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천국을 잃는 자들에게 2. -리처드 백스터
그들은 자신들이 기회를 잃은 것을 기억할 때마다 대단한 고통을 당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았던가. 만일 그 기회들을 활용했다면 지금 행복을 누릴 텐데! 오, 이 비참한 사람아!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에 이 일을 연구해볼 시간이 없었더냐? 영원을 위해 수고할 시간이 그렇게 없었더냐? 먹고 마시고 잘 시간은 있었어도 네 영혼을 구원할 시간은 없었더냐? 흥청망청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시간은 있었어도 기도할 시간은 없었더냐? 오, 귀중한 시간이여! 그때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을 가질 수 없구나. 시간이 너무나 많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었는데, 지금 그 시간은 다 사라지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구나. 오, 다시 딱 일 년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정말 신속하게 회개할 텐데! 간절히 기도할 텐데! 부지런히 주의 음성을 들을 텐데! 내 상태를 철저하게 점검할 텐데! 집중하고 바르게 살아볼 텐데. 그러나 너무 늦었구나. 아아! 너무 늦었구나.”
그들은 주께서 얼마나 자주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권면하였는지를 기억하면서 더 많은 비참을 느낄 것이다. “그 목사가 나로 하여금 이러한 고통들을 피할 수 있게 한 것이로구나. 그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내게 권면했었지! 그러나 나는 그 권면을 농담으로 여겼다. 얼마나 그가 자주 나를 설득하려 했던가! 그럼에도 나는 그의 모든 설득을 묵인해 버렸구나. 그가 얼마나 내 마음을 열려고 애를 썼는지!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의 죄악 됨을 알고 싶지 않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오, 그때 내가 그리스도께로 진심으로 돌아섰다면 그 목사는 얼마나 기뻤을까! 내 경건한 친구들이 나를 꾸짖었었다. 그들은 내게 나의 고집과 무지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말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믿지 않았고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또한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내게 찾아오셔서 권면하셨던가! 성령께서는 얼마나 내가 그를 부인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내 마음과 씨름 하셨던가! 그리스도께서는 매주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죄인이여, 문을 열라. 네 맘을 구세주께 열라. 그러면 내가 네게 들어가 너와 함께 먹으며 너는 나와 함께 하리라! 왜 지체하느냐? 얼마나 오랫동안 헛된 망상 가운데 거하려느냐?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되어 행복을 누려야 하지 않느냐? 당장 그렇게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소리치셨다!”
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그렇게 애원하시던 일들이 기억날 때 저주 받은 자들의 마음은 자신을 향해 얼마나 분노하겠는가? “내가 꼭 그리스도의 인내를 업신여겨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천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을 때 내가 꼭 그분의 수고를 헛되게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그분이 오셔서 얼마나 내게 지겨울 정도로 ‘회개하라. 돌아오라’고 외치셨던가! 오, 그분의 인내를 끝까지 무시하였더니 이제 나는 이렇게 거부할 수 없는 무서운 진노를 당하게 되었구나. 주께서 내게 ‘깨끗하여지지 않겠느냐. 언제 깨끗함을 받으려느냐?’ 라고 외치실 때, 내 마음과 내 행동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으니! 이제 나는 ‘이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얼마나 더 오래 있어야 합니까?’라고 말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구나. 하지만 ‘절대로, 절대로’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는 답변만 듣게 되는구나. 그래도 아무 할 말이나 따질 것이 없구나!”
더욱이 그들이 지옥의 비참을 얼마나 쉽게 피할 수 있었는지를 기억할 때는 그 기억은 그들에게 가장 뼈아픈 고통이 될 것이다. 그들이 할 일은 산을 옮기거나 나라들을 정복해야 하는 불가능한 일들이 아니었다. 율법의 일획까지라도 완전히 이루어야 하는 일도 아니었으며 모든 행동에서 완전한 공의를 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어깨에 지우셨던 짐은 “쉽고 가벼운 짐”(마 11:30)이었다. 그 짐은 단지 회개하고 주님을 진심으로 자신들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이었다.
그 짐은 다른 모든 행복을 거절하고 주님을 최고의 선으로 붙잡는 것이었다. 그 짐은 세상과 정욕을 거절하고 그 대신 주의 온유하시고 자비로우신 다스림에 순복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 짐은 내 주관대로 사는 길을 내려놓고 주의 거룩하고 즐거운 길로 걷는 것이었다.
