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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하늘과 지옥 3

chajchul 2018. 6. 2. 22:00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

   하늘과 지옥 3


Ⅱ. 지옥


연옥교리는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낙원과 지옥에 대한 그림에서는 어떠한 중간의 장소도 없습니다. 깊이 갈라진 틈은 동시에 지옥에 거하는 자들이 낙원으로 건너올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연옥의 교리를 무효화시키며 회복교리도 또한 무효화시킵니다. 회복교리란 사악한 자들이 한동안 지옥에서 고통받고 그들의 죄들에 대해서 충분히 형벌 받은 후에 회복되어 하늘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사탄과 그의 천사들 그리고 우주의 모든 악한 권세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지옥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교리를 옹호하는 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것을 원상 회복하실 그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분을 받아두어야 하나니, 이 원상회복의 때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거룩한 대언자들의 입으로 말씀해 오신 바니라"(행3:21).

이 구절의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므로 복원(회복)의 때에는 모든 것이 그들의 원래의 영광과 위치를 회복할 것이라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에는 모든 것을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모든 자신의 거룩한 대언자들의 입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으로 한정시키는 조건부 종속절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말씀들이 오순절에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며, 그들이 회개하고 회심할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행3:19). 물론 그 이후에 그분께서는 대언자들이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리라고 예언했던 것들을 그들에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회복하실 것들은 무엇입니까? (1)그들을 팔레스타인 땅으로 회복시킴(아모스9:14-15). (2)땅의 생산력의 회복(요엘2:24-26). (3)왕국의 회복(단7:13-14). (4)짐승의 경우에는 에덴에서의 조화상태로의 회복(사11:6-9). (5)족장 시대의 회복(슥8:4). (6)타락이전의 원래 상태로의 지구의 회복(계21:1). 성경 어느 곳에도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악한 자들 또는 우주의 악한 권세들의 원상회복을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그들이 영원토록 또는 시대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계20:10, 마25:46).

이같은 회복교리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는 교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하 세계의 지옥구역에 있는 사악한 자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또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같은 두 번째 기회에 대한 주장이 생겼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데스로 내려오셨을 때 거기에 감금되어 있던 잃어버린 영들에게 설교하셨다고 주장하며, 베드로전서의 다음 구절에 자기들의 논쟁의 기초를 둡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당하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체로 죽임을 당하시고 성령으로 살리심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일찍이 노아의 날들에 방주가 예비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가 몇 안되니, 곧 여덟 혼이라"(벧전3:18-20).

예수님께서는 지하 세계로 내려오셨을 때 지옥구역에 간 것이 아니고 낙원구역에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죽어있는 사악한 자들에게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인용한 성경구절은 그분께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고 말합니다. "감옥에 있는 영들"은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죽어있는 사악한 자들의 영들"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 때에 사람의 딸들과 동거함으로 인해 자기들의 첫 번째 위치를 잃어버리고 타르타루스에 감금된 천사들입니다. 사실 지하 세계에 내려가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타르타루스를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몸소 선포하지 않았고 다만 성령님으로 선포하셨고, 성령님께서는 노아를 통해서 120년동안 타르타루스로 추방되기 전에 여전히 지상에 남아있었던 그 타락한 천사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만일 사악한 자들이 다음 세상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된다면, 누가 그것을 선포할 것입니까? 만일 인간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시기 위하여 이생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섭리, 성경, 복음의 선포, 성령님의 역사가 여기서 아무 소용이 없다면, 그러한 것들이 전무하고 전적으로 악한 환경으로 둘러싸인 지옥에서는 무엇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겠습니까? 성품이 운명을 결정합니다. 성품이 고정될 때, 상태 역시 변하지 않고 정해집니다.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러우며,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롭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할지니라"(계22:11). 계시록의 말씀들은 죽을 때 성품이 고정되는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사악한 자들이 당하는 고통과 이 세상에서 잃어버린 기회들에 대한 기억들이 그들을 회개로 이끌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해 후회하게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경건한 슬픔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건한 회개로 그들을 인도하실 성령님이 거기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 없이는 그들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형벌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다면 복음은 쓸데없는 것이 되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들을 벌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사실 형벌은 범죄자들을 오히려 무감각하게 합니다.

