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사후의 세계 연구
다들 자기의 그 이름을 가지고 천국으로 간다는 것을 잊으니 그 결과가 어찌 되는 것인가? 나의 그 이름이 보배롭고 그리고 참된 빛이 난다는 것을 잊으면 아니 된다. 오늘 당신의 그 이름은 하나님이 아시는 이름이고 하나님이 보시는 이름이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름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그 이름을 바로 보고 바로 알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자신의 그 이름” 그것 하나 잘 간수를 하지 못하니 이를 어찌하는가? 당신의 이름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다 고이 간직하라.” 그러면 이방인이 그리고 악한 마귀와 그 일당이 넘어오거나 아니면 똥 걸레로 만들지는 아니할 것이다. 모두가 정신을 차리는 성도들이 되라.
“제3장, 목사나 교인들이 사후의 세계인 천국이나 지옥, 낙원이나 음부로 갈 그 때에 가지고 갈 그것들을 이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면 속수무책 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를 못하고 있는가? 그것이 아니면 이 문제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들이 없는 것인가?”
※ 거두절미하고 여기서 먼저 유의할 것은 필자의 모든 저서들이나 본문 연구인 “사후의 세계”에 대하여는 타인의 지적소유권을 침범한 사실이 전혀 없음을 알립니다.
만약에 천국이나 지옥이 있다면 당신은 천국과 지옥 이 양자 중에서 그 어느 것을 선호하고 있는가? 그것이 과연 천국인가?(마 23:13) 그것이 아니면 지옥인가?(마 23:15) 이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이 있는 것인가? 그러면 여기서 마태복음 8:11-12절을 보면서 너는 “전자인 천국”을 바라보면서 달려갈 것인가?(빌 3:14)
그것이 아니면 “후자인 지옥”을 그 목적으로 삼고서 달려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필자는 내세론 연구 제 1장과 제 2장에서 우리가 천국으로 갈 그 때에 그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지 그것을 밝혔다. 필자는 제 1장에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갈 그 때에 우리는 그 무엇도 가지고 가지를 못하고 “우리의 영혼”만을 가지고 간다는 것을 밝혔다(눅 12:19-20, 16:20-25). 그러기에 우리의 영혼이 그 얼마나 복되고 귀한 것인지? 그것을 밝힌바가 있다.
그리고 제 2장에서는 저 세상으로 갈 그 때에 우리는 각기 “자기의 이름” 그것 하나를 가지고 간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문제는 역사와 현실위에서 비상한 관심사임에는 사실인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는 먼저 욥기 1:21절을 보고 그리고 다시 전도서 5:15절과 디모데 전서 6:7절을 바로 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필자는 본 제 3장에서는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갈 그 때에 그 무엇을 가지고 가는 것인지 그것을 밝히려고 한다. 여기서도 우리들 모두의 바른 이해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를 바로 아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면 우리가 사후의 세계인 천국으로 갈 때에 그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지를 강조(말)하기 이전에 이 문제부터 바로 알지 못하면 결코 아니 되는 것이다. 그 누가 무엇이라고 하여도 내세 곧 하나님의 나라를 바로 알지 못하면 결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는 제 3장에 들어가기 이전에 다음의 문제들부터 바로 알지 못하면 결코 아니 되는 것도 바로 알아야만 한다. 그러면 다음을 유의 해야만 한다.
