
무덤에는 몸만 있다. 사람 자체는 천국 혹은 지옥에 있다.
사람은 항상 영과 혼 과 몸
그러므로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중간 단계의 어떤 몸을 입고 있다(soulish body).
이 몸은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부활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과 함께 있는 자들(영과 혼과 soulish body)이 그분과 함께 온다(14).
그분과 함께 오려면 먼저 그분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슬픔을 당한 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부인을 잃어서 슬픔을 당한 사람의 예: “부인을 잃게 되었으니 참으로 유감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잃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잃어버리는 것: 장소를 모르는 경우에
해당됨.
언제 오시는가? 아무도 모른다. 시한부 종말론의 위험성(안식교 1848년, 다미 선교회 1992년 10월
28일, 해롤드 캠핑 1994년, 2011년)
15절의 우리는 바울을 포함하고 있다: 바울은 재림의 임박성을 믿었다(고전7:29-31).
우리 역시 재림의 임박성을 믿는다: 표적을 기다리지 않는다.
휴거에는 순서가 있다: 부활 성도, 그 뒤 우리
살전 강해 10: 재림의 소망
Q&A 36 부활의 소망(16)
공중 강림: 소리,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 이 뒤에 땅에서 심판 등 No!
행17:32: 사도 바울이 부활을 선포하자 조롱을 받음. 그리스 사람들과 대부분의 이교도들은 몸을 벗어버리
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었다(윤회). 그런데 바울은 몸의 부활을 선포함. 몸이 이미 썩었는데 어떻게
부활하는가?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부활이 어리석음으로 보임.
부활이 없으면 믿음이 헛것이다(고전15:12-16).
그리스도께서 부활이 있음을 몸소 보여 주셨다(히2:14-15).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임하시면 호령을 하실 것이며 이때에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16절; 요11:43).
그러면 그분께서 죽어 있는 몸의 원소들을 다시 모으는가?
Yes(계20:13)
사람의 몸은 28개 원소, 몸의 세포가 변하므로 몸은 7년마다 변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 적 몸의 원소를 사용하는가?
나무 밑에 묻으면 나무가 원소를 가져감. 고기들이 먹음.
그러므로 정확히 내 몸에 있던 원소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
그런데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는 같음, 수소 원자: 내 몸의 것이나 다른 몸의 것이나 같음
그래서 고전15:35처럼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전15:35-38).
씨는 썩고 거기서 그것과 유사한 것이 열린다.
42-44절 참조, 영에 속한 몸
한 가지 확실한 것: 처음 몸이 없으면 영화로운 몸 불가능
부활은 씨가 식물이 되는 것과 같다. 씨와 열매는 다르다. 그럼에도 두 개는 연속성을 갖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영화로운 몸을 갖는다(빌3:20-21).
우리의 죽은 몸은 땅에 묻은 씨이고 부활의 몸은 그 씨에서 나오는 열매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 그리 되는지 모른다.
부활에는 두 가지가 있다(요5:28-29; 계20:1-6).
1. 첫째 부활: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임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것, 생명의
부활
2. 둘째 부활: 7년 환난기와 1000년 왕국이 끝나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전에 악한 자들의
부활이 있는데 이것은 정죄(심판)의 부활이다.
부활은 죽음이 끝이 아니고 무덤이 끝이 아님을 보여 준다.
죽으면 몸은 무덤으로, 영과 혼은 주님께로 간다(빌1:20-24).
주님께서 오실 때에 그들을 데리고 오신다(살전4:14). ★★★ 적용
휴거의 소망(17)
살4:17 휴거(rapture)는 ‘희열의 상태로 채여 올라간다’는 뜻이다.
1. 빠른 속도로 데리고 가다(행8:39), 빌립, 순식간에 휴거된다. 그분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한다.
2. 강력한 힘으로 채가다(요6:15).
3. 자기를 위해 자기의 것을 요구하다(그리스도의 관점)
4. 새 장소로 옮기다, 바울의 셋째 하늘 방문(고후12:1-4)
그리스도께서는 거할 곳을 마련하러 가셨고 그것이 예비되었으므로 다시 오신다(요14:1-3).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요 순례자이다.
5. 위험에서 구출하다(행23:10): 교회는 다가오는 환난기의 위험에서 구출을 받는다.
6. 휴거는 오순절 이후에 드러난 신비이다: 부활은 알려진 사실
믿지 않는 자들의 반응: 휴거는 순식간에 이루어지며 수백만 명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성경을 아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 의아해 한다.
주님의 재림은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다(고전15:52).
믿는 자들(주니께 속한 모든 사람, 부분 휴거 불가능)을 위해 오시는 주님은 공중에 임하시며 여기서
우리가 그분을 만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오시든지 우리를 위해 오신다. ★★★ 재림의 확신
휴거는 환난 전에 일어난다: 계4-19장은 교회 성도들과 상관 없다(살전1:1; 5:9; 계3:10; 눅
12:36 등).
7년 환난기: 다니엘의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단9:25-27)
재림 날짜 세기 No!
연합의 소망
살4:17-18 우리는 모두 공중에서 그분을 만날 것이다.
땅에서 믿음으로 걷다가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그분을 보며 우리도 그분처럼 될 것이다(요일3:2).
얼마나 놀라운 만남인가?
그것은 영광스런 만남이다: 우리의 몸이 영화롭게 되므로 그분께서 다시 올 때에 우리의 고통과 고난이
모두 영광으로 바뀔 것이다.
창조 세계도 그분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다(롬8:17-19).
그분과의 만남은 회계 보고하는 자리이다
그곳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다(롬14:10; 고후5:10).
행위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이 심판 자리는 흰 왕좌 심판 자리와 다르다(계20:11-15): 오직 불신자들만
우리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만나 연합한다.
죽음은 분리하지만 재림은 연합한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알아보았듯이 우리도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우리는 재림의 말씀들로 서로 위로해야 한다(18).
그리스도인의 참된 표적 중 하나는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재림을 기다리기에 우리의 삶을 정결하게 한다(벧후3:10-11).
재림의 지식이 귀중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황금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어느 때라도 오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 일을 할 것이다.
무디는 그의 능력의 비밀을 묻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년 동안 설교할 때마다 이 설교가 끝나기 전에 그리스도가 오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다.”
뛰어난 영국의 성경 주석가 캠벨 몰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밤 내일이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살전 강해 11: 5:1-12, 거룩한 삶을 살자
Q&A 37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고 있는 사람
1-2절: 그러나(반전, 살전 4자의 휴거와 비교해서)
그 때와 그 시기, 주의 날: 신구약 성경의 대주제 중 하나
그 때와 시기(행1:7): times and seasons, 주로 이스라엘과 연결되어 있다(단2:21).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향한 때를 미리 작정하셨다(행17:26).
특히 이스라엘을 중요한 민족으로 세우셨다.
어느 면에서 시계의 바늘과 같다.
주님은 특히 이스라엘을 향해 때와 시기를 정했고 이 모든 것은 ‘주의 날’(Day of the Lord)이라는
무서운 때에 최고조에 달한다.
날: 날은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시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4시간 하루(창2:3)
히브리 사람들의 날은 저녁때에 시작되었다(창1:1-5; 레23:32). 창1:5 참조
별 다른 언급이 없는 한 ‘날’ 혹은 ‘하루’는 문자 그대로 24시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된 날 - 대개는 주의 날 혹은 그리스도의 날(살후2:2)로 불림 - 은 그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기간이다(사2:12; 겔13:5; 요11:24; 살전5:2).
아닌 경우는 따로 설명되어 있다(벧후3:8).
아담 이후로는 ‘사람의 날’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주의 날: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고 민족들을 벌하시는 때
또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때(암5:16-20; 욜2:1-2; 습1:14-18; 사2:12-18)
다른 말로는 ‘야곱의 고난의 때’(렘30:7), 환난기(계4-19)
시작은 휴거 이후, 총 기간은 7년 환난기와 1,000년 왕국
주의 날 역시 어둠과 빛을 포함한다.
처음 7년은 어둡고 무서운 시기(밤), 나중 1,000년은 좋은 시기(낮)
어둠(밤) 빛(낮)
7년 환난기 1000년 왕국
1절: 쓸 필요가 없다.
바울은 3주 동안의 짦은 기간에 이미 인류 역사, 이스라엘 등에 대해 다 설명하였다.
그리스도의 날에 대해서도(살후2:5)
휴거 부분만 살전 4장에서 설명함
2절: 밤의 도둑같이(마24:42-43), 주의 날은 그들에게 도둑처럼 갑자기 임한다.
바울은 여기서 살전 4장의 휴거와 연관된 주의 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고 믿지 않는 자들은 모르고 있다.
휴거 날짜가 아니라 휴거와(살전4) 그 뒤의 주의 날(살전 5장)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함을 우리 성도들은
확실히 알고 있다.
기대하고 있는 사람과 아무것도 모른 채 놀라는 사람
3-5절: 여기부터는 ‘우리’(성도)와 ‘그들’(불신자)이라는 대명사에 유의해야 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재앙이 닥치기 전에 거짓 평화와 안전을 누리고 있다.
New World Order, New Age
그들, 너희(우리) 단어 조심, 그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외친다. 사실 적그리스도의 정책(단8:25)
노아 당시: 8명만 구원받음(벧전3:20), 롯 당시(창19:12-14), 주님의 예(마24:37-39; 눅
17:26-30)
주의 날은 해산의 고통처럼 임한다(사13:6-13): 창세 이후로 없는 큰 환난(마24:21)
주의 날의 목적: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과 권능 가운데 왕국을 세우는 것(마24:30),
에덴동산에서의 일을 끝마치는 것
4-5절: 너희 즉 성도들은 어둠(7년 환난기) 속에 있지 않다.
사실 성도들은 휴거받아 이 땅에 없다. 우리에게는 그 날이 도둑처럼 덮치지 못한다.
정신을 차리고 사는 사람과 술 취한 사람
6-8절: 정신을 차린다(6절)는 술 취하지 않은 것을 뜻함.
깨어 정신을 차리는 것은 흰 옷 입고 금식하고 잠자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행1:10-11)
천국에 가는 것과 주님을 만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구원과 보상은 다르다. 주님을 부끄럽게 만나는 성도도 있다(고전3:15; 요일2:28).
고의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신자가 세상과 짝하는 신자보다 더 복되다.
우리는 낮의 아들로서 어둠에 속한 자들처럼 살지 않는다(롬13:12-13).
일어나서 정리하고 옷을 입고 준비한다.
7절: 고대에는 낮에 술 취하는 것을 큰 불명예로 여겼다(행2:15 참조).
8절: 믿음과 사랑의 흉갑(가슴), 구원의 소망 투구(생각): 믿음, 소망, 사랑(살전1:3)
구원의 소망은 구원이 가져다주는 소망을 뜻한다.
구원: 과거(죄의 형벌), 현재(죄의 권능), 미래(죄의 존재)
구원받는 사람과 심판받는 사람
9절: 위로와 확신이 되는 말씀, 고대 전쟁터의 군사들(제물을 바치고…)
앞뒤 문맥상 여기의 진노는 주의 날의 진노이다(살전1:10).
환난 통과설, 믿는 자들이 주의 날을 통과하는가? No.(계3:10)
요16:33; 행14:22 등의 환난은 7년 환난기의 환난과는 완전히 다르다.
구원받았는가? 심판이 있다(히9:27)
10절: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자든지 깨어 있든지 상관이 없다.
함께 산다(요14:3).
11절: 서로 위로하라(살전4:18). 세워 주라(롬14:19)
살전 강해 12: 5:12-13,
Q&A 38 목사와 성도
12절: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에 리더들이 있었다. 평등과 동등의 문제(갈3:27-29
리더십이 없으면 어떤 단체라도 망할 수밖에 없다(정부, 교회, 가정).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리더십을 주셨다(엡4:7-16, 특별히 11-12절; 벧전5:1-5).
교회의 리더십: 목사와 집사
1. 질서를 위해 지도력이 필요하며(딛1:5) 목사를 통해 이 일이 이루어진다.
2. 교회에 신사만 있지 않다. 너무나 추한 모습이 교회에 존재한다(딛1:10-11).
3. 그런데 그중에서 특히 목사가 문제가 된다: 리더이기에, 성추행자, 논문 표절자, 횡령, 재산
축적(교회에서 장사)
목사가 없는 교회도 가능하지만 우리는 있는 교회를 한다.
1. 목사는 성도들 가운데서 나온다.
2. 목사가 있는 교회는 목사만 문제없으면 대개 아무 문제가 없다.
목사: 감독, 장로, 목사는 같은 직분(Office)에 대한 용어이다(딛1:5; 7; 벧전5:1-2; 4; 행
20:17; 28)
Office 설명(딤전3): 누군가가 부여하는 것이다. 부여한 권위가 허락하지 않으면 더 이상 Officer가
될 수 없다. 대통령의 예
1. 감독(Episcopos, 감독하는 자, 직무의 의무)
2. 장로(Presbuteros, 치리하는 자, 직무의 위엄)
3. 목사(Poimen, 목자, 직무의 목적)
a. strong #4166, 총 18번, 요10:14, 유일하게 엡4:11만 pastors
4. 역사를 통해 감독과 장로라는 용어들이 성경적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목사를 쓴다.
목사의 목적: 교회를 돌보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
1. 교회의 영적 성숙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엡4:11-16)
목사의 필수조건: 하나님의 부르심
1. 어떻게 아는가? 신학교, 열정, 의욕 No!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2. 원함이 있어도 부르심이 없으면 목사가 될 수 없다. 부르심이 없는 목사는 불행하다.
a. 언변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1)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2) 천장 바라보거나 사람을 똑바로 보지 못하면 문제
b. 책을 보고 해석할 줄 아는 능력
1) 문맥 설교
2) 조직 신학 설교
c. 아내와 가정이 함께 해야 한다.
d.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독선적, 편집증 같은 정신 질환
e. 초신자는 안 된다: 적어도 몇 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f. 지배하려 하면 안 된다(고후1:24)
3. 하나님이 부르시면(call) 교회가 임명하고(ordain) 성령님께서 그들을 그 직책으로 구분하신다(행
13:1-4).
4. 부르심 이후에(혹은 부르심과 함께) 준비가 필요하다.
a. 사귐을 통해서(바울과 바나바)
b. 목회자를 통해서(바울과 디모데), c. 책을 통해서
목사의 자격: 딤전3:1-7, 딛1:6-9
목사의 의무: 살전5:12, 수고하고 감독하며 훈계함
1. 지도(인도)하는 것(장로):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가지고 양들을 인도한다(먼저 본을 보임으로,
감독함으로 벧전5:2-3 참조). 목사는 반드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양들이 이끌고 나가는
교회는 성경에 없다. 목사는 독재자가 아니며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인도자이다.
2. 먹이는 것(목자): 양떼를 말씀으로 먹여야 한다(행20:28). 목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말씀 상고와
설교와 가르치는 것이다.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교회의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할 수 있다.
엡4:11은 pastor and teacher를 하나로 묶고 있다. 우리말 목사도 목자요 선생님을 가리킨다
(딤전3:2).
3. 경계하고 보호한다(감독): 목사는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여 양떼를 보호해야 한다. 목사는 자신,
교회, 종교적인 이리떼들, 이단들, 잘못하는 자들을 늘 주의 깊게 살피고 또 병든 자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의 의무(살전5:13)
1. 귀중히 여기고 화목하게 지낸다(롬12:18; 14:19).
2. 교회는 목사의 지도력에 순복하고(히13:17) 그를 위해 기도하며 그의 필요를 채워 주고 그를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살전5:13).
질문
1. 목사는 반드시 복수여야 하는가?(행14:23; 행20:17; 약5:14), 부목사, 조력 목사(누구를 섬기
는가? 여호수아, 디모데)
2. 목사는 신학교를 나와야 하는가? 유튜브 Q&A
3. 목사는 은사가 아닌가?
4. 목사를 형제라고 불러야만 하는가? 목사라고 하면 로마 카톨릭 성직체계, 목양자, 호칭 문제,
사모님, 다른 교회 목사님
5. 목사는 직업을 갖고 교회를 섬겨야 하는가? 목사의 사례비는 어느 정도(나하고 비기지 말라),
목사의 교회 시무, 보험, 연금 등
6. 목사를 그만 두면 어떻게 되는가? Office(직무), 관례
좋은 교회의 태도: 목사와 성도의 관계
목사는 성도들의 요청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하고 특히 어려운 형제들의 사정을 도와야 한다.
레위기(Leviticus) 맥잡기 07(성경 맥잡기 29)
Q&A 39 23장: 유대인들의 명절(절기)
하나님의 달력: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
앞의 4개: 초림, 뒤의 3개: 재림
1.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성취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2. 둘째 명절인 무교절은 유월절을 뒤따라 일어나며 그것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이 둘째 명절은 ‘성화의 명절’이라고 불린다.
3. 셋째 명절인 ‘첫 열매 절기’(초실절)는 청지기의 사명과 성도의 부활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
4. 오순절(The Feast of Pentecost): “성령님의 강림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
(레23:15-21)
이스라엘의 일곱 명절 중 중간 명절, (The Feast of the Weeks) 즉 ‘주(週)들의 명절’
오순절은 적어도 네 번 이상 ‘주(週)들의 절기’라고 기록되어 있다(출34:22; 신16:10, 16; 고후8:13).
‘주(週)들’이라는 명칭은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라고 기록된 레위기 23 장 15절에서 나온다.
일곱 번의 안식일은 일곱 주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칠칠절이라고도 한다.
레23:15-16
‘오순절’이라는 단어 자체는 오십 번째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펜테코스토스’(Pentecostos)에서 유래됨.
이 절기는 초실절로부터 정확히 오십 일째 되는 날에 지켜졌으므로 ‘오순절’이라고 불린다.
신구약에서는 ‘예표와 실체’가 정확히 연결되어 있다.
구약 시대에는 오순절 날에 율법이 주어졌다(출19:1-2, 11), 셋째 달에 시내 산에 다다름.
신약 시대에는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주어졌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원 누가의 말: “오순절 날이 충만하게 이르매”(행2:1)
여기서 ‘충만하게’(Fully, 개역성경은 ‘이미’로 오역함)는 오순절에 관한 예언이 정확히 성취됨을 뜻함.
비교 갈4:4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정확히 오십 일이 지나서 오셨다.
이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달력’대로 정확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는 성령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않았다(요7:39).
오순절 성령 강림은 ‘하나님의 달력’에 새로운 기점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곱 번째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쳐서 오십 일을 센 뒤 주님께 새 음식 헌물’(레23:16)을
드렸다.
새로운 기점이란? 주님께 드리는 ‘새 헌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순절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오순절의 성취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행2:1은 일곱 개의 명절 중 넷째 명절인 오순절의 예표가 실제로 성취됨을 보여 준다.
우리 주님의 부활 후 정확히 오십 일이 지난 후 성령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오셨기 때문이다.
바로 그 날 그분께서는 ‘주님께 드리는 첫 열매’(레23:17)라 불리는 새로운 것을 지상에서 시작하셨다.
그 새로운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교회이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레23:17에 예표로 주어진 것 즉 주님께 흔들어 드리는 두개의 빵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준다.
교회의 시작: 혼동
마16:18의 교회는 아직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었다.
교회가 시작되는 시기는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셨고 자신의 달력에 영구히 고정시켰다.
이것이 오순절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점이다.
교회의 형성
오순절 예식 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두 덩이의 빵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었다(레23:17).
왜 두 덩이의 빵을 드렸는가? 두 덩이는 교회 안에 있는 두 종류의 사람 즉 믿는 유대인들과 믿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엡2:13-18; 참조 고전10:32).
구약 시대의 오순절은 메시아의 부활 이후 오십 일째 되는 날 즉 유대인과 (후에) 이방인이 그
메시아를 통해 주님을 섬기는 일이 생기게 된 날을 예표로 보여 준다.
율법 수여 3000명 죽음(출32:28)
성령 강림 3000명 구원(행2:41)
‘성령님의 오심’(the Spirit's incoming)
어떤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성령님께서 그의 몸에 오신다.
다시 태어난 사람이 성령님을 모시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다(롬8:9).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살전4:8).
‘성령님의 내주’(the Spirit's indwelling)
유월절 어린양이신 우리 주님의 약속(요14:16-17)
오순절 전에는 성령님께서 신자 안에 영원히 거하지 않으셨다.
재파관(사사)들의 통치 기간이 이 점을 확실히 보여준다(참조 삿3:10; 6:34; 11:29; 13:25; 14:6,19;
15:14).
요14:16-17에서 주님은 ‘너희와 함께함’(with you)에서 ‘너희 안에 거함’ (in you)으로 변화를 가져옴.
우리가 성령님에 의해 다시 태어나던 날 그분께서는 우리의 자신의 거처로 삼으셨다(고전3:16-17;
고후6:16-18). 그 이후로도 우리는 죄를 짓지만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떠난 적이 없다.
‘성령님으로 채워지는 것’(the Spirit's infilling)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 한 가지 명령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이다(엡5:18).
성령 충만은 명령이지만 성령 침례는 명령이 아니다.
성령 침례(즉 연합)’(being baptized with the Spirit)는 현재의 교회 시대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것이다.
성령 침례는 교회 시대 이전에는 언급되어지지 않았고 교회 시대에만 존재하는 새로운 것이었다(행
1:5).
