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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영의 세계 1

chajchul 2018. 6. 8. 22:00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영의 세계 1


*  다음의 글은 도서출판 "두루마리"에서 펴낸 「다시 보는 성경」에 있는 글입니다. 

성경은 초자연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현 시대에 팽배한 물질주의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이 영의 세계에 대해 보여주는 것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세계에서 영적인 세계로 가는데는 단 하나의 계단이 있으며, 이 두 세계를 나누고 있는 베일은 바로 우리의 육체입니다. 하늘에는 모두 영적 존재들만 있으며, 그들은 두 종류 즉 좋은 존재와 악한 존재로 나누어집니다. 그들은 '세라핌', '케루빔', '천사들'(좋은 천사와 나쁜 천사), '정사들', '권능들', '어두움의 주관자들', '악한 영들'(엡6:12), '왕좌들', '지배들'(골1:16), '타락한 천사들'(벧후2:4), '옥에 있는 영들'(벧전3:18-20), '마귀들', '미혹하는 영들'(딤전4:1) 등으로 구분됩니다.

히브리서 12:22에 있듯이, 천사들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들은 매우 큰 능력을 갖고 있으나 전능하지는 못합니다(살후1:7). 그들은 힘이 매우 강해, 천사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앗시리아의 군대 185,000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천사 하나가 그리스도께서 누워 계셨던 무덤에서 큰돌을 굴려 냈고, 장래에는 또 다른 천사 하나가 사탄을 결박해서 '바닥 없는 구덩이'(무저갱) 속으로 던져 넣을 것입니다. 이들은 다 영광스런 존재들이며(눅9:26),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천사들은 구원의 상속자가 될 사람들에게는 수종드는 영들이며(히1:13,14), 사악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수행하는 존재들입니다(살후1:7,8). 장래에 이 천사들은 세상의 사방에서 이스라엘의 선택된 자들을 불러모을 것이며(마24:31), 하나님의 백성의 물질적 필요를 채워 줄 것입니다(마4:11, 왕상19:4-8).

영적 세계의 "정사들과 권능들" 가운데는 뛰어난 존재들이 셋 있습니다.

1. 미카엘

그는 다니엘서에서 세 번 언급되고 있으며(단10:13,21,12:1), 다니엘의 백성 즉 유다인들을 대표하는 통치자(Prince)로 칭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유다서 9절에서 천사장으로 불립니다. 요한계시록 12장 7절을 보면, 그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의 군대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인들을 사탄의 권능으로부터 건져내며 하늘에서부터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땅으로 추방시키는 것입니다(계12:7-9). 그는 또한 죽은 자들의 부활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니엘서 12:1,2에서 언급된 부활과 연관되어 있고, 마귀와 더불어 모세의 부활에 대해 경합을 벌였으며(유9),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게 될 때 들리게 될 천사장의 음성이 바로 미카엘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천사장이 미카엘이라는 것은 그가 성경에서 언급된 유일한 천사장이라는 사실 때문에 확실합니다.

2. 가브리엘

그는 성경에 이름과 더불어 네 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니엘서에 두 번 나오고 누가복음에 두 번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서 8:16, 9:21-27에서, 그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그리스도의 초림의 때를 알려 주었고, 초림의 때가 되자 사카랴에게 나타나 그리스도 보다 먼저 온 밥티스트(침례자) 요한의 출생을 알려 주었고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의 출생을 알려 주었습니다(눅1:19,26,27). 그가 사카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보아, 하늘에서 그의 지위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가브리엘이라."

3. 사탄

우리가 마지막으로 사탄을 언급한다고 해서 그가 결코 이 셋 중 가장 지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악한 성품 때문에 그는 여러 면에서 매우 큰 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무정부 상태나 반역의 근원입니다. 사탄에 관해서는 다음 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영의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

사람은 물질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로 두 개의 세계, 즉 물질 세계와 영의 세계를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데살로니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며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화평케 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케 하시는 도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없이 보전해 주시기를 구하노라"(살전5:23).

그는 또한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강력하며, 양날 가진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갈라내기까지 하고, 마음의 생각과 의도들을 판별하는 분이심이라"(히4:12).

