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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존 번연이 본 천국과 지옥6

chajchul 2019. 5. 17. 22:00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존 번연이 본 천국과 지옥6

  

2부 지옥과 멸망당한 자들의 고통을 목격하다

 

 a) 지옥의 비참한 상태

 

*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

"먼저 우리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오.

이곳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그 종류가 만가지도 더 된다오.
땅에서는 어지간해서는 한번에 한가지 이상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일이 드물지요.
그런데 만약 전염병과 통풍과 열병을 한꺼번에 앓게 된다면 스스로 얼마나 비참하게 느끼겠소?
그런데 그런 병을 다 합쳐봐야 이곳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 비하면 벼룩에게 한번 물린 것에 지나지 않소.

이곳에서 우리는 너무나 역겨운 지옥의 다양한 면들을 부닥쳐야 하오.

이곳에서는 우리를 태우는 영원한 불이 있고, 숨이 콱 막히게 하는 펄펄 끓는 유황 못이 있고, 공포로 짓누르는 철저한 흑암이 있고, 우리를 영원히 갉아 먹는 양심의 구더기가 있소.

이것들 가운데 한가지라도 인류가 땅에서 느끼는 고통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클 것이오.

 

이곳에서 당하는 고통은 가짓수만 많을 뿐 아니라 총체적이기도 해서 몸의 각 부분에 온 영혼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고통을 가하는데, 그것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다오. 땅에서는 병에 걸리면 아픈 부위도 있고 아프지 않은 부위도 있지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오.

영혼과 육체의 각 부분이 한꺼번에 아픈 것이오.

눈 은 너무나 어둡고 공포스러운 형상으로 다가오는 마귀의 모습에 고통을 당하고, 귀는 멸망당한 자들이 쉴 새 없이 내지르는 비명과 절규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코는 찌를 듯한 유황연기에 시달리고, 혀는 뜨거운 유황 용액에 끊임없이 데이고, 전신은 불못에서 종일 뒹굴러야 한다오.

영혼의 모든 역량과 기능도 고통을 당한다오.

 

상상력은 지금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느라, 기억력은 우리가 천국을 상실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놓친 것을 떠올리느라 고통을 당한다오.

정신은 우리가 땅 위에서 얼마나 귀중한 세월을 악한 생활에 허비했는가 하는 생각에 시달린다오.

오성(悟性)은 과거의 쾌락과 현재의 고통과 영원히 계속될 장래의 슬픔을 생각하고서 고통을 당하며, 양심은 쉴 새 없이 영혼을 갉아먹는 벌레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오.

우리의 비참함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또 한가지는 고통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오.

우리를 태우는 불은 세상의 바닷물을 다 끌어와도 끌 수 없을 만큼 뜨겁고 격렬하오.

우리가 이곳에서 당하는 고통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 길이 없소.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의 죽어가는 생명을 그렇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유지케 하는 능력으로 드러난다오.

 

천사의 능력으로도 버텨낼 수 없는 고통이라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또 한가지 요소는 이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오.

다양하고 총체적이고 극단적인 고통이 지속적이기까지 한 것이오.

잠깐 고통을 쉴 수 있다면 한숨을 돌릴텐데 그런 것이 없소.

극단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속적인 고통인 것이오.

고통이 조금이라도 완화되는 순간이 있다면 적지 않은 위로가 될텐데.

한 순간도 중단됨 없이 언제까지나 지속된다는 것이 우리의 상황을 너무나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이오.

지금 당하는 고통을 영원히 당해야 한다오.

이 현실이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증오를 일으키고, 이 증오심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만드오.

우리가 이곳에 속해 있는 사회나 사귐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라오.

고통을 가하는 마귀들과 고통을 당하는 영혼들이 모두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존재들이지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잔뜩 겁에 질린 비명과 절규, 그리고 우리를 이곳에 들어오게 하신 분에 대한 참람한 말이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전부라오.

그리고 이곳에서는 동료 영혼들도 똑같은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이 조금도 위안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오.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장소 역시 우리의 고통을 더욱 깊게 만든다오.

감옥, 지하감옥, 무저갱, 불못과 유황, 영원히 식지 않는 용광로, 영원히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지옥 그 자체, 과연 이곳은 고통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오.

이러한 두렵고 절망적인 장소가 우리의 비참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오.

냉혈한들인 고문자들이 우리의 괴로움에 한가지를 더 얹는다오.

고문자들은 사탄의 추종자들인 마귀들인데, 피도 눈물도 없는 이들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데서 즐거움을 얻고 있소.

 

지금까지 내가 열거한 구체적인 사항들만으로도 너무나 절망적이지만, 더욱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사실이오.

영원히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줄 당신은 모를거요.

마태 25/41 그때에 왕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말하기를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는 예수님 음성이 쟁쟁하오.

그 치명적인 선고를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텐데!

하지만 전능자의 권능이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을 더하고 계신다오.

영원히 당해야 할 고통을 어찌 다 당해야 할 지 막막하나 그것이 내가 견뎌야 할 몫이오.
이것이 우리가 영원히 비참한 처지라오.

 

고문하는 마귀는 멸망당한 자를 다음과 같이 몰아 세웠습니다.

