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천국을 잃는 자들에게1. -리처드 백스터
나는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언급한 것들(개인적 완성, 하나님, 하나님을 향한 즐거운 애착, 천사들 및 영화롭게 된 영혼들과의 복된 공동체)이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오는 세상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없이는 결코 잘 지낼 수 없다. 따라서 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고려하게 함으로써 그 때에 가서 그들이 천국을 잃는 것이 왜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이 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1) 불신자들은 실제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그때가 되면 불신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귀한 것을 잃었는지 분명히 알게 된다. 지금 그들은 하나님의 뛰어남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놓쳐도 탄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룩한 일들과 거룩한 공동체의 귀중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잃어도 상관없다. 보석을 단지 돌로 여기던 사람은 그 보석을 잃어 버려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잃어버린 것이 보석이었다는 것을 알 때는 탄식하게 된다.
저주를 받는 자들의 이해력은 거룩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착각에서 벗어나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현재 그들은 내세를 위해 수고하는 것보다 현재의 영광과 재물과 쾌락과 건강 등, 이 세상의 삶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읽고 듣기만 하던 비극적인 일이 자신들에게 직접 임하게 되면 그들은 비참을 체험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된다.
그들은 바다에 빠져 보기 전에는 자신들이 익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으며, 불 속에 던져지기 전에는 자기들이 불에 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재난을 겪게 되면 믿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심판의 날이 오면 그들은 실제 경험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시하게 만들고 주께 드리는 예배를 혐오하게 만들며 주의 백성을 비방하게 만들던 그들의 생각들이 다 틀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끽소리도 못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이 되면 그들은 바로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슬픔은 더욱 커질 것이다.
오, 가련한 영혼들이여! 그들이 백치와 짐승들처럼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그 때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텐데. 그들이 지옥에서 자세히 알게 되지 않고 그들이 땅에 있을 때 아는 만큼만 알고 있다면 좀 더 덜 괴로울 텐데.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지 모른다면 그 놓친 것 때문에 덜 섭섭할 텐데. 또한 천국과 같은 장소가 실제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좀 나을 텐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야 실제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그들은 지식이 그들의 비참을 막을 수 있는 때는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해 성경책을 읽거나 연구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이 되면 그들이 원하든 말든 실제를 알게 되면서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현재 이 땅에서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죽음의 꿈을 꾸며 잠들어 있다. 그러나 죽음이 그들을 깨울 때는 그들의 착각이 순식간에 드러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지만 저절로 알게 되면서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2) 더 넓게 인식하게 된다.
그들의 이해는 분명하여지면서 더욱 확장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이 잃은 영광의 가치가 어떠한 것인지 더욱 깊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바르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해력 또한 증가할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겪고 죄악의 결과들을 체험하면서 땅에서 그러한 비참에 대해 듣기만 하던 때와 전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비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삶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와 비교하여 이제 사형 선고를 받게 된 사람에게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예민하게 느껴지겠는가! 실재하는 영원한 축복을 놓쳤다는 사실을 알 때 저주받은 자는 자기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큰 그릇이 조개껍질보다 더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듯이 더 확장된 이해력은 과거 이 땅에서 이해력이 적을 때보다 더 많은 고통을 느끼게 만든다.
3) 그들의 양심이 진실하고 깊게 적용될 것이다.
그들의 양심 또한 더 진실해지고 깊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때 그들은 “오, 내가 얼마나 귀한 것을 잃었던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비참에 떨어졌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양심의 적용이 부족할수록 마음의 불편은 덜하다. 그러나 양심이 예민하여질수록 마음의 고통은 심해진다.
그들은 이 땅에 살 때 이러한 비참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비참의 상태에 처하게 될 줄은 더더욱 믿지 않았다. 그들은 수많은 설교들을 놓쳤으며 모든 위협과 경고들을 농담으로 여겼다.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그들에게 가장 쉽고 분명하게 그들이 당하게 될 비참을 알려 주었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주의 사역자가 그들에게 그들이 놓치게 될 영광에 대해, 그리고 그 영광을 놓칠 때 그들이 당할 고통에 대해 말해주면 그들은 그 경고가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악명 높은 다른 죄인들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악한 자에게 그가 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과 그가 진노와 정죄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중생이 무엇인지 모르고 거룩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분명히 중생 및 거룩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마치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사람인양 생각한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보게 되며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람들 중에 자신의 상태를 분명하게 발견하고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탄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또는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 중에 자신들이 현재 그 상태로 죽는다면 영원히 파멸될 것이라고 인식하는 자가 과연 몇이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어둠의 땅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때, 그리고 작열하는 불꽃 속에서 신음하는 자신들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존전에서 영원히 쫓겨난 것을 깨달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영원히 임하였다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탄식 가운데 “오 나의 비참이여, 오 나의 어리석음이여, 오, 이제야 선명하게 알게 된 이 돌이킬 수 없는 무한한 손실이여!”라고 부르짖게 될 것이다.
