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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가 다니던 교회!! ♡

chajchul 2015. 11. 9. 23:41

     ♡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가 다니던 교회!! ♡

한국에는 1832년 귀츨라프 목사가 고대도와 서해안을 다녀간 후에 33년이 지나서 영국인 토마스목사가 1865년에 첫 방문, 그리고 1866년에 다시 내한하여 대동강변에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토마스목사가 흘린 첫 순교의 피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 선교사를 많이 보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영국 웨일즈의 아버가베니의 하노버교회는 토마스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이며, 1863년 6월 4일 목사안수를 받은 곳으로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마침 얼마전 한국을 방문하여 같이 신우회에 모셨던, 런던 청지기 교회의 이호근 목사께 하노버교회의 사진을 부탁드렸는데, 바쁘신 가운데 런던에서 차로 4시간 거리의 그곳에 가셔서 하노버교회와 토마스선교사가 사시던 집의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토마스는 1840년 9월 7일 영국 웨일즈의 라드노주 라야다에서 회중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63년 5월에 런던대학의 뉴칼리지를 졸업하고 1863년 하노버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곧 바로 런던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의 상해로 온 것이 그의 나이 23세때입니다.

중국에서 아내 캐롤라인이 병사하자 토마스는 낙심하여 런던선교회를 떠나 청나라 세관에서 통역연수관으로 한때 근무하게 됩니다.

그 때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윌리암스목사와 친해지면서 그 집에서 한국인 두명을 만나 한국말을 배우며 한국선교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1865년 9월 5일에 중국을 떠나 10월 9일에 황해도 자라도에 도착하여 전도지, 성경 16권과 달력을 나누어 주었으며 그 후에 2달반 동안 백령도를 비롯한 섬에서 전도를 하였고, 한강을 가슬러 올라가 대원군에게 전도를 시도하려다 2번이나 폭풍을 만나서 중국으로 되돌아 가게됩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조선행을 좌절하지 않고 1866년 8월9일에 다시 조선과 무역을 열기 위한 무장상선인 제너럴 셔먼호를 타면서 "나는 상당한 분량의 책들과 성경을 가지고 갑니다. 조선사람들한테 환영받을 생각을 하니 얼굴이 달아 오릅니다"라며 기뻐하였습니다.

조선에 온 셔만호는 서해를 거쳐 대동강하류인 강서군 초리면 포리를 거쳐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봉황진에서 배가 그만 모래사장에 막히게 되었습니다.

이 때 평양감사 박규수가 군대를 동원하여 셔만호를 불태웠고 잡히기 까지 성경을 주민에게 나누어 주던 토마스는 모래사장에서 참수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가 26세였으며 1886년 9월 2일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순교한 토마스를 생각하며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졌구나(욥기 17:11)"라는 애절한 말씀을 묵상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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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흐르는 음악/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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