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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 어린 양, 주기철!! ♣

chajchul 2016. 1. 17. 17:34

     ♣ 어린 양, 주기철!! ♣

드디어 평양 형무소의 쪽문이 열리고 '시체를 인수하라'는 간수의 외침이 들렸다. 기다리고 서 있던 사람들은 궤짝으로 아무렇게나 만든 관을 손수레에 싣고 단칸 셋집으로 향했다.

입관을 하기 위해 죄수복을 벗길 때 이제 13살 된 막내아들은 고요하게 누워있는 아버지의 발목을 부여잡고 몸을 떨었다. 잔혹한 고문으로 열 개의 발가락들이 모두 흉하게 뭉그러져 있었다.

그 발은 1940년경 민족과 교회가 당한 처절한 수난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소양 주기철이 오산학교와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하고 목사가 되었을 때 조선 총독부는 교회까지도 천황을 경배하도록 강요했다.

설교나 찬송중 '만왕의 왕'이란 말만 나와도 천왕의 존엄을 모독한다 하여 즉시 예배가 중단되고 목사는 끌려갔다.

일제 당국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우겼지만 실제로는 신사나 천황이 가장 높은 자가 되고 기독교의 예배를 그 아래 놓으려 했다.

전향이냐 순교냐 두 가지 길밖에 없는 시대였기에 전국 교회는 마지못해 신사참배에 끌려다녔다. 주기철 목사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민족 구원을 위해 회개하자고 담대하게 계속 설교했다.

그와 그의 교회가 신사참배를 끝끝내 불응하자 경찰은 교회를 폐쇄하고 주목사를 쫓아냈다. 그래도 굴복하지 않고 집에서 예배드리고, 가르치자 경찰은 그를 다시 구속했다. 다섯 번째 구속이었다.

어느 날 경찰은 특별면회를 시켜준다며 주목사 가족을 경찰서 지하방으로 데려갔다. 한쪽 벽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그 방의 맞은편에서 주목사가 이쪽을 보며 사랑하는 아들에게 애틋한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곧,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의 팔순 노모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아홉 살 밖에 안된 막내 아들은 충격을 받고 실어증에 걸렸다.

경찰이 모질게 고문할 때 그는 고통을 참으려고 속으로 찬송을 불렀다. 온갖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며 자기의 영혼까지도 고문당하지 않도록 지켰다.

감옥생활로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갔지만 그는 늘 단정하고 평안한 모습이었다. 그와 함께 감옥에 있었던 한 사람은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조각한 것같이 희고 아름다운 얼굴, 안질 때문에 빨간 눈, 미소를 띠고 바라보는 그 고상하고 아름다운 모습. 그는 마치 목자를 따라가는 어린양 같았다.'

예수님의 어린 양, 주기철 목사는 1944년, 그의 나이 48세에 감방 안에서 주님의 품에 안겼다. 그가 뭉그러진 발로 아프게 걸어간 길을 우리는 지금 평안하고 배부르게 가고 있다.

옷깃을 여미고, '저의 믿음을 본 받으라.'(히13:7)고 하신 주님의 그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본다.

『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 히 12: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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