주님의 죽음(유월절 어린양)과 부활(첫 열매) 전에는 성령 침례가 아직 미래의 사건이었다.
‘성령님의 침례 사역’은 베드로가 증언하듯이 오순절 날 일어났다(행11:15-17).
현재의 교회 시대에서 ‘성령 침례는 거듭난 모든 신자들의 공통적인 경험’이다(고전12:13).
오순절 날에 성령님께서 임하셨고 유일하시고 살아 계시며 진리가 되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형성하셨다.
그 결과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았고(고전12:13), 그들 안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시
며(롬8:9), 그 사람들은 성령님으로 봉인되었다(엡2:13),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과 ‘자신의 영’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히 우리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셨다. 오순절은 바로 이 새로운 일에 대한 교훈을 준다.
예수님의 재림
레23:23-44
◦ 예수님의 다시 나타나심
◦ 예수님을 통한 완전한 속죄
◦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남
◦ 예수님의 메시아 왕국 통치
5. 나팔절(The Feast of Trumpets): “예수님의 다시 나타나심”
(레23:23-25, 7월 1일, 지금 달력으로 9월 말)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에서 오순절 다음에 진행되는 사건은 나팔절이다(레23:24).
이 명절은 마지막 세 개의 절기 중 첫째 절기로서 다가올 영광의 미래를 보여 준다.
우리는 나팔절을 통해 ‘하나님의 달력’에서 교회와 이스라엘을 향한 미래의 사건들을 볼 수 있다.
오순절은 봄(유대인 달력의 3월 초, 지금 달력의 5월 말)에 지켰고 남은 세 개의 절기(나팔절, 속죄절,
장막절, 유대인 달력의 7월, 지금 달력의 9월말에서 10월 중순)는 가을에 지켰다.
삼월 초부터 칠월 일일까지는 안식일을 제외한 다른 성회가 없었다.
삼월의 일부분과 4-6월은 대기하는 기간이다(약 115일).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의 기간은 다른 어느 절기들 사이의 기간보다 더 길었다.
그러면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의 이 긴 기간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유대인들의 방황과 교회 시대
유대인
현 시대: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고전10:32).
그전 시대: 유대인, 이방인
유대인들의 연대는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들은 이집트 탈출 때에 다른 민족과 확연히
구분된 독립 민족이 되었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이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인 반면에 교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교회는 오순절에 시작되었고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 끝이 난다.
현재 유대인들은 민족적으로 탈선한 상태에 있다.
하나님의 교회가 휴거(携擧)를 받으면 유대인들은 다시 자신들의 본토로 돌아와 세상 모든 민족들의
머리가 된다.
민족적으로는 이방인들이 현재 이 땅을 통치하고 있으며 성경은 이때를 ‘이방인들의 때’라고 부른다(눅
21:24).
이스라엘 대체 신학 No!
유대인들의 회복
1. 그 사실에 관하여(암9:14-15; 사11:11-12; 43:5-7; 렘16:14-15)
2. 그때에 관하여(눅21:24)
3. 그 방법에 관하여
(a) 회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옴(겔36:24-27).
(b) 회심하기 전에 혹독한 심판을 받음(겔20:33-38; 겔22:19-22; 말3:1-3; 슥13:8-9)
예레미야서 30장 4-7절과 다니엘서 12장 1절은 이 환난 기간을 ‘야곱의 고난의 때’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아직까지 위에서 기록된 것과 같은 시련을 당한 적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친히 큰 환난(대환난)이라고 부르셨다(마24:21).
예수님과 스가랴 대언자는 이 기간을 주님의 재림과 연관시키고 있다(마24:21-31; 슥14:1-11).
이 무시무시한 심판의 결과 유대인들은 비참한 가운데 주님을 부르게 된다(슥12:10-11).
이렇게 된 후에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신다(슥14:4).
이때에야 비로소 유다 민족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단 하루 만에 태어날 것이다(사66:8).
이때에 예레미야 대언자가 예언한대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이 세워진다(렘31:31-34).
그때에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렘31:34).
그들이 자신들의 본토로 다시 돌아갈 때에는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소유하고
차지한다(창15:18).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의 긴 기간
이 기간에 이스라엘은 나팔소리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쉬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은 이 긴 기간처럼 인류의 역사상 아마도 가장 긴 기간일 것이다.
안디옥 교회의 요청에 따라 열린 예루살렘 공회에서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택한 것을 말한다(행
15:14).
이 말은 결코 이스라엘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야고보는 공회에서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간증을 하였다(행15:15-16; 암9:11; 미7:11).
16절의 ‘이 일 뒤에’ 가 중요함.
나팔절은 하나님의 예언의 계획 안에서 오순절 이후에 이루어질 사건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여
준다.
구약시대 400년의 침묵기, 주님의 초림, 교회 시대, 주님의 재림
나팔절의 의미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안하신 것이다.
성경에서 나팔이 처음 나오는 곳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주시는 것과 관련이 있다(출19:13-20).
나팔 소리로 사람들을 모아서 일하고, 섬기고, 전쟁을 준비하게 했다(민10:1-10).
나팔소리: (1) 적군의 공경, 백성들 경고, (2)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
그러므로 나팔을 부는 사람들이 소리를 정확히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고전14:8).
하나님의 절기들은 연대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교회시대(오순절)가 끝나며 나팔절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에 따라 오순절과 나팔절을 이어줄 성령님의 강림 다음 사건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마24:29-31).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다시 모이게 될 것이다(현재는 일부만 모였다).
유대인 독자들을 위하여 쓰인 마태복음 24:31의 예언은 구약을 읽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결코 새로운
바가 아니다. 대언자 이사야의 글(사27:12-13)
나팔절이 성취되는 것은 지금부터 매우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분을 영접할 것이며 주 예수님은 그들을 직접 치리 하실 것이다.
나팔절: 새 시작, 심판, 회개, 용서
유대인들에게 이 날은 일 년 중 가장 기쁜 기간의 시작이 되며 모든 성회들 중 가장 기쁜 것이 될
것이다. 이날에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이사야서 60-61장을 읽는다. 또 주님께서 왕(메시아)으로 나타나
시며 전 세계의 통치자로 오르실 그 날에 대한 설교를 한다.
교회의 휴거는 이보다 최소한 7년 전에 발생한다.
교회가 휴거를 받을 때에도 나팔 소리가 있다(살전4:16; 고전15:51-52).
또 이스라엘이 다시 모이는 때에도 나팔 소리가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일곱 개의 나팔이 있다(계8장-9장). 일곱 나팔 심판
레위기(Leviticus) 맥잡기 08(성경 맥잡기 30)
Q&A 40 23장: 유대인들의 명절(절기)
6. 속죄절(The Feast of Atonement): ‘예수님을 통한 속죄’(레23:26-32, 7월 10일)
휴거 이후의 다음 나팔은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마24:29-31).
그 날에는 어느 사람이나 국가도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때에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인 부흥이다(마23:39).
자기들의 불충성과 자기들의 메시아를 배척한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됨을 깨닫게 된다. 깨끗하게 하는 것이 속죄절에서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이다.
그래서 이 거룩한 모임은 ‘속죄의 날’이라고 불린다(레23:27).
‘속죄’(atonement, At-One-Ment)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의 용어로 레위기에만도 48회나 나타난다.
신약성경에서는 한 번 나타난다(롬5:11).
이 말은 ‘화해하게 하는 것’(reconciliation)으로도 쓰였다. 사실 ‘속죄’와 ‘화목’은 같은 말이다.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에는 둘이 합쳐서 하나가 되고 속죄가 이루어진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예수님께서 피를 흘린 희생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케 되었다(롬5:10; 골1:21-22).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피에 의해서만 만족될 수 있다(히9:22).
구약시대 이스라엘에게 이 속죄일은 율법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죄일은 가장 큰 행사 날이었다. 바로 그 날에 개인뿐만 아니고 전 국가의
죄악이 깨끗하게 되고 용서되었다.
이 날은 유대인들의 날들 중 가장 엄숙한 날이다.
속죄일의 의미와 중요성은 레위기 16장에 나온다.
레위기 16장은 이스라엘의 희생 제도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속죄라는 단어가 무려 15회나 나온다.
레위기 16장에는 ‘피’라는 단어가 적어도 아홉 번 나온다.
‘피와 속죄’와 모세의 율법 제도(레17:11)
레위기 16장은 죄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완전하게 다루는가를 보여 준다.
제사장
레위기 16장은 10장에 기록된 사건 즉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언급하며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장막 뜰에서 이 두 젊은이들을 쳐서 죽게 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함
이 속죄일에 제사장은 자신의 죄들로 인해 희생물을 준비했다.
제사장에게 주신 특별 지침 사항
일 년에 단 한 차례 속죄일에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그는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성스러운 예식을
위해 자신을 준비해야 했다.
제사장은 의복을 입기 전에 몸을 먼저 닦고(레16:4), 목욕 후에 의복을 입고 수소를 죽이고(레16:11)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긍휼의 자리 앞에서 그 수소의 피를 일곱 차례 뿌렸다(14절).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서기 전에 자신을 먼저 정결하게 해야 했다.
백성
제사장 아론의 희생물 이후의 특별한 관심사는 백성의 죄였다.
이스라엘 회중을 대신하여 두 마리 숫염소가 선택되어 이 의식에서 사용되었다(16:5, 7).
그중 하나는 백성의 죄로 인한 희생물로 드려졌고(15-16), 다른 하나는 백성의 죄악을 짊어진 채
피신하는 속죄 염소(scape goat)가 되었다(레16:5-10, 21-22).
속죄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장면이 이 두 마리 염소들의 기사에 담겨 있다.
한 마리는 주님을 위해 정해졌고 다른 하나는 속죄 염소로 정해졌다(레16:8).
주님을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해서 죄로 인한 예물로 드려졌다.
죽임을 당한 염소만으로는 속죄의 완전한 의미를 다 깨달을 수 없다.
속죄의 예물은 결코 죄를 없이하지는 못했다.
구약성경의 히브리말인 ‘카파르’는 ‘덮는다’ 혹은 ‘숨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속죄는 개인의 죄를 덮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하나님께 잠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다.
속죄일 의식은 제사장이 둘째 염소에게 돌아올 때까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레16:21-22).
이스라엘 백성은 죄들을 업은 염소가 광야로 끌려감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죄악을 용서하셨
을 뿐만 아니고 죄악들을 제거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속죄는 죄악의 용서뿐만 아니고 제거까지도 포함했다.
이스라엘은 속죄를 위해 한 것이 전혀 없으며 단지 제사장이 이 모든 일을 했다.
구원이란 어느 시기에도 결코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속죄일에 일을 금하고 죄에 대한 슬픔을 표시한 죄악의 용서에 아무 효과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기 위해 바쁜 생활 속에서 하루를 쉬었다.
속죄일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교훈
우리는 생각에서 말에서 행동에서 죄를 짓는다.
성회됨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죄의 문제를 더욱더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쉽게 얽어매는 죄(히12:1)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속죄의 권능을 힘입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구속하셔서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예수 그리스도도 거룩하시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도 거룩하시다.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신 성경말씀도 거룩하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부르심을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한다(딤후1:9).
참된 유대인이라면 레위기 17장 11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방인들도 히브리서 9장 22절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한다.
율법 제도에서 피의 희생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팔절에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속죄일이다.
스가랴 대언자(슥12:9-11), 자기들이 찌른 나(10절)
10절과 11절의 ‘애통’은 레16:29-31과 23:27-32의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메시아를 배척한 죄에 대해 슬퍼하며 애통하는 장면은 요시야 왕이 파라오 느고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때 슬퍼했던 것과 비슷하다(대하35:20-2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위하여 열리리라”(슥13:1).
‘그 날’은 14:1절에 있는 ‘주님의 날’(the day of the LORD) 과 같은 말이다.
‘그 날에’라는 말이 스가랴 12, 13, 14장에만 무려 16회 나온다(12:3, 4, 6, 8, 9, 11; 13:1, 2, 4;
14:4, 6, 8, 9, 13, 20, 21).
예레미야(31:31-37)와 에스겔(36:25-32)은 ‘자기들이 찌른 메시아’(슥12:10)에 대해 이스라엘이 슬퍼하
며 회개하는 것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전 국가가 속죄되는 날 그 땅의 죄악이 ‘단 하루에’ 모두 제거될 것이다(슥3:9).
죄와 부정한 것에 대해 예루살렘의 거민들을 위해서 열리게 될 그 샘은 ‘그들이 찔렀던’ 메시아의
피의 샘이다(슥12:10).
12:10절의 ‘찔렀던’과 13:1절의 ‘샘’은 서로 연관이 있다.
이로써 롬11:25-27 성취
7.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남’, 피날레
레위기 23장 33-44절(7월 15-21일까지 1주일 동안), 1월 15일부터 21일까니는 무교절
장막절은 하나님께로 모이는 절기로서 7월 15일에 시작되어 이레 동안 계속되었다(레23:34, 39).
추석, 추수감사절: 축제와 기쁨이 넘치는 시기
장막절은 여러 면에서 추석과 추수감사절과 비슷하다.
이것은 일곱째 마지막 명절로서 주님께서 정하신 예정된 기간들을 완성한다.
장막절 안에서 교회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목적이 완성된다.
타작마당과 포도즙 틀의 소출을 거운 뒤에 7일 동안 초막절을 지킨다(신16:13-15).
장막절은 ‘땅의 열매들을’ 한 해의 마지막에 거두어들이는 것을 나타낸다.
장막절은 백성들이 자기들의 거주하는 집을 떠나서 7일 동안 텐트와 같은 모습의 초막에서 야영생활을
했기 때문에 ‘초막절’이라고도 불렸다(레23:42).
초막은 나무열매 가지나 종려나무 가지들, 잎이 큰 나무들의 가지, 버드나무 가지들로 만들어졌다
(23:40).
왜 하나님께서 지상의 모든 나라들 중에 이스라엘을 취하셔서 이들을 이런 식으로 대하셨을까?
(1) 기억해야 할 시간(신31:10-13)
그 땅의 열매들과 생산품들로 만들어진 그 초막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며 급하게
지은 피난처에서 살았을 때 주님께서 예비해 주셨던 것들을 생각나게 했다(레23:42-43).
장막절은 그분의 백성들이 40년 방황하는 기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어떻게 모든 것을 잘 예비해
주셨는가를 오는 세대들에게 더욱더 새롭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을 위해 선택하신 곳으로 인도하셨다.
그래서 장막절은 유대인들의 연중 명절들 중 최고의 절정을 이루었다.
기억하라(신4:9; 4:23: 5:15; 6:12; 7:18; 8:2, 11, 14, 18; 9:7; 15:15; 16:12)
그들은 매일 받은 복들 즉 의복, 음식, 집, 건강, 즐거움 등을 일주일 동안 누리지 못함으로써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해야만 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생활은 ‘그들은 실패했고 하나님은 신실하셨다’라는 것을 늘 기억나게 했다.
그러므로 이 명절은 과거를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2) 즐거워할 시간(레23:40)
속죄일 다음에 장막절이 온다.
속죄일에 자신을 괴롭게 하면서 죄악에 대해서 깊이 슬퍼했다. 그 이후에 그들은 기뻐하였다.
죄는 항상 기쁨을 가로막으며 기쁨은 언제나 정결함과 용서 후에 따라온다.
장막절은 일곱째(7) 명절로서 칠(7)월에 칠(7)일 동안 계속되었다: 일곱(7)이라는 숫자가 세 번 나온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참된 기쁨과 함께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마지막 큰 장막절은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을 설립하시려고 땅에 다시 오시는 것에 의해 성취된다.
이 장막절은 모든 것이 완전해지고 궁극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 그대로 1000년 동안 지상에서 의와 평강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유력한 국가가 되어 지정학적인 중심지가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고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온 땅이 영광의 회복을 체험할 것이다.
스가랴 대언자 14:16-19
이방 민족들이 매년 왕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와서 장막절을 지킬
것이다(슥14:16).
그분께 경배하려고 오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슥14:17).
레위기의 주제는 성결이며 ‘거룩하다’는 단어는 9여 차례나 나온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너희는 거룩하라고 자주 말씀하신다(11:44-45; 19:2; 20:7,26; 21:8).
일곱 개의 거룩한 절기들 중 마지막인 장막절이 완결된 후에 마침내 성결함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슥14:20-21, 그 왕국 시대에는 주님께 대한 성결이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
예수님과 관련된 일들이 모두 구약성경의 절기들과 상관이 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언제 오셨을까?
장막절에 오셨을 가능성이 크다.
요1:14는 예수님이 12월 25일이 아니라 가을의 장막절에 태어나셨음을 보여 준다(10월 10일경).
그분은 유월절(1월 14일, 49월 10일경)에 죽었고 그때 그분의 나이는 서른세 살 반이었다. 이 사실은
그분께서 장막절인 티쉬리월 십오일(7월 15일)에 탄생하셨음을 보여 준다.
우리 주님의 생애에 있었던 대사건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이 주님께 경배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야만 했던 세 절기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장막절인 7월 15일에 탄생하셔서 유월절(무교절 기간)에 죽으시고 초실절에 부활하시고 성령님
은 오순절에 권능 있게 임하셨다.
1. 유월절: 첫째 명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성취되었다.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형벌과 죄책감에서 우리를 구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
2. 무교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큰 구원’에는 우리의 성결이 있다.
거룩한 삶이 기쁨에 앞서서 필요하다. 성결이 있을 때 기쁨이 넘치게 된다.
거룩함의 아름다움(시29:2), 죄는 기쁨을 파괴시킨다. 거룩함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
3. 초실절: 첫 열매 명절의 두 교훈: (1) 책임으로서의 청지기직의 교훈, 우리가 가진 것으로 그분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해야 한다(마6:33). (2) 다른 교훈은 그리스도인의 미래에 대한 안전보장이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이시다. 앞으로 우리도 부활한다.
4. 오순절: 율법 수여, 성령님 강림, 교회 탄생, 성령 침례, 성령님의 내주, 성령 충만
5. 나팔절: 예수님 승천 이후, 성전 파귀 이후 흩어진 유대인들이 최종적으로 돌아옴. 예수님의 지상
재림, 유대인들의 새로운 시작
6. 속죄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유대인들의 회개
7. 장막절: 주님이 이 땅에 거하심, 유대인들이 온 땅의 으뜸 민족이 되고 모든 민족들이 장막적을
지킴. 모든 것의 끝에 수확이 있고 즐거움이 넘침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 1월 14일, 1월 17일, 오순절 성령 강림, 장막절 등
날짜를 세지 말라. 다미 선교회처럼 되면 안 된다.
유대인들은 역사의 시계
우리는 휴거된다. 휴거의 임박성, 아무도 날짜는 모른다.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라.
성경 Q&A
41.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조선 시대
사람들은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은요?”, “아마존, 아프리카 밀림, 이슬람 제국”
질문의 핵심: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냐? 기회도 주지 않고 지옥에 넣으면 안 된다.”, “오직 기독교의
하나님만 믿어야 하느냐? 편협한 생각, 불공평”
이런 질문은 정상적인 성인들에게 해당된다. 그런데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또 있다.
유산된 아이들, 갓난아기, 4-5살 정도 된 아이, 정신박약아, “이들은 어떻게 되느냐?”
오늘의 답변은 이런 것을 포괄적으로 담을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
지난주: 하나님의 존재, 유튜브 “하나님이 계신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우주적인 관점: 질량, 에너지, 우주의 질서, 법칙
설계적인 관점: 모든 것은 설계자가 있다.
하나님의 크기: 우주보다 커야 한다. 하나님의 지성: 무수한 별들, 세포들 질서 있게 운행
그래서 이런 분은 ‘스스로 존재하는 무한한 절대자’라고 한다.
논리적으로 무한한 절대자가 되려면 어떤 속성이 있어야 할까?
“다 옳아야 한다.”(언행, 사고, 판단, 실행), 영어로 ‘right’, ‘righteous’
성경이 말하는 구원: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를 입는 것(롬1:16-17, 고후5:21)
이유: 사람은 옳지 않다(불의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100% 옳다. 그래서 옳지 않은 존재와 동거
불가능
이렇게 모든 것이 옳으면 공정할 수밖에 없다. 공정함이 없으면 하나님이 아니다.
천국에 있는 자들과 지옥에 있는 자들에게 공정함, 심지어 사탄 마귀들에게도 공정함
부모에게 자식들, 공정함이 없으면 아버지 노릇 못하고 가정의 질서가 파괴된다.
소돔과 고모라 멸망(창18-19), 18:23-25, 50, 45, 40, 30, 20, 10명, 없다.
구원과 관련한 공정함(Justice)
구원받으려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공평히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면 기회가 공평히 주어지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에게 자신을 드러내어 알려주신다. 계시(revelation)
요1:9, 예수님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하나님의 존재: 이미 설명하였다. 해와 달과 별들, 세포 등 모든 설계
알려주시는 이유: 설계자의 목적에 따라 살아야 한다.
즉 나를 창조한 분, 우리의 주인인 그분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그 일이 생기지 않음.
롬1:18-20, 진노와 심판, 변명하지 못한다. 의, 불의 경건치 아니함
21절: 그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주인을 알아보지 못함, 왜 존재하는지
알려하지 않음), 감사하지도 않고(공기, 해, 물 등),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하나님이 없다. 원숭이에
서 나왔다. 무생명에서 생명, 아메바에서 사람 등),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런 것을
성경은 ‘어리석다’(foolish)고 한다.
