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사랑방

생명의 샘터

♧ 고난을 통한 소망!! ♧

chajchul 2020. 11. 30. 22:26


     ♧ 고난을 통한 소망!! ♧


성도에게 고난이 있는 이유와 목적은, 대체로 두 가지라 생각됩니다. 하나는, 우리의 신발을 벗기시려는 하나님의 의도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몇 켤레의 신발로 무장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무장으로 인하여 우리는 늘 자신만만했고 그 자신만만함이 하나님께는 짐이 되었고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신을 신으면 안됩니다.

양말도 버선도 벗어야만, 고난도 연단도 중단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숙으로 진입이 가능해집니다. 또 하나의 고난의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리더십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맨발이 될 때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왕 같은 제사장이며, 세상속의 신령한 리더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우리에게 맨발이 되라고 하심은,‘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내가 너를 책임져 줄 것이다’ '발이 부릍지 않게 해줄 것이다'‘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그렇게 힘겨운 이유는 항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항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누리지 못했던 이유도 항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려도, 기도해도, 갈등과 갈증의 포로로 사는 것입니다. 끝없는 내적 갈등과 육신의 쓴 뿌리는 무장된 자아의 열매이며 항복되지 못한 가나안 일곱 족속과 그 잔당들의 끈질기고도 집요한 추격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항복은 순종으로 표현 될 때 아름답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백번의 예배보다 백번의 기도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한번이라도 순종하고 항복하는 것입니다.

순종 없는 예배와 순종 없는 기도는,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타성에 빠지게 만들 뿐입니다. 그것은 낳지 않는 알을 품고 있는 자고새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항복과 순종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항복은, 영적전쟁 가운데 가장 치열한 전투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의 수십 년 학습되고 세뇌된 자아와 사단의 세력들이 그냥 순순히 놔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항복의 은혜로 무장되어야만 합니다. 은혜의 무장으로만이 우리는 물질, 쾌락, 안주, 게으름, 패배주의, 인본주의에서 항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순종하지 않으려 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야, 너 맞고 할래. 그냥 할래'. 하나님도 성도들에게 그렇게 물으십니다. '맞고 순종하려느냐? 아니면 그냥 순종하려느냐?' 얼른 항복하고 순종함이 신상에 좋을 듯합니다.

깊은 항복 속에 깊은 샘이 솟아오르기 때문입니다. 항복한 자의 행복 그것만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신령한 축복이 아닐까요? 항복은 약한 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앙고백이며 신뢰의 표현입니다.

항복은 단념이나 체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항복은 약할 때 강함 주신다는 믿음의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마르지 않는 샘'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이기려 하는 자는, 일생을 진자로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께 항복한 자는 평생을 이긴 자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작아진 자 그는 진정 강한 자요, 위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서정호 목사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고후4:16)




비판, 비방, 상호비난, 도배, 이단성의 답글들은 운영자의 직권으로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