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시작은 용서였습니다5!! ♡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하시고 나서 이어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며 본을 보이셨습니다.
여기서 목욕은 영적인 죄를 씻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발을 씻는다는 것은 선하지 못한 행위 즉 육적인 허물을 씻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육적인 허물(죄)은 서로 용서함으로 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인 것을 풀기 위해서는 용서해 주어야만 합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8:18) 이웃과 화목한 것은 그리스도 인들의 덕목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용서를 해주어야 할까요? 사랑의 시작이 용서라면, 용서의 시작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하기가 어려운 것은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자기 논에 물대기'식의 사고방식은 감정의 대립만 있을 뿐 화해나 용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도량을 가져야만 폭넓고 심지 깊은 인격자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쪽에서는 이미 용서해줄 마음이 있는데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을 때입니다.
일부러 찾아가서 구하지도 않는 용서를 해준다는 것은 여간 자존심이 상하고 성가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용서해주었다고 치부하고 맙니다.
이럴 경우 이것은 용서를 해준 것이 될까요? 이제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고후2:7~8)
용서를 해준다는 것은 용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잘못을 알고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고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약한 자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관용의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약한 저들은 많은 근심으로 오히려 실망하고 좌절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오히려 위로하고 사랑을 나타내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해주었음을 분명히 선언해주고 또 그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심과 같이 우리도 용서해준 자를 위해 기도해 줄 때 하늘에서도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용서라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용서해주는 것이 진정한 용서요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주께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글/김영식 목사
『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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