22-23절: 그 결과, 그리스/로마 문명, 이집트 문명, 인도 문명, 황하 문명, 조선시대, 아마존, 아프리카,
이슬람, 샤머니즘 등
지금도 이런 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 한다.
무신론자도 사실은 자기를 믿고 숭배하는 것
이들은 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옳고 그름을 알면서도 고의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죄를 짓는다.
행14:15-17, 루스드라의 이교도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옳고 그름을 안다. 도둑질, 간음, 사기(29-32)
다 알면서도 고의로 그리하고 있다. 태어날 때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서 옳고 그름을 안다.
태어나면서부터 진화론자인 사람은 없다. 다 창조론자, 다만 배워서 고의로 진화론자가 된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는 이런 자들에게 임한다(18).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의 빛대로 정죄하신다.
그러므로 이 땅에 태어나서 자기의 행위에 대해 회계 보고할 수 있는 지성과 양심을 가진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계시의 빛에 맞게 반응해야 한다.
이 반응이 없으면 그에게 주어진 계시의 빛에 따라 정죄받는다.
“교회를 몰라요.” “성경이 없어요.” 모르거나 없는 것 때문에 정죄받지 않는다.
알고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정죄를 받는다. 약4:17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곧 그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
여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구분이 없다.
율법의 유무(롬2:11-12)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판단하신다. 흑인 백인, 유무식, 재산, 명성, 오바마나 트럼프
아마존 밀림, 뉴욕 한중심에 사는 문화인, BC와 AD
24-25절: 그 결과, 그들이 원하는 정욕대로 살라고 내주시므로 몸을 욕되게 하는 일 발생
창조물 섬김, 아마존,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고대, 중세, 현대 상관없다.
26-27절: 그런 결과의 대표 사례, 동성애, 온 세상이 동성애로 가득함은 하나님 멸시
알면서도 멸시하는 일, 동성애의 창궐은 심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징조
28절: 지식 속에 두기를 거절하므로 버림받은 생각에 내주셔서 합당하지 못한 일들 즉 옳지 않은 일들을
하게 하심
빈곤의 악순환: 가난한 나라의 국민은 소득이 낮기 때문에 저축과 구매력도 낮고 투자 역시 낮아서
생산력이 저하되고 이것이 또다시 소득의 감소를 가져오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된다.
하나님을 알면서 고의로 상상 속에서 허망해져서 진화론 같은 헛된 생각을 함, 우상 숭배, 사람이
짐승처럼 타락하게 됨,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림받는 생각 속에 내주심, 더 악한 일이 생김
이런 구조 속에서 1년, 2년 지나면 몇 백 년이 지나도 헤어나지 못한다. 악순환이다.
1. 노아의 대홍수 이전, 창6장,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 결합 그 결과(창6:5)
하나님께서 120년 동안 노아의 선포를 통해 회개 촉구(창6:3), 오직 8명만 구원받음
2. 바벨 탑 사건(창11), 니므롯(창10:8), 하나님을 대적함(창11:4)
3. 그 이후 세계 4대문명: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황하, 인도, 동일한 일 반복(창11:4), 우상숭배,
아마존 밀림에 사는 사람들하고 동일하다. 그들이 쌓은 문명은 다 마귀 문명, 그 이후 그리스
로마 제국 동일한 마귀 문명, 지금까지 동일하다.
4. 이들은 다 율법밖에 있는 사람들, 그래도 변명하지 못한다(롬2:14-15)
이들도 다 그런 일을 하면 죽는다는 것을 다 안다(롬1:32).
즉 그런 일은 안 좋다고 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계심의 반증
그런데 같은 일을 한다(롬2:1).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롬2:3)
그리하면 반드시 진노의 날이 임해 심판한다(2:5).
5.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1.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2:7), 2. 정죄를 받는 자(2:8)
6. 여기에는 외모가 없다(2:9-11)
7. 지금부터 4,000년 전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500년 뒤에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심
이스라엘은 특별한가?
그들에게 주신 십계명의 핵심: 나만 창조자다, 우상 숭배하지 말라.
그 이후 예수님 오실 때까지 1500년의 구약 시대: 유대인들의 문제 우상 숭배
이방인 유대인 할 것 없이 하나님 위에 다른 것을 두면 심판받는다. 정죄에 이른다.
8. 우리나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율법 없이 살았다. 양심의 계시대로 심판을
받는다.
9. 우리 조상들도 다 하나님이 계심을 창조 세계와 양심을 통해 알았다. 그럼에도 거의 전체가
샤머니즘 우상숭배, 성경대로 따르면 지옥 정죄를 받았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
구약시대에 이방인이 구원받는 구체적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서 이방인 구원 사례를 찾아볼 것이다.
구원 순서: 창조 세계, 양심 혹은 기타 일반 계시, 절대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두려워한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구나” 하고 그분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특별 계시로 그를 구원해 주신다.
1. 사도행전 8장의 에티오피아 내시: 이사야서 두루마리, 53장, 이게 무슨 뜻일까?
거기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사마리아 시에서 빌립 사역(행8), 큰 부흥
주의 천사가 나타나 내시에게 가라고 함(26), 그가 가서 그리스도를 선포함(35), 구원
2. 행10의 고넬료, 하나님을 두려워 함(행10:2), 하나님의 천사, 욥바의 베드로 초청(3-8),
베드로를 설득하기 위해 하나님 직접 나타남(9-17).
그래서 결국 베드로의 말씀 선포로 그와 그의 온 집이 구원을 받음
베드로의 말: 1. 34절: 외모 중시 No!, 2. 35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받아주신다
3. 노아의 홍수 이후 과거 4000년 동안 거의 모든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가 죽었다.
하나님의 정죄, 슬픈 일, 그럼에도 구약시대에 욥, 아브라함, 모세의 장인 이드로, 느부갓네살 등의
이방인이 구원받았다.
4. 요점: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이 구원의 특별게시를 주신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셨다.
5. 구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없었는데 어떻게 믿나?
6. 구원:
a. 근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희생
b. 필수 조건: 믿음, c. 믿음의 대상: 하나님(히11, 요1:30), d. 계시의 진보, 경륜에 따라 믿음의
내용이 다르다. 예를 들어 아벨, 노아, 아브라함,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에 따하 하나님을 믿음,
그것을 의로 여겨주셨다(창15:6; 롬, 갈).
7. 아이들과 정신박약아의 경우: 하나님은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은 자 구원해 주신다. 아이들은
이미 회심한 상태이다(마18:3).
결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
a. 사람이 일반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진리를 알려고 하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서 반드시 특별 계시를 주신다.
b. 알면서 고의로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우상숭배, 그분 멸시, 이 경우 하나님의 진노
노아 당시 8명만 구원, 조선시대, 세종대왕, 이순신 다 좋은 분들이지만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음
지금도 아마존, 아프리카 밀림, 대부분 반응하지 않음
그래서 이들에게 특별계시인 복음을 전해야 한다.
c. 이교도들 걱정하지 말고 나를 먼저 걱정해라.
나는 괜찮은가? 이교도들은 동성애는 안 한다. 간음 덜 한다. 욕심 덜 낸다.
교육 많이 받고 잘 먹고 건강한 현대인이 더 문제, 더 큰 심판
성경 Q&A
42. 왜 하나님은 믿음만을 요구하실까요?
1.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한가, 믿음+행위 혹은 다른 것에 의해서 가능한가?”
“즉 예수님만 믿어서 구원받는가? 예수님도 믿고 다른 일도 해야 구원받는가?”
기독교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종교개혁의 도화선
기독교와 천주교의 차이, 기독교와 세상 모든 종교의 차이
기독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만 믿는다.
세상 다른 종교: 어떤 형태든 사람의 선한 행위 가미, 구원 취소
마르틴 루터: ‘오직 믿음 교리’(sola fide)는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유지하는 유일한 이유
‘오직 믿음 교리’가 무너지면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이 사라지고 결국 사람을 죽이는 다른 복음이 들어온다.
갈라디아서 1:9, 2:16
사도 바울의 서신서(롬3:28; 5;1; 갈3:24)
딛3:3-5, 3. 우리도 한때는 어리석고 불순종하며 속임을 당하고 여러 가지 정욕과 쾌락을 섬기며
악의와 시기 가운데 살고 증오하며 서로 미워하였으나 4 사람을 향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친절과 사랑이 나타난 뒤에 5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
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 구원에는 행위가 동반되지 않는다. 여기의 행위는 구원과 관련된 행위, 불필요
그러나 구원 이후에는 선한 행위가 동반된다(엡2:8-10).
야고보서 2:20-26, 특히 24, 야고보서는 교리 서신서가 아니라 믿음이 있는 신자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행위가 있어야 그 믿음이 산 믿음임을 보여 줌을 말함, 구원 이후의 행위
유튜브, <야고보서 오해 풀기>
결국 바울과 야고보는 둘 다 같은 것을 말함,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 이후에는 반드시 선한 행위
2. 믿는 것도 행위가 아니냐? 칼빈주의자들의 질문
성경은 약 200차례나 믿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조건이라고 말한다(요1:12; 행16:31 등).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요6:28-29). 예수님의 말씀
구원은 은혜이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롬11:6은 행위가 들어가면 은혜가 깨짐을 보여 준다.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에서 난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이다.
롬4:4-5
롬4:1-3
100만 달러 수표 선물, 수표에 배서해야 100만 달러가 내 것이 된다.
배서를 통해 100만 달러를 얻었는가? 아니다. 누가 100만 달러를 선물로 주어서 얻었다.
다만 내 것으로 받기 위해 서명했을 뿐이다.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것으로 수용하기 위해 서명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주신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그 선물을 받아들일 뿐이다. 믿음은 결코 행위가 아니다.
3. 구원과 칭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서 구출되는 것
우리는 다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3:23).
그 결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다.
예수님의 말씀: 우리의 죄는 법적인 빚이다(마6:12). “우리의 빚을 용서해 주옵소서”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요일3:4)
즉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법적으로 빚을 지게 되었다.
이 빚의 대가는 사망이요(롬6:23),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다(사59:2).
그러므로 이런 심판에서 벗어나려면 빚으로 피해를 본 당사자인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방법에 의해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복음이다(고전15:1-4).
하나님의 심판 기준은 의로움이다(righteousness). 100% 옳음
그분은 거룩하시다(벧전1:6).
그러므로 그 기준은 하나님의 근본 성품인 거룩함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완전함, 위대함, 죄 없음, 죄를 지을 수 없음 등과 같은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생각과 행위에서 의로우시고 완전하시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그분의 본성 혹은 본질로서 절대적인 순결함을 나타낸다.
반면에 우리는 죄로 인해 거룩하지 못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죄에 의해 오염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에서 구원받는 데 필요한
것을 이룰 수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구원의 방도를 제공해 주셨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죄 없이 살고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죄가
되어 우리를 위해 대신 죽는 것이다(롬8:3).
이를 통해 우리의 법적인 빚이 그리스도에게로 전가되어 십자가에서 말소되었다(골2:14; 고후5:21).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요19:30).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전혀 상관없이(롬3;28) 오직 믿음에 의해 의롭다는 선언을 받는다(롬
5:1).
따라서 그리스도만 믿는 것, 이것만이 유일하게 구원받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의(義)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만 신뢰함을 고백한다.
몇 가지 구체적인 이유
1.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관계를 보라. 상대방을 신뢰하고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우리가 상대방을 완전히 알 수 없으므로 모든 관계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믿음(신뢰)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믿음 역시 관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으므로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심을 믿어야
한다.
2. 하나님을 볼 수 없으므로 믿음이 필요하다(히11:1). 믿음은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주는 증거이다. 고후5:7, 믿음은 보지 않고 통찰력을 가지고 내다보는 것
3.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히11:6).
4. 믿음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보상을 준다(요10:10).
5. 주님께 순종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아담과 이브의 죄: 불신(창2:15-17). 아브라함의 믿음=의=구원(창15:6)
6. 사람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선택할지 안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사람은 로봇에 불과하다. 사람은 믿음을 갖든지 거절하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분할 수 있다.
7. 성경의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다. 진화론, 무신론, 유물론 등, 믿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에
따라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창조 세상(롬1:20), 성경(히1:1; 딤후3;16-17), 예수 그리스도(요
1;1-5, 14), 양심, 과학(종류대로), 고고학(구약 성경 기록), 지질학(모든 것이 일순간에 나타난다),
역사(이스라엘), 천문학(해와 달과 별들의 정교함, 질서, 우주의 팽창), 변화된 성도들(사도 바울,
베드로)은 우리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눅16:31을 기억하라.
결론: 기독교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믿음은 주어진 정보를 살펴보고 보이지 않는 분에 대해
확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아는 것이다(요17:3). 하나님ㅇ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 성경에
대하여 바르게 아는 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이 영생을 준다.
구원 유지도 믿음으로만 된다. 그래서 구원 취소 불가능
http://www.compellingtruth.org/God-require-faith.html
https://carm.org/why-is-faith-alone-in-christ-alone-the-only-way-to-b
e-saved
http://fbfi.org/salvation-in-dispensationalism/
http://www.jesus-is-savior.com/BTP/Dr_Max_Younce/is_god_unfair.htm
http://m.blog.naver.com/kimjongphil/120123239281
3. 도덕적 관점(Moral argument)
무엇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도덕/윤리 법규가 있다.
심지어 하나님의 법이 없는 자들도 그 번의 요구 사항들이 그드르이 마음 판에 기록되어 있다(롬
2:14-14).
따라서 이러한 법규를 준 존재 즉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
성경 Q&A
43. 하나님의 속성 중 삼위일체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많은 성도들이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하는 토픽, 지난 주에도 한 분의 e-mail
심지어 목사들도 마찬가지
“하나님은 한 분인가?”, “하나님은 세 분인가”, “하나님은 하나인가?”
유일신을 믿는다고 한다. ‘monotheism’, 이것의 정의는 무엇인가?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을 믿는 것”
Trinity, Triune God “이 한 하나님 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세 인격체(person)가 존재한
다.” 삼위일체는 신비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성도들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개역: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역번역: God is one person. 딤전2:5)
흠정역: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영어 KJV: There is one God).
개역: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흠정역: 네가 한 [하나님]이 계시는 줄 믿으니 잘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개역: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
라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흠정역: 4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5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6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엡4;4-6).
신6:4
흠정역: 한 주시니
개역: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인 여호와요
바른 성경: 여호와는 한 분이시니
즉 ‘one’을 잘 번역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어려움이 많다.
B. B. Warfield “단 한 하나님이 계신다. 그 신격(Godhead)에는 영원하시고 동등하신
(co-equal) 세 인격체가 계시는데 이 세 인격체는 본질(substance) 면에서 같으시나 존재
(subsistence) 면에서는 확연히 구분되신다.”(James Orr, ed.,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vol. 5, p. 3,012).
여기의 인격체는 영어 단어 person을 번역한 것으로 지정의를 갖춘 존재를 뜻한다.
삼위일체의 오해로 이단이 가장 많이 나옴: 아리우스(AD 256-336) 주의
그리스의 신학자. 리비아 출생.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는데 313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적(神的)
동일 본성을 부정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 최고자이기는 하지만 하나님 및 영원적
실재는 아니라 하여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등에서 많은 신봉자를 얻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강한 반발을 받아 커다란 논쟁의 물결을 일으켰다. 318년 감독 알렉산더에
의해 그 설은 금지되고 325년 니케아 회의가 소집된 결과 아리우스는 아타나시우스의 공격을
받고 교회 사상 최초의 이단으로 몰려 일리아에 추방되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자는 오리겐이다. 오리겐은 성경 변개의 아버지
흠정역: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요1;18).
개역, NIV, 여증: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the only
begotten god)이 나타내셨느니라.
이단 사상은 곧바로 성경 변개로 이어진다.
1. 잘못된 견해
a. 삼신론: 각각 다른 세 하나님(Tri-theism)
b. 양태론: 사벨리안 주의(Sabelianism) 혹은 Modalistic Monarchianism: 한국의 베레아
및 베레아에서 파생된 자들, 예수 유일주의, 하나님은 한 분인데 태(mode)가 바뀐다. “나는
한 존재, 아버지, 남편, 목사, 교수 등으로 형태가 바뀐다.” “물은 얼음도 되고 액체도 되고
수증기도 된다.”
구약 시대에는 아버지, 신약 초기에는 예수님, 교회 시대에는 성령님으로 형태가 바뀐다. 즉 이름만
다를 뿐 아버지, 아들, 성령님은 같은 인격체다. 그러므로 “성부(아버지)가 실제로 성자(예수)안에,
성자(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고난당하셨다”는 주장 즉 아버지 고난 설이 나온다
(father suffering).
김기동 목사의 베레아 파와 거기에 영향을 받은 많은 목사들: 윤석전, 장경동, 다락방, 김홍도, 하용조,
손기철(평신도 이단 대책 협의회의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왜냐하면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말씀
이 예수님이시고, 말씀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http://cafe.naver.com/anyquestion/25114
c. 단일신론(Monarchianism, Arianism): 아버지 하나님만 인정하고 아들과 성령님은 신성을
한 단계 낮게 평가하거나 아예 부인함으로 ‘하나님이 한분 뿐’임을 주장함. 여호와의 증인,
Unitarians(유니테리언, 유일교도)
킹제임스 성경을 개정하는 위원회에 이런 자들이 들어오자 영국에서는 이들에 대항해서 성경을 지키기
위해 “Trinitarian Bible Society”가 조직되어 지금도 KJB를 수호하고 있다.
2. 삼위일체 표현: “신성의 일들에 관한 한. 아버지는 모든 운영(혹은 활동)의 원천이시고, 아들은 중재자로
서 그것을 수행하는 통로이시며 성령님은 그것을 수행하여 효과를 얻게 하는 실행자이시다.”(As
to the divine works, the Father is the Source from which every operation
emanates (ex ou); the Son is the Medium through which (di ou) it is performed;
and the Holy Ghost is the Executive by which (en o) it is carried into effect)
- Smeaton, <The Nature and Character of God>, p. 266
아버지 아들 성령님
원천(Originator) 중간자(Medium) 실행자(Executor)
From Whom Through Whom By Whom
a. 상호 관계가 있는 셋이 서로 확연히 달라야 한다(다른 인격체).
b. 이 셋 중 어떤 것도 다른 둘이 될 수 없다.
c. 이 셋 중 어떤 것도 다른 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1x1x1=1, 1x1x0=0
d. 틀린 예와 맞는 예
(1) 사람의 3중 구조, 계란의 세 부분, 물의 세 가지 상, 세 잎 클로버, 삼각형
(2) 시간, 공간(물체)
e. “셋이 서로 다르면서 하나이며 그중 하나가 없으면 존재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뚜렷이 구분되는
서로 다른 세 인격체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한 하나님으로서 이 세 인격체 중 하나가
없으면 한 하나님이 되지 않는다.”
3. 신구약성경 용례
a. 창1:1의 엘로힘은 복수(창1:26, 3:22, 11:7; 사6:8의 우리, 사48:16; 마3:16-17;
28:19-29; 요14:16; 고후13:14; 요일5:7)
b. 엘로힘은 복수이면서 한 하나님과 같이 붙여서 쓸 때는 항상 단수 동사나 형용사 등을 쓴다.
“Hear, O Israel: The LORD(여호와) our God(엘로힘) is one LORD”(신6:4)
4. 예수 유일주의(지방 교회, 메시아닉 쥬, 성락 교회 베레아), 오순절 은사주의자들
아버지도 예수, 아들도 예수, 성령님도 예수
개역: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
서) 요17:22.
“예수는 아버지의 이름이다.”
마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그러므로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이
예수, 예수 이름으로만 침례를 줌
그 결과 이들은 마3:16-17 등에서 걸러넘어진다.
이런데 이름은 전 인격체를 가리킨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을 두고 침례를 준다.
흠정역: 이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이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NIV, 개역성경 등 현대 역본들은 본문이 다르므로 동일한 오역
5. 삼위일체 문제에 대한 성경의 확고한 구절
흠정역: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the Father)와 말씀(the Word)과 성령님(the
Holy Ghost)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These three are one.”
그런데 개역성경은 알렉산드리아 철학을 따라 요한일서 5장 7절에서 이 부분을 삭제했다.
개역: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절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개역의 7절은 6절을
둘로 나누어 후반부를 가져온 것이다. 개역개정은 8절을 둘로 나누어 전반부를 7절로 가져옴.
유일하게 KJV만 요일5:7을 토 달지 않고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6. 요약
a.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벧전1:2; 롬1:7 등)
b. 아들은 하나님이시다(요1:1; 요20:28; 요일5:20)
c.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행5:3-4)
d.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고 성령님이 아니다. 아들은 ..., 성령님은...
e. 이 세 분은 영광, 존귀, 위엄, 권능 등 모든 면에서 동등하신 ‘한 하나님’이시다.
f. 다만 구원 계획을 위해 이 땅이 존재하는 동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야 하셨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요14:28),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니라”(요
10:30). 히5:7-10(죄가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자와 대제사장이 되셨다
는 뜻이다. 즉 직무를 완전히 수행하게 되었다), 고전15:27-28, 그럼에도 그분은 하나님(요1:1;
요일5:20)
g. 새 하늘과 새 땅, 동등한 세 분, 한 하나님
성경 Q&A
44. 아이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많은 사람들이 묻는 질문
지난주에 한 자매님, “어린아이들, 자폐아, 낙태/유산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성도, 목사, 교회 지도자, 심리학자, 철학자, 그리고 신학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다. 어린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님들은 자연히 이 문제에 대한 해답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소망의 메시지를 주지 못한 목사들, 신부들, “선생님의 아이는 천국에 있을 것이라 소망합니다.”
