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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를 내려놓지 못한 삶의 비극!! ♧

chajchul 2022. 5. 27. 22:02


     ♧ 자기를 내려놓지 못한 삶의 비극!! ♧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왜 그렇게 예수님을 박해했다가 결국 죽이기까지 합니까? 예수님이 두려워서 그렇지요? 맹렬한 비난과 박해를 하는 내면의 동기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을 두려워합니까?

자기 종교, 자기 권익,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을 죽여서라도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입장을 고집하고 싶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진리에 대하여 제가 글을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20세기 선지자라 일컫는 A.W. Tozer의 '하나님을 추구함'이라는 책에서 발췌해 온 글입니다. "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원수가 있는 것같다. 예수님은 그 원수를 "목숨(life)", "자기(salf)" 또는 자기 목숨(self-life)"이라고 부르셨다.

그것의 중요한 특성은 소유욕이 강한 것이다. 이 원수가 살도록 허락한다는 것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그것을 거부하고 포기하는 것이 결국에는 아무 것도 잃지 않는 것이며 영생을 위해 모든 것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여기 이 원수를 멸망시킬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이 주어져 있다. 그것은 십자가에 의한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 안에 있는 억센 노랑이는 가만히 누워서 우리의 명령에 복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치 흙에서 뽑혀 나오는 식물처럼 우리 마음에서 찢겨 나와져야 할 것이며 턱에서 뽑혀 나오는 이처럼 아픔과 피 속에서 뽑혀 나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불쌍한 애걸에 대해 자신을 무감각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게 될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가장 꽤씸한 죄 중 하나인 자기 동정(self-pity)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든 여리고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소식 앞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였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자기 연민, 자기 집착에 얽매여 하나님과 싸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두려움... 여리고성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러나 아무도 자기 마음의 생각을 바꿀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라합을 제외하고는. 그러나/ 창녀 라합은, 그가 여리고 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붙들 수 있었던 기득권이 하나도 없어서 쉽게 자기를 포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사실은 라합은 똑같이 들은, 능력의 하나님의 소식 앞에 세상 사람과 다르게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지키려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여타의 사람들과 달리,

자기를 포기하고 육신의 죽음을 무릎쓰고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하나님 편에 서기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믿음 아닙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 아니 모든 사람과 달리, 자존심을 넘어서 자신의 영혼에 정직한 응답을 보인 것, 이것이 라합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라합을 구원했으며 이 믿음이 세상에서 처절하게 실패한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일 존귀한 여자로 높여 주었습니다. /이덕재 목사

『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눅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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