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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존 번연이 본 천국과 지옥3

chajchul 2019. 5. 14. 22:00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존 번연이 본 천국과 지옥3

 

 

1부 천국과 그 영광을 보다 

 

b) 천국에서 옛 친구를 만나다

 

에페네투스는 얼마 전에 사별한 친구 주니우스(Junius)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니우스는 엘리야와는 달리 영적인 몸을 입지 않았고, 자기 육체를 아래 세상에 벗어 놓고 부활 때까지 안식하도록 놔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니우스는 에페네투스에게 다음과 같이 천국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이 곳에서 우리의 큰 행복일세.
보좌 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도들과 천사들이 크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찬송을 부르는데, 그 내용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권세와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계시록 5/12)라는 것이지.


이 곳에서는 지극히 찬란한 면류관을 쓴 이들도 자기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놓으면서 “오 주여, 주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이는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으며, 또 창조되었기 때문이니이다.”라고 말한다네.

하나님을 직접 뵈면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해지는데, 그것은 직접 맛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충만함이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도 하나님 앞에서면 너무나 찬란하고 압도적인 영광의 광채를 견디기 힘들다네.

천국에서는 성도들과 천사들이 합하여 거대한 성가대를 이루고 있지.


이곳에 사는 복된 성도들과 천사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묵상하는 것 뿐이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품는 사랑의 토대가 되네.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누린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지.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네.
하나님의 사랑의 복의 근원으로 모든 복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달할 때 쓰시는 통로와 같다네.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한다면 앞 못 보는 소경과 같은 사람이야.

우리가 아래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은 워낙 큰 영적 선물과 그로 말미암는 기쁨을 약속하신 까닭에 그 약속만 가지고도 큰 위로를 받고 남음이 있었지.
과연 그 약속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란 신분에 합당하게 버릴 것을 요구한 일시적인 세상 낙들을 훨씬 능가하는 귀한 것이었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어두운 눈이 감길 때 오히려 가장 밝게 나타나게 돼.
영이 육신을 떠날 때 하나님은 곁에 가장 가까이 있어 줌으로써, 이 복된 곳에 도착하는 영혼마다 옛적에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했던 말이 마음에서 우러 나오게 만들지.


룻기 2/20 나 오미가 그녀의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산 자와 죽은 자에게서 그의 친절을 거두지 아니한 그 사람이 주로부터 복받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나오미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그 사람은 우리에게 가까운 친족이며 우리의 다음 친척 중 하나니라.” 하더라. 

우리가 이렇게 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 덕분이야.
천국은 어디를 가나 행복이 넘치는 곳이지.
세상의 여러 가지 낙에는 공허도 많이 따르지만, 천국의 복락은 우리의 기대를 훨씬 넘어서지.
일찍이 사도가 말한 그대로일세.

고전 2/9 그러나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였고 귀로 듣지도 못하였으며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온 적도 없었느니라.” 한 것이라.

 

*말로 다 할 수 없는 천국의 복락

우리가 누리는 정결한 기쁨은 우리의 지각을 넘어설 뿐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만큼 지고(至高)하지.
우리가 아래 세상에서 무엇을 가장 완전한 행복인 줄 알고 살았든 간에 이곳에서 누리는 경험은 우리의 기대를 크게 넘어선다네.

우리가 아래 세상에서 살 때 품었던 생각들이 씻겨질 뿐 아니라 그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 차원에 올려지지.
이곳에서 우리 기능들이 적절하고 좋은 대상들을 맞이할 뿐 아니라, 우리 기능 자체가 높아지고 확대되기 때문이지.


복을 받아 이 거룩한 장소에 들어오도록 허락된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유익이 베풀어진다네.
첫 째는 복된 영혼이 이 곳에 오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새롭고 독특한 환경을 접하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의 여러 역량이 확대되어 전에 알지 못하던 대상들도 알아보고 거기서 새롭고 더 큰 만족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지.

이곳의 행복은 아무리 큰 과정법을 사용해도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되다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기쁨을 일일이 열거하고 평가하는 법을 배우는데, 그것이 다 합쳐져서 완전하고 영원히 참된 복락을 누리는 것일세.


이곳에서 우리가 품는 소원은 잘못된 대상을 선택하는 일도 없고, 성취되지 않는 일도 없다네.
소원이 어김 없이 올바른 데다 틀림 없이 성취되거든.

이곳에서 우리는 아래 세상에서 그토록 흠모하던 복된 성도들을 만날 뿐 아니라 그들처럼 되기까지 한다네.
성경에서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히 12/23)이 바로 그들이지.
아래 세상에서 온갖 고초와 몰이해를 당했을지라도 이곳에서는 실은 인품이 너무 훌륭하여 존경의 심정을 금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영들도 만난다네.

 

* 예수님과 함께 하는 영광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곳에서 한 번 뵈면 죽어도 여한이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예수님)을 보고 살지.
그분은 무한히 완전하신 점과 측량할 수 없이 크고 많은 유익을 끼쳤다는 점에서 우리의 진실한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지.

복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종의 형체'(빌 2/7)를 가지신 목적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심으로 아래 세상에서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을 수행하시기 위함이었지.


그분은 '만 왕의 왕이시며 만 주의 주'(딤전 6/15)로서 왕의 직분에 따른 왕의 지위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분에게 부여되었지.(마 28/18)

그분은 찬란한 엄위와 광채에 둘러싸여 계셔서 과연 우리가 가장 흠모할 분임을 금방 알 수 있다네.
그분의 눈은 보좌에 앉으신 그분의 숭고한 영광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빛난다네.
그러나 복되신 우리 구주께서는 이렇게 크고 영광스러울지라도 두려워 범접하기 어렵지 않고, 오히려 지극히 인자하시고 친절하시다네.