지옥의 고통을 받는 그 가련한 영혼은 “아, 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작은 수고마저 하지 않으려 했으니 내가 이 모든 고통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구나! 그 은혜로운 제안을 거절할 때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까? 나는 주님을 고약한 주인이라고 불렀고 주를 맘껏 섬길 수 있는 순간들을 속박이라고 여겼다. 대신 나는 마귀와 정욕을 섬기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길을 쓸모없는 규칙이라고 판단했을 때 과연 나는 미친 사람보다 수천 배 더 미친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나치게 엄격한 것으로 생각했고 내세를 위해 무엇을 준비한다는 것을 도가 지나친 것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영원히 당하는 이러한 고통에 비교할 때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고통들과 수고들이 뭐 그리 힘들었겠는가?
이제야 천국에만 있을 수 있다면 저 아래에서 무엇을 다 잃는다고 해도 보상이 될 것을 안다. 천국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땅에서의 모든 고통들을 다 잊을 것을 안다. 천국에만 있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떤 중대한 일을 내게 맡기셔도, 또한 계속되는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살게 하셔도, 혹은 수백 번의 죽음의 고비를 지나게 하셔도, 분명히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았겠는가? 하물며 주께서 하신 부탁이 기껏 ‘믿고 구원을 얻으라. 내 얼굴을 찾으라. 그리하면 네 영혼이 살리라.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영생을 주리라’ 하신 것인데 천국을 놓쳐버렸으니 이 얼마나 후회스러운가! 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은혜로운 제안이었고 가장 쉬운 조건들이었는데! 이 저주 받은 가련한 나는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였으니!”
또한 그들이 천국의 복락을 팔아 무엇을 샀는지를 기억할 때 더 고통스런 기억이 될 것이다. 죄를 지을 때의 잠시의 쾌락과 비교하여 그로 인해 잃게 된 천국의 가치를 생각할 때 그 엄청난 불균형한 차이 때문에 깜짝 놀랄 것이다! 육체의 천박한 즐거움과 인간들로부터 잠깐 받는 칭찬들을 생각해 보고 그 다음 영원한 영광을 상고해 보라. “이러한 더러운 쾌락 때문에 내 영혼과 내 하나님, 나의 영원한 복락을 팔아먹었다니!” 이러한 생각이 들 때 그 영혼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게 될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때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탄식할 것이다. “오, 이 비참하고 어리석은 중생아! 이런 더러운 이득을 위해 내 영혼을 팔아먹은 것이더냐! 이 작은 먼지와 더러운 때를 위해 나의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이냐! 가룟 유다처럼 한 푼 때문에 나의 구세주를 판 것이더냐! 나는 단지 천국을 누리는 꿈만 꾸고 있었지 실제로 깨어나 보니 그 꿈은 사라지고 없구나! 이 땅에서 잠깐 맛보던 쾌락은 이제 쓸개즙이 되었고 내 술잔은 구더기로 가득 찼다. 이런 쾌락들이 없어지니 내 즐거움도 함께 끝이 났구나. 이것이 내가 영원한 보화를 팔아먹고 얻은 전부라는 말인가?
나는 도대체 얼마나 정신 나간 거래를 한 것인가! 온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하더라도 내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아아! 나는 온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의 가장 작은 썩을 것을 위해 나의 천국을 포기하였구나!” 오, 죄인들이 육체의 즐거움에 푹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부유해지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지를 궁구하고 있을 때, 분명한 죄인 줄 알면서도 양심을 거슬러 과감하게 죄를 범할 때, 그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만 있다면!
또한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멸망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구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그 기억은 더 큰 고통을 더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죄를 짓도록 강요를 당했다면 양심으로 인한 분노의 자책은 덜하여질 것이다. 혹은 그들이 멸망하게 된 요인이 다른 사람의 실책 때문이거나 다른 원인이라면 좀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파멸이 스스로의 적극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분노는 더할 것이다.
