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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내가 만난 천국(예수님이 이제 오라하시네)

chajchul 2018. 1. 19. 16:00

 

 

  정말 천국은 있습니다!

   내가 만난 천국(예수님이 이제 오라하시네)

 

 
대구제일교회의 이상근 목사님을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대부분의 평신도는 잘 모르실거에요.
한국교회 목사님들의 서재에 필독서로 꽂혀있는 책을 들라면 이상근목사님의 주석책일것입니다.
성경전체와 외경을 주석한 세계적인 신학자입니다.


목사님이 다녀오신 천국간증이 참 은혜로워서 이곳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이 찬양이 떠오르더군요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슬픔도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승리만 있네
고통은 모두다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하겠네
우리의 주님과 나 함께 있을 때
영원한 기쁨 넘치네

 

 

 

남편을 추모하며......설귀연 권사(고 이상근 목사님 사모)


사랑하는 남편의 천국
나의 남편 이상근 목사와 함게 살아온 58년여 세월동안 그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강한 붙잡으심에 감사드린다.
세밀하게 인도하시는 그 손길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온 증인으로서

남편의 처음과 마지막에 대해 몇글자 적어 볼까 한다.

그는 나를 만난 20대 말부터 하늘나라에 가던 80대까지
언제나 하나님과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자 애쓴 분이었다.

늘 저녁 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 2-3시에는 어김없이 일어나서

기도한 후 성경 다섯 장을 읽고 글쓰기에 들어가셨다.

새벽기도회를 다녀오시면 6시쯤 되었고 쉴틈없이 다시 글을 쓰시다가

아침 8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나면 교회를 가셨다

특별한 만남이나 집회가 없던 은퇴 후에도 8시 30분이면 교회로 나서신다 .
건강이 좋지 않거나 곧바로 되돌아와야 하는 경우 내가 가끔 만류하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교회집무실로 가셨다. 큰 책가방과 함께.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교정 볼 글들을 오가는 차안에서 작업하곤 하셨다.


낮 12시 30분이면 집으로 와서 점심식사를 한후 좀 쉬셨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시 30분이면 다시 교회로 가서 5시에 돌아오신다.

저녁 식사를 6시에 하셨다.
심방,집회등이 없는 날과 출타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평생토록 지키셨다.

몸은 오히려 젊은 시절에 약해서 거의매일 오후면 고열과 씨름을 하셨고 열은 새벽에야 좀 가라앉았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서 머리에 띠를 동여매고는 책상앞에 앉곤 하셨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괴롭고 책상앞에 앉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하셨으니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본 나도 어찌 사람의 결심과 노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요 축복이었음을 안다.

그 병약함의 원인이 발에 박힌 철사때문이었음은  1996년에야 알게 되었다.

17세 때 깊은 은혜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자마자 발을 심하게 앓았는데
이때부터 남편은 평생을 고열과 친구처럼 지냈고
한때는 페결핵을 앓아서 각혈도 했으며 고혈압에다 심장도 약하였다.

병명을 알 수 없는 무수한 병마들이 그의 몸을 거쳐갔다.
주변 어떤 권사님은 사람이 앓는 병은 모두 가졌다고 표현했고
나의 친정 아버지는 결혼 당시에 신랑감을 좋으나 얼마 안 있어 과부가 될것이라고 하면서 반대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꿈을 주셨고 의지와 집념 그리고 공부를 즐기는 성품을 선물로 주셔서

모든 병들을 이기고 소원을 이루게 하셨다.

 

그분은 일생동안 시간을 얼마나 아끼셨느지 모른다 .

조각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셨고 평생 단 한번도 관광이나 노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으셨다.
약한 몸 때문에 더욱더 시간을 아껴서 비전을 이루고자 했던것 같다.
예를 들면 미국동부에서 공부하면서도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도 못 본 채 귀국하였는데,

오랜 후에 로체스터에 계시는 김영환 목사님초청으로 집회에 가셨다가 그것을 보게 될 정도이다 .
그토록 연약한 육체로 신구약주해서를 다 쓰고 또 외경주석까지 썼다는 것은
바로 옆에 서 본 나로서도 믿기 어려운 기적이다.
이것이 분명 하나님의 은혜였음에는 내가 바로 증인이 된다.
외경주석을 탈고한 다음 마지막으로 쓰고 싶은 것이 신약개론이라고 하시더니

아들들에게 자료를 구해달라고 부탁하셨고

몇권의 책이 도착하자 어찌나 급히 몰아쳐서 쓰셨는지 참으로 안쓰러웠다.


