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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시작은 용서였습니다!! ♡

chajchul 2015. 8. 18. 12:11


     ♡ 사랑의 시작은 용서였습니다!! ♡


나는 최일선에서 선교를 하면서 사랑과 용서가 없다면 선교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수많은 배신 속에서도 그들을 용서하고 허물을 덮어 주고 사랑으로 끌어안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가능한 것이 선교였습니다.

용서라는 말은 사실 기독교인들에게만 허용된 말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어떤 종교, 어떤 교리에도 회개라는 말이 없듯이 용서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믿는 어느 무엇에게도 죄 사함의 용서를 받은 적이 없었고 받을 능력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용서를 해줄 권한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단 그들 불신자나 이교도들은 사과라는 말을 쓸 수 있겠으나 이 사과는 용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입니다.

그러면 용서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는 용서라는 단어가 몇 가지로 나왔습니다.

구약의 히브리어로 '나싸', '사리흐', '아바르'이며 신약의 헬라어에서는 '아포뤄오', '압히에미', '파라이 테오 마이', '카리조 마이' 등의 단어가 개역성경에는 용서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의 공통된 뜻은 '너그럽게 보아주다', '덮어두다', '숨겨주다', '깨끗하게 하다', '지워주다', '탕감해주다', '형벌의 사죄 혹은 면죄', '해방시키다', '풀어놓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요약해보면 우리의 죄를 너그럽게 보아 덮어 숨겨주고, 깨끗하게 씻어 지워주며, 빚을 탕감해주고, 벌을 받아야할 사람을 사면해서 방면시키며, 노예를 풀어 해방시켜 주는 것 등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용서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며 심판자가 죄인에게 해줄 수 있습니다.(계속) 글/김영식 목사

『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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