우리 구주께서 누리고 계신 형언할 수 없이 큰 행복이 그분에 대한 우리 사랑의 열기에 따라 우리에게도 행복을 가중시킨다네.


이곳에서 우리가 맛보는 기쁨은 참으로 크지만 기쁨에 무슨 조건이나 상황이 굳이 필요 없어.
우리 구주께서 행복해 하시는 사실 그 자체가 그분이 내리시는 후한 선물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뚜렷한 증거이기 때문에 우리 행복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지.

주님은 충성된 종들을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가면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하시지.(마 25/21)
그리스도는 당신의 모든 역량과 조건을 다 동원하여 우리를 위해 풍부한 행복의 근원을 마련해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슬픔에 동참하시거나 그분의 기쁨을 우리에게 나눠주시는 것이 그분이 항상 해 오신 자비의 일이라네.
몸소 고난을 당하시어 우리의 비참함을 덜어주시거나 몸소 기쁨을 나눠주시어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하시는 것일세.

 

* 완전한 사랑

이곳에서는 복된 자들이 하나님과 서로 간에 완전한 연합과 사귐 안에서 살고 있지.
이곳에서는 '장자들의 총회'(히 12/23)가 영원히 복되신 하나님을 직접 뵙고 복을 누리는 까닭에 서로에 대해서도 그 순결한 사회를 하나로 연합시키는 지극히 순수한 기쁨과 거짓 없는 뜨거운 사랑을 주고 받는다네.

천국에서는 사랑의 동기도 훨씬 숭고하고 사랑의 정도도 땅에서와 비교할 수 없이 뜨겁다네.
우리의 영적인 관계는 아무리 강한 혈연적 유대보다 더 가깝고 항구적이지.


이곳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와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네.

사랑이라는 중요한 동기는 아래 세상에서조차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이지.
아래 세상에서도 지혜와 거룩과 선과 정절이 서로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며, 혈육의 관계나 그 밖의 육체적 관계보다 더욱 친밀하게 영혼들을 결합시킨다네.

주름이 있고 건장한 모습이 사라진 노인이라도 덕이 있으면 존경을 받고, 아름답고 젊을지라도 약하면 혐오의 대상이 되지.


에페네투스, 자네는 천국에서 육체의 눈보다 더 총명한 눈을 보았고, 감지할 수 있는 빛보다 더 순결한 빛과, 육체의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신적인 아름다움, 감각적 사랑보다 더 고상한 사랑을 본 것일세.
왕이면서 선지자였던 다윗이 '나의 모든 즐거움은 그들에게 있도다'(시 16/3)라고 예찬한 것이 바로 그것이지.

아래 세상에서는 아무리 영적인 사랑일지라도 불순한 요소들이 끼어 있다네.
훌륭한 위인들에게도 취약한 점과 흠이 있어서 그들에 대한 존경을 깍아 내리게 되지.
하지만 이곳에서는 완전을 이루는데 필요한 모든 영광스러운 덕성들이 다 결합함으로써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이룬다네.


복된 영혼 하나하나가 최초로 덕의 온전한 본을 보이신 구주와 정확히 일치한다네.
신적인 아름다움이 그들 안에서 영원히 빛난다네.
그것은 오염된 열기를 조금도 내뿜지 않는 아름다움이요, 범접과 상해를 당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안에 비치는데, 거룩한 눈에 하나님을 닮은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해 보이겠는가!
나는 동료 성도들이 불멸의 사랑으로 빛나는 모습에 항상 매료된다네.
이곳에서는 누구나 서로에게 온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네.
이러한 사랑을 품고 연합해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 완전한 행복

이 복된 곳에 사는 사람은 소원을 품을 필요 외에는 다른 아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네.
무엇을 소원하면 즉시 풍성하게 얻게 되지.

항상 변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새롭다는 것이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특징이라네.
권태는 대상이든 욕구든 어느 한 쪽이 불완전할 때 생기는 법이지.

이곳에서 우리가 누리는 복은 워낙 크기 때문에 복의 내용이 다채로울 필요는 굳이 없다네.
다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끊임 없이 배워가는 지식 뿐이야.


땅에서 굳이 유사한 것을 찾는다면 다이아몬드가 다양한 각도에서 발산하는 광채일 것일세.

하나님 안에도 이와 같이 동질의 다양함이 있으며, 이 다양함은 영원히 배워도 다 깨달을 수 없으면서도 인간에게 피곤함과 번민을 주지 않는다네.
이곳에서 복 받은 영혼들도 항상 처음인 것처럼 매 순간 설렘으로 기쁨을 맛본다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은 다함이 없고 광활하여서 그것을 온전히 맛보려면 영원의 세월이 필요한데, 바로 우리가 그 세월 안에 놓여 있지.

천국에 대해 말해 주었지만 아직 하고 싶은 말의 천분의 일도 하지 못했고, 이곳에 와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우리가 누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없지.
이제 자네가 할 일은 사멸적 육신을 내려 놓는 날까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히 6/12) 기다리는 일일세.

히브리서 6/12 이는 너희가 게으른 자가 되지 아니하고 믿음과 인내를 통하여 그 약속들을 유업으로 받는 사람들을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

                                                                                      [출처]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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