지옥에 있는 부자(눅16:23-28)는 회개조차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긍휼을 구하지도 않았으며 자기의 고통의 장소로부터 나와 나사로가 있는 곳에 가려는 열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바싹 마른 혀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만을 원했습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은 형벌이 사악한 자들을 더욱더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그 책에 나오는 재앙 속에서 고통 당한 자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부르짖지 않고 오히려 바위들과 산들이 자기들 위에 떨어져 자신들을 왕좌에 앉으신 분의 면전으로부터 숨겨주라고 부르짖습니다(계6:16-17) 그들은 또한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하였으며(계16;21), 심지어 사탄도 무저갱에서 추방의 1000년의 기간이 있은 후에도 전에 보다 더 악하게 나타납니다(계20:7-8). 만일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의로움보다 악을 선택한다면, 지옥이 그들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도덕적 측면에서 자기들이 낮게 되기를 원하는 만큼 낮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슬픈 것은 죽음이 그들의 죄 짓는 것을 지체시키지 못하여 죄의 발전을 지체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가속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악한 자들이 지옥 속에 얼마나 깊은 곳으로 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 하나님께서 다음 세상에서 사악한 자들을 구원할 어떤 방법을 고안해 내실 수는 없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며(딤전2:4), 사악한 자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며(겔33:11)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맛보셨다(히2:9)고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고 사실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합니다.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는 것을 통한 구원의 계획을 고안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것이라고 저는 감히 말합니다. 만일 어떤 다른 길이 있었다면, 그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 당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길을 예비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빌립보서 2장 10,11절 말씀을 인용할지 모릅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라는 그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리고 계시록의 말씀을 인용할지 모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바다에 있는 생물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말하되, 왕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존귀와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토록 있으리로다"(계5:13). 맞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백하는 것이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복당한 사람은 궁핍함 때문에 정복자의 우월성을 인정하지만, 그것 자체가 그의 마음의 변화를 암시하지는 않습니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과 하늘과 땅 그리고 지옥에 있는 모든 악의 권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이실 뿐아니라 왕들 중의 왕이시며 군주들 중의 군주시라고 자백할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하늘의 영광을 회복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의 문제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안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무덤의 다른 편에서 행한 것이 아니라 무덤 저편에 있는 "몸 안에서" (고후5:10) 행한 것에 대해 심판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길을 가리니,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 죄들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8:21). 이 말씀은 만일 사람들이 뉘우치지 않고 죽는다면, 결코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연옥의 교리는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잘못된 견해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분의 죽음이 충분하다면, 믿음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연옥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고 한 번에 낙원에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미사를 드린다는 사실은 주님의 만찬의 목적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주님의 만찬은 성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십자가사건을 되돌아보고 그분의 오심을 고대하는 기념행사일 뿐입니다.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는 것이니라."(고전11:26). 에덴에서의 타락과 갈보리사이에는 희생단이 있고 갈보리와 재림사이에는 만찬의 상이 있으며, 재림과 새하늘과 새땅 사이에는 통치의 왕좌가 있습니다. 전에 나온 "그리스도의 세 가지 사역"에 관한 그림을 보십시오. 갈보리와 재림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상을 놓았는데, 과연 누가 거기에다 희생단을 세울 수 있습니까? 상을 희생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위에 희생예물을 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빵과 포도주가, 천주교에서 말하듯이 실제의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면, 미사를 드릴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당하고 미사의 참여자는 하나님을 먹으며 또한 인간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기에 식인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만찬이 제정된 당시의 상황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유월절 만찬 이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이 상징화했던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리실 참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이미 피를 흘린 유월절 어린양을 막 먹으려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자신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빵을 취하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부서진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전11:24).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전11:25). "이것은 나의 피니라"라고 컵의 내용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 컵을 건네주셨을 때, 그분께서는 자신의 혈관을 열어서 자신의 생명의 피가 그 컵 속으로 흘러가게 하셨습니까? 그 날밤 제자들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셨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 빵이 이제 막 십자가에서 부수어질 자신의 몸을 상징하며 그 컵은 앞으로 흘릴 자신의 피를 상징한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설명해 주려했던 것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의 자신의 죽음이 유월절 어린양이 상징화했던 것을 성취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매번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마다, 짐승의 희생 예물들은 이제 폐지되었고 그분 자신을 드린 것은 단 한번뿐이며 따라서 더 이상 죄를 위한 희생이 없음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히10:12-18).   

 


                                                                                                                  [출처]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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