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
1950년 9월의 서울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그는 서울 시내를 돌며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며 보살폈습니다. 그는 당시 공군 중령이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 후인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연합군이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때 그는 “이 아이들을 내버려둔 채 혼자만 후퇴할 수 없습니다.”라며, 상관 명령에 불복종합니다.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유엔연합군은 철수를 서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피난시킬 방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러다 때마침 공군사령에서 공군 책임자를 만나 다음과 같은 약속을 받아냅니다.
“일본에서 대기하고 있던 C-54 수성기 16대를 김포공항으로 보내 주겠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김포공항으로 오지 않으면 안 된다.”
비행기로 대피시켜 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시간은 15시간, 돌보던 아이들은 1069명이었습니다. 더욱이 김포공항으로 이송할 수 있는 트럭은 단 한 대뿐이었습니다.
중령이 트럭을 구하는 동안 아이들은 추위에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트럭을 구하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하는데, 마지막으로 들른 마을에서 기적적으로 시멘트를 싣고 있던 해병대 트럭 14대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중령에게는 해병대 트럭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는 공군 중령 계급을 이용해 상부에서 명령이 하달됐다고, 아이들을 즉각 이송하라고 한다며, 해병대에 불법 명령을 내립니다.
그렇게 14대의 해병대 트럭을 이용해 아이들을 김포공항으로 이송시킵니다. 1950년 12월 20일, 그렇게 1069명의 아이들이 제주도로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른바 ‘유모차 공수 작전’이라 불리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을 수행한 사람은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입니다.
그는 당시 공군 중령이자 군종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불법 명령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관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때 그는 ‘왜 명령에 불복종하며 불법 명령을 했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 22,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