천사들이 옹위한 병상

그 책을 탈고하자마자 대구 평강교회 목사님이 몇 달 자리를 비우셔서
그 교회 주일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갑자기 말이 어둔해 지셨다.
급하게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뇌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때부터 약 1시간 투병하셨는데 너무나 감사한것은 큰 통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병환중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누운 채 늘 조용히 묵상하면서 시간을 보내셨다.
나는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어젯밤은 좋은 꿈 꾸었냐고 묻곤 했는데
어느 날 아침 같은 질문에 아주 기쁜 표정으로 오늘은 하늘나라 다녀왔어요 하고는 입을 다무셨다.
오히려 내쪽에서 궁금해지고 급해져서 속히 그 광경을 말해 보라고 재촉해도 그저 웃을 뿐 입은 열지 않으셨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나온 풍경과 같더냐고 물었더니
같긴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고린도후서 12장을 읽으라고만 하셨다.
그 상황 가운데서도 천국을 다녀온 후 말을 절제한 사도바울을 기억하셨던 것이다.


그때가 병상에 누우신지 5개월쯤 된 때였다.
그래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내가 다시 얘기를 해달라고 하자
예수님도 만났고 사도바울과 칼빈 그리고 어거스틴을 만났다고 하셨다.
당시 나는 하루 여섯 번의 식사준비 여러번의 투약등 병수발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그때의 날짜 등을 세밀하게 기록해 두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은 좀 후회스럽기도 하다 .
 

그 날부터 병상에도 변화가 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누운채 천장을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곤 하셨는데
수명의 천사가 침상을 옹위하고 있다고 하셨다.
어떤 날은 5-6명 제일 많은 날은 20여명이 둘러섰다고 하셨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 때마다 내가 “천사들이 늘 와서 좋겠네요”하면  그렇다고 눈으로 답해주곤 하셨다.

그 이후부터는 감격의 눈물을 자주흘리셨는데 한번은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라고 했다고 하셔서 막내아들과 함께 영광돌리는 찬양을 불렀다.

찬송가 테이프를 늘 틀어 놓긴 했지만 주님은 우리 입으로 직접 찬양하기를 원하시나보다고 생각했다.

그 후 약1개월이 지났을 때 여느때와 같이 아침인사를 하고 또 좋은 꿈 꾸셨냐고 했더니

환한 얼굴로 오늘도 천국을 갔는데 사도바울을 또 만났으며 끌어안았다고 하셨다.
난 더욱 궁금해져서 어떻게 안았는지 자세하게 얘기하라고 했더니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천사가 늘 병상을 지킨다고 좋아하셨다.
또 1개월쯤 후에는 천국에 가서 마음 닿는 대로 훨훨 날아 다녔다고 하셨다.


내가 자녀들이나 몇 분 성도들에게 천국 다녀온 사실을 얘기하려고 하면 그 얘기는 하지 말라고 만류하셨다.
그 간에는 다시금 건강이 조금 좋아지는듯 하였고,나는 오히려 당뇨환자인

내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사실 이런 생각은 몇 년 전부터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의 종이 앞서가게 해주시고, 빛나는 죽음이 되어 그 죽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고 천국을 증거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수년간 해왔었다.
그래서 난 이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는 꿈속에서 천국에 다녀왔다고 하셨는데 어느 날은 낮에 누운채로 천장을 쳐다보면서
작은 입속말을 게속 중얼거리시는 것이었다.

나는 좀 놀랐다. 혹시 뇌에 이상이 온게 아닌가 하는 염려때문이었다.


그런데 몇 번이고 손으로 위를 가리키면서 나에게 저 위를 보라고 하셨다.
“저기 하늘나라가 보이잖아요”
몇차례나 말씀하셨는데 그 눈빛이 어찌나 강하고 위엄이 있는지 가까이 가기가 두려웠다.

