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7가지
(계 7:13-17)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1.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15절)
천국은 달리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가 있기 때문에 천국입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낙원을 만들어도 그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없으면 그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반대로 해골 골짜기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면 그곳은 천국입니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처럼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다면 그때 천국 삶이 펼쳐집니다.
2.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곳(15절)
천국은 아무 일도 없이 낮잠만 자는 곳이 아닙니다. 일이 없는 것은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도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도 천국의 삶이지만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도 천국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은밀히 봉사하는 삶은 이 땅에서 천국 삶을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3. 하나님의 절대보호가 있는 곳(15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구원받은 백성들을 온전히 보호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인을 맞은 자이기에 하나님은 성도를 세상 끝 날까지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최악의 상황이라도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진실한 성도에게는 죽음도 최상의 축복입니다.
4. 배고픔과 목마름이 없는 곳(16절)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목마르게 원하는 것은 바로 돈입니다. 물론 돈의 추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선한 일을 하려고 돈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돈에 목매달고 살면 그때부터 삶은 지옥이 됩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돈을 벌면서도 하나님의 일과 좋은 일에 과감히 드리십시오. 그때 천국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5. 상처와 아픔이 없는 곳(16절)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란 표현에서 이 땅에서 사람을 상하게 하는 해나 뜨거운 기운은 무엇일까요? 시기, 질투, 오해, 외로움, 그리고 서러움과 섭섭함 등입니다. 그런 문제들은 인간 사회의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결국 상처 가운데 사는 것이지만 천국에는 더 이상 그런 상처가 없습니다.
6. 주님의 선한 인도가 있는 곳(17절)
주님의 선한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이 일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그처럼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확신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천국 삶을 살 수 있습니다.
7. 하나님이 눈물을 씻어 주는 곳(17절)
천국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은 아니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흘리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입니다.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 같은 죄인이 천국에 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적인 사실입니까? 그런 감격이 천국에 들어설 때는 더욱 생생하게 피부로 느껴지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니까 하나님이 친히 그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천국 소망으로 사십시오
성도에게 가장 큰 위로의 말은 무엇입니까?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길은 나그네 길이기에 이 땅에서 가끔 소외되는 일을 당해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성도는 천국에서 발행된 여권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사는 것이기에 이 땅에서는 소외될 수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본향에 가면 눈물을 씻겨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대하면서 누구보다 큰 기쁨과 위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까?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것을 과감히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늘날의 재벌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본향을 바라보며 양보하며 살았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은 신기하게 더 채워주셨습니다. 성경은 재벌이 되는 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재벌이 되어도 아브라함처럼 되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메시지입니다.
성도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이미 배설물처럼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고향은 미래에 있습니다. 그 본향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처럼 홀가분하게 사십시오. 그처럼 타향살이를 하기에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고난을 겪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처럼 더 나은 천국 본향을 사모하며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감으로 천국에 갔을 때 눈물을 씻겨주시는 하나님을 기쁨으로 만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십시오.
이한규목사
[출처]
천국과 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