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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츄피츄!!

chajchul 2018. 10. 25. 17:05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츄피츄
 
일  시: 2010.5.19.(맑음)
국  명: 페루 
코  스: 우르밤바- 마츄피츄- 마츄피추관광- 꾸스코- 아르마스광장 야경- 숙식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츄피추(Machupicchu) 맞추피추는 남미에서 잉카문명의 모습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마츄피추는 어느 시기에 무슨 목적으로 왜 세워졌는지 정확히 규명되지 못 하였지만 여러 학계의 관심과 추측 속에서 지금 것 내려오고 있다. 2.280m 험준한 산꼭대기에 건설 되였기 때문에 산 위에서는 계곡이 다 내려다보이지만 아래쪽에서는 어디에서 올려다 보아도 그 유적을 확인할 수 없다. 마츄피추는 1911년 7월 24일 미국의 대학교수인 하이렘 빙엄에 의해 발견 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데이 서양 학자에 의해 발견되기 까지는 높은 산정에 온갖 수풀에 묻쳐 있어 오랜동안 잠자고 있었다. 마츄피추를 “잃어버린 도시” 또는 “공중도시”라고 불리는데 잃어버린 도시라 불림은 400년 동안 긴 잠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이고 공중도시라고 불리는 이유는 산과 절벽. 밀림에 가려 밑에서는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츄피츄(2,280m)는 옛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3,360m)에서

산악 열차를 타고 안데스 산맥의 협곡을 따라 3시간 거리에 있다. 1 마츄비츄는 그동안 기차를 타고 갔다는데 지난번 폭우로 손실돈 천로 복구가 덜 되어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다시 기차를 갈아 타야만 갈 수 있다. 2 욜란타이 탐보, 기차역 마츄피츄로 가는 기차다. 관광객들은 예약된 칸으로 들어가야한다. 3 도착한 역 주변에서, 4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역 근처와 철길주변, 주민들은 대부분 마추피추에 오는 관광객들을 상대해서 상행위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철길을 따라서 양 옆으로 레스토랑이랑 가계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는 상당히 작은 도시이고 역 중심으로 집들이 빽빽이 모여 있어 사람들은 철길을 따라서 빈번히 왕래하고 있었다. 5 잉카인들은 통용의 글자와. 쇠. 화약. 바퀴를 몰랐지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강한 군대를 유지하면서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산맥을 따라 남북을 관통하는 두 갈래길 “잉카 로드”를 2만km를 만들어 광대한 영토를 통제 했다. 황제의 명령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게 까지 두루 미쳐 새 한 마리도 황제의 명령 없이는 날지 않는다고 했다. 6 잉카인들은 하늘과 가까이 살면서 “거짓말 하지 말고” “도둑질 하지 말고“ ”게으름 피우지 말 것“ 등 3대 계명을 신조로 태양신을 섬겼다. 7 마추피추는 총 면적이 5km2로 도시 절반가량이 경사면에 세워져 있고 유적주위에는 성벽으로 견고하게 둘러쌓여 완전한 요새 모양을 갖추고 있다. 8 맞추피추에는 약 1만 여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산정과 좁은 경사면에 터를 잡아 은둔하였기 때문에 스페인 정복자들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유일한 잉카 문명의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9 정확한 건설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측되고 오랫동안 역사 속에 파묻혀 있다 발견 되었기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가 되면서 1983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바 있다. 10 마추피추<늙은 봉우리>보다 더 높은 꼭대기 와이나 피츄 달의 신전이 <젊은 봉우리> 아득하다. 달의 신전을 오르려면 신고를 하고 올라야 한단다. 너무 가파르기에 어두워지면 내려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든 길을 잉카트레일, 트레킹으로 오르는 이들은 얼마나 감동이 밀려올까... 11 12 13 맞추피추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층계와 수로에 의하여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남쪽은 농업지구가 있고 북쪽은 도시구역으로 되어 있다. 도시구역은 서부에 하난(Hanan)과 동부에 후린(Hurin)으로 나뉘는데 서부엔 주로 사원 . 왕궁. 탑. 그리고 귀족계급을 위한 권위적이고 종교적인 건물이 세워진 반면 동부엔 일반대중을 위한 주거와 작업장으로 계획 되여 있다. 14 대략 도시안의 구성배치에서 유적을 보면 태양을 모시는 신전과 생계유지를 위한 산비탈의 계단식 밭. 훼손됐을 법한 지붕 없는 집. 농사를 짓는데 이용한 태양시계. 콘돌 모양의 바위. 그리고 제단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거대한 피라미드로 되여 있다. 15 16 17 이 도시로 들어오는 길에는 우뚝 솟은 절벽과 낭떠러지에 통나무다리가 만들어져 적군이 침입해 오면 이 통나무를 떨어뜨려 길을 끊는 지혜를 발휘해 외부의 공격에 치밀한 방어책을 썼기도 했다. 18 전망대와 계단식 밭, 19 20 우루밤바강의 협곡, 21 맞추피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준 높은 건축기술이라 할 수 있다.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함을 볼 수 있는데 돌의 각 변의 길이가 몇m 가 되었건 모두 다른 제각각형체의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 붙여 성벽과 건물을 완벽하게 축조하였다. 이러한 고도의 축조기술이 청동기만으로서 가능한 것이었을까?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이 단단하고 조밀하게 합석 시키는 데에는 젖은 모래를 비벼서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했다고 하는데 잉카인의 돌을 다루는 기술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다. 22 그들은 20톤이나 나가는 큰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 수십km 떨어진 산위로 날라다가 신전과 집을 짓고 가파른 산자락을 개간하여 계단식 밭을 만들고 여기에 배수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는데 모두 돌을 이용했다. 더욱이 높은 산꼭대기에 과학적으로 물길을 만들어 양수장을 설치하고 사람이 마시고 경작을 위해 물을 흘려보내면서 한 방울의 물 까지도 유용하게 사용되도록 고안된 그들의 지혜는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23 가까이에서 본 마추피추 유적구조 중앙 잔듸밭 광장을 중심으로 동부엔 일반대중을 위한 작업장이 있고 서부엔 왕궁을 비롯하여 권위적인 귀족계급과 종교적인 건물이 들어서 있다. 24 마츄피츄 안으로 들어 가는데는 이 문밖에 없어 모두 이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25 그들은 평야가 적어 산비탈을 계단처럼 깎아 옥수수를 경작하고 철의 대용품으로 구리를 단단하게 제련하여 사용하였다는데 그 묘법도 지금까지 풀지 못하고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한다. 26 27 28 29 좌측, 돌 작업을 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현지 가이드 채석장으로 쓰였던 곳으로 많은 바위들이 돌을 쪼개는 흔적이 남아 있는데 실은 20세기의 어느 학자가 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