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고성군(高城郡) 토성면(土城面) 청간리에 있는 정자.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작은 구릉 위에 있으며, 이 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아침의 해돋이광경과 낙조(落照)의 정취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정자의 창건연대와 건립자는 미상(未詳)이나 1520년(중종 15)에
간성군수(杆城郡守) 최청(崔淸)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갑신정변(甲申政變) 때 불타 없어진 것을 40여 년 후인1930년경에 지방민들이 재건하였다.
그 후 1955년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명으로 보수하였고(지금의 현판은 그의 친필),
1981년 4월 대통령 최규하(崔圭夏)의 지시로 해체복원(解體復元)하였다.
4. 낙산사(洛山寺)
강원 양양군 오봉산(五峯山)에 있는 절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3대 관음기도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세웠으며,
858년(헌안왕 2) 범일(梵日)의 중건(重建)을 비롯하여몇 차례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고말았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3년에 다시 창건한 것이다.
이 절에는 조선 세조(世祖)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垣墻) 및 홍예문(虹霓門) 등이 있다.
그러나 2005년 4월 6일에일어난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이 절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如意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원통보전의 자리이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음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 관음상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하고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靈穴寺)에서
옮겨 왔다는 관세음보살상이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이다.
5. 경포대(鏡浦臺)
강원도 강릉시 저동(苧洞)의 경포호 북안에 있는 누각.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지방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6칸, 측면 5칸, 기둥 28주(柱)의 팔작지붕 겹처마기와집의 누대(樓臺)로,
강릉 오죽헌(烏竹軒)에 있던 율곡(栗谷)이 10세 때에 지었다고 하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판각(板刻)하여 걸었다.
또한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기문(記文)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특히 누대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정자액(正字額)은 이익회(李翊會),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라고 하는데,
‘江山’ 두 자를 잃어버려 후세인이 써 넣었다고 한다.
1326년(충숙왕 13)에 안무사(按撫使) 박숙정(朴淑貞)이
현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웠으며,
1508년(중종 3)에 부사(府使) 한급(韓汲)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른다. 경포대를 중심으로 8경이 있는데,
녹두일출(菉荳日出) ·죽도명월(竹島明月) ·강문어화(江門漁火) ·초당취연(草堂炊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