혹은 “선생님의 아이가 림보 즉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아이들이 가는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인의 아이는 세례를 받지 않았으므로 지옥의 가장 차가운 부분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사람의 추측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문제 역시 성경에 해답이 있다.
(*) 이 강해에서 아이라고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어린아이를 말한다.
자식은 주님의 유산, 태의 열매는 그분의 보상이다(시127:3-5).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아이들도 포함된다.
이집트 탈출: 수많은 아이들
엘리야의 사역: 사르밧 과부 여인의 아들(왕상17:17-18).
엘리사의 사역: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4:18-37)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신다: 천년왕국에서는 들짐승과 아이들이 함께 논다(사11:6-9).
예수님도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신다(막10:13-16). 읽는다.
그래서 그분 주위에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도 소년이다(요6:9).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매우 민감한 것 둘이 있다. 하나는 개, 다른 하나는 아이들
막10:16을 보라
죽은 사람들을 살리는 예수님
나사로(요11), 나인 성의 젊은이(눅7), 야이로의 딸(막5)
아이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
마18:2-3,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회심하여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막10:13-14, 그들이 어린아이들을 그분께 데려와 그분께서 그들을 쓰다듬어 주시게 하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들을 데려온 자들을 꾸짖거늘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심히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하나님]의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심지어 아이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다(마11:25-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
되,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사오니 감사하나이다. 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것
이 아버지 보시기에 매우 좋았나이다.
아이들이 오히려 영적인 분별력이 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마21:15-16,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과
또 성전 안에서 아이들이 소리치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며 그분께 이르되, 이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네가 듣느냐? 하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렇다. 주께서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을 완전하게 하셨나
이다, 함을 너희가 결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하시니라.
<그러면 어린아이들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성경은 어린아이와 아이를 구분한다.
구분의 기준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여부
영어로는 accountability, 회계보고 능력(롬14:11-12)
보통 어린아이들은 회계보고 할 능력이 없다. 성경은 이것을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신1:34-39, 회계 보고할 수 있는 사람은 다 광야에서 죽었다.
메시아 예언, 사7:14-16, 심지어 예수님도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을 때까지 자라야 했다.
성경대로 보면 예수님도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선과 악을 구분하셨다. 눅2:40
우리는 나면서부터 죄인이다(시51:5).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에는 우리 자신의 선택에 의해 죄인이 된다(시58: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롬3:23).
그런데 고의로 죄를 지은 죄인이 있고 고의로 죄를 짓지 않은 죄인이 있다.
롬5:12-14
1. 아담의 범법의 유형을 따라서(고의로 죄를 지음)
2. 아담의 범법의 유형을 따르지 않고서(고의로 죄를 짓지 않음)
후자가 바로 어린아이들의 경우이다. 이런 아이들이 죽으면 곧바로 천국으로 간다.
회계보고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이들 각자의 정신 기능 혹은 심성의 성숙 정도 또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이 영적인 빛을 받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며 크리스천 가정에서 양육되고 좋은 주일학교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양육받은 아이는 보통 만 6-7세 정도가 되면 자기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
비록 아이가 구원을 알기에는 아직도 너무 어린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아이가 구원에 대해 올바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아이를 방해하지 말기 바란다.
단 한 번도 복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이교도 국가에 사는 어린아이들인 경우 그 나이는 열두
살 혹은 열세 살까지도 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정신박약아(지적장애인), 자폐아 등에게도 적용된다.
아이들은 이미 예수님에게 속해 있다.
내 이름으로, 마18:5, 막9:41, 내 이름으로는 소속을 뜻한다.
반론 1: 다시 태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요3:3)
예수님이 두 살짜리 아이에게 이렇게 말씀한다고 생각해 보라.
“네가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당하리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잘라 버려라! 너 위선자여!
먼저 잔 안에 있는 것을 씻어라! 그래야만 바깥도 깨끗해 질 것이다. 어떻게 네가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 네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다! 너 두 살짜리
아이야, 네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알고도 그분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롬1:18-22).
아이는 이런 것을 할 능력이 없다.
반론 2: “아담의 원죄 때문에 지옥에 가야 합니다.” “원죄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죄 때문에 아이가 지옥에 가야 한단 말인가?
사망은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사망은 육체적 죽음: 아담 때문에, 심지어 아이들도 당한다(롬5:12,14).
둘째 사망은 영원한 죽음: 계시록의 불 호수, 자기 죄 때문에
믿지 않는 자는 둘째 사망의 정죄를 받는다(요3;18). 그런데 아이는 믿을 수 없다.
아이들은 아담의 법법과 같은 종류의 고의적인 죄를 짓지 않아서 둘째 사망에 들어가지 않는다.
구원과 출생은 오직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로 올 수가 없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부를 수 없다. 듣지도 못한 분을 어찌 믿을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자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롬10:13).
아프리카나 아마존 밀림의 무당도 마술사도 구원받을 수 있다.
사람을 여럿 죽인 살인자도 구원받을 수 있다.
술주정뱅이도, 동성애자도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
마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멸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 자폐아, 정신박약아를 두신 부모님들 안심해도 된다.
이것은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인정된다.
캣맘 사건, 2015년 10월 8일, 오후 4시 30분경, 용인에서 길고양이 집을 지어 주던 두 분이 아파트
위에서 떨어진 돌에 맞아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부상당했다. 알고 보니 범인은 초등학생,
촉법 소년: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서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한 사람을
촉법 소년이라고 하는데 촉법 소년은 형사책임능력이 없기 때문에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10세 미만은 보호 처분도 면제된다.
이런 것이 악용되면 안 되지만 고의로 하지 않은 경우 이 세상의 범도 아이들의 책임 면제
구약의 하나님은 도피 도시를 만들라고 하심: 고의성이 없이 사람을 죽인 자가 도피하여 생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이것이 곧 하나님의 공의(righteousness)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신다.
지옥에 간 사람들도 하나님의 올바르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믿을 수도 없는 아이들을 지옥에 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그분의 공의에 위배된다.
이런 차원애서 유산된 아이들도 모두 천국으로 간다.
성경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아이라고 부르고 사람으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는 죄이다.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1968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방금 잉태된 아이는 완전한 존재로서 단지 몸이 자라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사람의 조직 세포 핵 안에는 46개의 염색체가 있다. 그 세포의 염색체 중 23개는 아버지에게서
오며 나머지 23개는 어머니에게서 온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세포의 1/2씩을 제공하
는 것이다. 잉태 시에 이들이 결합하여 46개의 염색체를 갖는 하나의 새로운 세포를 형성한다.
이러한 수정란은 더 이상 아버지나 어머니의 일부가 아니며 새로운 인간의 첫 번째 세포이다.”
다윗의 고백: 밧세바와의 간음, 아이가 태어남, 하나님이 아이를 치시므로 그 아이가 죽음
이때에 이상한 일이 벌어짐(삼하12:13-23).
다윗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함.
그런데 아이가 일곱째 날에 죽음, 신하들이 수군거리자 “아이가 죽었느냐?”고 묻고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주의 집에 들어가 경배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옴.
신하들이 이상해서 물음, 아이가 죽자 빵도 먹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삼하12:22-23, 그가 이르되,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내가 말하기를,
혹시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아이를 살려 주실지 누가 알리요? 하였기 때문이거니와
23 지금은 그가 죽었으니 어찌하여 내가 금식하리요?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다윗은 구원받은 성도로 낙원에 갔다가 부활하여 천국(새 예루살렘)에 살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 아이가 있다.
아이들을 무시하지 말라.
마18:10, 너희가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
니,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바라보느니라.
천사들은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섬기는 영(히1:14)
아이가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그를 보호하는 천사가 붙는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선과 악을
분별할 나이에 이르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미리 아심(롬8:29; 벧전1:2)을 통해 그가 구원받지
못한 채로 죽으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천사는 그 아이를 영원히 떠나게 된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베풀어 주신다.
아이들, 정신박약아, 자폐아, 유산된 아이들도 마찬가지, 회계 보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들
즉 고의로 죄를 지을 수 없는 자들이 죽으면 곧바로 하늘나라로 가서 주님 곁에 있다.
그들은 이미 주님의 소유이다.
천국에 도달하는 사람의 수가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대략적으로 몇 퍼센트가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담 이후로 지금까지 이 땅 위에는 약 400억 명이 살았다.
그렇다면 과연 이 중에서 몇 명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또 다른 통계를 보도록 하자. 인류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약 70%가 여덟 살을 넘기지 못하고 질병, 전쟁, 기아 등으로 죽는다고
한다. 이 같은 어린아이들의 혼은 죽은 뒤 천국으로 간다. 매해 전 세계적으로 사천 만 명의
태아가 낙태되고 있다. 끝으로 400억 명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알만한 나이에 이른 뒤에
10% 정도가 구원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을 알 수 없을 나이에 죽은 아이들: 280억
지금까지 낙태로 죽은 아이들: 10억
나이가 들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 20억
총계: 310억 명
그러므로 지금까지 태어난 사람의 약 75%정도가 새 예루살렘 도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들 외에도 천년왕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며 그들 중 상당수가 구원받는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성경 Q&A
45. 그리스도인의 분리(Separation)
현 시대 그리스도의 교회의 가장 큰 문제: 거룩함의 실종
즉 교회가 교회답지 않다. 교회와 세상이 구분되지 않는다.
교회에 왔는데 교회가 극장, 록음악 댄스장, 사람들의 말, 옷, 복장, 대화 주제가 세상과 다를
게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지금 현시대 교회들에 오시면 어떨까?
이유: 하나님에 대한 이해 부족, 교육의 부재, 목사들도 성도가 떠날까 봐 말을 못함
하나님의 기본 성품: 속성(attributes), 사랑, 공의, 신실함, 불변함, 무한함, 스스로 존재, 영원함,
무소부재, 전능함, 전지함, 지혜, 주권
다 맞지만 이것들은 하나님을 단편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근본 속성 혹은 본질이 있다.
그것은 거룩함(holiness)이다(레19:2; 시29:2 ; 99:9; 벧전1:15).
거룩함은 분리를 뜻한다: 즉 창조자와 창조 세상과는 영원히 심연의 계곡으로 분리되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온 창조 세계가 건강하기를 원하시는데 그 건강은 곧 거룩함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반대되는 것은 영원토록 그분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분은 창조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거룩함을 파괴하는 것은 다 멸하려 하신다.
에덴동산의 죄, 노아의 홍수,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 가나안 백성
거룩함의 표현
부정적인 표현: 더러움이 없는 것
긍정적인 표현: 순수한 것으로 가득한 것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거룩하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하는 곳은 다 거룩해야만 한다.
사실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은 성도라 불린다.
성인(saint)이라는 말이다. 뜻 역시 거룩히 구분된 자
벧전1:14-17, 14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하던 때의 이전 정욕들에 따라 너희 자신을
꾸미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갖 종류의 행실에서 거룩할지니
라. 16 기록된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느니라. 17 사람들의 외모를 중시하지 아니하시
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아버지]를 너희가 부르며 간구할진대 너희가 여기에 잠시 머물러
있을 동안을 두려움 가운데 지내라
성경은 이것을 분리(separation)하고 한다.
현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여된 것이 바로 분리이다.
분리는 곧 규칙(Standards)을 뜻함. 잘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separation, sanctification, holiness, saints : 다 같은 뜻임
삶에서의 분리 : 벧전1:15
분리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음.
주께로 분리됨(고전1:2): 구원
세상으로부터 분리됨(롬12:2): 성화
성경은 분리를 beauty 즉 아름다움으로 표시함(시29:2)
분리의 근거
하나님의 속성(레20:26; 벧전1:16)
구속(고전6:19-20): 성령님의 전
중생(고후5:17): 새 창조
하나님의 말씀(고후6:14-7:1)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요15:19
요일2:15
요일2:16(세상의 두 가지 의미)
요일2:17
약4:4
롬12:2
갈5:19-21, 육신의 열매
분리의 실행(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조심함으로
하리이다.
듣는 것
만나는 사람들(시1:1; 고전5:11; 잠22:24; 시14:1; 잠1:7; 살후3:11; 딤전5:13)
고전15:33, 잠27:17
말하는 것(엡4:29; 5:19, 골4:6)
눈으로 보는 것(시101:3, 욥31:1, 7): 이브, 다윗
장소(요일2:28)
입는 것(딤전2:9; 고전11:6; 마5:28; 살전4:4-7; 신22:5)
먹는 것, 읽는 것
핸드폰
자동차 등등
교리적인 분리
요이9-10
고후6:14
엡5:11, 암3:3(종교통합)
롬16:17
구체적인 실행: 징계
마18:15-20
살후3:6, 11, 14-15
딛3:10
징계와 출교 등은 권면, 교육 등을 다 해도 안 되는 경우의 최종 조치: 남은 성도들 보호
개인적인 징계: 나답과 아비후(레10), 아나니야와 삽비라(행5)
히12:8-12
결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대단한 특권, 의무가 수반된다.
분리해서 제대로 살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고전14:23)
모든 것에 질서가 있어야 한다.
오순절은사운동은 질서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고전14:27-33, 40).
그런데 분리를 잘못 이해해서 세상 사람들과 전혀 사귀지 않는 것은 오류(고전5:9-11)
세상 사람들과 사귀고 같이 일하되 우리의 근본 가치를 잃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늘의 사람들(빌3:17-21)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한다: 그 본성은 거룩함이다..
어떻게 분리하는가? 바른 정신, 생각, 판단, 주님의 두려움(잠1:7)
시90:17, {주}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우리 위에 임하게 하시오며 우리 손이 행한 일을 주께서
우리 위에 굳게 세우소서. 참으로 우리 손이 행한 일을, 그 일을 주께서 굳게 세우소서.
성경 Q&A
46.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들었나요?
많은 사람들이 묻는 질문, “선악과만 없었으면 죄 문제가 없을 테고 그러면 지금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될
수 있다.”, “왜 우리가 아담의 죄의 결과로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 사람
하나님은 사람을 특별히 만드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습대로 창조함(창1:26-27).
이것은 지정의를 가진 인격체를 뜻한다. person
인격체는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것을 자유 의지(free will)라고 한다.
사람이 가진 최고의 선물: 이것이 없으면 모두가 종살이 한다.
양심, 종교, 집회, 거주, 선택의 자유
자유 의지가 없으면 모두 로봇과 같다: 로봇은 프로그램 된 것만 한다.
로봇과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인격체로 만드신 것은 관계 형성을 위해서다.
그래서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심지어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유도 가지고 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서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창2:16-17).
그러므로 이것은 보통 특권이 아니라 특별하고도 특별한 특권이다. 시작이 좋았다.
---------- 선악과
선악과는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가 아니다. 생명의 나무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이다.
그것은 실제 나무이다(비타민 C 등 함유). 그 열매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Apple, 포도 등
그 열매 자체가 악하거나 나무가 악한 것이 아니다.
그 열매 자체가 선악을 알게 해 준 것이 아니다.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죄요, 악을 향해 그들의 눈을 열어준 동인이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요일3:4).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
그래서 먹자마자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벗은 것으로 인해 수치를 느꼈으며 하나님을 떠나 숨으려
하였다(창3:7).
이전에 이미 이들은 선을 알았다. 모든 것이 선하였다(창1:31).
그것으로 충분한데도 그 이상의 지식을 원하다가 패망함
그런데 무죄한 때에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통해 이론적으로 그것이 악임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과일을 먹음으로써 경험적으로 선에 비해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마귀의 유혹과 그 결과(창3:5, 22): 하나님같이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무죄 상태를 떠나 경험적으
로 알게 되었다.
마귀의 작전 성공 원인: 불순종 즉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함을 알려주지 않음.
사실 마귀 자신도 불순종 즉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짐, 어느 면에서 앙갚음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져서 이미 신들과 같은 존재, 하나님의 모든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구원 받으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한다(벧후1:3-4).
그런데 마귀가 교만으로 인해 타락한 것처럼 사람도 그리되고 말았다.
교훈: 하나님이 “하지 말라” 혹은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다.
불순종은 패망의 길, 하나님은 부모의 심정, 창조물로서 창조자의 한계 안에서 자유, 기쁨, 행복
---------- 왜, 그 결과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기 원치 않으셨다.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잘 아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죄를 지어 그런 상태로 빠질 것도 잘 아셨다.
그런데 왜 사탄이 그들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을까?
그들이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도록 하시기 위해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셨다.
시험이 없으면 그들의 속중심을 알 수 없다.
심지어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도 마귀에게 동일한 시험을 받으셨다(마4:1-11).
요일2:15-17,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 예수님은 순종하심
교만과 욕심으로 인해 그들은 신들처럼 되기 위해 하나님을 배반하고 금단의 과일을 먹었다.
그 결과 죄, 사망, 고통, 수고가 들어왔다(롬5:12).
그 이후로 태어나는 사람은 다 그의 형상으로 태어나서 죄 가운데 있다(창5:3).
성경적으로는 마귀의 자녀들
--------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죄를 없애면 되지 않는가?
죄를 그냥 없앨 수는 없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켰다.
따라서 이에 해당하는 형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다. 공의란 죄를 지으면 거기에 합당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판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죄와 거기 따른 형벌, 이것이 없으면 무정부 상태
지금의 살인 증가, 형벌이 없다.
훼손된 하나님의 거룩함을 회복시키려면 희생물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피의 희생물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에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런 지식이 남아 있다.
이 세상 모든 문화에는 신들을 달래기 위해 짐승을 죽여 피의 희생을 드리는 관례가 있다.
아담과 이브를 쫓아내시면서 짐을 죽여 가죽옷을 입히셨다(창3:21).
그리고 아벨이 믿음으로 피의 희생물을 가지고 온다(창4).
이런 지식이 바벨탑을 통해 온 세상에 전달됨
하나님의 법칙: 피 흘림이 없은즉 죄들의 사면이 없다(히9:22).
그런데 그 희생물은 완벽한 희생물이어야 한다.
사람이나 짐승 혹은 천사로는 할 수 없다. 완벽하지 않거나 죽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영원 전에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어 희생물이 되시기로 작정하심
---------- 문제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아들을 보낼 수는 없음. 그것은 영원히 반복되는 과정
---------- 죄의 전가
그래서 하나님은 전가(imputation)라는 방법으로 구원하시기로 하셨다.
전가: 한 사람의 것을 다른 사람의 계좌로 넣는 행위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이 말은 아담이 죄를 지을 때에 그의 허리 안에 있던 그의 모든
후손들이 그와 함께 죄를 지어 정죄를 받았다. 즉 아담의 죄가 모두에게 전가되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우리도 아담의 자리에 있었으면 다 그와 같은 죄를 짓는 존재라는 말이다.
성경의 결론: 사람은 다 태어나면서 육신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영적으로 죽어 있다(엡2:1).
그래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요3:7). 한 번 태어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죄의 전가: 또 다른 말로 하자면 육신적인 것이 유전되듯이 영적인 것도 유전된다.
우리는 행위와 본성에 의해 죄인이다.
행위는 우리의 죄(교통 법규 등): 둘째 사망, 본성은 아담의 죄: 첫째 사망 즉 육신의 죽음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죄 가운데 태어난다(시51:5). sin nature, 아이도 거짓말한다.
롬5:12 설명, 3:23
정당하지 않다: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면서 동시에 사랑을 베푸신다.
누구에게나 항상 살 길을 주신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
-------------의의 전가
전가 행위로 모두가 죄인이 되었으므로 역시 전가 행위로 모두가 의인이 될 수 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완벽한 희생물로 피를 흘리고 자신을 드리셨다.
죽는 순간 죄가 되셔서 하나님의 모든 저주를 다 받으셨다(고전5:21).
그래서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서 옛사람을 죽인 것으로 하나님이 간주하심.
이것 역시 예수님의 의를 우리의 계좌에 넣어주는 전가 행위
전가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일시에 모든 죄인을 구속할 수 있음
로마서 5장의 핵심, 12절, 15절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간주하는 전가 행위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엄청난 행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이런 지혜를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찬양
------------아담과 이브
이브가 선악과를 따서 먹을 때에 아담은 어디 있었는가?(창3:6)
자기와 함께 했다는 것의 의미: 아담이 그 자리에 있었는가? 그냥 자기와 함께하는 배우자라는 뜻인가?
이브는 속아 넘어갔다(고후11:3). 아이들과 마찬가지로(딤전2:13-14)
그래서 하나님은 이브에게 죄를 묻지 않으신다.
그러나 아담은 의도적으로 죄를 지었다. 아담의 범법(롬5:14): 고의적으로 짓는 것
또한 아담은 아내를 바르게 인도할 책임이 있었다. 먼저 지어졌다. 가장이다. 리더다.
여자를 보호하지 못함. 그리고는 알고도 죄를 지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 죄가 들어온 것으로
간주하심.