4) 그들의 감정은 더 생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때 그들의 감정은 더욱 생생할 것이며 더 이상 둔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이 땅의 강퍅한 마음들은 천상과 지옥을 사소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그들에게 영원한 영광과 영원한 비참을 보여주지만, 그들은 잠이 들어 있기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하는 우리의 말은 벽에 던진 공처럼 다시 튕겨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우리는 무시무시한 사건들에 대해 말해주지만 그들은 죽은 사람들처럼 반응이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상처를 찾아내지만 그들은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천상과 지옥, 그리고 복음에 대해 그들에게 말할 때는 마치 바위에게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청천벽력처럼 그들은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의 감각은 열정적으로 일어나고 감정이 살아나면서 그들은 공포의 두려움과 함께 무한한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얼마나 자신들을 탓하며 꾸짖겠는가! 얼마나 이 땅에서의 자신들의 미친 광기에 대해 분노하겠는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탄식도,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도 천상을 잃은 그들의 탄식과 슬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오, 버림 받는 피조물의 자책과 자기학대의 분노여! 그들은 가슴을 찢으며 심지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하나님의 형벌을 가하는 집행자가 된다! 그들이 고통을 당하는 요인이 자신인 것처럼, 이제는 스스로 수석 집행자들이 되어 자신에게 형을 집행한다. 사탄마저도 그들의 죄악의 직접적 요인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형벌을 받는데 있어서도 자기 죄 값은 자신이 치러야 한다.
그때 그들의 감각과 감정이 돌로 변하여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거에 경고로만 듣고 이를 무시하며 지낼 그 때가 실제로 그 경고가 사실로 이루어진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경고하던 설교 시간에 잠을 잤듯이, 이제는 자신들에게 형을 집행하는 그 시간에 잠들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그들의 감각의 둔함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감각은 다시는 둔하여지지 않고 영원히 생생하게 있을 것이다.
5) 그들의 기억은 확장되고 강해질 것이다.
그들의 기억은 지식과 감정처럼 더욱 확장되고 강하여질 것이다. 기억력이 사라진다면 천상을 잃은 기억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기억이 말살된다면 천상을 잃은 그들에게는 큰 자비가 될 텐데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가 되면 이해력과 양심, 감정과 기억은 다 살아나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준다. 사람들은 영혼의 이러한 기능들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고 하나님과 늘 함께 하며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은 이러한 기능들에 의해 하나님의 진노를 실감하고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고통을 계속 당하게 된다.
그들이 과거에 이 땅에 거할 때 그들은 천상의 삶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기억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아무 할 일도 없고 기억의 기능도 할 일이 없다. 그들이 과거에 이 땅에 거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원한 상태의 교리를 “그들의 집 문설주와 손목과 마음에 써 놓으셨다”(신 6:8-9). 그래서 그들이 그 교리를 마음에 두고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신 6:7) 말하게 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주께서 시키는 대로 하기를 거부하였다. 이제 그들이 갇힌 지옥에도 그 교리가 여전히 그들 앞에 놓여 있을 것이며 그들이 어디를 보든 그 교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그들의 잃은 영광의 위대함을 기억하면서 고통을 당할 것이다. 만일 그 영광이 어딘가에 남아 있어서 어떤 수를 써서든 다시 얻을 수 있다면 그 손실은 그들에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아니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잃은 것이 건강이나 부귀나 친구나 생명이라면 별 것 아니었을 것이다.
오! 그 엄청나고 영원한 영광을 영원히 잃었을 때! 그들이 한때 그것을 얻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때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때 내게도 천국을 얻을 공평한 기회가 있었던 것이었구나. 내가 세상에 있을 때 만일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나도 지금 그 기업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며 저 복된 성도들 가운데 있었을 텐데, 지금 나는 이렇게 저주 받는 악령들과 함께 고통을 받는구나. 주께서 내 앞에 영생과 영원한 죽음을 두었건만 나는 죽음을 선택했으니 이 고통을 당함이 마땅하구나. 내 앞에도 달려가 잡을 상이 놓여 있었건만, 그래서 노력했다면 그 상을 받았을 텐데, 용감히 싸웠다면 승리를 얻어 면류관도 받았을 텐데, 다 놓쳐 버렸구나!” 그들은 자신들도 면류관을 얻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꼭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때 더욱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나도 한때 나를 도우시려는 성령의 강한 역사를 느낀 적이 있었지. 나도 다른 사람에게 세상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붙들라고 제시한 적도 있었지. 나는 거의 하나님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였었지. 나도 한때 뿌리 깊은 정욕의 유혹으로부터 돌아선 적이 있었지. 오랜 옛 친구들을 버리고 경건한 자들과 함께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을 바꾸어서 내가 붙들었던 것을 버리고 언약을 파기하였다. 나는 거의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뻔 하였지만, 그러한 설득을 발로 차 버렸다. 신실한 목사가 진리를 강조하며 말할 때 도대체 내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오, 내가 지금 천국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거의 천국을 소유하였었는데 다 잃었구나! 계속 주를 따랐다면 지금 성도들과 함께 복된 자리에 있을 텐데!”라고 후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