이 두 구절에서 우리는 사람이 삼위일체, 즉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십니다. 구약시대의 장막은 밖에 있는 뜰에 의해 둘러 쌓였고, 이 뜰은 막으로 된 펜스로 둘러 쌓였습니다(장막 그림을 참조하기 바람). 이 장막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고, 하나의 길이는 다른 하나의 길이의 두 배이며 그 사이에 베일 즉 커튼이 있었습니다. 이 두 개의 방 중 큰 것은 거룩한 곳 즉 성소라 불렸으며 밖에서 들어가려면 커튼이 쳐져있는 문을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 안에는 '진열하는 빵을 담은 상'과 '향단', 그리고 '일곱 개의 가지로 된 등잔대'가 있었습니다. 두 방중 작은 방은 성소로부터 베일 즉 두 방을 나누어주는 커튼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 안에는 '계약의 궤'가 있었고 이 궤의 뚜껑 위에 있는 케루빔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세카이나 영광' 중에 자신의 거처를 정하셨습니다. 이 방은 '가장 거룩한 곳' 즉 '지성소'라 불렸습니다. 장막 안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으며 그 안에 들어가는 단 하나의 출입구는 성소에 이르는 커튼으로 닫혀진 문뿐이었습니다. 이 장막과 그 주변의 뜰은 사람의 세 가지 본질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뜰은 몸을 나타내고, 성소는 혼을, 그리고 지성소는 영을 나타냅니다. 성소를 통하지 않고는 뜰에서 지성소 안으로 들어 갈 수 없듯이, 사람의 경우에도 오직 혼을 통해서만 영과 몸이 통할 수가 있습니다. 장막이 완성된 후에도 하나님의 영께서 지성소에 자신의 거처를 정하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록 사람이 영과 혼과 몸으로 완성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영적 상태는 성령님께서 들어오셔서 사람의 본질 중의 영의 방을 소유하시기 전까지는 새롭게 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새로 태어나는 것, 즉 거듭남이 일어날 때에야 비로소 생기게 됩니다. 사람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세 가지 본질"이라는 그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있는 원은 사람의 몸을 나타내고, 중간의 원은 혼을, 그리고 가장 안쪽에 있는 원은 사람의 영을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육적인 것"(고전3:53), "자연적인 것"(고전2:14), 그리고 "영적인 것"(고전3:1)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가장자리에 있는 원을 보면 몸은 다섯 가지 감각 즉 "보는 것", "냄새 맡는 것", "듣는 것", "맛보는 것", "만지는 것" 등을 통해 물질 세상과 접촉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혼에 이르는 문에는 "상상", "양심", "기억", "이성", "애정" 등이 있습니다. 영은 혼을 통해서 외부에 있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영이 갖고 있는 영적 기능은 "믿음", "소망", "경외심", "기도", "경배" 등입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사람의 영이 하늘로부터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아담 안에서 타락했을 때, 죄가 영의 창문을 막아 버렸고 커튼을 내림으로써 영의 방은 죽음의 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롭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같은 상태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생명"과 "빛"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이 영의 방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 생명의 능력 즉 "생명"과 "빛"을 주시는 능력으로 채우실 때에야 비로소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인이 영적인 것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연인은 그의 영적 상태가 새롭게 될 때까지 결코 영적인 것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자연인의 영은 어두움 가운데 있으며, 뿐만 아니라 그의 "의지"가 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역할을 하면서 성령님께서 들어가는 것을 막습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그의 혼과 영은 몸으로부터 분리되고 몸은 무덤 속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영은 결코 몸이 없는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고 사도 바울이 "혼적인 몸" 혹은 "영혼의 몸"이라 부른 몸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같은 "혼적인 몸"은 듣거나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느낄 수 있으므로, 어떤 만질 수 있는 형태를 취해야만 합니다. 또한 이 몸은 형체가 없는 유령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 몸은 완전치 못하여 어떤 제약이 있긴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부활 시에 자신이 원래 소유했던 육적인 몸을 다시 얻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혼적인 몸"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가복음 16:19-31에 있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코 비유가 아니며 예수님께서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다른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묘사한 실제 사건입니다. 이 기사에서 우리는 부자와 나사로가 죽어서 장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의 몸은 땅속에 있었습니다. '지하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은 그들의 육적인 몸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태에서 그들은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부자는 나사로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나사로가 몸이 없었다면, 그 일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확신하는 바는 그 몸이 육적인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육적인 몸은 땅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곳에서의 그의 몸은 혼적인 몸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이 혼적인 몸이 단순히 어떤 형태를 지닌 몸이 아니라 밖으로 보이는 형태나 모습에서 그 몸의 소유주가 땅에서 갖고 있던 육적인 몸과 똑같은 몸이라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도 그 세상에서 그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서도 부자는 여전히 보고, 느끼고, 목말라하고, 말하고, 기억할 수 있었으며, 이 사실은 그가 감각을 갖고 있고 그 자신의 인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사실은 '이 땅에서의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옮겨 갈 때에 제칠일 안식교인들이 주장하는 '혼이 잠잔다는 것' 등과 같은 어떤 불연속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잠잔다'라는 표현이 쓰일 때는 항상 몸에 관한 것이며, 결코 혼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서 잠잔다'는 표현은 항상 성도에게만 적용됩니다.