아담이 망친 것을 회복시키시려고 여자의 씨 예수님을 둘째 아담, 마지막 아담을 보내심
그래서 성경은 둘째 사람의 책: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야벳과 셈, 므낫세와 에브라임, 사울과 다윗,
구약과 신약,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첫 출생과 둘째 출생
고전1:18, 22-24
이것이 선악과를 통한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이다(롬11:33-36).
인류에게는 시간이 걸리지만 하나님께는 이제 6일
성경 Q&A
47.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무엇을 뜻하나요?
지난 주, 선악과, 자유 의지, 그런데 어떤 분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 그래서
천국에 갈 자들과 지옥에 갈 자들이 이미 선택되어 예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영어로 선택은 election(27번), 예정은 predestination이다(총4번).
보통 칼빈의 예정설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핵심: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천국 갈 자와 지옥 갈 자가
미리 정해져 있다.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한 예정: 자유의지 불인정, 하나님의 주권
보통 여기에 빠지면 “나는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으므로 언젠가 믿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반대가 되면 어려워진다. “믿으려고 해도 예정되지 않아 믿을 수 없다면 어찌할까?”
일단 더 나가기 전에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선택해서 예정한다면 누가 공정하다고 할까?
성경의 하나님이 이런 분인가? “이런 분이라면 안 믿는 것이 맞다.”
그런데 성겨의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다. 항상 옳은 분이다. 자신의 형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고는, 구원만큼은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직접 예정한다면 불공평
한 가지 확실한 사실: 땅, 지옥, 천국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은 공정하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하나님
창18: 소돔과 고모라 땅 심판, 의인들도 함께 멸하면 되는가? 24,25절 참조
예정(Predestination)
일단 예정이란 말이 많이 나오지 않으므로 어떻게 쓰였는지 용례를 볼 필요가 있다.
롬8:29,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엡1:5,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
으로써
엡1:11,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결론: 성경에서 예정이라는 말은 오직 성도들에게만 적용됨: 1.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 2.
하나님의 아이로 입양하심, 3. 상속 유업을 받음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예정’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운명(천국, 지옥)과 상관없고 성도들의 신분, 보상
선택(Election)
성도의 구원과 선택, 보상에는 몇 단계 과정이 필요하다. 벧전1:2, 롬8:28-30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1. 미리 아심(foreknowledge)
2.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sanctification)
3. 선택(elect): 순종함과 피 뿌림에 이르도록
베드로
1. 미리 아심(foreknowledge): 성경에 총 4번, 행2:23, 롬8:29, 롬11:2, 벧전1:2
대단히 중요한 주제: 의미,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모든 것을 아신다.
사탄과 천사들의 타락, 아담과 이브의 타락, 가룟 유다의 배반, 우리의 죄, 이스라엘의 회복, 예수님을
보내심
시139:1-4, 15-16
미리 아시지만 간섭 No!: 자유 의지, 가룟 유다, 불간섭, 그는 자기 스스로 죄를 짓고 지옥에 감
이스라엘의 불순종: 미리 아시지만 불간섭, 사탄과 마귀들과 모든 사람들의 모든 것 미리 아시지만 그들의
자유를 간섭하거나 조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로봇이 된다.
그러므로 구원에 관해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을지, 받지 못할지 분명히 미리 아신다.
사람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죄인, 회개, 예수님만 신뢰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보자: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빛을 주신다. 신약이든 구약이든 믿음으로 그
빛에 반응하고 하나님께 나와서 구원에 이른 사람이 있고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성경 바로 보기: 라킨의 책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자유 의지’, 1850년 10월 28일 출생, 1869년
5월의 어느 저녁에 YMA에 선포된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음, 하나님은 이를 미리 아신다.
2. 나의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에 따라 성령님께서 거룩히 구별하신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3. 그리고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하신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구원 과정이다.
바울
롬8장에서 바울도 같은 것을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한다.
29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1. 미리 아심(29), 2. 예정하사 예수님처럼 되게 하심(선택). 그래서 예수님처럼 된 자들이 수도 없이
이 생김. 그래서 아들이 여럿 있지만 그분은 유일하신 아들 독생자, 우리는 양자, 공동 상속자(고전
1:30).
3. 예정/선택/성별 이후에 복음을 통해 부르신다. 당연히 이들은 반응한다.
4. 칭의, 5. 영화
이것이 성도의 구원 과정이다. 하나님의 선택, 인간의 자유 의지의 충돌이 없다.
그 이유: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정하시기 때문에: 구원 초청에 믿음으로 반응함이 핵심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도 미리 아시고 선택하신다. 여기의 근거: 그들의 자유 의지 선택
이상한 구절들: 요15:16, 행13:48, 살후2:13, 여기에 반드시 미리 아심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엡1:1-14 설명
민족과 개인의 선택은 다르다. 롬1-8은 개인의 구원(칭의), 9-11은 이스라엘의 최종 구원
여기에는 야곱과에서 그리고 파라오가 나온다.
야곱과 에서의 경우: 미리 아심에 따라 역시 야곱을 선택한다(9:10-13). 그에게서 이스라엘을 내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 통치를 위한 경륜의 선택이지 구원의 선택이 아니다. 즉 에서의 씨는 전혀
구원받지 못하고 야곱의 씨는 다 구원받음을 뜻하지 않는다. 구원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여자의 씨, 메시아를 내기 위해 한 민족을 택하셨다. 구원의 기회는 모두에게 주신다.
파라오의 경우: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결국 믿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냐?
롬9:18, 출4:21 근거, 실제로 주님이 그를 강퍅하게 하신 것은 출9:12, 이때는 6째 재앙
1-5 재앙까지는 파라오가 스스로를 강퍅하게 함(8:15, 19, 32 등)
역시 미리 아심을 보고 그를 강퍅하게 하심, 롬9:18 바로 이해
사람 편에서는 믿어야 한다. 구원 관련 구절의 99.9%는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요3:16; 롬10:9-10,
13). 선택이 된 것 같은 몇몇 구절은 미리 아심을 대입하면 해결됨
성경의 맨 끝에서 주님의 마지막 초청(계22:17)
Elect라는 말의 용례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하면 다 신약 시대 교회에 속한 자들로 생각하면 안 된다.
1. 예수님(사42:1)
2. 이스라엘(사45:4)
3. 환난기의 이스라엘(마24:24; 31)
4. 신약 교회 성도(롬8:33; 골3:12, 벧전1:2, 2:6, 요2 1, 13 등 바울, 베드로, 요한 서신)
성도라는 말도 비슷하다.
1. 구약성경의 성도는 대부분 구약 시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단7:18, 21, 25, 27, 마27:52
등)
2. 신약시대 성도(행9:13, 롬1:7 등 바울 서신)
3. 환난기 성도들(계13:7, 10 등)
Q&A
48. 침례교회인가?
한국 교회 현황
한국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장로교인이나 감리교인이 크리스천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수의 열세와 천주교회 그리고 중국어 성경 등의 영향으로 인해 침례(浸禮)가
아니고 세례(洗禮)로 표기된 성경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국민성이
유대인들처럼 획일적이고 율법적인 면이 있어서 자기와 다른 것을 잘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침례교회라고 하면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또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침례교 간판을 내걸고 사람들을 현혹했으므로 이로 인해 성경대로 바로 행하는 침례교회
들마저 오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에 따라 교세가 확장되고
인식이 개선되어 이제는 침례교회에 대한 오해가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경우는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이 침례성도이며 장로교/감리교의 교세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또 전 세계적으로도 침례를 주는 교회가 세례를 주는 교회보다 적지 않습니다. 미국에는
도시마다 기독교 방송국이 있는데 이런 방송국에 나와 복음을 선포하는 목사의 대부분은 침례교
목사입니다. 또한 지금도 가가호호 방문하여 문을 두드리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침례성
도들이며 전체적으로 교회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여전히 침례교회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독립/자유
침례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전 세계 어디서든지 오직 말씀 중심으로 지옥으로
향하는 영혼들을 구원시키는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침례교회와 침례성도의 유래
많은 사람들이 침례교회도 장로교회 혹은 감리교회 등과 같이 개신교회 내의 여러 교단 중 하나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개신교회’라 불리는 교회들은 중세 천주교회에서 ‘항거하여
나온 사람들’ 즉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천주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프로테스탄트들’을
가리킵니다. 거기에는 여러 분파가 있어 칼빈과 녹스 등이 세운 장로교, 웨슬리 형제가 세운 감리교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침례성도들은 한 번도 어디에 항거하여 나온 적이 없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을 따라 걸어 온 사람들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가 아닙니다. 침례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없음을 당당히 자랑하며 동시에 인간 창시자가 없음을 크게 기뻐합니다. 그 이유는
침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창립되어 예수님 때부터 존재해 온 성경적 교회이기 때문입니다(마
16:18). ‘침례성도’는 영어로 ‘뱁티스트’(Baptists)인데 이 말은 신약 성경의 시작과 함께 성경에 등장하는
성경 용어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선포한 ‘침례자 요한’(John the Baptist)에서 처음으로
‘뱁티스트’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침례자 요한이 신약교회를 세운 것은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이라는 명칭이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합법적인 단어인 것처럼(행11:26) 침례성도
(뱁티스트) 또한 성경에 근거를 둔 합법적인 단어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난 믿음의 고백으로서 모두 당연히 침례를 받으므로(롬6:3-5) 굳이
침례교회라고 부를 필요는 없지만 세례를 주는 교회들과 구분하기 위해 어느 때부터인가 자연스레
침례교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침례교회와 침례성도의 믿음
침례성도들은 다른 프로테스탄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근거한, 믿음으로 은혜로
값없이 얻는 구원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구원을 넘어서서 성경적인 믿음의 실행의 문제에
들어가면 여러 면에서 개신교회와 침례교회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약교회의 시작과 더불어
등장한 침례성도들은 ‘국가 교회’가 아닌 ‘자유 교회’를 형성했으며 다음과 같은 최소한 여덟 가지
원칙을 지키며 믿음 생활을 하였습니다.
1. 성경의 최종권위(Bible's Final Authority, 딤후3:16-17)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초대 교회부터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단어 하나하나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음을 믿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기록하였기에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오류가 없음을 믿었다. 또한 그들은 동일한 하나님께서 완전한 영감으로 기록하신 성경을
완전한 섭리로 보존해 주심을 믿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개개인의 신앙 양심을 따라 처음부터
독립/자유 교회는 크리스천의 교리와 실행에 있어 성경만이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권위임을 믿었으며
교회나 공회나 신조나 전통이나 사람의 어떤 기관도 성경을 대체할 수 없음을 믿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이 같은 믿음은 감옥이나 불이나 물이나 칼이나 맹수나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결코 쇠퇴하지
않았고 이들의 후예로서 우리도 성경만이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권위임을 믿습니다. 바른 본문의 종교개
혁본문
2. 자치적 지역교회(Autonomy of Local Churches, 마18:15-17)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지역교회가 어느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몸으로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충성을 맹세하는 독립 기관임을 믿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의 어떤 사람이나
기관도 독립/자유 지역교회에게 무엇을 명령할 수 없으며 천주교회나 다른 개신교회들처럼 주교,
추기경, 감독, 총회장 등의 성직자 체계가 지역교회를 관할하고 성직자를 임명하며 교회의 자치권을
무시하는 것은 비성경적임을 믿는다. 각 지역교회는 오직 성경만을 최종권위로 삼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자체 회원들끼리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3. 전 성도 제사장 직분(Priesthood of All Believers, 벧전2:5-9)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예수님의 신약교회에 속한 모든 신자들이 어떤 인간 중보자의 도움 없이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믿었다. 이것은 영적 제사장
직분을 말하는 것이며 구약 시대에 존재하던 육적 제사장 직분은 사라졌음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천주교회와 같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인간 중보자 제사장(사제, priest)을 두는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가 아님을 확실히 믿으며 또한 교회를 성전이나 성당이라 부르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마치
예식이나 의식을 집행하는 집례로 표현하며 성도를 평신도라 지칭하여 의도적으로 계급을 조장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성직자가 가운을 입는 것 같은 겉치레 의식주의를 배격한다. 이
모든 것은 구약 시대에만 가능한 것이요, 예수님의 신약교회에서는 성전의 휘장이 갈라짐과 더불어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이다.
4. 교회의 두 가지 규례(Two Ordinances, 마28:19, 고전11:23-32)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침례’와 ‘주의 만찬’만이 지역교회가 실행해야 할 두 개의 규례임을 믿었다.
우리는 침례가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과 부활을 상징하므로 반드시 온 몸을
물 속에 완전히 넣었다가 일으키는 형식이어야만 함을 믿는다. 우리는 복음을 알 수 없는 어린아이의
머리에 물을 끼얹고 천국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선포하는 유아세례가 비성경적인 죄악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는 ‘주의 만찬’ 역시 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규례로 믿고 지키며 천주교회의
화체설 즉 주의 만찬의 빵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실제 몸과 피가 된다는 교리가 명백한 이단 교리임을
믿는다. 천주교회에서는 화체설에 근거하여 주의 만찬이 구원이나 은혜를 가져다주는 성사(Sacrament)
라고 주장하며 그래서 그것을 ‘성만찬’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이런 비성경적 관행을 배격하고 오직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의 만찬’이라 부른다. 또한 우리는 주의 만찬을 행할 때에 반드시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누룩이 들지 않은 포도즙 즉 발효되지 않은 포도 주스를 사용해야만 함을 믿는다.
이 외에 우리는 세족식 같은 것을 신약교회의 규례로 믿지 않는다.
5. 양심의 자유(Individual Soul Liberty, 롬14:5-12)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속사람의 명령에 따른 양심의 자유를 가장 중히 여겼고 이를 바탕으로 믿음의
자유를 소유하였다. 진정한 크리스천들은 중세 이슬람교도나 천주교도 그리고 심지어 칼빈 같은 프로테
스탄트처럼 무력으로 남에게 자기의 믿음을 받아들일 것을 결코 강요한 적이 없으며 자기의 믿음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죽인 적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자기 의사에 반하여 자기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어떤 것을 믿도록 강요받을 수 없음을 믿는다. 반면에 현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각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석
앞에서 회계 보고 할 줄을 믿는다(롬14:10-12; 히9:27).
6. 구원받은 성도들만의 교회 회원권(Saved People's Church Membership, 행2:41-47)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구원받은 신자만이 지역교회의 회원이 됨을 믿었다. 중세암흑시대에 천주교회는
믿음이 없는 아기도 유아세례를 통해 교회의 회원으로 만들어 영원히 신앙의 자유를 빼앗았으며
유아세례를 거부하면 사회에서 매장시키거나 퇴출시켰다. 우리는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즉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아 독립/자유/자치 지역교회의 회원이 됨을 믿는다.
7. 지역교회의 두 가지 직분(Two Offices in Local Churches, 딤전3:1-13)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성경에 따라 교회 내에 오직 두 가지 직분 즉 목사와 집사의 직분이 있음을
믿었다. 이 두 직분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의해 반드시 남자들만이 맡을 수 있으며 성경에서 목사와
장로와 감독은 동일한 직분을 가리킨다. 우리는 독립/자유 지역교회가 결코 천주교회와 같은 성직자
체제의 교회가 아니며 직분은 성도들 간의 기능의 차이일 뿐 결코 계급이 아님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목사나 성도들이 질서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형제라 부를 수 있고 또 그렇게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교회가 예수님의 참된 신약교회임을 믿는다(히2:11).
8. 교회와 국가의 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마22:15-22)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교회와 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분리되어야 하며 한 기관이 다른 기관을 통제할
수 없음을 믿었다. 중세 암흑시대의 사악한 종교 독재 행위는 바로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된 국가
교회 즉 양심의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아간 독재 교회의 출현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역사를 통해
자유 교회 교인들은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된 국가 교회에 항거하여 피를 흘렸고 그 결과 미국의
헌법에 종교와 양심의 자유가 명문화되고 그 이후에 대부분의 국가들에도 이것이 파급되어 현대
시민들이 이런 자유를 향유하게 되었다.
미국의 침례교회
미국에서 침례교회가 부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큰 꿈을 가지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민 온
유럽 사람들에게는 국가 교회의 독재와 탄압이 머리 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습니다. 따라서 청교도들의
장로교회가 먼저 들어왔으나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허락하고 교회 내에 계급이 없이 모두를 형제라
부를 수 있으며 남녀노소의 평등을 주장하고 회중의 대의 통치를 주장하는 성경적 침례교회가 자연스레
보통 사람들의 교회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침례교회가 경건하
고 거룩한 생활을 보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였기에 미국에서는 침례교회가
가장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한편 침례교회가 주장하는 지역교회의 자치권에 근거하여 국가의 지방자치
제도 역시 급속도로 정착되기 시작했습니다. 실로 지금까지 미국의 국력과 위용이 유지된 것은 하나님
을 사랑하는 성경적 신약교회 신자들의 기도와 노력을 통한 하나님의 복이라 할 수 있으며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 다수가 위의 여덟 가지 원칙을 지키는 독립침례교회라는 점이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침례성도들의 유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종에 상관없이 침례성도들은 항상 서민들에게 접근하여 강력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침례성도들은 시종일관 인격화된 기독교 즉 삶이 변화되어 그리스
도의 인격이 배어 나오는 뜨거운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의 교회 생활에서 드러난 소박한
민주주의는 아무런 유산도 물려받지 못한 서민층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개개인에게
스스로 성경을 읽고 오직 성경에만 순종할 것을 권면하였는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과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을 허락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성경을 통해 스스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특징은 다른 교파나 교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자유와 평등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남겨 주기 위해 침례성도들은 전력투구였으며 또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천주교회의 유아세례와 성만찬의 화체설이라는 이단 교리와 싸우며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우리 침례성도들의 선조들은 이러한 희생으로 온 인류의 자유/독립
역사를 수놓아 왔으며 그 결과 오대양 육대주의 자유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갈채를 받아 왔습니다.
21세기 침례성도들의 책임
우리 눈앞에 21세기가 환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수의 열세로 인해 오해의 대상이 되기도
한 우리 침례성도들은 이제 어떤 비전을 가지고 21세기를 맞고 있습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흥왕하고 있는 교황의 천주교와 이에 부응하여 점점 더 천주교화 되고 있는 개신교회들을 보며
우리 침례성도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바른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침례 성도
선조들이 목숨을 내걸고 지킨 바른 성경 곧 하나님께서 순수하게 보존해 주신 「킹제임스 성경」(흠정
역)을 채택하여 ‘오직 성경으로’라는 기치를 들고 영혼 구령에 매진하여야 할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 목사,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 설교의 왕자 찰스 스펄전, 불굴의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등과 같은 침례교 선조들의 본을 따라 우리 또한 강력한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운 이 시점에서 우리는 큰 배도의 물결을 보고 있습니다. 천주교, 배도한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뉴에이지 등이 하나가 되어 단일세계종교를 구축하려 하고 있고 이를 위해
이미 교황의 지도하에 여러 차례 예행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런 위험한 시점에서 우리 침례성도들은
단호하게 비성경적 에큐메니칼 종교일치 운동을 배격하고 이 같은 배도의 누룩에 조금이라도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록 음악 위주의 경배와 찬양과 연극 드라마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대체하며 은사주의/신비주의로 인한 기복 신앙이 기승을 부리는 이때에 우리
침례성도들은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면서(유3) 복음적 근본주의 교회들을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부디 우리 성도들은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계2:7; 11; 17;
29; 3:6; 13; 22)라는 주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성경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용기 있게 복음을 들고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21세기를 우리 침례성도들의 전성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며 지옥의 문들을 부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침례교회의 창시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Q&A
49. 칼빈주의란 무엇인가요?
선악과, 자유의지, 예정과 선택, 장로교의 칼빈주의? 칼빈의 예정설?
사상이나 철학을 논할 때: 배경이 가장 중요하다.
A. 간단한 교회 역사
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창시자
2.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자들이 나옴. 교파가 형성됨
3. 대표적인 것 천주교: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온 세상 치리
4. AD 1517 종교개혁까지 1,000년 이상 독재하며 영혼의 자유 박탈
5. 이후에 드디어 저항자들인 프로테스탄트들에 의해 개신 교회가 생겨남
6. 개신교회의 특징: 천주교와 비슷하게 인간 창시자를 둔다.
7. 루터교(루터), 장로교(낙스, 칼빈), 성공회(헨리 8세, 영국 황제), 감리교(웨슬레)
8. 사실 침례교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교단들의 창시자가 있다.
9. 그래서 대부분의 교단들이 창시자의 믿음에 의해 좌우된다.
10. 이중 창시자의 믿음에 의해 가장 크게 좌우되는 교단이 장로교와 감리교이다.
11. 보통 장로교는 칼빈이 주창한 이론 즉 칼빈주의를 따르고 감리교는 그 이후에 나온 알미니우스의
교리를 따른다. 그러므로 장로교 혹은 감리교 신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면 칼빈이나 알미니우스가
이해한 대로 성경을 배운다. 그것들 이외의 다른 해석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칼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노래가 나온다.
B. 칼빈주의의 문제
그런데 만일 칼빈이 틀렸으면 어찌할까? 물론 그들은 그럴 리 없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칼빈주의는
성경과 배치된다. 칼빈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 자체가 그대로 해석되지 않는다.
