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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아가페 사랑의 이야기! ♧

chajchul 2017. 6. 25. 08:27

     ♧ 아가페 사랑의 이야기! ♧
글/ 김영식 목사

얼마 전에는 아가페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아가페 사랑을 행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아가페 사랑은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알 수가 없고 또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받기 이전의 베드로는 "...네가 나를 사랑(아가페)하느냐..." 고 물으시는 주님에게 "내가 주를 사랑(휠레오=우정, 친절)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 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우정'이나 '동정' 같은 인정으로 끝나고 맙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아가페 사랑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아가페 사랑만이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이 나오고 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우리 모두에게는 계명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데로 그것은 사랑(아가페)입니다. 믿는자 치고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사랑해야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사랑해야할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이 세대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것이 아니고 사랑할 대상인 하나님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만들어서 사랑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식대로 사랑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어떤 대상에 마음을 쏟고 거기에 사랑과 비슷한 인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직접 드러 내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여지는 가시적인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되고 만나지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들겠습니다.
김 집사가 나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우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것은 인정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김 집사를 볼 때 그가 나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과 그러기 때문에 나와 형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주님이 그 속에 계신 것을 느낄 때 이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것이라는 생각만을 한다면 왜 갈라지고 깨어지는 일들이 있겠습니까?

사람만 보이고 주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랑(아가페)은 없고 인정만 앞서면 이 인정으로 무엇을 하다가 인정이 말라지면 교회는 깨어지고 분열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18장 5절에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사랑을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은 사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책이 왜 소중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책이 한 없이 소중한 것이지만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에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자연) 존재하신다고 했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신 분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자연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알 수 있다고 로마서 1장10절에 말씀하십니다. 자연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들풀 하나라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 이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자들은 자연을 그냥 좋아하고 즐길 수는 있지만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목사님을 왜 사랑합니까?
축복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까?

목사님을 축복해 주는 분으로만 믿었는데 그 축복의 위력이 곧 나타나지 않으면 실망하고 목사님과의 사랑도 멀어집니다.

이런 것은 아가페 사랑이 아닙니다.
그 목사님이 하나님이 쓰시는 소중한 도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이기 때문에 목사님을 사랑했다면 그 사랑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아가페 사랑이라고 합니다.

왜 봉사를 하다가 지쳐서 중도에 그만두고 맙니까?
일하면 상급 받는다는 보상심리로 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헌금하면 복 받는다."
"하나님은 최하 30배 주신다."
"은혜 받으려면 봉사해라"

이런 생각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은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중도에서 돌아서게 됩니다. 이런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이 기복신앙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신앙이 여기에 이르면 부패하고 타락합니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은 자꾸만 기복신앙으로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께서는 어떤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계신지요?
좀 어려운 질문이지만 너그러운 맘으로 답변해 주세요."
하고 어떤 분이 나의 개인적인 신앙을 물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해 드렸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나를 사랑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나도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 분을 사랑하기에 어떤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명령이라면...
나는 의무감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사명감으로도 일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따르고,
사랑하는 이의 일이기 때문에 나는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 믿지 않습니다.
상급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 그런 것이 성경에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내게도 주실 줄을 압니다. 그러나 그런것 때문에 믿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을 뿐입니다.
그리고 속히 그분을 만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것은 귀신들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야고보서 2장 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신도 믿는다고 했는데 귀신도 믿었으니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구원받지 못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이루어 주신다, 기도만 하면 다된다고 가르치는 것, 한국 기독교의 두 번째 문제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귀신처럼 믿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 기독교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들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영혼들입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에는 보여지는 모습, 즉 육신적인 모습만 보게됩니다.

그래서 외모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보실 때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어 놓은 영혼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하나님 자신을 보듯 보아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형제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과 동격으로 인정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육체는 질그릇과 같고 쓰다가 버릴 것이지만 그 영혼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긍휼히 여겨 주어야만 됩니다. 이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만일 영혼을 보지 못한 체 보여지는 육체만 보고 긍휼히 여긴다면 그것은 동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인정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봉사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면 힘들지 않습니다. 선교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아골 골짜기라도 갈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한 가시밭길, 형극의 길이라도 주님이 가신 길이라면 따라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죽음보다 더한 시련과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달으면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조금도 안타까울 것이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이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선교도 봉사도 의무감이나 사명감만으로 한다면 며칠 못 가서 지쳐 버립니다. 주님이 사명감으로만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하나님의 명령 때문입니까?

더 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 흘려 죽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최대의 능력은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 능력은 오직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선교는 아가페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비단 선교뿐만이 아니고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행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이 도우실 것입니다.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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