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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시작은 용서였습니다4!! ♡

chajchul 2015. 9. 21. 22:27


     ♡ 사랑의 시작은 용서였습니다4!! ♡


다시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불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셔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시지만 세상에서 사는 동안 선하지 못한 행동으로 짓는 그 죄와 허물에서까지 구해주시기 위해서 징계라는 용서의 방법을 쓰십니다.

그 좋은 예가 다윗입니다. 그는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했지만 선지자를 통해 회개할 때 눈물로 침상이 썩을 지경까지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어 멸망하는 것은 면했을지라도 그 죄에 대한 보응으로 하나님이 징계하심에 그의 자식은 원수가 되어 공격하고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아내들까지 빼앗기는 비참한 일을 당했던 것입니다.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 징계는 쓰기 때문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또 징계를 받을 때에는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이 징계로 인하여 연달 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히12:11)

왜, 우리는 남의 허물을 용서해 주어야 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해야할까요? 예수께서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징계를 받았기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용서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된 자는 자녀로서의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그 의무는 계명이기도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용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용서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심과 같이 이웃을 용서해 주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용서란 죄 없는 의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이웃의 죄를 용서해줌으로써 우리는 용서받았음이 들어 나고 의롭다고 하는(칭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고 증오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자신의 심령이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도 먼저 남을 용서해야만 할 것입니다.

용서가 없고 처벌만 있는 사회, 사랑이 없고 증오만 있는 사회란 생각만 해도 삭막합니다. 용서가 있을 때 화해가 있고 화해가 있을 때 진정한 평화가 유지됩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참 평안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는 용서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용서는 사랑과 진정한 용기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강자의 너그러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용기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용서해야만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3절에서 35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자가 있었는데 간청하므로 불쌍히 여긴 왕이 탕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빚진 자는 가기에게 일백 데나리온의 빚진 이웃사람을 용서해주지 못하고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안 왕이 괘씸하게 여겨 탕감해준 빚을 다시 갚도록 하고 말았습니다.

주께서 비유로 이렇게 가르치시고 35절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같이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은 것은 이웃을 용서해준다는 전제 아래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는 "우리가 우리의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용서가 취소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을 용서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하시고 나서 이어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며 본을 보이셨습니다.

여기서 목욕은 영적인 죄를 씻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발을 씻는다는 것은 선하지 못한 행위 즉 육적인 허물을 씻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육적인 허물(죄)은 서로 용서함으로 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인 것을 풀기 위해서는 용서해 주어야만 합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8:18) 이웃과 화목한 것은 그리스도 인들의 덕목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용서를 해주어야 할까요? 사랑의 시작이 용서라면, 용서의 시작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하기가 어려운 것은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자기 논에 물대기'식의 사고방식은 감정의 대립만 있을 뿐 화해나 용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도량을 가져야만 폭넓고 심지 깊은 인격자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쪽에서는 이미 용서해줄 마음이 있는데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을 때입니다.

일부러 찾아가서 구하지도 않는 용서를 해준다는 것은 여간 자존심이 상하고 성가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용서해주었다고 치부하고 맙니다.

이럴 경우 이것은 용서를 해준 것이 될까요? 이제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고후2:7~8)

용서를 해준다는 것은 용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잘못을 알고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고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약한 자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관용의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약한 저들은 많은 근심으로 오히려 실망하고 좌절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오히려 위로하고 사랑을 나타내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해주었음을 분명히 선언해주고 또 그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심과 같이 우리도 용서해준 자를 위해 기도해 줄 때 하늘에서도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용서라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용서해주는 것이 진정한 용서요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주께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글/김영식 목사

『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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