1.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가 구분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대체신학
2. 그래서 구약의 실제적인 천년왕국 해석 등을 모두 비유로 풀어야 한다(사11장의 천년왕국, 겔40-48
장). 영해
3. 교회가 다스리는 세상이 곧 하나님의 왕국이다.
4. 이를 위해 사람들을 한 생각으로 묶어야 한다. 영혼을 뺀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5. 구약 장로 통치 시스템 도입, 과도한 율법주의
6. 이것이 칼빈주의의 핵심이다.
7. 칼빈주의의 5대 강령을 따르면 성경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8. 목사나 교회에 예속된다.
9. 즉 구약시대의 신정정치로 돌아가 목사가 제사장, 교회가 성전이 된다.
10. 신약 시대의 영혼의 자유가 박탈된다.
11. 그러면서도 거기 빠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정받아 구원받는 줄로 착각한다.
C. 칼빈주의의 배경
1. 실제로 칼빈주의는 칼빈이 독창적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어거스틴의 사상 체계를 칼빈이 장로교
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2. 어거스틴은 누구인가?(354-430년)
3. 천주교나 장로교 그리고 천주교에서 나온 프로테스탄트들은 사도 바울 이후에 존재한 가장 위대한
성도요 신학자, 서구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자
4. 그러나 실상 그의 사상은 성경과 완전히 배치된다
5. 천주교의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 그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국’(하나님의 도시)라는 책
저술, 내용은 교황이 다스리는 교회 즉 천주교회가 하나님이 이 땅에 이루시는 왕국, 그러므로 교회에
복종해야 하는 시스템 도입, 기독교가 아니라 교회교를 만듦. 이를 위해 믿음 + 행위, 연옥, 마리아
숭배, 반대자들 숙청 및 살해 실행
6. 즉 구약시대 모세의 신정정치를 교황과 추기경 제도로 구현
7. 네이버 지식 백과: 신정정치에서는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이 분리되지 않고 융합되어 있으며, 권력자
의 명령은 곧 법이고 피지배자의 내면적 심정(心情)까지도 지배한다. 국가의 법은 신의 법 또는 명령이며
국법과 종교가 동일하다… 이러한 정교일치의 동심원적 권력 지배는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모세가
건설한 신정 국가의 정치가 가장 전형적이다. 신정정치는 고대 오리엔트, 이슬람 세계, 인도, 중국,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도 각 문화의 원형과 관계하여 독자적 형태를 보인다. 신정정치의 근대의 전형으
로서는 칼빈(John Calvin)의 제네바 지배를 들 수 있고, 현대의 신정정치로는 혁명 후의 이란 정부를
들 수 있다.
8. 칼빈주의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칼빈의 제네바 통치가 신정정치라는 것과 그의 신정정치 사상이
어거스틴을 통해 구약시대의 신정정치에서 왔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칼빈의 제네바 통치는
우리가 현시대 문명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는 중동과 파키스탄의 이슬람 무력 통치와
같거나 그 이상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9.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 ‘칼빈의 5대 강령’으로 잘 알려진 칼빈주의 신학이다. 이런 측면에서
<네이버 지식 백과>라는 세속 사전이 칼빈의 제네바 통치를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 이슬람공화국을 탄생시킨 이란 혁명 이후에 이란 정부가 시행하는
신정정치와 같은 것으로 분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성도들은 잠에서 깨어 이 같은 역사의 진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천주교회 같은 교회교의 속박이나 목사나 교회의 독재에 대항하며 바른
믿음을 지킬 수 있다.
10. 어거스틴의 신정정치 개념 교과서 확인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까지 약 1000년 이상 그리스도
없는 교회교가 수많은 신자들, 유대인들 숙청 및 살해
11. 프로테스탄트들의 생각 역시 어거스틴과 동일함: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세상을 다스린다.
12. 루터, 헨리 8세, 칼빈도 마찬가지
13. 그래서 1700년까지 유럽의 모든 국가는 국가교회 혹은 교회국가를 실시하였다.
14. 국민은 오직 국가가 정해 주는 오직 한 개의 종교만 가져야 함. 그 외에는 핍박 혹은 추방
15. 1787년 미국 헌법: 최초로 양심의 자유, 국가교회 폐지 즉 교회와 국가의 분리 선언
16. 마음껏 자유를 우리는 루터, 칼빈 당시의 시재적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국가 혹은 도시가
종교를 선포하고 그것만 허용함
D. 칼빈(1509-1564)
1. 장로교를 창시한 프랑스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이며 성공회의 성인
2. 카톨릭을 반대하며 스위스의 제네바로 가서 프로테스탄트 신정국가 설립, 프로테스탄트 교황
3. 반대자는 핍박 고문 그리고 처형, 세루베투스 처형, 그 외 많은 사람들 처형
4. 칼빈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제네바에서 살 수 없고 모두 축출됨(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며 관용을 부르짖은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
5.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그는 모세가 세운 장로 통치 시스템을 도임하여 실행
6. 신약 교회는 초기에 유대인 중심일 때는 장로, 그러나 후에는 지역 교회 감독 즉 목사 시스템으로
정착됨
7. 제네바를 신정국가로 통치하기 위해 5가지 강령을 만듦
E. 칼빈주의 5대 강령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이것을 합쳐서 TULIP이라고 한다.
F. 칼빈주의 5대 강령 설명
배경: 신정국가, 교회교, 유대인 없다. 교회가 다스리는 왕국, 여기의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유 의지를 완전히 제거하는 교리 시스템 개발, 칼빈주의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a.의미: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으며 자신의 죄로 인해 죽었다. 이것은 우리가 다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전적 타락을 전적 무능력으로 바꾸는 데 있다.
b. 그 결과 사람은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할 능력이 없다.
c.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인간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복음에도 반응할 수 없다.
d. 이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많이 말한다.
e.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죽은 죄인에게 이런 능력을 부여하셔야 하며 그래서 주권적으로 먼저 그를
되살려서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셔야 한다.
f.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구원 불가능, 자유 의지 상실
g. 하나님이 먼저 다시 살려 주고 그 복음을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즉 로봇이 되어야 구원
가능
h. 이리 되면 신약성경의 대부분의 구절들이 무효, 요3:16, 롬10:10 등
i.그러니까 사람은 초장부터 구원받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a.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주권적으로’ 구원받을 사람을 선택하시며 이 선택은 죄인의
행위 즉 복음을 믿는 것을 포함하는 그 어떤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b. 그래서 태어나기도 전에 천국에 갈 자들과 지옥에 갈 자들이 정해져 있다.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a.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칼빈은 복음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반대하였다.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a. 선택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유효하며 거부될 수 없다. 죽어 있던 죄인은 주권적으로
다시 살아나고 ‘믿음의 선물’을 받는다. 즉 지금 믿지 않아도 언젠가는 구원받게 되어 있다.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a.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여 소생시킨 사람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주신다. 어느 면에서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 그러나 원래 의미는 칼빈주의를 믿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교리
b. 끝까지 견뎌야 한다. 구원의 확신 No! 존 번연의 천로역정, 구원이 맨 마지막에 이루어진다.
c. 죄를 지으면 대단히 불안하다. 교회 시스템에 예속됨
G. 칼빈주의의 의미
우리가 제네바 시민이라고 생각해 보자.
1. 칼빈의 뜻대로 따르면 선택받아 구원에 이른다.
2. 그의 반대편에 서면 아예 지옥으로 예정되어 있다.
3. 이것이 얼마나 큰 문제였을까?
4. 제네바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려면 그에게 종이 되어 그의 말에 다라 율법을 지켜야 했다.
5. 성수주일, 십일조, 오락, 시커먼 옷, 모든 자유를 박탈당함
6. 모세의 율법을 근간으로 장로 시스템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면서도 구약의
거의 모든 것을 다 지켜야 했다.
7. 그 당시 상황: 교회가 이스라엘이다.
8. 제네바 시민에게 허락된 것: 살다가 죽는 것, 일하고 복종하며 교회에 출석하는 것뿐임.
9. 제네바에서는 오로지 “금지, 금지, 금지!” 그리고 “의무, 의무, 의무!”의 외침만 들렸다.
10. “제네바에서는 칼빈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했던 사람은 다 처형당했다. 단 하룻밤 사이에 제네바에는
칼빈당 외에는 어떠한 당파도 남지 않았다”
11. 칼빈은 10,000여 명에 불과한 제네바시를 통치하며 처음 5년 동안에 13명을 교수대에 매달고
10명의 목을 자랐으며 35명을 화형시키고 76명을 추방하였다. 칼빈의 이러한 종교개혁은 실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빙자한 살상 행위였다.
12. 오늘나의 이슬람 테러주의자들과 동일하다.
13. 신약 성경의 에수님은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14. 나와 사사이 다르다고 해서 죽이는 것은 신약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신정정치에서나 가능
15. 이것이 칼빈주의의 모든 것이다.
H. 청교도
1. 철저한 칼빈주의자
2. 1559년의 엘리자베스 1세가 내린 통일령에 순종하지 않고 영국 국교회 내에 존재하고 있는 로마가톨
릭적인 제도 ·의식(儀式)의 일체를 배척하며, 칼빈주의에 투철한 개혁을 주장하였다. 엄격한 도덕,
주일(主日:일요일)의 신성화 엄수, 향락의 제한을 주창하였다. 제임스 1세, 찰스 1세 때에 비국교도로서
심한 박해를 받고 네덜란드와 기타 지역으로 피해 갔다. 그 중에서도 신대륙의 플리머스에 식민지를
개척한 메이플라워호(號)의 ‘필그림 파더스’는 유명하다.
3. 칼빈주의 신학을 관철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제네바 성경 출간
4. 자기들의 칼빈주의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제네바 성경을 가지고 신대륙으로 넘어감. 그리고 거기서
곧바로 칼빈주의 국가를 시행하려 함. 호쏜의 <주홍글씨> 등의 배경, 지독한 율법주의
5. 영혼의 자유를 외치는 침례 성도들이 확산하면서 이들의 시도가 좌절되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침례교 국가가 되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상의 교회로 영혼의 자유 추구, 인간
창시자 없음, 킹제임스 성경, 세대주의 본산
I. 칼빈주의 전망
1. 유대인 배척, 중세 엉청난 핍박, 2차 세계대전 나치의 600만 학살
2. 미래가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1948년 5월에 이스라엘 독립 국가 세워 줌
3. 중동의 저 나라는 구약의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후손, 구약의 모든 약속을 실제로 이룰 나라
4. 구약을 영해하고 유대인을 인정하지 않는 칼빈주의는 이미 그때 종말을 고했어야 한다.
5. 틀린 시스템이므로
6. 한때 주춤하더니 지금은 맥아더, 파이퍼, 워셔, 스프로울 등의 지적 교사들을 통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7. 마지막 때는 적그리스도의 시대, 유대인에게 가장 큰 핍박이 임한다. 이를 위해 지금 온 세상이
‘반 유대인’ 정서로 하나가 되고 있다.
8. 천주교, 개신교 종교 통합, 궁극적으로 유대인 배척
9. 앞으로 이런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다.
J. 우리의 작정
1.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
2. 유대인 인정, 영해 배척, 실제 왕국
3. 구약 교회 배척, 율법주의
4. 예정론 배척
5. 사람은 프로그램 된 로봇이 아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다.
6. 심지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안 믿고 지옥에 가는 것도 허락하셨다.
7.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우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총칼로 믿게 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런 것 지지 하지 않음
8.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칼빈주의 바로 알기>
Q&A
50. 창세기 1장의 빛과 별빛 그리고 창조 연대에 관하여
1. 해와 달 창조 이전의 빛에 대하여: 창세기 1장의 빛 문제
창1:3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
창1:16-17은 실제로 지금 우리에게 낮과 밤에 빛을 주는 해와 달은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커다란 두 광체를 만드사 큰 광체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광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또 별들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사 땅 위에 빛을 주게 하시며”
(창1:16-17)
해와 달이 없는데 어떻게 빛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함과 전능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질문입니다.
1. 빛은 해가 없이도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장작, 초, 플래시라이트, 자동차 헤드라이트 등과 같은 빛의
근원은 다 빛을 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첫째 날에 빛이 존재하려면 빛의 근원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빛을 주시기 위해 해와 달과 별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몸소 빛 에너지를 활성화시키셨고 그 결과 온 우주에 빛이 생겼습니다.
2.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그[침례자 요한]는 그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언하도록 보내어진
자더라. 그 빛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요1:4-5, 8-9)
a. 이 말씀은 영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고 물리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물리적
의미로 이것을 받아들이면 지금부터 약 6,000년 전 창조의 시점에 빛이신 하나님 자신이 빛의
근원이셨습니다.
b. 하나님께서는 파장이 짧은 복사(자외선, x선 등)와 파장이 긴 복사(적외선, 라디오 파 등)를
모두 포함하는 전자기력 시스템(Electromagnetic force system) 같은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
를 통해, 혹은 이와 비슷한 형태의 힘을 통해 이 일을 이루셨을 것입니다.
c.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요일1:5는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분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전혀 어둠이 없다는 것이라.”(요일1:5)
d. 하나님은 빛이시고 빛 안에 거하시므로(딤전6:16) 사실 빛을 창조하실 필요가 없고 대언자 이사야
의 기록대로 어둠만 창조하시면 되었습니다. “나는 빛도 짓고(form)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만들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사45:7).”
e. 창조의 첫째 날은 저녁 6시부터 시작되어 다음 날 저녁 6시까지 24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날의 처음 12시간은 어둠이었고 이 어둠을 하나님은 직접 창조하셨습니다(사45:7).
f. 첫째 날 하나님께서는 우주 공간(the heaven)과 그 한중간에 지구(the earth)를 만드셨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1:1)
당연히 지구는 우주의 센터에 있고 실제 과학적으로 관측되는 자료들도 그렇다.
다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g. 그런데 아직 빛이 생기기 전, 지구의 상태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
라.”(창1:2)
h. 럭크맨 같은 재창조론자들은 루시퍼의 반역에 의해 2절의 어둠이 생겼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의 어둠은 첫째 날의 처음 12시간을 가리키는 어둠이고, 이 어둠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밤(the night)과 낮(the day)으로 구성되는 ‘첫째 날’이라는 한 날(one day)을
만들기 위해 몸소 창조하셨습니다.
i. 어둠은 결코 빛을 없애거나 끌 수 없습니다. 즉 빛이 있으면 완전한 어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빛이 잠시 나가면 그때에 어둠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의 근원이십니다. 그분은 첫째
날의 처음 12시간, 즉 저녁 12시간 동안 어둠이 있도록 하심으로 땅에 저녁과 아침이 있게 하셨습니
다.
j. 넷째 날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기 전까지 처음 3일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빛이라 할 수
있는 이 빛(cosmic ray)으로 낮과 밤을 구분하셨고 나흘째부터는 해가 있어서 낮과 밤을 구분하였
습니다.
k. 낮과 밤이라고 하면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쪽이 낮이면 미국 쪽은 밤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온 땅이 한 덩어리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 창세기의 낮과 밤은 하나님의 땅인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기준으로 해서 구분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l. 혹은 첫 3일 동안은 지구 전체가 12시간 동안 어두웠다가 12시간 동안 밝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넷째 날부터는 해가 있으므로 자연히 낮과 밤이 생겼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구가
돈다는 견해도 있고(지동설) 전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하루에 한 번씩 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지
구 중심설, 천동설). 성경은 후자를 지지하며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설명할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m. 천년왕국 이후에 이 땅은 사라지게 되며 이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옵니다. 그 세상에서 하나님은
성도들의 거처인 새 예루살렘 도시의 빛이십니다. “거기[새 예루살렘]에는 밤이 없겠고 등잔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로다.”(계22:5).
o. 그래서 하나님은 물리적으로 빛나는 영광을 내는 빛이시며, 지적으로 진리의 빛이시고, 도덕적으로
거룩함의 빛이십니다.
2. 별빛과 우주의 창조 연대
a. 많은 크리스천들과 불신자들은 수십억 광년의 별빛 문제로 인해 성경의 실제 6일 창조를 의심하면서
창세기 기록은 긴 연대를 상징적으로 축소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b. 이런 의심의 핵심은 우주 맨 끝의 별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려면 137억 광년이 걸리는데
어떻게 우주와 별과 지구가 6,000년 전에 동시에 형성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1광년(光年)은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진행한 거리로 천체 사이의 거리를 나타낼 때 쓰이는
단위입니다. 빛은 진공 속에서 1초 동안에 약 30만km를 진행하므로, 1년 동안 도달하는 거리는
약 9.46×10의 12승 km이며, 이 거리를 1광년이라 합니다.
c. 우리가 늘 보는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오는 데 약 8분 정도가 걸리니(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는
약 1억 4400만 km임) 우주 맨 끝까지의 거리는 말 그대로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d.물론 이러한 측정 자체가 지구에서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므로 그런 수치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호빈드의 강의:유튜브: 켄트 호빈드 별빛, 적색 편이, 창조론 세미나 7A, 7B
거리를 재려면 두 개의 변과 각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각도가 안 나온다.
최근에 나온 최고의 기술 SIM 기술, 사람이 잴 수 있는 거리 82,000광년
이것은 수백 배 향상된 것, 그러므로 그 전에 사람이 잴 수 있는 거리는 수백 광년
이것으로는 우리가 속한 은하계의 거리도 재지 못한다.
e. 그래도 여전히 먼 거리의 별빛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두 개의 해결책
2.1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성년 창조
a. 하나님은 우주를 초자연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우주를 이전의 물질로부터가 아니라 무에서
부터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역을 일곱째 날 끝내셨고 오늘날에는 유지만
하신다.
b. 별들이 창조의 첫 주에 초자영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지구에 빛을 비추시기 위해서 그것들
을 만들었기 때문에, 멀리 있는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방법은 당연히 초자연적일 것입니다.
c. 위에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성숙한 우주’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d. ‘성숙한 창조’(Mature creation)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성숙한 인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새, 짐승, 바다, 강, 물고기 등도 모두 성숙한 상태로 만드셨습니
다. 즉 창조의 한 주 이후에 아담과 이브 때의 나무를 보면 그것이 씨앗부터 자라나 최소한 몇
년은 성장한 나무로 보일 것이고, 바위도 며칠 전 것이라 믿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바닷가에
가면 바위에 이끼가 끼어 있고 산과 절벽도 아주 오래 전부터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도 외모는 20-30대로 보였을 테지만 실제 나이는 1주일, 즉 0살입니다. 비록 창조된
지 하루 이틀 되었을 뿐이지만 그 상태에서 그들은 아이도 낳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e. 우주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3일 동안 온 우주 공간을 어둠과 빛으로 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흘째 되는 날 별들을 만드시면 우주 맨 끝의 별들이 내는 빛도 이미
지구에 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즉 하나님은 우주 공간도 성숙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2.2 시간의 속도가 변하기에 가능하다는 해석
a. 많은 창조과학자들은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변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성숙한
창조를 믿으면서도 멀리 있는 별빛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b. 알려진 바와 같이 시간의 흐름은 운동과 중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c. ‘시간 팽창’: 어떤 물체가 빛의 속도에 근접하여 매우 빠르게 움직일 때 시간의 흐름은 느려지며
이것은 보통 ‘시간 팽창’(time-dilation)이라 불립니다. 따라서 어떤 시계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인다면 그 시계는 매우 천천히 갈 것이고 빛의 속도에 다다르면 완전히 멈출 것입니다. 이것은
시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효과는 시간의 흐름 자체가 느려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d. 마찬가지로 중력 역시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합니다. 높은 산의 꼭대기에 있는 시계는 해수면에
있는 시계에 비해 중력의 근원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좀 더 빨리 갈 것이고 실제
측정하면 그렇게 나타납니다. 그리니치 천문대(해수면), 콜로라도 보울더 천문대(1600m), 후자
가 1년에 5마이크로 세컨드 빨리 간다. 우리는 못 느낀다. 또한 지구 위에 떠 있는 GPS 인공위성
(36,000km)에서의 시간은 중력으로 인해 하루에 38마이트로 세컨드 실제로 빨리 간다.
e. 같은 원리로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들에서의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리 갑니다.
따라서 지구에 도달하는 데 수십억 광년이 걸린(우주 깊은 곳에 있는 시계로 측정된) 빛은 지구에
있는 시계로 측정될 경우 단지 수천 년 만에 지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지구에서는
중력으로 인해 우주의 다른 곳들에서보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심히 천천히 흘러갑니다.
f. 물론 이것은 창조 당시에 이미 수천 년이 흘러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간으로
빛을 측정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며, 진화론자들의 균일론, 즉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라는
해석 체계가 틀리고,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다른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
2.3 별과 빛의 속도
a. 별들은 30년마다 폭발해서 사라진다.
b. 신성, 초신성(Super Nova), 아무리 찾아봐도 초신성은 300개 이하, 30년, 9000년 이하
c. 별이 태어나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
d. 얼마나 많은가 60억 명 기준, 1인 당 11조개, 수를 셀 수 없다.
e. 지구에서 가장 큰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별, 4.5광년, 보면 그냥 점이다. 색깔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른다.
f. 실제로 빛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시간에 따라 감소하고 있다.
g. 1987년 자료에 따르면, 우주 형성 시점에는 지금의 100억 배, 실제로 빅뱅에서 주장하는 것
h. 하나님의 창조 시점에 빛의 속도가 지금의 100억 배라고 가정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i. 별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늘의 형성, 사40:22
성경에는 17번이나 하나님께서 하늘들을 펼치셨다고 말한다(stretch out). 렘10:12, 욥9:8
j. 그러므로 창조의 넷째 날 하나님은 별들을 지구 근처에 만드시고 흩어버리셨다. 천문학자들은
6000년 지나서야 우주 팽창을 말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은 옳고 사람은 무지함
이 드러날 것이다.
k. 그 결과 별들이 빈 공간으로 퍼져 나가면서 빛의 잔재를 남김, 우리 눈에는 6,000년, 그 수간
빛의 속도가 지금의 수백억 배이면 가능함. 그리고 빛의 속도가 변해서 지금처럼 줄어들면 멀리
있는 별들은 수백억 광년 떨어진 것으로 보임. 다만 측정은 불가능
하나님과 그분이 창조하신 우주의 신비를 유한한 인간이 다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주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확실한 말씀을
꼭 붙들고 하나님의 신비를 목도할 때까지 잠시 기다립시다.
