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의 오묘한 섭리!! ♧
성직자는 병상에서도 메시지를 전한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암의 통증에도 끝내 침묵하는 하나님.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병자를 위해 예비해두신 '침묵의 은혜'를 깨닫고 무릎 꿇은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
그가 들려주는 '별세4수'(別世四修) 이야기가 요즘 기독인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신학자요 목회자인 이 목사의 글은 '쉬운 신학'과 '독실한 신앙'과 '감동적인 간증'이 어우러져 감동과 은혜를 더해준다.<편집자> 나는 어린 시절부터 꿈과 소원이 있었다. 그것은 성자처럼 살다가 성자처럼 죽는 것이었다. 성스럽게 살아간 삶의 흔적을 남기고 고결하게 죽은 역사적 인물로 남고 싶었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꿈이요,필생의 소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무지개마냥 저 멀리 있었다. 칼봇제의 시처럼 저 산 너머 멀리 있다고 말하건만 영영 내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세월은 흘렀다.
지난 세월을 곰곰 생각하면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다. 내 꿈은 목사가 되면서 깨지기 시작했고 목사가 되면 성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목사는 혼자 사는 자가 아니라 많은 성도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요, 저들을 돌보고 다스리는 목자이기 때문에 성자가 될 수 없다. 또 교회는 양과 염소가 공존하는 현장으로 수도원이 아니다.
목사는 일생을 교회를 운영하고 살려내는 경영자다. 성자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 침묵의 사람이어야 하는데 입을 열고 설교하면서 말 잘하는 자가 되고 만다. 그래서 기독교는 성자가 없다. 천주교는 성자와 성인을 수없이 배출해내도 기독교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자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병들게 하므로 그 뜻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이다. 두달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일관되게 깨우쳐주신 것은 ‘너는 환자’라고 하는 사실이었다. 모든 검사가 환자임을 확인하는 것이었고 모든 치료가 환자로서 고침 받는 시간이었다.
눈을 뜨고 보는 사람마다 환자들이고 환자들로 병원은 붐비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축소판이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성한 사람은 없다.
모두 병든 자요, 상처난 자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다. 이런 환자들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싸우고 천년 만년 살 것처럼 분을 내니 얼마나 부끄러운가.
나는 병원 벤치에 앉아 부끄러운 인간의 삶을 생각하며 혼자 울고 있었다. 옆의 환자가 내게 물었다. “많이 아프신가 보지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도 환자, 너도 환자인 불쌍한 존재들….
서로 미워하며 살 필요가 어디 있을까. 나는 창밖으로 고속도로를 바라보았다. 시속 100㎞로 달리는 저동차에 탄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도 퇴원하면 또 저렇게 과속인생을 살 것인가! 불쌍한 호모 사피엔스여,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화해하는 성자처럼 살 수는 없는가!
나는 성자의 꿈이 병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병들기 전에 알 수 없었던 것이 안목의 정욕이었다. 나도 역시 소유욕 명예욕 음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병들고서야 안목의 정욕에서 해방됐다. 병든 자에게 소유와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병들고서야 성자가 된 것 같아 감사기도를 드렸다.
병들어 있는 순간 나는 자기를 비운 한 인간을 보았다. 그 순수와 선함을 보았다. 세상을 바라보던 눈을 돌려 하늘을 보게 되었다. 병상에서 보는 하나님은 예전과 전혀 다른 하나님이셨다.
나는 병상에 누워서야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별세사수(四修)가 내 인생을 폭풍처럼 흔들었고 눈 멀고 귀 먹은 내게 진리의 은혜가 섬광처럼 다가왔다.
하늘로부터 번뜩이는 우렛소리가 내 고막을 흔들었다. 그래서 병실에서 이런 시를 쓰게 되었다. 내가 병들고서야 깨닫는 은혜가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배우는 진리가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흘리는 눈물이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드리는 기도가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성숙할 인격이 따로 있다. 내가 병들고서야 만나는 주님이 따로 계신다. [국민일보 2004-10-1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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