"너는 너 자신이 이 모든 고통을 당해도 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느냐?

땅에서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숱한 경고를 들었으면서도 믿지 않았지?

오히려 지옥에 관해 말해주는 자를 비웃었다.

너는 전능자의 공의(justice)를 향해 멸망시킬테면 멸망시키라는 오만한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소원대로 된 것을 불평한단 말인가?

너는 구원의 제의를 받고도 거절했으면서도 무슨 낯짝으로 불평한단 말인가?

불평을 하자면 나는 너보다 억울한 것이 더 많다.

너는 기회라도 많이 있었지만 나는 죄를 짓는 그 순간에 지옥행을 선고받았다.
네게는 수 없이 구원과 용서와 사죄의 기회가 있었으나, 나는 한번도 자비의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죄를 짓는 그 즉시로 영원한 형벌을 선고받고 말았다.

만약 단 한번이라도 구원의 제안을 받았다면 너처럼 경솔히 그 구원의 기회를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천국을 마다하고 멸망을 택한 너를 이제 누가 불쌍히 여겨주겠느냐?"

 

비참한 영혼은 이 말을 듣더니 마귀를 향해 다음과 같이 울부짖었습니다.

"아, 이제 제발 나를 고문하지 마라!

이렇게 멸망당한 게 모두 내 탓인 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아 그것을 잊을 수만 있다면!
구원 받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내게 가장 큰 병이다.

나는 멸망을 당했고, 이것은 정당한 처분이다.

저주 받은 마귀야!

하지만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네 유혹 때문이다.

네가 나를 유혹하는 바람에 내가 이런 죄들을 짓게 된 것이다.

그런데 네가 나를 훈계한단 말인가?

나는 네게 끊임 없이 시험을 당했고, 네 사악한 유혹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 말을 들은 마귀는 냉소적으로 대답하였습니다.

 

"너를 이곳으로 떨어지도록 유혹한 것이 나의 소행이었음을 나도 인정한다.

네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다 그렇게들 말했지.
그들은 우리가 너를 멸망시키려 한다고 분명히 경고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우는 사자들처럼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아 다녔다.(벧전 5/8)

나는 네가 다른 사람들처럼 전도자들의 말을 믿고 돌아서서 우리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까봐 조마조마했었다.

하지만 너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따라와 주었고, 우리가 할 일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 주었으니 우리가 네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너무나 정당한 일이다."

 

* 거짓 증인들에게 가해질 형벌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멸망당한 영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고문하는 마귀들은 지옥의 분노로 용암과 유황을 끊임없이 그들이게 퍼 부었고,

그들은 극심한 분노와 고통을 못 이겨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에페네투스가 마귀에게 고문하는 이유를 물어보자 마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들은 이런 벌을 받을 만한 자들이다.

다른 사람에게 천국에 가는 올바른 길을 가르치는 듯 행세했으나, 정작 자신들이
지옥을 너무나 사랑한 탓에 이 곳에 온 저주받은 자들이다.

땅에서 지옥의 중요한 대리자 역할을 했으므로 지옥에서 특별한 대접을 해 주는게 마땅하다.

우리는 영혼에게 벌을 가할 때 각자 받아야 할 몫을 넘기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들이게는 안심하고 제한 없이 고통을 가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가르침과 행실로 그릇된 길로 인도한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 너무 늦게 회개한 영혼

그곳을 떠나 좀 더 가다가 애를 끓는 듯한 비참한 원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속여 이 곳에 떨어지게 한 자들을 향해 내뱉는 멸망 받은 영혼의 원망이었습니다.

"내가 평소에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이 내게 죽기 전에 "주여,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말하기만 하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했다오.

그런데 그들이 시키는대로 했다가 이 영원한 슬픔에 떨어지고 만 것이오.

임종 침상에서 긍휼히 여겨달라고 말했지만 때가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오.

임종을 앞두고 조금 정신이 들었을 때 마귀가 나더러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 놓고,

나중에 가서는 이제 너무 늦었으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며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오."

 

이에 대해 마귀가 답하기를

"오히려 공정하게 잘 된 것이 아니냐?

너는 죄를 좇아 인생을 허비하고 더러운 일을 탐닉해놓고서 막상 죽을 때가 되자 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정신 나간 자 말고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느냐?

죽을 때 천국에 가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살아 있는 동안 거룩한 생각을 해야 마땅하다.

너는 죽기 전에 "주여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라고만 하면 된다고 네 난잡한 친구들에게 들었겠지.

그것을 구실이라고 대는거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펼쳐서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는 말씀을 읽었다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상황을 정리하면 너는 능력 닿는 데까지 죄를 즐기려는 태도로 인생을 살았다.

죽음을 앞두고서 죄를 버린 것은 죄가 싫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죄를 따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는 이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죄를 사모하는 마음을 품은 채 천국에 가려고 했단 말인가?

그런 일이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너는 세상에서 경고를 들을 만큼 들었으므로 스스로 속지 말았어야 했다.

갈라디아서 6/7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

성경에 이런 원칙이 분명히 천명되어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원망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원망하려면 너무 늦게 깨달은 네 어리석음에 대해서나 원망하라."

 

출처 : 존 번연이 본 '천국과 지옥'

 

                                                                                      [출처]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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