순간 나는 모세의 얼굴에 빛이 나서 수건으로 가리웠다는 말씀이 떠 올랐다.
계속 무슨 말인가를 하는 그에게 무슨 얘기를 누구와 하느냐고 물었더니 천사와 대화한다고 하셨다.


또 어떤 날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좀 더 있다 오라고 하시네.
빨리 가고 싶은데...” 하셨으며,천국에서 부모님을 만났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서 이 광경을 전하라고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또 어느 날은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또다시 좀 더 있다고 오라고 하셨으며

그곳에 자신의 면류관이 있다면서 너무나 기뻐하셨다.
그 면류관에 이름이 적혀있냐고 물었더니 이름은 안적혀 있는데 내 것인 줄은 알겠더라면서

다른 이에게 이런 얘기를 하지 말라고 또 당부하셨다. 목사님은 낮에도 늘 천국을 보셨다.


예수님이 이제 오라 하시네
병세는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지만 나는 내심 잠시 동안이라도 일어나서
천국을 증언할 기회를 주실줄로 믿었고 또 소망하였다.
여섯 번에걸쳐서 천국을 보여 주시고 늘 천사의 옹위를 받게 하셨으니
강단에서 증언하도록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렇게 믿은 또 다른 이유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남편이 투병한 약 1년간 옆에서 간호하면서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 주실것이라 믿었다.
나는 40여년간 당뇨 병을 앓아 왔는데 하루 두세시간밖에 자지 않으면서 주야로 병간호를 했다
입원때 이틀동안 집에 간것 외에는 줄곧 병상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생활을 견딜 수 있도록 내 건강을 지켜주셨기 때문이다 .
자녀들이 자기들이 지킨다고 다른 방에서 쉬라고 수없이 권유하고,주위의 많은 분들이 걱정했다.


그러나 나를 이처럼 건강하게 지켜주셨기에 그를 잠시나마 강단에 다시 세우시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떠나시기 5일전 오전 10시쯤 되었을 때 또 천장을 보면서
“지금 가브리엘 천사가 왔네”라고 하셨다

순간적으로 회복을 소망하던 내 마음이 흔들리고 깨어지는 듯하여 한참 동안 입을 떼지 않다가 되물었다 .
“가브리엘천사라면 기쁨 소식 전하러 왔겠네요?”
그러나 곧장 답하기를 “이젠 나를 오라고 하시네”하셨다.
난 포기하지 않고 사탄이 가브리엘 탈을 쓴것은 아닐까요?
천국은 여섯차례나 왕래하게 하셨는데 벌써 오라고 하시겠어요?" 라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단호하게 ”아니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오“하였고
나의 계속되는 작은 반발을 더 이상 못하게 막으셨다.


이어서 그는 마지막 인사를 하셨다.
”나를 위해 수고가 참 많았어요 내 뒤에 와요“
그 이후로는 아무 말도 못하셨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머리 뒷부분에 물이 찼다고 했다.

말은 못하셨으나 의식은 분명하셨으며 문병 오시는 분들과 일일이 눈과 손으로 인사를하셨다 .
나중에 손을 들지 못하게 되자 천사와의 화답도 손가락만 움직여서 하셨다.

 떠나기 바로 전날 갑자기
“해피,해피”하시기에 말을 다시 하시는 줄 알고 귀를 기울였지만 그 두마디가 마지막 말씀이 되었다.


나는 자녀들이 다 외지에 살고 있기에 늘 임종을 염려했었다.
큰 아들은 미국에 둘째아들은 서울에(연동제일교회 이성희목사님)
막내는 뉴질랜드에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속이나 한듯이 아들 내외들이 그날 아침에 다 도착하였다 .
그래서 자녀들과 제일교회 교역자들, 여러 장로님들의 찬송가운데서

그날 오후 조용히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남편 자신은 회복되지 못하여 이 천국을 증언치 못하였으나
가장 가까이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생각하며
그 기쁨을 나누고자 그의 마지막을 이렇게 증언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마라나타)

 

출처:FG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