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 교향곡!! ♣
아마도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내가 아내를 만난 건 대학 3학년 때였습니다. 아내는 그때까지도 꿈 많던 소녀였고 나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결혼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국내 유수의 재벌인 S그룹 장녀였던 아내와, 대학 학장을 부친으로 둔 내가 결혼하겠다는 사실을 발표했을 때 여기저기서 느껴지던 시샘과 동경의 눈빛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우린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고 미국으로 날아가 유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자라고, 화려한 대학생활, 눈부신 오월의 결혼, 그리고 평안하기만 한 유학생활,
미국 동부에 있는 유명한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나나 아내에게 이렇다 할 만한 어려움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애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했을 뿐, 오히려 그것을 젊음을 즐기라는 신호로 알고 마음껏 청춘만세를 외쳤던 우리.
빛나는 태양, 푸르른 파도, 떠가는 구름,
센트럴 파크의 싱그러움, 와이키키 해변의 은빛 물결들...., 별로 힘든 것 없이 박사학위를 따서 귀국한 그 해 겨울.
행운이 겹친다고나 할까요, 나는 원하던 대학에 교수 자리를 얻었고 아내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귀국해서 처음 얼마 동안 정신없이 지내다가 아내의 임신을 알게 된 그날, 우리는 그야말로 성대한 파티를 열었지요.
양가의 부모, 일가 친척 알 만한 사람은 다 불러서 임신을 선포(?)하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노래 부르던 그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내의 손을 꼬옥 잡고 사랑하노라고,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로 행복한 사람이노라고 큰 소리로 외쳐대기도 했습니다.
사람과 차로 넘쳐대는 한강 다리. 유난히 푸르게 보이던 강물. 아마도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꿈만 같던 시절이 다 끝난 어느 날 전혀 예기치 않은 사건을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며 저주나 비난을 퍼부을 것입니다. 나나 아내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기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뇌성마비....
아내가 술이나 담배를 한 것도 아니었고 마약같은 건 더더구나 입에도 대지 않았으며 태교를 위해 나쁘다는 건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말 못하고 몸 가누지 못하고 손이 오그라붙은 아이를 보면서 우리는 저주받은 운명을 생각했습니다.
운명, 운명, 운명........
아내는 계속해서 울기만 했고 나는 계속해서 술만 먹었습니다. 아마 그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는 폐인이 되어 서로 갈라서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독한 자존심과 가문에 대한 수치심을 서로에게 전가시키기 바빴던 우리가 그 날, 그 부부의 집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평범하게 사는 집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 보이지도 않고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도 않은 그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우리의 뒷머리가 쿵 하고 아팠던 건 그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주치게 된 소녀 때문이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온 식구가 이미 우리의 방문을 알고 있었던 듯 거실에 나와 인사를 하는데, 세상에… 우리 집 아이와 똑같은 소녀가 휠체어에 앉아 머리를 흔들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침을 질질 흘리며 오그라진 손가락으로 툭툭 박수를 쳐 대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리 부부는 어쩔 줄을 몰라 한참을 머뭇거려야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아이들의 아빠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들 ‘와아’ 하며 박수를 쳤고, 휠체어의 소녀는 기뻐서 미치겠다는 듯 마구 몸을 흔들어 댔습니다.
세상에, 그때부터 돌아와야 하는 시간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감격시켰던 건 그 집 식구들의 뇌성마비 소녀에 대한 자세였습니다. 남들이 알까봐 쉬쉬거리고 그 애 때문에 결혼생활마저 파탄에 이른 우리와 달리, 정말 그 아이를 천사처럼 여기는 그 가정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과 이해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하, 그 사진들은 전부 이 아가씨 것들이죠.” 거실이며 안방 벽 사방에 붙어 있는 단 한 사람의 사진들.
“다른 애들 것은 앨범에 붙여 놔도 언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아가씬 그렇게 못 하거든요.”
친절하게 제목까지 붙어 있는 사진들을 주욱 둘러보며 우리 부부는 기어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저희 집에도 이런 딸애가 있답니다.” 얼마 뒤 나는 목이 메어 간신히 그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시군요. 어쩐지…. 저희도 처음엔 너무 어려웠지요. 저 애가 태어났을 당시 우리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렇지만 곧 우리 부부는 저 애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네. 저희는 크리스천이랍니다.”
“….”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섭리를 깨달을 때만이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지요.”
뇌성마비인 언니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즐겁게 노는 세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 집 주인이 했던 말을, 이젠 거꾸로 우리 집에 방문하는 이들이 듣게 되었다는 사실.
그렇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우연히 방문했던 그 날의 만남을 기막힌 운명이었다고 부를 것입니다. - 92년 낮은 울타리 4월호에 실렸던 이야기 -
『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 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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