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좋은 어머니 모임에서 부모교육을 할 때 무슨 이야기 끝에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고 거기에
참여한 어머니들에게 물었다. 어머니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호
랑이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요.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난 어머니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
다. 하지만 나 자신이 반성도 되면서 ‘맞아, 그 말이 틀림이 없어.’
하고 수긍이 가기도 했다.
어머니들은“지금와서 고친다는 것은 무리인것 같아요. 아무래도
포기하고 살아야할 것 같아요.”하고 덧붙이기도 했다.
어머니들의 말대로 배우자의 성격을 고칠 수는 없는 것일까? 더 이
상 기대하지 않고 사는 게 지혜롭고 현명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누구든 배우자의 성격을 고칠 수는 없다. 고치
려고 하면 할 수록 기대하던 것과는 더 멀어지는 것을 금방 체험할 것
이다. 하지만 한 가지 소망적인 것은 가정사역자 게리 채프먼의 말대로
고칠 수는 없지만 고치도록 영향을 줄 수는 있다.
그 여인과 상담한 때가 한 1년 전쯤 되는가보다. 어느날 그 여인으로
부터 전화가 와서 약 1시간 정도의 상담을 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남편의 모든 면이 도무지 마음에 든게 없다는 이야기
였다. 고쳐보려고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심해지더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많은 애를 썼다는 위로와 함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만이 성격을 고칠 수가 있다는 점과 그럼에
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쳐나갈 수 있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다
는 것을 말해주었다.
최근에 또 다시 전화 통화를 하였는데 남편께서 그동안 어떤 부분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또 다른 부분에서는 아주 작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이었다.
그 여인이 전에 남편에게 사용한 방법은 주로 비난이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슬며시 포기하고 그만두면 ‘남자가 왜 저렇게 결심이 없을까?’
못마땅한 표정을 보이며, 비난하다가 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여인이 최근에 사용한 방법은 전혀 다른 방법이었다. 무슨
일을 하다가 낙심하면 “일이 잘 안되니 속이 많이 상하지요? 너무 상심
하지 말아요. 다시 한번 해봅시다. 살아 있는 한 무슨 일을 못하겠어요.”
등등의 이해와 격려와 인정의 말이었다.
아내는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만
상대방에게는 그 말이 비난의 말로 들려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반면 이해와 격려의 말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낸시 상담가는 이렇게 말한다. "비난은 사람들을 방어적이거나 반항적
으로 만든다." 그녀는 워크숍에 온 한 아버지의 다음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절 못살게 굴었어요. '넥타이를 똑바로 매라. 머리
를 단정히 빗어라. 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심스런 마음이 든다.'
아버지의 말은 제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했어요. 전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몇 십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한다할지라
도 난 듣고 싶지 않아요."
가정사역자가 게리 채프만이 말한 바 "다른 사람의 성격은 고칠 수는 없
지만 고치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다."는 말을 나도 늘 마음에
새겨야겠다. -송 남 용 -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눅 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