로마서 11:33-36
33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들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았느냐?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되었느냐?
35 누가 그분께 먼저 드려서 다시 보답을 받겠느냐?
36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 3:22-23
22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21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유튜브: 켄트 호빈드 별빛, 적색 편이, 창조론 세미나 7A, 7B
Q&A
51. 성령님
개요: 신자들의 성령님에 대한 이해 부족(행19:2),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인격체이시다.
삼위일체: 아버지, 아들, 성령님, 한 하나님
성령님은 구약에 100여 회, 신약에 261 구절에 나온다. 복음서에 56회, 사도행전에 57회, 바울
서신에 112회, 나머지에 36회
이 구절들은 성령님이 신자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확증한다.
I. 성령님은 인격체이시다: 지성, 감성, 의지, ‘그분’(he)으로 표현됨(요15:26; 16:13; 엡1:13-14)
A. 생각이 있으시다(롬8:27; 34). B. 사람의 마음을 살피신다(고전2:9-10).
C. 의지가 있으시다(고전12:11). D. 금하신다(행16:6-7). E. 허용하신다(행16:10).
F. 말씀하신다
1. 빌립에게(행8:29), 2. 베드로에게(행10:19), 3. 안디옥의 성도들에게(행13:2)
4. 일곱 교회에게(계2-3; 2:7a; 2:11, 17, 29; 3:6, 13, 22)
G. 사랑하신다(롬15:30; 계3:19, 22). 신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에게 사랑을 받는다(아버지
요14:21; 16:27, 아들 갈2:20, 성령님).
H. 슬퍼하신다(엡4:30).
I. 기도하신다(롬8:26).
II.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
A. 성령님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
1. 하나님의 생명(롬8:2), 2. 하나님의 거룩함(마12:32; 롬1:4), 3. 하나님의 의(롬8:4)
4. 하나님의 진리(요14:17), 5. 하나님의 은혜(히10:29), 6. 하나님의 사랑(롬5:5; 15:30; 갈
5:22), 7. 영원하시다(히9:14), 8. 주권적이시다(고전12:11), 9. 무소부재하시다(시
139:7-12), 10. 전능하시다(욥33:4; 창1:1; 시104:30; 미3:8; 슥4:6).
11. 전지하시다(사40:13-14; 요16:13; 고전2:10-12; 시139:1-6).
B. 그분은 하나님이시다(행5:3-4).
C.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시다.
1. 그리스도의 침례(마3:16-17)
2. 그리스도의 말씀(요14:16)
3. 올리브 산에서 그리스도의 말씀(마28:19-20)
4. 바울의 서신(고후13:14)
5. 베드로의 서신(벧전1:2)
III. 성령님의 이름과 호칭: 13가지
A. 하나님의 영(고전3:16), B. 그리스도의 영(롬8:9), C. 영원하신 영(히9:14)
D. 진리의 영(요16:13), E. 은혜의 영(히10:29), F. 영광의 영(벧전4:14)
G. 생명의 영(롬8:2; 계11:11) 죽음과 반대, H. 지혜와 계시의 영(엡1:17; 참조 호4:6; 마
22:29), I. 위로자(요14:26), J. 약속의 영(행1:4-5), K. 양자 삼으시는 영(롬8:15)
L. 거룩함의 영(롬1:4; 참조 사6:1, 3, 5), M. 믿음의 영(고후4:13)
V. 성령님의 사역: 사도행전 2장 이전에 구약시대에도 여러 사역을 하셨다.
A. 우주 공간(창1:2)
B. 성경 관련 사역: 계시, 영감, 조명(벧후1:20-21)
C. 이스라엘 관련 사역
D. 마귀에 대한 사역
E. 예수님과 관련된 사역
F. 죄인들에 대한 사역(요16:7-11); ‘reprove’(꾸짖는 사역)
1. 깨닫게 한다. 죄, 의, 미래의 심판
G. 교회와 관련된 사역, 교회 시대: 자세한 것은 조직신학 28, 29 참조
H. 오순절 사건과 성령님의 사역: 역사상 가중 중요한 날 중의 하나(행2:1-4)
1. 오순절의 배경: 행1:4의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성령님이 오시는 것(욜2:28; 행2:16-17)
a. 구약과 달리 성령님께서 온 세상 모든 곳에서 일하심
b. 그분의 내주 사역은 영원하다(비교 삼손 삿14:6, 19; 15:15; 16:20, 사울 삼상10:10;
16:14, 다윗 삼상16:13; 시51:11). 그리스도인은 다윗의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다.
c. 내주 사역(요14:16; 참조 14:26; 15:26; 16:7)
d. 그분의 사역은 완전하게 하는 것이다(성화). 구약의 삼손과 사울 등은 권능은 받았지만 영적/도덕
적 순수함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신약에서 성령님은 성도를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와 같게 만드신
다(고후3:17-18).
2. 오순절의 연대기—오순절은 말 그대로 50을 뜻한다. 레23의 6대 명절은 삼위일체의 미래 사역을
종합적으로 보여 준다.
a. 유월절과 무교절—갈보리(레23:4-8; 고전5:6-8)
b. 초실절—부활(레23:9-14; 고전15:23)
c. 오순절(The Feast of Seven Weeks)—오순절 성령 강림(레23:15-21; 행2:1)
d. 나팔절—휴거(레23:23-25; 살전4:13-18)
e. 속죄일—대환난(레23:26-32; 마24:21)
f. 장막절—천년왕국(레23:33-43; 계21:3)
I. 성도들과 관련된 사역: 죄인이 회개하면 다섯 가지 일이 생긴다.
1. 성령님께서 그 사람을 중생시킨다(다시 태어나게 한다). 딛3:5; 요3:3-7; 벧전1:23
칼빈주의 No!
2.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침례를 준다(롬6:3-4; 고전12:13; 엡4:4-5; 골2:12). 물 침례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넣는 이유
a.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위해(요17:21)
b. 그리스도의 신부를 준비하게 하기 위해: 오순절부터 휴거까지의 모든 성도들 한 신부(롬12:5;
고전10:17; 12:13; 12:27, 참조 엡1:22-23; 4:4, 12; 5:30; 골3:15; 고후11:2;
계19:6-9)
3.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신다(내주, 고전3:16; 6:19, 참조 요7:37-39; 14:16; 롬8:9;
고전2:12; 요일3:24)
a. 목적: 새 창조물을 제어하시려고(고후5:17; 갈5:16-18)
4. 성령님께서 그 사람을 봉인하신다(고후1:22; 5:5; 엡1:13; 4:30).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
등기 우편
5. 성령님께서 성도를 채우신다(행2:4). 충만, 채우는 것과 내주하는 것의 차이, 손님이 초대를
받음. 주인이 조그만 방에만 들어가게 함. 나중에는 모든 방에 들어가게 함. 성령님은 초대받은
손님, 주인은 신자, 방은 신자의 삶, 채우는 것은 신자가 성령님에게서 무엇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신자에게서 더 많이 받는 것을 뜻한다. 주인이 의지를 굽히고 협조해야 함.
6. 성령님의 다섯 가지 사역 종합정리(중생, 침례, 내주, 봉인, 충만)
a. 다섯 가지 사역은 동시에 믿음에 의해 일어난다(어느 것도 감정에 의해 일어나지 않는다).
b. 첫 네 사역은 영원히 소실되지 않으므로 다시 간구할 필요가 없다.
c. 다섯째 사역(충만)은 소실되므로 간구해야 한다(엡5:18; 갈5:16). 충만은 사도행전의 사례들에
서 발견된다.
(1) 사도들(행2:4; 4:31-32; 13:52)
(2) 베드로(행4:8; 6:3)
(3) 스데반(행7:55)
(4) 바울(행9:17; 13:9)
(5) 바나바(행11:24)
d. 첫 네 사역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준다(롬5:1). 원수 관계 청산, 모든 성도
e. 다섯째 사역은 하나님의 화평을 준다(빌4:7). 기쁨이 넘치는 삶, 성령 충만한 성도
f. 다섯째 사역은 불순종을 통해 소실된다.
(1) 성령을 억누름으로(살전5:19)
(2) 성령을 슬프게 함으로(엡4:30), 전도의 기회를 버리는 것, 아나니야와 삽비라(행
5:1-11, 요일5:16, 고전9:26-27)
g. 다섯째 사역은 회복된다.
(1) 용서와 정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게 됨으로(요일1:7)- 그리스도의 피
(2) 용서와 정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게 됨으로(요일1:9)- 신자의 고백
하나님은 금 그릇이나 은그릇을 원하지 않고 깨끗한 그릇을 원하신다.
• 성령님과의 연합은 너무나 강해서 어떤 것도 깰 수 없다.
• 성령님과의 교제는 너무나 약해서 가장 작은 죄라도 깰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족이 여행을 감. 대전까지 문제없음. 고장이 남. 기사가 와서 고침.
그러면 가다 말고 다시 서울로 갈까? No! 계속 간다.
처음에 믿으면 잘 간다. 악한 언행 등으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 성령님이 고쳐 준다.
또 간다. 멈춘 것은 잠시 동안이다. 과거의 것은 그대로 유지된다. 고백과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수리된다.
h. 다섯째 사역은 신자에게 다음의 복을 준다.
(1) 성령님의 기도(롬8:26; 참조 엡6:18; 유20)
(2) 성령님의 인도(요16:13; 롬8:14)
(3) 성령님의 가르침(요일2:27; 요14:26)
(4) 성령님의 전도 능력 부여(행1:8)
(5) 그리스도의 사랑의 채널(롬5:5)
(6) 그리스도의 형상에 동화되게 함(고후3:18 비교 빌3:21; 요일3:2)
(7) 새 본성을 강하게 하심(엡3:16; 벧전2:2; 유20).
(8) 성경의 진리를 알게 하심(고전2:10).
(9) 구원과 섬김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함(롬8:16; 요일3:24).
(10) 자유를 줌(롬8:2; 고후3:17).
(11) 말할 것을 입에 넣어 줌(막13:11; 비교 행4:8-22; 5:29-33; 7:55)
(12) 성령 충만 구절 비교(행2:13; 엡5:18).
(a) 사람을 지배하고 담대함을 준다.
(b) 더 달라고 한다.
Q&A
52. 성령님의 은사(선물)란 무엇인가요?
신약 성경을 읽으면 많은 기적이 나온다. 예수님 당시, 사도들 당시, 바울
나도 그런 것 해 보면 좋겠다: 외국어, 예언(대언), 죽은 자를 살리고 암 환자 고치고
장풍, 뒤로 쓰러뜨리고, 기도원,
그런 것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교단도 나온다. 오순절 은사주의, 순복음
예수님 승천 이후 성경 기록의 완성(AD 90), 그 이후 약 1800년 동안 이런 현상 No!
요한 웨슬레, 무디, 스펄전, 마틴로이드 존스
1850년 대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오순절 은사운동은 이제 카톨릭과 성공회 루터교 안에서도
성행하며 고통적인 현상으로 인해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 종교통합
오순절주의자들의 주장: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은 이른 비, 이 시대
은사주의는 늦은 비, 성경의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팔레스타인 땅에 내리는 실제적인 비
이 사람들의 주장: 교리는 달라도 현상이 하나가 아니냐? 모두 성령의 은사 추구
지난 주 <Q & A 성령님은 누구신가요?> 결코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무질서, 광란의 도가니와 성령님은 무관하다.
마가의 다락방에 없던 것들(행2:1-4)
오순절은 반복되지 않는다.
이들의 캐치프레이즈(히13:8), 예수님은 동일하시다. 그러니 지금 광란의 도가니
인류 역사 6000년, 기적은 모세와 엘리야 시대 그리고 예수님과 사도들 시대 약 100년 동안에만
존재한다. 매일 기적이 일어나면 사람이 살 수 없다.
이 기간은 특별히 이스라엘이 국가를 형성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극도의 배도의 시절
하나님의 특별 개입이 필요한 때
그러므로 매일 기적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불신의 행위
기적은 눈으로 보는 것, 믿음의 반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요구한다(마12:39).
예수님의 기적은 다 메시아 표적 이행
사도들의 기적(마16:17-20), 이것 여기 때가 지나면 사라진다.
사도 바울: 자기를 못 고침, 드로비모, 디모데고전13:8, 사라진다. 특히 대언, 타언어 등
병 고침, 사도 시대 초기에 베드로의 경우 감옥 문이 열림, 후기에 바울의 경우 감옥에서 죽음
하나님의 계시가 발전하면서 이런 선물들 중 더러는 사라진다. 역사의 기록이 증언함
그러다가 언제 표적과 기적이 급증하는가? 예수님 오시기 바로 전의 7년 환난기(살후2:8-12)
이런 일을 위해 미리 가짜들이 판을 짜고 있다(계13장의 기적을 보라).
J. 영적 선물과 관련된 성령님의 사역(엡4:4-8).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주시기를 기뻐하는 분이다.
그래서 그것을 간단히 선물(gift)라고 표현하는데 개역 등은 은사라는 말로 썼다.
1. 영적 선물의 정의: 영적 선물은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해 성도가 다시 태어날 때 주신 초자연적
능력(supernatural ability)이다. 그리스어 charisma; charis에서 옴. 은혜 선물
그러니까 학습해서 받을 수 없다.
2. 영적 선물의 범위
a. 모든 성도는 최소한 하나의 선물이 있다(벧전4:10; 엡4:7; 고전7:7; 12:7; 12:11).
b. 모든 선물을 가진 성도는 하나도 없다(고전12:29-30).
3. 영적 선물의 목적
a. 아버지를 영화롭게 함(계4:11).
b. 교회를 세워 줌(엡4:12-13).
4. 영적 선물의 수: 롬12, 고전12, 엡4를 보면 총 18개 선물이 나와 있다.
5. 영적 선물의 본질: 18개 선물은 영구히 지속되는 ‘청지기 선물’과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표적
선물’로 나뉜다.
a. 표적 선물(사라지는 선물)
(1) 사도, (2) 대언(예언 No!), (3) 기적, (4) 병 고침: 병 고치는 선무의 부재와 하나님이
병을 고치는 것과는 다르다, (5) 타언어(방언), (6) 방언 통역, (7) 지식
b. 청지기 선물(지속되는 선물)
(1) 지혜, (2) 영 분별, (3) 주는 것, (4) 권면, (5) 섬김, (6) 긍휼을 베푸는 것
(7) 다스리는 것, (8) 믿음(*), (9) 가르치는 것, (10) 복음 선포자, (11) 목사 겸
교사
c. 이런 구분의 근거는 무엇인가, 히13:8과 다르지 않는가?
d. 하나님이라는 인격체와 그분의 프로그램을 구분해야 한다. 그분은 결코 변하지 않으나(히
1:10-12; 약1:17), 그분의 프로그램은 종종 변한다. 구약과 신약, 노아의 방주, 성전의
희생 예물, 예수 그리스도, 선물도 마찬가지
e. 이런 것을 알면서도 왜 어떤 선물은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지 이해하기 어렵다.
f. 그 이유는 영적 선물 자체가 기적의 요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완성되기 전인 AD
50-60년경에 당신이 직통 계시를 받은 대언자라고 가정하자. 당신의 대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적을 보임으로
(1) 예수님의 사역(요3:2; 마10:1, 7-8; 11:2-5; 요20:30-31)
(2) 바울의 사역(롬15:18; 고후12:12)
(3) 사도들의 사역(히2:4)
g. 처음에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 기적 선물들이 필요하였지만 성경이 완성되어
진리와 오류를 구분해 주면서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h. 성경 기록만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마지막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보여 주었다(딤후3:15-16).
★ 일곱 가지 기적 선물
1. 사도(엡4:11; 고전12:28):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사람들, 교회의 초대 멤버, 사도는 ‘파송 받은
자’, 제자는 ‘배우는 자’, 그러므로 사도는 다 제자지만 제자는 다 사도가 아니다(요6:66-67).
a. 사도의 요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행1:22; 고전9:1).
b. 사도의 표적(고후12:12), 지금 없다. 신사도 등 다 가짜
2. 대언(롬12:6; 고전12:10; 14:1, 3-6; 엡4:11): 미래와 현재의 일 대언
a. 미래(고전15:51-55), foretell(미리 말함)
b. 현재(고전3:1-3), forthtell(밖으로 널리 알림): 현시대의 설교(설명, 권면, 위로, 책망 등),
<The art of prophesying>
c. 직통 계시, 귀속말 모두 가짜
3. 기적(고전12:28): 초능력 발휘
a. 목적: 하나님의 권위 입증(요3:2; 20:30-31; 롬15:18; 고후12:12; 히2:4)
b. 성경 기적의 세 시대
(1)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약 25개 기적)
(2)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약 21개; 엘리야 7, 엘리사 14)
(3)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약 50개)
(4) 이 세 시대에는 기적이 없이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비윤리와 무관심과 타성을 깰
수 없었다.
4. 병 고침(고전12:9, 28, 30): 정신적, 육적, 마귀적인 병을 고치는 초능력
a. 목적: 기적과 같다.
b. 병 고침 선물의 한계
(1) 예수님은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의 병을 고쳐 주지 않았다(눅4:25-27).
(2) 바울은 병 고침에 제약이 있었다.
(a) 본인 자신(고후12:7-10), (b) 에바브로디도(빌2:26-27)
(c) 디모데(딤전5:23), (d) 드로비모(딤후4:20)
(3) 병 고침의 선물을 사라졌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병을 고치신다. 믿음의 기도는 병을
고칠 수 있다. 조건은 하나님의 뜻이다(요일5:14).
5. 방언(타언어)(고전12:10): 방언만큼 논쟁에 뜨거운 주제도 많지 않다.
a. 방언 구절
(1) 약속(막16:17)
(2) 역사: 사도행전의 3군데
(a) 오순절 날 예루살렘(행2:1-4)
(b) 가이사랴의 고넬료 가정(행10:44-47)
(c) 에베소(행19:5-6)
(3) 교리(고전14:5, 27)
b. 방언 기록들에 대한 관점: 지금까지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말한 것이다
c. 방언의 목적
(1) 부정적인 면
(a)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전14:4, 19).
(b)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고전14:22), 잘못하면 미친 사람이 된다(23)
(c) 이것은 성령 침례(구원)를 증명하지 않는다(고전12:13; 롬6:3-4; 골2:9-12;
엡4:5; 갈3:27-28).
(2) 이 시대에 불필요, 녹음해 본 결과 진짜 외국말은 없다.
(3) 그러므로 구원받으면 방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4) 바울은 교회에서 설교가 방언보다 2,000배는 낫다고 하였다(고전14:19).
6. 방언 통역(고전14:13, 27-32)
a. 이 선물은 두 가지로 사용될 수 있다.
(1) 자신의 타언어 통역(고전14:13)
(2) 다른 사람의 타언어 통역(고전14:27)
b. 두 개의 통역이 동시에 주어져서는 안 된다(고전14:29-32).
c.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방언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전14:28).
★ 열한 가지 청지기 선물
1. 지혜(고전12:8)—성경에는 4종류의 지혜가 언급된다.
거룩히 구별하는 지혜(약1:5)
청지기 지혜: 영적 원리를 현 시대 문제에 바르게 적용하는 것, 이것이 지혜 선물이다.
2. 영 분별(고전12:10; 요일4:1): 마귀의 일과 성령님의 일 구분, WCC, 은사운동, 종교일치
3. 주는 것(롬12:8)—다른 사람을 위해 큰 돈과 시간을 희생하며 주는 것, 대부분의 성도들이 기적
선물에는 관심이 많으나 이 선물에는 없다. 여러 교회들이 이 선물을 가졌다.
4. 권면하는 것(롬12:8)—긍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것, 성경에서 성령님은 위로자로 나오는데
(요14:16) 이 말과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권면하는 자는 위로자 성령님의 역할을 한다. 도전을
주고 격려하고 꾸짖는다.
5. 섬기는 것(롬12:7; 고전12:28)—육신적, 영적 문제에서 남을 섬기는 것, 도움을 주는 선물(고전
12:28). 모세와 그의 형 아론 그리고 훌(출17:8-12).
6. 긍휼을 베푸는 것(롬12:8)—아픈 사람, 고통 받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 선한 사마리아 사람(눅
10:30-37)
7. 다스리는 것(롬12:8; 고전12:28)—행정, 관리 능력, 디도(딛1:4-5), 이것이 없이는 지역 교회의
성장이 멈춘다.