① 오늘에서 그리고 이 시점에서 당신이 그리스도인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당신이 지향하고 생각하고 믿으려 하고 그리고 가고 싶어 하는 그 천국은 그 어떤 곳인가 하는 것이다(물론 지옥도 예외는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이 시점에서 당신이 목사이거나 장로나 권사. 집사이라면 당신이 현실적으로 믿고 생각하는 그 낙원이나 그 천국은 미래에 나타날 가상적인 사후의 세계이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과거나 현재에서 비상한 관심사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어서는 천국은 미래적인 나라 또는 미래 상상적인 천국 또는 사후의 세계로서 어떤 나라일까 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 같이 상당수가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이 사후의 세계에 대하여는 미래 또는 상상적 천국 화하고 있기에 문제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세는 육으로는 결코 보이지 아니한다. 그리고 그 나라에는 이미 갔다가 온 이가 전혀 없기에 그 세계(나라)를 불신과 불신앙자들이 미래 상상적인 세계(나라)라고들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사후의 세계를 전혀 믿으려고 하지를 아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후서 12:1-4절을 보라. 여기서 바울이 보고 온 그 곳은 셋째 하늘로서 낙원인 것이다. 그럼에도 유의할 것은 이 낙원은 천국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사후의 세계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곳은 먼저는 낙원이고 그 다음은 천국이다. 낙원은 죽음과 동시에 들어가는 나라로서(눅 16:19-25) 우리의 영혼만 들어가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낙원이 아니고 하데스라는 음부의 불속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서의 가르치심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17:1-4절과 마가복음 9:2-7절을 보라. 이는 오래 전에 죽은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상에 나타난 것인데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그 산에 나타났으나 그럼에도 이들이 천국에서 변화산상으로 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낙원에서 온 것뿐이다. 그 누구도 이점을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천국으로 가려면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요 14:1-3, 살전 4:14-17) 인류의 부활과 그리고 백보좌의 심판대(계 20:11-15) 그 이후이어야만 한다. 이것도 사전에 알아두어야 할 과제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자기의 영혼을 부탁하셨고(눅 23:46)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인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을 그 때에 자기의 영혼을 부탁하신 것인데(행 7:59) 여기에서 자기들의 영혼을 부탁하신 그 곳은 사후의 세계인 낙원이지 천국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누구도 이 낙원개념과 천국개념을 오해하거나 혼돈해서는 결코 아니 되는 것이다.
② 이 시점에서 기독교나 그리고 목사나 교인들이 갈망을 하고 그리워하며 사모하는 그 천국은 “두뇌적인 천국”이 아닐까 하는 자들이 심히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고와 사상과 신앙은 교인들이나 목사들만이 아니고 일반인들도 그렇게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그가 그 누구이든지 간에 우상의 복잡한 공장이고 그리고 인간의 두뇌는 우상을 착색해 내는 공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다들 교회당이라고 하는 그 곳에서 목사나 교인들이 언제나 천국과 지옥을 잘도 만들고 착색들을 쉬지 아니 하고들 있다. 그래서 각종 교회당들에서 내세를 강조하고 전달하는 그것들을 보면 목사들마다 다르고 교인들마다 다르고 있다. 그러기에 이런 종교인들에 의해서 또는 목사들에 의해 조직과 조작이 되고 착각과 착색이 되고 찬란하게 가공이 된 이 천국과 지옥으로 인하여 기독교가 그리고 목사와 교인들이 아주 심한 홍역들을 치루고 있으니 문제가 된다. 당신은 목사로서 천국과 지옥을 두뇌로 착각과 착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각종 유토피아적인 천국이나 내세적인 망상이나 망각된 천국을 믿거나 내세우거나 연상을 하기에.... 이로 인하여 문제가 심각하여 지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의 교회당들과 목사들과 교인들을 보면서 이 유토피아적인 천국사고나 사상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결코 아니 되는 것이다. 행여나 오늘에서 당신이 생각하고 바라는 내세관은 유토피아적인 것은 아닌지? 그것도 심히 의문이고 아리송하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당신이 기성 교회당의 목사나 교인이라면 어느 천국에 더 가까이 가서 있는 것인가? 솔직히 유토피아적인 천국사상과 신앙과 신화성에 더 가까이 가서 있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면 각종 두뇌적인 천국사상과 사고와 신앙과 신화에로 더 가까이 가서 있는 것인가? 이것부터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아니 되는 것이다. <계속>
▲송 기 호 박사
예장연합장신총회 총회장
총회신학·신학연구원 원장
[출처]
천국과 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