이 세상 아무도 그들에게 자신의 의지에 거슬려 죄를 짓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이 생각을 하면 그들의 마음은 한없이 찢겨질 것이다. 이 비참한 인간들은 “세상에서도 원수가 충분하도록 많았는데, 이제는 내 자신이 내게 원수란 말인가? 하나님은 마귀와 세상에게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 만큼 그런 큰 능력을 절대 주시지 않으셨다. 그들은 기껏해야 미혹을 했다. 악에 굴복하고 악을 범한 것은 내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내 영혼을 붙들어 내 손을 피로 물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 자신보다 더 무서운 원수를 나는 보지 못했구나.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에 선으로 대하셨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주님은 내게 계속 자비를 부어주시며 계속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 내 마음을 주께로 이끌려고 하셨다. 그렇다. 그분은 부드럽게 나를 책망하셨고 내가 불순종할 때는 불순종의 쓴 열매를 먹게 하심으로써 신음하게 만드셨다. 그러면 나는 대개 감정적으로 주를 섬길 것을 약속했지만, 결코 진심으로 주를 섬기려 한 적은 없었구나”라고 기억을 한다. 이와 같이 죄인들은 그들 자신이 그들의 파멸의 요인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마음속에서 이를 갈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였고 마귀를 섬기는 일에 흔쾌히 나섰던 자들이었다.
한 차원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이 저주스런 파멸을 위해 많은 대가와 고생을 치렀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그들의 양심의 상처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멸망을 재촉하기 위해 얼마나 큰 수고들을 했던가! 그들은 성령을 대적하였고, 자비의 힘과 심판의 힘,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마저 이기었다! 이성의 힘을 짓누르고 양심을 묵살했다! 이 모든 일을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행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는 계속적인 위험 속에서도 앞으로 밀고 나갔고 주께서 그들을 당장 먼지로 만드셔서 지옥 불에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모든 악한 수고들을 계속 행하였다. 오, 스스로 저주 받기 위해 그러한 많은 수고를 하다니!
절제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건강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잔칫상과 술 취함에 빠져 가난과 부끄러움과 병을 얻었다. 욕심을 버리고 만족을 하면 평안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탐욕과 야망을 가짐으로써 염려와 두려움에 빠지고 또한 건강을 잃을 정도로 뭔가에 몸과 마음을 빼앗겼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수고하는 대신 오히려 멸망을 받기 위해 수고하였다. 화를 내는 것과 복수심과 부러움은 그들 자신을 괴롭히며 그들의 영혼을 지치게 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더러운 행위들은 그들의 몸과 신분과 명성을 망가뜨리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이 모든 악한 일들을 행하며 그 고통스런 결과를 감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얼마나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분노하게 될 것이며 탄식하게 되겠는가? “이 모든 수고와 아픔들이 결국 저주를 위한 것이었던가? 이 저주를 얻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던 것인가? 어찌 나는 저주를 사기 위해 그렇게 힘든 수고를 했단 말인가? 그렇게 많은 수고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멸망을 당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수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명령하셨는데 어찌 나는 그렇게 수고하여 나의 저주를 이루어야 했던 것일까? 만일 내가 지옥을 위해 일한 만큼 천국을 위해 수고했더라면 나는 분명히 천국을 소유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경건이 지루하다고 아우성을 쳤고 내 자아를 부인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소리쳤다. 반면 나는 사탄과 죽음을 향해서는 얼마든지 더 많은 수고를 할 수 있었다. 내가 나의 쾌락과 유익과 명예를 사랑했던 만큼 그렇게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렇게 주님을 자주 생각하고, 그렇게 수고스러울 정도로 주를 찾았다면, 오, 지금 나는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천국을 살 기회가 내 손에 있었을 때 천국을 사기 보다는 저주를 사기 위해 그런 비싼 수고를 했으니, 나는 참으로 지옥의 불꽃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 합당하구나!”
오, 하나님께서 독자들을 설득하셔서 이러한 생각들이 ‘지금’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때 가서 지옥에서 스스로를 끝없이 자책하고 자학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그때 가서야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이러한 생각들을 단지 상상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 부자가 고통 가운데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읽어 보라. 하늘의 기쁨이 주로 이성적인 영혼에 의해 이성적인 기능들 안에서 누려지듯이 지옥의 고통 또한 이성적인 영혼에 의해 이성적인 기능들 안에서 체험될 것이다. 그들은 지옥에서 여전히 사람들일 것이며 따라서 사람으로서 느끼고 반응하고 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