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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천국을 보고 온 사람은 많은데 왜 변화되지 않지!!

chajchul 2019. 4. 7. 22:00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천국을 보고 온 사람은 많은데 왜 변화되지 않지  


천국이란 흔히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이다. 하지만 살아생전 천국을 본 이가 있다.

바로 데일 블랙(Dale Black)이 그다. 그는 40년 전 천국을 보고 온 사람이다.

그는 죽음을 통과한 이후에 그곳에 간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식물인간의 상태로 지내는 동안 그곳을 보고 온 것이다.

당시 19살에 불과한 그는 27살의 기장 찰스 번즈와 38세의 부기장 유진 베인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한데 그들이 운행한 비행기가 대리석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묘지의 기념비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일로 비행기는 산산조각이 났고 기장과 부기장 모두 죽고 말았다. 데일 블랙만이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물론 그의 모습은 미치광이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그 괴물과 흡사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그는 추락사고 1주년을 앞두고 13번의 수술을 받았다.

1주년이 가까워질수록 그에게서 사라졌던 모든 힘줄이 되살아나는 기적을 맛보았다.

급기야 그의 1주년 때에는 이전의 아픈 기억들을 말끔히 씻어내는 비행까지 극복할 수 있었다.

그가 경험한 천국이 왜 그에게 소중할까? 사

실 비행기 추락사고 이전까지 그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생활 습관도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하지만 천국을 보고 온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그야말로 천국을 증언하는 사랑의 화신이 된 것이다. 그러니 그의 이전 모습과 이후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본 천국을 믿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른 이도 뚱뚱한 이도 없었다. 굽거나 부러져서 불구가 된 이도 없었다. 늙은이도 젊은이도 없었다. 추측건대

모두 서른 정도로 보였다. 피부에 주름이 지거나 노화의 징후도 전혀 없었다. 천국에서 시간은 사람의 적이 아니었다.

시간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아무도 늙지 않았다. 누구도 죽지 않았다. 어떤 이도 약해지지 않았다(151쪽)."

그가 쓴 〈미리 가본 천국>을 읽자니 펄시 콜레의 〈내가 본 천국>이 떠올랐다. 또 한국의 어떤 목회자가 본 천국과

어떤 장로의 천국 간증도 오버랩 되었다. 글쎄다. 천국을 본 주관적인 체험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주관적인 체험을 객관화시키려고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그것은

자기 강화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게 그것이다.

이는 데일 블랙이 40년 동안 침묵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본 천국을 그 즉시 자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입을 다문 이유가 뭐였을까?

언행일치의 삶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도 있고 자칫 돈과 명예를 밝히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경계하도록 그의 외할아버지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던 것이다.

"데일, 네가 이야기하는 천국과 영원은 하나님의 세계야. 그 세계는 영적인 곳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해.

네가 정말로 그런 체험을 했다면, 그 체험은 거룩한 거야. 이제 너는 체험한 것을 지금 당장 입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여기고 네 삶으로 말할 수도 있다. 네가 정말로 천국을 봤다면 네가 본 대로 사는 거야.

네가 들은 대로 사는 거야. 행동은 말보다 더 중요한 법이거든(165쪽)."

사실 천국을 보고 온 사람은 많을 수 있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그가 전하는 말의 태도와 삶의 태도가 보여 주는 이중성 때문이지 않을까?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처럼 말이다.

그들의 삶은 회칠한 무덤처럼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 겉은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하고 살았다.

오늘도 한국교회는 천국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그곳을 직접 보고 온 이들의 간증도 들려준다.

 

그런데도 왜 이 사회는 변화되지 않는 걸까?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의 삶을 입증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70~80년대에는 크리스천들의 삶의 좌표가 저 천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저 천국보다 이 땅에 더 한정돼 있지 않는가.

천국도 자기 강화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시급히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김성권

                                                                                      [출처] 천국과 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