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덮어쓰고 - 이오덕
자다가 깨어나 생각하니
내가 하얀 눈을 덮어 쓴
지붕 밑에서 자고 있었구나
아침마다 창문을 열면 하얀 세상
건너편 산도 마을의 집들도 길도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정작 내가 그 눈 밑에서 자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으니!
지붕뿐 아니지
내가 덮고 있는 이불도
하얀 양털에 하얀 목화로 짠 베다.
이불뿐 아니구나
내가 입은 잠옷도 하얗고
내복도 하얗고
낮이면 추워서 방안에서도 입고 있는
오리털 겉옷도 새하얀 빛
하얀 것만 입고 덮고 하얀 쌀밥까지 먹고
의사가 권해서 포도당 하얀 가루까지 날마다 먹고
하얀 종이에 글을 쓰고
그러고 보니 이거야말로 전신만신 하얀 것뿐
하얀 것뿐일세
그렇다면 내 마음은 어떤가?
마땅히 하얗게
눈같이 깨끗하게 되어 있어야 할
내 마음은?
자다가 깨어나 생각하니
내가 올겨울 내도록
하얀 눈을 덮어쓰고서
자고 먹고 숨쉬고
살고 있었네.
하얀 눈
하느님 선물을
덮어쓰고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