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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

chajchul 2023. 8. 17. 22:02

♡ 결혼,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


작성자 : 존 그랜트

 

하나님이 인간과 관련해서 하신 말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위의 진술을 통해 남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그에게 합당한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돕는 배필을 여자로 부르고, 여자를 창조하신 후에 그녀를 남자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곧 남자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의 초창기에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결혼을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서로 돕고, 교제하며, 자녀를 낳고, 사랑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정하셨습니다.

가정 생활의 각 부분들을 다루게 될 이 시리즈를 시작하기에 앞서 과연 모든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내를 얻고, 가정을 꾸리는 일에 대해 가족들과 친구들로부터 압박을 받기도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일에 대한 실패가 일종의 미성숙이나 결점인 듯이 말합니다. 젊은 여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동일한 스트레스가 있는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혼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마치 그녀가 매력적이지 않다든지, 혹은 이기적이기 때문임을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월이 흘러갈수록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심한 압박을 받게 됩니다. 남자는 자기를 보살펴줄 아내를 필요로 하며, 마찬가지로 여자도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 남편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우리는 이미 결혼 제도가 창세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으며, 대다수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사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모든 사람이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신자와 결혼한 신자의 예

사도행전 16:14에서 우리는 아시아 두아디라 성에서 온 루디아라고 하는 여인을 보게 됩니다. 루디아는 여성 사업가였는데,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암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자주빛 비단 장사였던 루디아는 여러 곳을 다녔을 것이고, 빌립보에도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놀라운 메시지를 들었던 루디아는 믿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빌립보에 자기 집을 가지고 있었고,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접대함으로써 주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태어나기 전부터 주의 사역을 위해 성별되었으며(렘 1:5), 아내를 취하지 말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렘 16:2). 따라서 다른 사람들처럼 아들이나 딸을 두는 기회도 희생해야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주님을 섬겼던 환경을 고려해보면, 결혼하지 않은 것이 더 좋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의 경우처럼 섬김의 요구들이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매우 나이 많은 안나라 하는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전 뜰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눅 2:36). 안나는 결혼한지 7년만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안나는 재혼하지 않고 오랜 동안 과부로 지냈으며, 이스라엘의 구속됨을 날마다 바라보며, 매우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삶의 본이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복음전도자인 빌립이 있는데, 그의 초기사역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빌립은 결혼하여 가이사랴 지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행 21:8-9). 초대교회 시대에 빌립은 복음을 사마리아에 전한 최초의 복음전도자였으며, 그곳에서 많은 축복을 친히 목격하였습니다. 가사 지방에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의 구원을 확인한 후, 빌립은 가이사랴에 다시 돌아와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후에 사도행전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은 빌립이 네 명의 딸을 두었고, 모두 예언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빌립이 경건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결혼한 사람이며, 복음서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자기 아내와 그리고 장모와 함께 살았음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바울은 우리가 고린도전서 9:5에서 보는 것처럼 아내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결혼을 포기했음을 보여줍니다.

결혼하지 않고 미혼으로 사는 정당한 이유

이런 저런 사례들은 결혼한 사람이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다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을 위한 사역을 감당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결혼할 것인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확실한 지침을 줍니다. 마태복음 19:3에서 주 예수님은 이혼에 관해 한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결혼 관계가 영구한 것임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그렇다면 남자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 예수님의 대답은 다분히 교훈적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결혼하지 않고 살수는 없지만, 결혼하지 않고 살수 있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고자(eunuch)'라는 단어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11-12절에서 우리는 세 가지 종류의 고자에 대해 보게 됩니다.
1. 모태로부터 날 때부터 고자된 사람이 있습니다. 날 때부터 결혼에 대한 욕구가 없거나 결혼의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고, 육체적인 문제로 인해 결혼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습니다.
2. 사람에 의해 고자된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해를 입거나, 신체가 손상된 사람이 있습니다.
3. 천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가질 수 있지만, 천국을 위해서 결혼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의 경우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결혼을 일부러 삼가는 것인데, 왜냐하면 결혼을 하면 아내나 자식에게 매이기 때문에, 아내나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없이 주님을 더욱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해 마음에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26-27에서 바울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환경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더욱 많은 자유를 부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일에 있어서 자격이 미달된다거나, 미혼인 상태로 지내는 것이 건전치 못한 것이 아닙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악한 일로 정죄된 동성애 관계에 빠질 염려가 있다고 하는 전혀 쓸데없는 억측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성경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결혼한 사람의 위험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것은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만일 결혼하지 않은 남자 혹은 여자가 지속적으로 참을 수 없는 육체의 정욕에 불타고 있다면, 부정한 육체관계에 빠질 수 있는 위험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차라리 결혼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7:9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이며, 바울은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삶 가운데는 아내나 남편이 줄 수 있는 지지(support), 사랑, 그리고 우정이 없이 홀로 지내는 외로움의 위험이 있습니다.

대부분 남자와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어떤 기독교 그룹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것이 결혼한 것보다 더 큰 경건인 것처럼 수년동안 가르쳐 왔습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혀 비성경적인 견해입니다. 히브리서 13:4에 보면,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고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결혼을 하는 것도 어떤 위험들이 따른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을 허비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고,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일에 신경을 쏟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내들은 자기 남편을 기쁘게 해주는 일에 온통 관심이 쏠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거룩하지 못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은 곧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몰두하고, 가정을 세우는 일에 모든 힘을 쏟음으로 인해서, 마땅히 해야 하는 주님을 섬기는 일이 등한시되는데 있습니다. 신령한 남편과 아내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자신들의 영적인 책임을 감당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혼할 것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에게 이 주제를 어떻게 적용시키겠습니까? 당신은 이미 결혼이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고, 하나님의 승인을 받은 사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당신은 자신이 결혼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대답하기 전에, 당신이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즉 주님이 당신을 무슨 사역을 하도록 부르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이 부르심을 받은 사역을 감당하고, 그분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유용한 상태에 있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항상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궁금해하는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일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주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그러한 삶으로 부르신 증거이며, 따라서 결혼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아내나 남편의 도움과 사랑과 돌봄이 없이 홀로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삶이 당신을 향한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은 당신이 그러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지원과 위로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결혼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결혼해야 합니다. 문제는 바로 어떤 상태가 주님이 당신을 부르신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감당하고, 주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섬김의 분야에 있어서는 결혼하지 않은 것이 지혜롭지 못하거나 부적절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가 함께 함으로써 많은 잠재적인 어려움들과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이 직면할 수 있는 거북한 상황들이 제거될 수 있습니다. 한편 어떤 섬김의 분야는 자주 어려움과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결혼이 지혜롭지 못한 것이거나 심지어는 해서는 안될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한 어려운 환경의 삶에 헌신한 사람들은 오히려 아내가 없을 때 주님을 섬기는 일에 더 큰 자유를 가지게 됩니다. 이 경우에도 모든 잠재적인 어려움들을 미리 고려한 후 그와 같은 삶이라도 함께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결혼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에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그밖에 다른 상황에서처럼, 어떤 결정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환경적인 요소로 인한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이러한 환경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인식하고, 마음을 굳히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결혼할 것인가, 혹은 하지 않을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결정할만한 공식이나 원칙은 없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삶의 문제이고, 그 속에서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므로, 많은 열매를 맺는 문제입니다. 어떤 남자와 여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이러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동일하게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며,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고, 삶의 여정을 걷다보면,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도, 또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모두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열정과 충성으로 주님을 섬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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