자 이제부터 영과 혼이 몸을 떠난 뒤에 어떻게 되는가 살펴봅시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지하 세계"에 대한 묘사장면을 보게 됩니다. 다음에 있는 "지하 세계"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하 세계"는 낙원과 지옥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둘 사이에는 사람이 서로 지나갈 수 없는 깊이 갈라진 틈이 있습니다(여기의 지옥은 최후의 지옥 즉 게헨나라고 불리는 '불의 호수'가 아님) 이같이 깊이 갈라진 틈의 밑에는 '바닥 없는 구덩이'(무저갱) 혹은 '아비쓰'가 있습니다. 바로 이 곳에 '사악한 영들' 즉 마귀들이 현재 갇혀 있습니다. 그 곳에는 이 구멍을 다스리는 왕이 있으며 그의 이름은 아폴리온입니다. 이 구멍은 현재 하나님께서 막아 놓으셨으며 후에 그분께서 원하실 때에 천사를 시켜 그것을 여실 것입니다(계9:1-16, 17:8, 20:1-3).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는 의로운 사람의 영과 혼이 '지하 세계'의 낙원 부분으로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후에 바로 그 낙원에서 '회개했던 강도'를 만나셨습니다. 그분께서 부활하시던 날 그리스도의 혼과 영은 지하 세계로부터 되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분께서는 혼자만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낙원에 있던 이들을 다 데리고 나오시며 그곳을 닫아버렸고, 그래서 이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갖고 계십니다(계1:18). 이 구절의 사망은 무덤을 의미하며 지옥은 '지하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온 사람들 중 몇몇은 자기들의 몸을 받아 그분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의 첫열매가 되었습니다(마27:52,53). 그 나머지는 사도 바울이 들려 올라갔던 셋째 하늘에 올라갔습니다(고후12:14).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셋째 하늘을 낙원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죽은 의로운 자들의 혼은 바로 이곳으로 직접 가서 주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빌1:23, 고후5:8). 바로 이 곳에서 의로운 자들의 혼은 그들의 몸이 부활하는 때가 이르기까지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서 자신의 교회를 만나러 오실 때에, 그분께서는 셋째 하늘의 낙원으로부터 의로운 자들의 혼을 다시 데리고 오십니다. 왜냐하면 그 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고 있는 자들을 그분께서 자신과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살전4:14). 그들은 땅에까지 와서 무덤에서 자기들의 몸을 받아 "휴거 받은 성도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지하 세계" 그림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기로는, 사악한 자들의 혼은 지금도 여전히 지하 세계의 지옥에 갇혀 있으며 둘째 부활의 때까지 그곳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 둘째 부활 때에 이들은 땅으로 돌아가 자기들의 몸을 받고 곧장 '흰 왕좌 심판'으로 들어갑니다. 이 심판 후에 그들은 둘째 사망 선고를 받게 되며, 이것은 그들이 몸을 잃는다는 의미에서 두 번째 죽는 것을 뜻하며 육적인 몸이 없는 영들로서(즉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처럼) 최종 지옥인 게헨나, 즉 불의 호수 속으로 던져져 영원토록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혼과 영은 불 속에서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사실은 사악한 자들이 둘째 사망에 의해 그 몸을 다시 잃은 후에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막9:43-48).

현재 우리는 "영적 강신술"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이것은 산 자들이 죽은 자들과 교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같은 강신술 혹은 심령술은 사실 마귀를 숭배하는 것으로 성경은 이를 금하고 있습니다(레20:6, 27, 신18:10, 11, 사8:19). 구약성경에 나오는 "친숙한 영" 혹은 "익숙한 영"은 신약시대의 마귀요 곧 "미혹케하는 영"인 것입니다.

 

                                                                                                                  [출처] 천국과 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