8. 믿음(고전12:9)—성경에는 세 종류의 믿음이 나온다.
c. 청지기 믿음: 어떤 성도들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으로부터 큰일들을 기대하는 선물
9. 가르치는 것(롬12:7; 엡4:11; 고전12:28)—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성장하게 하는 것
10. 복음 전도자(엡4:11), 전도자의 선물이 아니라 전도자가 선물이다.
a. 개인적인 측면: 죄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 모든 성도들은 이 책임을 가지고 있다.
빌립(행8:5-12; 21:8), 베드로(행2:37-42), 바울(행19:18-20)
b. 선구자적인 측면: 교회를 세우는 것, 바울(행14:21-23; 15:41; 롬15:20)
11. 목사 겸 교사(엡4:11)—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고 양떼를 먹이는 것
a. 목사의 은사가 아니라 목사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K. 성령님의 열매와 관련된 사역: 이 땅에서 성령님의 최종 목표, 열매를 맺게 하는 것(롬6:22;
7:4; 골1:10), 성화 사역, 구원과 성화(엡2:8-10)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면 반드시 맺는 것: 우리의 목표는 열매이지 은사가 아니다.
1. 내적 열매: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갈5:22-23; 엡5:9)
c. 성령님의 열매는 단수로 되어 있다. 성령님의 선물들은 복수이다. 그 이유는 성령님의 열매는
모든 신자가 맺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d. 구원받은 이후에 성도는 사과나무 과수원과 포도원으로 인도를 받는다.
(1) 과수원; 각각의 나무에 18개의 사과가 열려 있다. 성령님은 몇 개의 사과를 주신다.
(2) 포도원: 포도나무에 포도송이가 있고 그 송이 안에 11개의 포도가 있다. 성령님은
포도송이를 주신다.
2. 성령님의 열매
a. 사랑(골3:14), b. 기쁨(갈5:22; 롬14:17; 살전1:6), c. 화평, 평안, 평강
d. 오래 참음(고후6:6), 하나님의 속성(벧후3:9), 구원과 성숙을 위한 기다림(벧후3:14-15),
e. 부드러움(딤후2:24; 딛3:2), 모든 것을 수용하는 친절한 태도, gentleman(고후10:1),
f. 믿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 성화의 믿음(엡6:16)
g. 선함,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h. 온유, 힘이 있음에도 힘을 누르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
모세(민12:3), i. 절제(고전9:19-27)
유튜브 조직신학 28-32 성령님, 고린도전서 강해 21과 22, 방언, 신유와 축사, 뉴에이지
Q&A
53. 은혜란 무엇인가요?
1. 은혜의 정의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말, 그런데 많은 경우 뜻도 모르고 오해하는 겨우도 있음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우리가 교회 갔다 오면서 “오늘 목사님 설교가 은혜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할
때의 은혜와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참 중요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가서 ‘그레이스’라는 단어를 성경 전체에서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단어는 성경에 170번 나왔습니다. 그레이스만 170번 나오고 ‘그레이셔
스’(31회), ‘그레이셔스리’(4회) 등을 다 찾으면 200번 이상 나온다.
은혜라는 단어는 창세기 6장 8절에 처음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대홍수로 온 세상을 멸망시키려 할
때 노아라고 하는 의로운 사람을 찾으셨는데 이 장면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다.”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홍수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가운데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의 맨 마지막 장 맨
마지막 절은 요한계시록 22장 21절입니다. 여기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
다. 아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맨 마지막에 예수님의 은혜를 언급하면서 끝납니다.
은혜는 한 마디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거저 베푸시는 호의’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기독교에서는 이 은혜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얻은 하나님의 부요함”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께서 부요하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자신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2. 세상 종교와 기독교: 은혜와 행위 시스템
이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는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믿음의 시스템 자체가 다릅니다.
이 세상 종교의 특징: 이 세상의 모든 종교에는 규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따라서 선행을 자꾸
쌓으면 나중에 천당이든 극락이든 간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는 공통적으로 선행으로 악행을 보상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즉 나중에 죽어서 심판자
앞에 가면 거기에 선행과 악행을 재는 저울이 있습니다. 그때에 심판자가 저울의 양쪽 끝에 선행과
악행을 올려놓습니다. 이때에 선행이 악행보다 많아서 저울이 선행 쪽으로 기울면 이 사람은 극락이나
천당에 간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 시스템이 다 이것을 믿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것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기독교에서는 우리의 행위와 상관이 없이 하나님이 구원과
영생이라는 선물을 거저 주십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구원에 관한 한 믿음으로 되는가, 행위로 되는가의
문제에서 100% 믿음으로 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을 뜻합니다.
행위는 사람의 구원에 일조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은혜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은혜가 무엇인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4장 1-5절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육체에 관한 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발견했다고 우리가 말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으면 그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그에게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느니
라.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려면 국어를 잘해야 됩니다. 즉 성경을 읽고는 성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문맥을
잘 보고 문단의 대강을 잘 파악해야합니다.
2절을 보니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으면 그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그에게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행위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3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가 하나님을 믿은 것은 행위입니까, 아닙니까? 지금 저는 교리가 아니라 국어를 묻고 있습니다.
2절은 아브라함이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다음 절은 그가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겨 주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 대목은 아브라함이 구원받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그가 믿은 것은 행위입니까, 아닙니까?
칼빈주의 예정론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믿는 것도 행위’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그들은 믿는 것도
사람이 믿으므로 행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왜곡하
면 안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여기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아브라함
이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 믿음을 의로 여겨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행위가 아닙니다. 분명합니까?
그다음에 나오는 4, 5절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직장에 가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열심히 일했더니 사장님이 월말에 2백만
원의 월급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홍길동 씨는 그 월급을 보수(報酬)로 생각할까요? 아니면 사장님이
주는 은혜로 생각할까요? 물론 보수로 생각할 것입니다. 왜 보수로 여길까요? 일을 했으니까 일을
하고 무언가 거기에 상응하는 것을 받았으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보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거저 은혜로
주어집니다. 얼굴이 잘나고, 돈이 많고, 신학 공부를 많이 하고, 십일조를 열심히 죽을 때 까지 하고,
30억 원을 건축헌금으로 냈더니 하나님이 “너는 내 자녀다.”라고 하시면서 구원과 영생을 주면 그것은
보수를 받은 것입니다. 은혜가 아닙니다. 내가 준 것을 다시 받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것은 다 보수입니
다. 빚 준 것을 다시 돌려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아무 일도 안했는데 거저 받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아빠가 만원을 주면서
“아들아, 정말 너 잘 커줘서 고맙다. 용돈하렴.”하면 이것은 빚일까요, 아빠가 거저 주는 선물일까요?
선물입니다.
바로 이런 선물이 은혜입니다. 아이가 아무것도 안했는데 아빠가 “너 여태까지 이렇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하고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는데 누가 그 대가나 보수로 무엇을 주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닙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니까 누가 보답으로 무엇을 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보수입니다.
로마서 11장 6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그것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과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칭의,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신
것,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 등과 같은 모든 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로 되든지, 100% 행위로
되든지 둘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99%는 은혜로 되고 1%는 행위로 되는 법은 성경에 없습니다. 로마서 11장 6절에 따르면
행위면 100% 행위이고 은혜면 100% 은혜이지 중간에 비스듬하게 껴서 반반씩 되거나 99% 행위
1% 은혜로 되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모든 선물을 100% 은혜로 준다고
말합니다.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롬4:4-5).
비록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은 행위가 없어도 경건치 아니한 자, 하나님을 닮지 않은 자, 죄에 빠져
사는 사람과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십니다.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거저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 종교인들이 착각하거나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불교도들보다 선행을 못 하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때에 저는 “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의 종교 시스템은 선행을 많이 해서 나중에 선행이 악행보다 더 많아야
구원을 얻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거룩함과 의는 그렇게 얻지 못합니다. 세상의 것들은 그렇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것은 그렇게 얻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런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개미와
사람이 다르듯이 하나님과 우리는 클래스가 다른 종류의 존재입니다. 개미의 일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의 것을 가지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개미들이 사는 동네에 사람이 지은 다리가 무너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개미들이 하는 일로는 그런
다리를 치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죄라는 엄청난
규모의 다리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람이 노력해도 그 죄를 치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64장 6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사람의 모든 의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걸레 조각과 같습니
다.
그러나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갔나이다.
사람이 쌓아놓은 선행과 의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걸레와 같습니다. 마더 테레사든 교황이든
신부든 목사든 대통령이든 다 같습니다.
주인의 사랑을 받는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강아지가 밖에서 놀다가 소 갈비뼈를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사실 강아지에게는 그것이 대단히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거기 붙어 있는 살
조각 등을 보니 침이 꿀꺽 넘어갔지만 그날 강아지는 자기 주인에게 그 동안의 은혜에 선물을 해야겠다
고 작심하고는 뜯어먹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 갈비뼈를 물고 집에 가서 안방에 가져다놓고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지난 후 주인이 오자 강아지는 칭찬을 듣기 위해 그 갈비뼈를 물어다가 자꾸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상한 눈초리라 강아지를 바라보다가 야단을 쳤습니다. “이
더러운 것을 왜 집으로 가져 와서 난리야! 집안이 지저분해졌잖아!” 강아지에게는 그 더러운 갈비뼈가
보물이지만 주인에게는 더러움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는 주인이 이야기했습니다. “ 네 마음은 알지만
다시는 이런 것 가져오지 말렴. 네가 나와 함께 있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내가 주는 모든
것을 마음껏 먹고 놀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자신의 것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에게는 이런 개념이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천원을 주면서 빵을 사
먹으라고 하면 대개 순진하게 “고맙습니다.”하고는 은혜로 그것을 받고 아무 소리 안하고 가서 빵을
사 먹습니다. 그런데 어른에게 돈을 주면서 무엇을 하라고 하면 “왜 돈을 주십니까? 무엇을 바라십니까?”
등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어른이 되면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에 이미 머리가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거저 준다고 하면 무슨 다른 속셈이 있느냐고 자꾸 묻습니다.
3. 은혜를 거저 얻는 이유
그러면 왜 구원을 거저 받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필수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다 거저 주십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공기를 보기 바랍니다. 공기가 없이 5분이나 10분 지나면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10분 동안 숨 안
쉬고 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돈 내고 공기 사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너무 귀중한 것’은 100% 거저 주어집니다. 사람이 돈 내고 사먹을 수 없습니다.
한번 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햇빛이 한 시간만 안 비치면 온 지구가 꽁꽁 얼어 모든 것이 죽습니다.
이 햇빛도 거저 받습니다. 우리 모두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면서 조금이라
도 일조한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같이 너무 귀중한 것은 사람이 무엇을
해서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보통 칠팔십 년을 삽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일도 하나님이
다 거저 해 주시는데 하물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즉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귀중한 것을 돈이나 명예나 헌금이나 십일조로
살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이런 귀중한 일에는 우리의 행위가 하나도 도움이 안 됩니다. 인생의
모든 일은 다 누더기 걸레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의 생명과 연관이 있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하나님이 다 거저 주십니다. 이 세상의 생명도 그렇고 앞으로 우리에게 임할
영원한 생명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도 거저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으로, 행위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삽니까?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저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면 풀이 죽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죄를 짓듯이 청소년들도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합니다. “목사님 그것이 맞긴 맞는데요. 그런데 분명히 맞음에도 불구하
고 저는 또 죄를 지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합니까. 죄를 또 지으면 제 구원이 어떻게
됩니까?”
목사님에게 청소년 아이가 이렇게 심각하게 물으니까 그 목사님이 그 아이에게 대답했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문제니?”
잘 깨닫기 바랍니다. 만일에 사람이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가 거저 주어졌다가
다시 회수된다면 그것이 과연 은혜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내가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에 의해서 하나님이 거저로 주었던 것을 다시 빼앗아 가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이해하시
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내가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면 구원받은 것 같고 내가 무엇을 안 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 같은 것은 우리의 감정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영원토록 사는 것이 구원이므로 이런 구원은 하나님이 거저 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사람이 일을 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 그것은 이 세상 종교 시스템의 구원이요,
마귀가 가져다주는 허구의 구원입니다.
4.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이가 아무것도 안했는데도 아빠가 “너 너무 착하다.”고 하면서 돈을 주고는 새우깡을 사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저는 싫습니다.”하고 안 받으면 그 돈이 은혜의 선물이 될까요?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누구든지 아들을 믿으면 이 구원의 선물을 은혜로 주겠다고 공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값없이 와서 선물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예수님은 구원받은 사람들만을 위해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선물을 주시면서 거저 받으라고 하는데
“저는 싫습니다.”하고 죽을 때까지 버티면 하나님의 은혜가 실질적으로 그 사람에게는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 베풀어 놨어도 사람이 “나는 싫습니다.”하고 자유의지를 써서 그것을 거부하면
하나님은 그대로 두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자유의지를 꺾고 그 사람에게 강권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가져다주시는 일은 성경에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고 생각합시
다. 이 경우 상대방이 “제가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하고 자신의 의지를 꺾고 “제가 믿겠습니다.”하고
는 예수님을 자기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은혜가 효력을 발휘합니다.
지금 저는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미 구원받을 자를 정해 놓고는
그 사람이 의지적으로 아무것도 안 해도 “결국 너는 구원받는다.”고 하는 일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은혜의 선물을 인지하고 또 형편없이 파산된 우리의 상태를 분명히
확인하며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길 즉 예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제가
졌습니다.”하고 우리 자신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은혜에 ‘올인’하는 것이 바로 구원받는 길입니다.
이때에 의지적으로 예수님을 수용하는 일이 없으면 구원받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5. 은혜와 행위
이제 에베소서 2장 8-10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
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선한 일을 안 해도 됩니까? 선한 행위가 없어도 됩니까? 안 됩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는 반드시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위의 성경 말씀이 분명히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이 선한 행위를
해야 합니다. 최소한 이론적으로 그렇고 실제로도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선한 행위를 왜 합니까?
구원받으려고 합니까? 아니면 구원받은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합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선한 행위를 쌓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선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한 영이 우리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 영의 인도에 따라 선한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에 따라 우리의 자유의지를 굽히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선한 행위를 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혜와 긍휼을 베풀고 또 받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호의를 받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구원받고 구원의 감격으로 인해 기뻐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선한 행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나빠서 나는 교회에 안 갑니다.”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아주 미워하는 분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다만 사람이 잘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잘못해서 오해하고 또 교회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원래 예수님의 복음에는 그렇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구원받을 때에는 우리의 행위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후에는 내 주변의 모든 이웃을
향해서 선한 행위를 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또 그것이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책임입니다.
Q&A
55. 다니엘의 70이레와 7년 환난기: 다니엘서 9장
세상의 여러 일들이 말세의 끝이 가까이 옴을 보여 준다.
휴거 이후에 7년 환난기가 온다고 하는데 왜 그 기간이 7년인가요?
휴거 이후에 환난이 와서 교회는 환난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환난 전 휴거’(Pre-tribulation
rapture)라고 하는데 이것을 중명하는 구절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류의 역사를 구상해 놓으시고 그대로 운영하신다.
그 책이 바로 다니엘서, 바빌론, 메대/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그리고 다시 부활하는 로마의 적그리스도
제국, 그리고 하늘의 왕국(천년왕국)(단2).
성경의 예언은 제대로 잘 선포해야 한다. 성경 전체를 보고 문맥 안에서 무리하지 않게 해석해야 한다.
특히 단8-12장은 유대인들에 대한 예언이다. 교회는 나오지 않는다(마24-25; 계4-19).
다니엘서 9장에는 유명한 70이레의 예언이 나온다.
9장을 기록할 때 다니엘은 85세 정도의 노인
주전 606년경에 바빌론의 1차 침공 때 아이로 끌려와 67년 정도를 거기서 보냄
유대인들의 미래: 언제 포로 생활이 끝날 것인가?
2절: 예레미야서를 통해 바빌론 포로 생활이 70년임을 알게 됨
예레미야 25장 11-12절, 포로생활의 이유와 기간(11-12), 렘29:10-14도 기간(특히 10절)
70년인 이유: 안식년을 지키지 않음(레26:40-42; 대하36:19-21).
3-19절: 금식하고 기도하며 회개하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간구함(18-19)
20-21절: 천사 가브리엘이 그에게 손을 댐
24절: 유대인들에게는 최종적으로 70년이 아니라 70이레를 정하였다.
여기의 이레는 단순히 일곱을 뜻한다. 그러므로 일곱을 70개 정하였다. 그러면 일곱 무엇인가?(초,
분, 시간, 날, 달, 해..),
A. 성경의 거의 모든 학자들이 이레(week)를 7일로 본다.
B.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최종 계획은 70년이 아니라 70이레, 70이레는 490일이다.
C. 그런데 여기의 하루를 실제 하루로 하면 문제가 안 풀린다. 490일은 겨우 1.36년 No!
D. 하루를 일 년으로 보아야 한다(민14:34; 겔4:6). 거의 모든 주석가들과 목사들이 이에 동의한다.
E. 다니엘이 이 예언을 받을 때는 BC 540년경, 그때 이후의 어느 시점에 예루살렘을 회복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25절) 그때로부터 69이레 즉 483년이 지나면 메시아가 죽을 것이다. 즉 성벽
건축 명령부터 메시아까지 7이레+ 62이레=69이레, 483년, 이때에 거리와 성벽이 건축된다.
F. 느헤미야 당시 BC 445년의 아닥사스다의 칙령, AD 30년의 주님의 죽음, 30일을 기준으로
정확히 483년(태양력으로는 476년), 그리스도까지 483년
G. 그 62이레 후에(총 69이레) 메시아가 죽는데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다(26절).
유대인들의 메시아 거부,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기를 원치 않
나이다”(요19:15).
그리고는 26절 중간에 갑자기 장차 임
할 통치자가 도시와 성소 파괴, 홍
수(계12:13-17), 황폐하게 하는
것(마24:15-16)
메시아의 죽음 이후로 시간을 건너뛰어
서 맨 마지막으로 넘어감
이 기간은 유대인들의 시대가 아니라 교회 시대이다.
H. 그(적그리스도)가 한 이레(7년) 동안 언약을 확정함(27절)
27절의 ‘한 이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을 한 주간(7년)을 의미한다.
3년 반 이후에 가증함을 드러냄(살후2:3-4).
후반부 3년 반: 큰 환난(마24:21; 단12:1; 계12:14),
적그리스도(단7:25-27; 8:23-25; 계13)와 그의 멸망, 이스라엘의 회복(롬11:25-27)
I. 27절에는 ‘그 이레의 한중간’(3년 반)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J.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환난기는 후반기 3년 반이다. 즉 유대인들이 실제로 큰 고통을 겪는 기간이
주님의 재림 전에 있을 3년 반이라는 뜻이다. 성경은 이 3년 반의 기간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1. 다니엘서는 봉인된 책(단12:4), 환난기는 한 때 두 때 반 때(단12:7), 반 이레(단9:27)
2. 1,260일(계12:6, 11:3), 3. 마흔 두 달(계11:2; 13:5), 4. 한 때, 두 때, 반 때(계12:14)
- 한 때는 1년이고 두 때는 2년이며 반 때는 반년이므로 모두 3년 반이다.
K. 환난기 동안 등장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교회’이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
서 세상에 임할 환난과 고통의 때로부터 교회를 떼어 지키겠다고 약속하셨다. 이후부터 요한계시록
4-19장까지는 환난기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는 교회가 이미 휴거되어 없으므로
교회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다(계4-19장). 물론 ‘교회’라는 단어도 발견할 수 없다.
L. 그래서 환난기는 7년이고 교회는 환난기에 들어가지 않는다(환난 전 휴거).
7년 환난기 요약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교회를 하늘로 데려가신 직후 환난기라고 알려진 7년의 기간이 시작된다.
이 7년은 ‘다니엘의 70째 이레’(단9:24-27)로 잘 알려져 있다.
2. 이 7년의 후반부 3년 반은 종종 대환난기로 불리는데(마24:21) 이는 그때가 세상이 전에 겪어 보지
못했던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환난기가 끝나자마자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이라는 커다란 사건이 생긴다(마24:29-30).
3. 환난기(7년): 다니엘서 9장, 12장, 스가랴서 12-14장, 마태복음 24장, 데살로니가후서 2장, 계시록
4-9장
4. 예레미야서 30-31장은 특별히 이 환난에 대해 잘 기록한다(렘30:6-9).
5. 대환난기(3년 반) 8번: 예수님께서 ‘큰 환난’(마24:21)이라고 말씀하신 나머지 3년 반: 전무후무한
재난의 때로서 사탄의 활동이 가장 극심한 때가 되며(계12:2-12) 사탄의 사람이 땅의 통치자가
됨(계13:1-10).
6. 환난기는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이다. 이제까지 성경에 기록된 이 사건들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1. 가령 계시록 6장, 8장 7-12절에 등장하는 심판이나 역병이 언제 일어났는가?
2. 언제 한 사람이 전 세계를 다스리며 하나님으로 경배를 받았는가(계13:1-12)?
3. 온 세상이 한 사람의 형상에게 경배하라고 강요받은 적이 있었는가(계13:14-15)?
4. 모든 사람이 오른손과 이마에 표를 받아야 하던 때가 있었는가(계1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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