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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 고난의 유익2!! ♧

chajchul 2018. 2. 24. 22:18

     ♧ 고난의 유익2!! ♧

여섯 째, 약한 자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게 됩니다. (살전5:14)

어느 몹시 추운 겨울에 미국 뉴욕에서 석탄운반을 하는 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하여 뉴욕시에는 석탄이 들어오지 않아 불을 피울 수가 없어서 각 학교는 거의 보름간이나 임시 휴교를 하게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교실에서 편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생활이 석탄 나르는 노동자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가장 감미로운 음악은 언제나 슬픔에서 생겨나는 것이다"고 한 것처럼, 만약 이 학생들이 이런 아픔의 고통을 모르고 자란다면 그들은 영혼의 섬세한 감정을 모르는 잔인하면서도 둔감한 인간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듯이 모든 고통으로 인해 우리가 성숙해 질 수 있다면, 고통에 있어 우리는 겸손하여 지고 타인에 대해 동정적이 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해 보려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고난은 참아야하고, 남의 고난은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즉 지금 우리가 대처해 있는 환경이나, 또는 꼼짝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를 우리가 모르는 다른 어떤 사람은 능히 이겨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곤란은 나 혼자에게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있었고, 그들은 그 곤란한 장벽 앞에 굴하는 일 없이 힘차게 뚫고 나갔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9)

일곱 째, 하나님을 찾게 하고, 영혼을 살립니다.(시78:31- 34, 잠23:19)

어떤 과학자가 나방이 어떻게 고치를 만들고 그 고치 속에서 어떻게 나비로 탈바꿈하는 가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학자는 고치 속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바둥거리며 온 힘을 다하는 애벌레가 안쓰러워 칼을 가지고 고치 위쪽을 쭈- 욱 찢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밖으로 쉽게 빠져 나온 나방에게 고통은 중단되었으나 그 나비는 곧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과학자가 나비의 죽음을 연구해 본 결과는 이렇습니다.

나비는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버둥거릴 때 날개에서 기름기가 흐르게되고 그 기름 때문에 고치에서 나와 햇볕을 받을 때 날개가 마르지 않고 쫙~ 펴져서 하늘을 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방이 불쌍하다고 하여 인위적으로 고치를 뚫고 나올 때의 고통을 제거해 버리면 나방이 쉽게 나오기는 하는데 결국은 기름기 없는 날개로 인하여 날지를 못하고 햇볕에 말라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그 고난이 없었으면 하기도 하고 누군가 빨리 고난을 제거하여 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과학자의 손에 의해 고통 없이 세상으로 빠져 나온 나방 같아서 날지 못하고 곧 우리의 영성이 죽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힘겨운 고통으로 바둥대고 있을 때도 도와 주시지 않는 듯 멀리 계시는 겁니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도 하지만 우리의 바둥거림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의 날개에는 성령의 기름이 흐르게 되고 그 바둥거림의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죽는 것이 아니라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푸른 창공을 날아가는 나비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힘차게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고난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을 기다리며 참아 내십시요.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절대로 고난 때문에 망하거나 죽지 않습니다.

여덟 째, 주의 능력을 알게 합니다.(고후4:8-11)

영국 한림원(The Royal Society)에는 과학자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잭 뉴턴이라든지 열역학의 복사법칙을 발견한 제임스 진수는 모두 영국이 배출한 석학들입니다. 이 가운데 진스의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의 과학자에 불과하다 학문을 연구하면 할 수록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함에 감복할 뿐이다. 제한된 지식을 알게된 피조물인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광대함을 이해하면 우리들의 잠시고난이라는 것도 능히 견딜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는 무한 하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승리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홉 째, 겸손하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해줍니다.(신8:3, 16, 욥36:8,9)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방법에 의지했을 때 인생에는 가시가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의 가시는 우리에게 "너는 하나님의 신세를 정말지지 않고 살겠느냐? 너는 네 능력과 방법을 의지해서 살겠느냐? 그러면 네 앞길에는 끝없는 가시가 생겨날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인생의 가시에 찔릴 때 '가시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된 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인생의 가시에 찔려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고통의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열 번째, 고난 후 평안과 안식을 얻게 하고, 주의 고난에 동참케 합니다.(시94:12,13, 벧전4:1, 13)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7,18)

열한 번째,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합니다.(롬8:28)

영국 사람들이 한창 싱싱한 청어를 좋아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살아 있는 청어는 굉장히 비싼 값에 거래됐습니다. 고기잡이 선원들은 청어를 산 채로 육지까지 가져오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청어는 워낙 성질이 급해서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한 지혜로운 선원이 청어 수족관 안에 상어를 한두 마리 넣어보았습니다. 순간 상어가 청어 몇 마리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청어가 상어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 배는 육지에 도착했고 청어는 모두 살아 있었습니다. 지금도 청어잡이 어부들은 이 방법을 통해 청어를 산 채로 가지고 온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상어와 같은 고난이 모순처럼 다가와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해주십니다. 우리도 고난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더 웃고 승리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열두 번 째, 성화하게 합니다.(벧전1:7)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니"(시66:10)

바닷가에서 두 굴조개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한 굴조개는 자기 뱃속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한 혹이 생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때 옆에서 하소연을 듣고 있던 다른 굴조개는 '자기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낸다.'고 자랑하면서, 자기에게 건강을 주신 조물주를 찬양하였습니다.

굴조개들의 대화를 엿들은, 지나가던 거북이 한 마리가 건강을 자랑하는 굴조개에게 "당신은 건강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뱃속에 혹이 있어 신음하는 굴조개는 지금 그 뱃속에 진주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살려는 사람은 고난을 보석으로 생각합니다. 고난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채찍이며, 고난은 승리의 전주곡입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섭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난이 내게 반드시 유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낙심하지 말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2:18)

『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67,71)